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땅이름 연구

부평과 부평 옛 마을 / 땅이름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 경인교통방송 181112

작성자배우리|작성시간18.11.10|조회수228 목록 댓글 0

 

김장과 부평 옛 마을

 배우리 / 한국땅이름학회

(경인교통방송 181112)

 

 


1. 김장철이 다가왔어요. 이 때쯤 되면 김장 나남 행사가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죠?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어디로 떠나 볼까요?

  

부평 깡시장에서는 2007년부터 해마다 김장철이면 김장 나눔 행사를 벌인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이 행사는 부평구가 주도한다. 지역 내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저소득 가정에 김장을 담가 선사하는 것이다.

 

인천 부평구는 지난 1171층 여성주차장에서 KT&G복지재단 인천복지센터와 함께 부평구 사랑의 김장 나눔 릴레이행사를 개최했단다.

부평구 사랑의 김장 나눔 릴레이는 동절기에 어려운 이웃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김장 김치를 지원하는 행사로 지난 2007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지역 내 8개 복지기관과 자원봉사자 등 50여 명이 참여해 사랑의 김장김치 13,000을 마련했다. 김치는 동 행정복지센터와 지역 복지기관을 통해 저소득가구 1,300세대에 전달할 예정이다

 

  

2. 김장 하면 우선 김치 생각이 나고, 김치 하면 또 배추나 고추가 생각나죠? 김장, 김치, 배추, 고추, ... 이런 말들은 여디에서 나왔을까요?

 

김치라는 음식은 원래 채소를 절여 만든 단순한 '염장 음식'이었다.

김치의 원래 이름은 '딤채'인데, 이것을 한자로 적을 때는 '침채(浸菜)'라 했다. 이 한자를 뜻으로 풀면 '채소를 절인 음식'의 뜻이다. 김치가 원래 그런 음식이었음을 이 이름이 잘 말해 주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채'를 한자로 해서 비슷하게 소리를 적다 보니 나온 말이다.

 

'딤채''김치'로 되었다.

, '딤채'는 입천장소리로 변해 '짐채'로 되고, 이것이 '짐치'로 되었다가 '김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의 '김장'이란 말은 원래 '침장'이 변해 정착한 말로 보이는데, 이 말은 김치를 된장이나 고추장과 같은 ''에 비겨서 나타낸 말일 것이다.

 

<훈몽자회>란 책에는 '딤채''짐츼'를 거쳐 '김치'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우리말은 구개음화(입천장소리되기) 버릇에 의해 '' 또는 '----'와 같은 '' 홀소리(모음) 앞에서 ' -'이 대개 '-'으로 변하는 버릇이 있지만, 반대로 구개음화의 역작용에 의해 ''''으로 돌아가는 현상도 더러 나타난다. 이를 문법에서는 어려운 말로 '부정회귀(不正回歸)'라 한다. 그러한 예로는 ''''으로, '''', '질삼''길쌈'으로 옮겨간 것을 들 수 있다.

 

 

'딤채'보다 더 오랜 고유어로는 '디이'가 있었다. <두시언채>란 책에도 보면 '겨울김치''겨슬디히'로 적어 놓았는데, '디히'''로 구개음화해서 그 자체로 '김치'의 뜻을 담고 있다. '오이지', '짠지' 등의 ''가 바로 그 예이다. 지금도 호남 지방에서는 김치를 ''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김치'라는 말은 이 ''와는 관계가 없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딤채'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다. 남부 지방이나 북한 일부 지방에서 지금도 '김치''짐채', '짐치'라고 하는 것을 보면, 김치가 '침채'에서 나왔음을 짐작하게 해 주고 있다.

'침채'가 서민들 사이에서 '짐채', '짐치' 등으로 소리가 변한 채 통용되었어도 식자층에선 조선 후기까지도 '침채'란 말을 계속 써 왔던 듯싶다.

