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175

작성자김 목|작성시간26.06.06|조회수17 목록 댓글 0

일제 생체실험 731부대 느릅나무

- 역사는 ‘기억하라’ 이다

 

송화강이 흐르는 하얼빈은 우리에게는 낯선 땅이 아니다.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고 했던 단군 조선의 첫수도이기 때문이다. 제1세 단군인 왕검이 백두산 천지에서 제사를 지낸 뒤, 배달국 제18세 거불단 천황의 뒤를 이어 새 나라를 세웠던 곳이다. 당시는 아사달이라고 하였으나, 훗날 송화강 어부들이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의 하얼빈이 되었다.

또 하얼빈의 기차역은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곳이다. 참모중장 안중근(1879~1910)의 본관은 순흥이며 아명은 응칠인데 자(字)이기도 하다. 자서전에 따르면 가슴과 배에 걸쳐 점 7개가 있었던 까닭에 자를 응칠로 하였다고 한다. 안중근은 경술년 양력 3월 26일 오전 10시 형장에 서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대한 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 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 하였다. 마침내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형장으로 나아가니, 나이 32세였다.

그렇게 역사는 냉엄하고 흥망성쇠는 시대의 몫이니, 이 하얼빈에서 있었던 일제강점기 731 만행은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학살을 넘어서는 인간 최악의 범죄였다. 731부대는 인간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포함한 각종 생화학 무기 개발 등의 업무를 하던 일본 제국 육군 소속 부대로 하얼빈시 핑팡구에 있으며 공식 명칭은 ‘관동군 방역 급수부 본부’이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질렀다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잔인한 고문, 파리 죽이듯 살상 등 끔찍한 범죄가 일상이었다. 이때 희생된 실험대상을 나무토막이라는 뜻의 마루타라고 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군 장교 이시이 시로(1892~1959)는 세균전을 제안하고 731부대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인간을 마루타로 여기고 전쟁 살상의 온갖 실험을 자행하였다. 이때 희생된 희생자는 계속되는 유해발굴로 1만 5천 명에 이르며 많은 조선인 중 신원이 확인된 것은 심득룡과 이청천 두 명뿐이다.

전쟁범죄의 현장 이곳 731부대가 있던 곳은 옛 건물인 ‘구유지’와 희생된 마루타를 상징하는 나무토막을 세워 관람객을 맞는 ‘죄증 진열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일제 731부대가 저지른 온갖 악행의 증거물과 당시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현장이 재구성되어있다.

중국의 역사 교육 핵심은 ‘기억하라’ 이다. 그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인 것이다. 또 중국의 모든 학생은 이곳 731부대 죄증 기념관을 다녀오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일반 관람객은 물론 당연히 유치원부터 상급학생, 공무원, 군인이 집단 관람을 위해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린다. 따라서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일찍 서둘러야 하고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731부대의 끔찍한 실험은 살아있는 실험체에 탄저균, 천연두균 등의 바이러스를 주사하여 결과를 지켜보는 등 글이나 말로 쓰기 힘든 내용이다. 더욱 끔찍한 건 이들의 실험 내용은 부대 시설 소각을 맡은 부대원들이 소련군의 만주 공습으로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 하바롭스크의 재판에서 알려진 내용뿐이다. 하지만 실무자들은 미리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경유해서 일본으로 도망갔기에 자세한 실험 정보는 미국이 공개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고 한다.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잘못된 기록을 지우고 증거를 인멸하는 기득권 집권 세력과 그들 추종자의 음흉한 음모와 뻔뻔한 광기를 자유로 포장하는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그 답답한 마음으로 731부대 구유지의 두 아름 느릅나무를 바라보며 역사는 ‘기억하라’임을 다시 새긴다.

일본생체실험 731부대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일제 생체실험 731부대 느릅나무 – 호남일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