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땅이름 연구

임나루와 어을매 (임진강과 교하)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210516

작성자이름사랑|작성시간21.05.03|조회수870 목록 댓글 0

임나루와 어을매 (임진강과 교하)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210516

서울경기신문 `임나루 `어을매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임진강 땅이름 이야기

http://cafe.daum.net/name0900/baO6/268

 

임나루와 어을매

- 임진강과 파주의 교하 -

파주 교하 부근의 토박이 땅이름 지도

 

교하는 '물이 합친다'는 뜻의 '어을매"를 한자로 적은 이름 

임진강은 남한에서는 가장 북쪽에 있는 강이다.

이 강은 함남 덕원군 아호비령에서 발원한다. 남쪽으로 흘러 강원도 이천, 금천, 연천과 경기도 연천 고을 등을 지나며 고미탄천, 평안천, 역곡천, 한탄강 등의 지류를 합해 남서쪽으로 흘러 한강과 합류, 서해로 들어간다.

임진강의 ‘임진(臨津)’은 본래 고을 이름이었다. 본래 고구려의 '진임성(津臨城)' 또는 '오아홀(烏阿忽)'인데, 신라 경덕왕 때 '임진'으로 고쳐서 개성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신라 문무왕 때인 667년, 신라가 당나라와 더불어 고구려를 공격할 때 '칠중성(七重城)'(지금의 파주 적성) 부근에서 이 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한 일이 있는데, 당시 이 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했다. '호로하(瓠蘆河)', '표하(瓢河)', '과천' 등으로도 불러 왔는데, 강의 흐름이 굴절이 심하다 해서 당나라 사람이 ‘칠중하’라 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에 강 하류에서는 '낙하(洛河)', '탄포(炭浦)', '정자포(亭子浦)', '저포(楮浦)', '임진(臨津)' 등으로 나오고, 상류에서는 '고랑진(高浪津)', '여의진(如意津)', '신지강(神知江)', '유연진(楡淵]津)', '등파강(등澄波江)', '시욱진(時郁津)', '동대천(東大川)', '고성진(古城津)', '덕진천(德津川)'의 이름이 나온다. 모든 강이 다 그렇지만, 임진강도 그 부분에 따라서 이처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러 왔다.

임진강은 한강에 합류하고 나서 서해로 흘러든다.

임진강의 갈림내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한탄강(漢灘江)이다.

옛날에는 강을 나타낼 때 '하(河)'와 '강(江)'이란 말을 썼고, 나루를 나타낼 때는 '도(渡)', '진(津)', '포(浦)' 등의 말을 썼다. 가장 큰 나루를 의미한 것이 '도(渡)'였는데, 이는 '강(江)'과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임진강도 원래 '임진(臨陣)'으로만 불러오던 것을 뒤에 '강'이란 말이 덧붙어 '임진강'이 되었다.

임진강이 한강과 만나는 곳인 파주의 '교하(交河)'는 고구려 때는 '어을매(於乙買)'인데, 이 역시 '물이 어울림'을 뜻한다. '어을'은 '어울다(어우르다)', '매'는 '물'을 나타내는데, 이 ‘어을매’를 의역해 붙인 이름이 ‘교하(交河)’이다.

'임진'은 '임나루'를 한자로 적은 것인데, 여기서의 '임'은 '앞의 뜻으로, ‘앞의 나루’임을 의미한다

임진강을 건너면 도라산이 나온다.

도라산은 고려 때 정중부(鄭仲夫)가 난을 일으킨 현장으로, 무신(武臣)정치가 시작된 곳이다. 고려 의종(毅宗)이 이곳 달령(獺嶺)에서 문신들과 더불어 술과 시로 밤을 지새우자, 이를 경호하던 무신들의 불만을 정중부가 수렴, 난을 일으킨 것이다.

도라산 인근에 개울이 하나 있어 못을 이루고 있었는데, 정중부는 문신들을 잡아다가 이 못에 집단 생매장을 했단다. 이 못은 사라지고 없고 <여지승람>에선 조정의 문신들을 모조리 묻어 조정침(朝廷沈)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

한강 하류 부분의 대동여지도. 붉은 원 부분이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 지점.