 

1990년 여름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직접 쓴 편지가 발견됐는데, 거기에도 '침채'라는 말이 몇 군데 나온다. 편지는 추사가 제주 유배지에 있을 때 그 부인에게 보낸 것으로, 거기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그 일부를 오늘의 글로 정리해 본다.

"……약식과 인절미가 아깝습니다. 쉽게 (음식이) 온다 하더라도 성히 오기 어려운데 일곱 달 만에도 오고 쉬워야 두어 달 만에 오는 것이 어찌 성히 오기를 바라겠습니까? 서울서 보낸 침채는 워낙 소금을 많이 친 것이라 많이 변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침채에 주린 입이라 참고 먹습니다.……"

'침채에 주린 입으로'라는 말로도 이 음식은 늘 먹어 왔던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김치'를 말한다. 김치로 장을 담그시는 식의 음식이니 '김장'이란 이름이 나왔을 것이니, '김장 담근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배추'라는 말은 '백채(白菜)' 또는 백채(白菜)에서 나온 듯하다. <훈몽자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훈몽자회(예산 문고본)>(1527) <>白菜

이는 '후초''호초(胡草)', '고추''고초(苦草)'에서 나온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고추'는 한자로 풀면 '쓸 고()'자가 들어갔으니 그대로 풀면 '쓴 풀' '고통을 주는 풀'이란 뜻이다.

원래 김치는 백김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추는 열대성 작물이기에 옛날에 한반도에는 없었다. 고추를 한반도에 들여온 것은 임진왜란 때 이 땅에 쳐들어온 일본군이었다. 당시 민병의 습격에 겁이 났던 왜군은 고추에 불을 질러 놓고 싸웠다고 한다. 즉 고추를 최루탄처럼 이용한 것이다.

 

 

3. 지금은 부평이 인천광역시의 한 구로 되어 있는데, 옛날에도 인천권의 고을이었을까요?

 

고구려 470 주부토군() 설치 * 부평읍호(행정구역)의 시초

통일신라 757 장제군() 설치

고려시대 995 수주()로 승격 개칭 * 1018년 수주에 지주사 설치

고려시대 1150 안남도호부로 개칭

고려시대 1308 길주목으로 승격

조선시대 1413 부평도호부로 승격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1914.3.1 부천군 신설로 부내면으로 강등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1940.4.1 부천군부역 제2차 확장으로 부천군 부내면과 서곳면이 인천부에 편입 부평과 서곳출장소 개설

대한제국 (미군정기) 1945.10.10 인천부를 제물포시 개칭, 제물포시 부평·서곳지청 설치

대한민국 1948.11.17 인천시로 되고 부평·서곳지청을 출장소로 환원

대한민국 1968. 1 . 1 부평·서곳출장소를 통합 "북구"로 명명

대한민국 1981. 7 . 1 인천직할시로 승격

대한민국 1988. 1 . 1 서구 분구(19개동)

대한민국 1988. 5 . 1 북구가 자치구가 됨

대한민국 1989. 1 . 1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일원을 북구에 편입

대한민국 1991. 4 . 15 초대 인천직할시 북구의회 개원

대한민국 1995. 1 . 1 인천광역시로 승격

대한민국 1995. 3 . 1 계양구가 분구(11개동)되고, "북구"의 명칭을 "부평구(21개동)"로 개칭

대한민국 1995 ~ 2010 1~5대 민선자치단체장 체제 출범

대한민국 2014. 7 . 1 6대 민선자치단체장 체제 출범

 

