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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교육

작성자전인득|작성시간26.06.18|조회수23 목록 댓글 0

교단을 떠난 지 어느덧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쁜 학교 일상 속에서는 미처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지난날들이 이제는 한 편의 영화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교장 재직 시절 연수의 일환으로 다녀왔던 미국 시애틀과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7박 8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새로운 교육 환경과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여정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여행은 교육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시애틀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스타벅스 1호점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의 출발점이 된 작은 매장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도전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과정을 떠올렸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학교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생각났습니다. 교실에서 품었던 작은 꿈 하나가 세월이 흐른 뒤 사회를 움직이는 큰 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교육이란 결국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마켓 시어터 골목의 껌 벽도 인상 깊었습니다. 형형색색의 껌이 벽면을 가득 채운 모습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니 그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기억의 흔적이었습니다. 마치 학교 교정 곳곳에 남아 있는 제자들의 추억과도 같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의 발자취는 어딘가에 남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가스 워크 파크에서는 한동안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과거 산업시설이었던 공간이 시민들의 쉼터로 탈바꿈한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낡은 공장이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듯이, 학생들도 적절한 관심과 기회를 만나면 누구나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드먼드 지역에서는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첨단 기업들을 둘러보았습니다. 특히 보잉 공장에서 거대한 항공기가 조립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수많은 부품이 모여 하나의 비행기를 완성하듯, 학교 역시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연수에서 교육자로서 가장 의미 있었던 방문지는 가필드 고등학교였습니다. 복도에 걸려 있던 세계 각국의 국기들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철학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공개수업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 있게 발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만나 새로운 배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교육이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는 기억은 제자 홍대영 교수를 만났던 일입니다. 당시 그는 워싱턴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교환교수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꿈을 이야기하던 학생이 세계적인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 성장한 모습을 보며 교사로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그의 아내와 세 딸을 비롯한 온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디스커버리 공원으로 향해 스테이크와 연어를 숯불에 구워 먹고, 과일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던 시간은 매우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해변을 함께 거닐며 나눈 담소와 정겨운 순간들은 그 어떤 관광지에서의 경험보다도 더욱 값진 기억으로 오래도록 마음 속에 간직될 것입니다.

 

시애틀을 떠나 버스로 국경을 넘어 밴쿠버로 향했습니다. 새로운 도시를 향하는 길에는 또 다른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밴쿠버에서는 캐필라노 현수교와 그랜빌 아일랜드를 둘러보았습니다. 울창한 숲과 예술이 살아 있는 공간들은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밴쿠버만의 매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스탠리 파크의 토템폴 앞에서는 원주민들의 역사와 삶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이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온 모습을 보며 교육 역시 가치와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밴쿠버 동계올림픽 경기장에서는 제선충 피해를 입은 소나무를 건축자재로 활용한 사례를 들었습니다. 버려질 뻔한 나무가 새로운 가치를 얻어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는 교육에도 큰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학생들 역시 가능성을 발견하고 적절히 이끌어 준다면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키산맥 둘레길을 걸었던 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과 맑은 공기, 그리고 웅장한 자연의 모습은 인간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만난 한국인 부녀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은 로키산맥의 아름다움에 반해 두 번째로 이곳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경험은 사람을 다시 그 자리로 이끈다는 그들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교육 또한 학생들이 평생 배움을 사랑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밴쿠버 교민의 밤 행사였습니다. 타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낯선 땅에서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은 인간의 강인함과 희망을 보여 주는 귀한 본보기였습니다.

 

이제는 정년퇴직을 하고 학교를 떠났지만, 그때의 경험들은 여전히 제 삶의 한 페이지를 따뜻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시애틀과 밴쿠버에서 만난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교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은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도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교육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시애틀과 밴쿠버에서의 7박 8일은 저에게 그러한 교육의 본질을 다시 일깨워 준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비록 그 여행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 길 위에서 얻은 배움과 감동은 지금도 제 마음 속에서 은은한 등불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교직을 떠난 오늘까지도 지난 세월을 따뜻하게 비춰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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