 

--------------------------------

 

 

130629 KBS 생방송 토요일 배우리의 땅이름 순례 `교하

 

교하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배우리

1. 6월의 마지막 토요일인데요. 호국의 달이었는데, 우리기 이 시간에 호국 관련 지명 이야기를 많이 못한 것 같네요. 휴전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휴전선 전체 이야기는 너무 광법위할 것 같고.... 해서 오늘 그 휴전선의 가장 서쪽 지점인 교하로 가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교하-. 여기가 지금 파주 땅이지요?

 

행정지명으로는 현재 파주시 교하동. 전에는 파주시 교하읍.

교하읍 지역은 본래 지석면(支石面)의 지역이었다. 이곳에 지석 즉 고인돌이 많았기 때문에 지석면이었다. 상지석리에 ‘괸돌’이란 마을이 있는데, ‘괸돌’은 ‘고인돌’의 준말이다.

지역으로는 파주 시내인 금촌에서 서쪽으로 위치해 있고, 고양시 고봉산의 바로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한강 하구이고 여기서 임진강과 만난다.

155마일의 긴 휴전선이 여기서 시작된다고 보아도 된다.

유튜브를 통해 배우리 회장이 교하 지점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2. 삼국시대에는 여기가 고구려 땅이 아니었을까요?

 

고구려시대에는 어을매곶(於乙買串) 또는 천정구현(泉井口縣, 일명 屈火郡)이었다. 신라가 통일한 후인 경덕왕 때 교하군으로 개칭하고 봉성현(峰城縣)과 고봉현(高峰縣)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때인 1018년(현종 9) 양주에 이속되었다.

고봉현은 지금의 고양시 일부이다.

 

3. 어을매곶? 고구려 지명들은 우리가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많은 듯. 어을매가 무슨 뜻이예요?

 

어을매곶. 이 지명은 우리가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풀이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간다.

‘어을’은 ‘아우른다’는 뜻. 지금의 말로는 ‘합한다’는 의미. ‘매’는 고구려말로 ‘물’의 뜻이다. ‘곶’은 땅이름에선 어느 한쪽으로 툭 튀어나간 곳에 많이 나온 지명.

따라서 ‘아을매곶’은 ‘물이 어우는 곳’의 뜻을 지닌다. 교하 지역에서 한강물과 임진강물이 합하는데, 이에 따른 지명으로 보인다. 지금의 이름 ‘교하’도 바로 이 이름에 근거한 것이다.

‘교(交)‘는 ’사귀다‘의 뜻도 있지만, ’섞이다‘나 ’교차하다‘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4. 교하노씨라는 것도 있던데, 그 본향이 바로 여긴가요?

 

노씨 중에 상당수가 이 교하노씨이다. 노씨에는 광주노씨 풍천노씨 곡산노씨 만경노씨 등이 있다.

그 교하노씨의 교하가 바로 이곳이다.

일제시대인 1914년 이전까지는 엄연히 교하군이 있었기 때문에 교하라는 본관이 나온 것이다.

신라 말의 후손 노강필(盧康弼)이 기계(杞溪: 지금의 경북 영일)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장산(章山)으로 옮겼다가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통합삼한개국공신(統合三韓開國功臣)으로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라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에 봉해져서 교하(交河)로 복관하였다고 한다. 후손들이 노오를 시조로, 노강필을 일세조로 하고 교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노태우 전 대통령, 노재현 전 국방장관, 노승환 전 국회부회장 등이 교하노씨 인물이다.

 

 

5. 교하에 가면 교하가 옛날에 큰 고을이었다는 것을 어떤 것을 보고 알 수 있는지?

 

교하 향교.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기 1407년(태종 7)에 탄현면 갈현리에 창건되었다가 1731년(영조 7) 파주 장릉(長陵)의 능터로 정해져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교하 읍내.

평야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교하 읍내가 되므로 교하읍내, 읍내 또는 교하라 한데서 교하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동편말, 함박골, 빙현동 등이 있다. 동편말은 교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함박골은 동편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초가지붕 위에 피어난 박꽃이 아름답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빙현동은 옛날 교하현 관아가 있을 당시 얼음창고를 설치하였던 장소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핑고재(빙현)

얼음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어름 창고가 있었다는 것은 근처에 관리들이 많았다는 증거가 된다.

 

파주시 전경

 

파즛;창
파주시의 반구정
임진강  http://cafe.daum.net/name0900/baO6/268

http://cafe.daum.net/name0900/baO6/268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