<지명 변화>

지명-소재지-기간-건치연대-서기

주부토군 (미상) 287 고구려 장수왕(58) ~ 신라 경덕왕(16) 470~757

장제군 (미상) 183 신라 경덕왕(16) ~ 고려 태조(23) 757~940

수 주 오류동 210 고려 태조(23) ~ 고려 의종(4) 995~1150

안남도호부 오류동/계산동 65 고려 의종(4) ~ 고려 고종(2) 1150~1215

계양도호부 계산동 93 고려 고종(2) ~ 고려 충렬왕(34) 1215~1308

길주목 계산동 2 고려 충렬왕(34) ~ 고려 충선왕(2) 1308~1310

부평부 계산동 103 고려 충선왕(2) ~ 조선조 태종(13) 1310~1413

부평도호부 계산동 25 조선조 태종(13) ~ 조선조 세종(20) 1413~1438

부평부 계산동 8 조선조 세종(20) ~ 조선조 세종(28) 1438~1446

부평도호부 계산동 59 조선조 세종(28) ~ 조선조 연산군(11) 1446~1505

부평부 계산동 1 조선조 연산군(11) ~ 조선조 중종(1) 1505~1506

부평도호부 계산동 192 조선조 중종(1) ~ 조선조 숙종(24) 1506~1698

부평부 계산동 8 조선조 숙종(24) ~ 조선조 숙종(32) 1698~1706

부평도호부 계산동 189 조선조 숙종(32) ~ 조선조 고조(32) 1706~1895

부평부 계산동 19 조선조 고종(32) ~한일합방(4) 1895~1914

부천군 문학동/경동 26 한일합방 융희 4(1910. 8.29) 1914~1940

인천부 부평출장소 부평동 5 왜정 때 인천부 편입 1940~1945

인천부 부평지청 부평동 3 해방후 1945~1948

인천시 부평출장소 부평동 20 1948~1968 인천시 북구 부평동 26 북구 승격 (1968. 1. 1) 1968~1994

인천직할시 북구 부평동 14 직할시 승격 (1981. 7. 1) 1981~1995

인천광역시 북구 부평동 직할시에서 광역시 승격 (1995. 1. 1) 1995~현재 인천광역시부평구 부평동 북구를 부평구로 명칭변경 (1995. 3. 1)

1995~현재

 

--------

 

부평은, 부평 평야의 넓은 들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주부토군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장제군으로, 고려시대에는 수주, 안남, 계양, 길주, 부평 등으로,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로 불리었다.

1914년에 부천군 부내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40년에 와서 인천부에 편입되었으며, 1970년대이후 산업 발달의 가속화와 대단위 아파트단지 조성으로 급격히 팽창·발전하여 1988년에 서구를, 1995년에 계양구를 각각 분리시키고 199531일에 구 명칭을 북구에서 부평구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

 

 

4. 부평 옆에 부천이 있잖아요? 여기도 옛날에 부평과 한 생활권이었나요?

 

부천시(富川市) [주부토, 장제, 수주, 안남, 계양, 부평, 길주]

본래 고구려의 주부토군인데,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장제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수주로 고치고, 6대 성종 14(995)에 단련사를 두었다가, 7대 목종 8(1005)에 혁파하고, 8대 현종 9(1018)에 지주사로 고치고, 18대 의종 4(1150)에 안남도호부로 하였다가, 23대 고종 2(1215)에 계양도호부로 고치고, 25대 충렬왕 34(1308)에 길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26대 충선왕 2(1310)에 모든 목을 없앰에 따라 부평부로 강등되었다.

 

조선 3대 태종 13(1413)에 다시 도호부가 되고, 4대 세종 20(1438)에 현령으로 강등되었다가, 같은 28(1446)에 복구되고, 10대 연산 11(1505)에 고을 사람이 환자 김순손을 죽여 고을을 혁파했다가, 그 다음 해(1506) 중종 원년에 복구되고, 19대 숙종 11(1685)에 진영을 설치하였는데, 같은 24(1698)에 장릉(원종의 능)에 불을 놓은 죄인 최필성이 난 고을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같은 33(1707)에 복구되었다.

 

26대 고종 32(1895) 군이 되어, 군내(부내)면 등 16면을 관할하였다.

19143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인천부의 12개 면과 남양군의 대부, 영흥의 2개 면과 강화군의 북도면과 김포군 노장면의 당하리를 병합하여 부천군이라 하였다.

 

193141일에 계남면을 소사면으로 고치고, 1936101일 다주면의 4개 리를 인천부()에 넘겨 주어서 다주면을 폐지하고, 194041일 인천부() 구역 확장에 따라 문학(12), 남동(9), 부내(16), 서곶(12)4개 면을 인천부()에 넘겨 주었다.

 

1941101일 소사면을 읍으로 승격하고, 196311일 소사읍의 7개 리와 오정면의 2개 리를 서울특별시에, 영종면 중산리의 작약도를 인천시에 넘겨 주었다.

 

1966824일 부천군 북도면의 장봉도와 용유면의 무의도, 영흥도, 자월도에 각각 출장소를 두었다가, 197371일 소래면()은 시흥군에, 오정, 계양 2면은 김포군에, 영종, 북도, 용유, 덕적, 영흥, 대부의 6개 면은 옹진군에 각각 넘겨 주는 동시에 소사읍을 부천시로 승격하여 부천군이 폐지되었다.

 

동쪽은 서울특별시, 남쪽은 시흥군과 인천광역시, 서쪽은 인천광역시, 북쪽은 김포군이다.

 

 

5. 부평, 부천 일대에서 예부터 유명한 마을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갈산리(葛山里) [갈미, 갈산, 칙미]

본래 부평군 황어면. 갈미, 칙미 또는 갈산. 1914년 김포군 노장면의 당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갈산리. 부천군 계양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김포군에 편입되었다.

 

-부개동(富開洞) [말무덤, 마분, 마분리]

본래 부평군 동소정면. 말무덤이 있어 말무덤 또는 마분, 마분리라 하였다. 1914년 등세이, 굴째미, 새말을 병합하여 마분리. 부천군 부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왜식으로 명치정이라 하다가, 1947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부개봉의 이름을 따서 부개동으로 고쳤다.

 

-산곡동(山谷洞) [뫼꼬지, 뫼꽃말, 산화촌, 산곡, 마장, 백마장]

본래 부평군 마장면. 산이 곶으로 되어 뫼꼬지, 뫼꽃말 또는 산화촌, 산곡이라 하며, 또는 조선 때 말을 먹이던 곳이므로 마장, 백마장. 1914년 장끝말을 병합하여 산곡리. 부천군 부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왜식으로 백마정이라 하다가, 산곡동으로 하여 인천 북구에 편입되었다.

 

-삼산동(三山洞) [뒤우물, 후정동, 후정리]

본래 부평군 서면. 마을 뒤에 우물이 있어 뒤우물 또는 후정동, 후정리라 하였다. 1914년 영성미를 병합하여 후정리. 부천군 부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왜식으로 소립정이라 하다가, 1947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삼산동으로 고쳤다.

 

-십정동(十井洞) [열우물, 십정, 십정리]

본래 인천부 주안면. 우물이 열이 있어 열우물 또는 십정, 십정리라 하였다. 1914년 삼거리, 꽃밭골, 안터를 병합하여 십정리. 부천군 다주면에 편입되었다가, 1936101일 인천부()에 편입되어 왜식으로 대도정이라 하다가, 1947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십정동으로 고쳤다.

 

-일신동(日新洞) [항골, 황골, 항동]

본래 부평군 동소정면. 큰 골짜기가 되므로 항골, 황골 또는 항동. 1914년 군부안을 병합하여 항동리. 부천군 부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왜식으로 향취정이라 하다가, 1947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일신동으로 고치고, 1977년에 북구 부개동회의 관할이 되었다가, 1982년 구산동을 합해서 일신동으로 하였다.

 

-청천동(淸川洞) [맑은내, 청천]

본래 부평군 마장면. 맑은 시내가 있어서 말을 먹였으므로 맑은내 또는 청천. 1914년 마장리를 병합하여 청천리. 부천군 부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왜식으로 천상정이라 하다가, 1947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청천동으로 고쳤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