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땅이름 연구

치악산과 원주 문막

작성자이름사랑|작성시간21.05.22|조회수203 목록 댓글 0

130615 KBS1 방송 1645 땅방 생방송 토요일 땅이름 순례 59 `치악산

 

배우리의 땅이름 순례 - 치악산

치악산과 원주 문막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배우리

 

 

1. 지난 시간에 원주, 문막 이야기를 했었는데, 원주 이야기 중 중요한 치악산 이야기를 하지 못했구요. 오늘은 그 원주의 치악산 이야기.

우선 치악산이 있는 원주가 어떤 고을인지 다시 한번 짚어 주시죠.

 

원주라고 하면 강원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고을이다.

원주는 예부터 강원도의 중심 고을이다. 강원도라고 하는 이름도 강릉과 원주가 합해서 나온 이름이 아닌가? 강원도 도청 소재지는 지금은 춘천이지만, 그 이전엔 원주였다.

원주는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

신라 문무왕 때는 북원소경(北原小京)이라 하여 이때도 중부 내륙의 중심도시로 생각해 왔다.

고려 태조 때에 원주목(原州牧)이 되고, 그 뒤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지만, 공민왕 때 다시 이 이름을 찾으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잡아왔다.

원주를 표상할 산천이 치악과 섬강(蟾江)이기에 송강이 강원도 관찰사로 감영에 도임할 때 그의 관동별곡에서 “섬강은 어드메뇨 치악이 여기로다”라고 한 듯하다.

 

 

2. 원주의 문막은 ‘물’과 관련이 있다고 하셨나요?

 

물막, 뭇막, 무시막. ‘뭇막’이 ‘문막’으로 발음되면서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 문막.

따라서, 한자 문막(文幕)에서의 문(文)은 ‘물’의 뜻인 ‘뭇'이 옮겨간 것이기 때문에 그 뜻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무시막’이란 이름은 전국에 많은데, 서울의 금호동(金湖洞)도 이에 해당한다. ‘무시막’이란 이름이 나중에 ‘무쇠막’으로도 되면서 ‘금호(金 湖)’란 이름을 낳은 것이다.

 

 

3. 치악산 이야기로 들어가겠는데, 우선 이 산이 어떤 산인지부터...

 

원주의 진산으로 높이 1,288m.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지맥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영서 지방의 명산이다. 전에는 이 지맥을 차령산맥이라 하였다. 남북으로 웅장한 치악산맥과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주봉인 비로봉(飛蘆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향로봉(香爐峰, 1,043m)·남대봉(南臺峰, 1,182m)과 북쪽으로 매화산(梅花山, 1,084m)·삼봉(三峰, 1,073m) 등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며 그 사이에 깊은 계곡들을 끼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을 경계로 하여 대체로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이 완경사를 이룬다.

특히 비로봉에서 구룡사(龜龍寺)를 향하여 뻗은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른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고둔치 동쪽인 부곡리의 신막골 일대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대를 이루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서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섬강(蟾江)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주천천(酒泉川)으로 흘러든다.

치악산이라고 하지만, 그냥 ‘치악’이라 불렀던 산.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

 

 

4. 치악산은 현재 국립공원인가요?

 

1973년에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오악신앙의 하나로 동악단을 쌓고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등 인근 5개 고을 수령들이 매년 봄·가을에 제를 올렸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교로 지정된 것과 상관없이 산신제 드리는 산을 지리산, 송악산, 삼각산, 비백산(함경도 정평), 치악산, 계룡산, 주불산, 주흘산, 한라산, 감악산, 백두산 등으로 더욱 다양화 했다.)

‘증보문헌비고’ 예고(禮考) 명산대천조에 ‘산정에 속칭 보문당(普門堂)이 있어 나라에서 봄가을 제향에 향축을 내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원주의 치악제는 나라에서 주관하는 봉정산제였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승려와 선비들의 수련장으로 사찰과 사적이 많다.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5. 이 산에도 사찰이 많겠죠?

 

큰골·영원골·입석골·범골·사다리골·상원골·신막골·산성골 등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의 아름다운 골짜기가 있고, 비로봉·남대봉·매화산·안봉·천지봉·투구봉·토끼봉·향로봉 등의 산봉과 입석대·세존대·신선대·아들바위·구룡폭포·세렴폭포·영원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치악산에는 한때 7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구룡사·상원사(上院寺)·석경사(石逕寺)·국향사(國享寺)·보문사(普文寺)·입석사(立石寺)가 남아 찬란했던 불교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고찰로 거북바위〔龜巖〕와 구룡소(九龍沼) 등의 경승지가 있으며 대웅전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6. 치악산은 꿩의 전설로 유명한데, 그 꿩의 전성과 관계된 절은 어느 절인가요?

 

절 남대봉 아래의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절이다.

용마바위와 계수나무 고목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곳은 꿩의 보은설화로 더욱 유명하다. 치악산의 ‘치’도 이 꿩의 전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과거를 보러 한양을 향해 떠나던 나그네가 적악산 기슭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숲속에서 꿩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보니 커다란 비단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 또아리를 들고 있었다.

나그네는 활로 구렁이를 쏘아 죽였다. 나그네는 더 가다가 깊은 산중의 인가를 찾게 되었는데, 소복 입은 여인이 나타나 대접을 융슝히 해줬다. 나그네는 잠속에서 눈을 떠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온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구렁이는 "손님은 오늘 오시다가 도중에서 살생을 했소. 그 구렁이는 내 남편인데 그를 죽였으니 임자도 마땅히 죽음을 당하여야 하오" 하고 대답했다. 나그네는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구렁이는 절 뒤에 있는 종루의 종을 세 번만 울리면 살려 줄 수가 있다고 했다. 날이 세어 나가 활을 쏘아 종을 치려는데 종루가 높아 종에 화살이 닿지 않았다. 나그네는 구렁이에게 죽음을 당해야겠구나 하고 탄식하면서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종이 세번 울리는 것이었다. 종이 울리자 구렁이의 변신인 소복한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려 나그네는 위기를 면하게 됐다. 나그네가 종루 밑을 살펴보니 꿩 세 마리가 머리가 터진 채 죽어있었다. 전날 살려준 꿩의 식솔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나그네의 위험을 구하고자 머리로 종을 치고 죽은 것이었다.

이후부터 적악산(赤岳山)이던 산 이름이 꿩이 보은(報恩)을 한 산이라 하여 꿩치(稚)자를 써서 치악산(稚岳山)이라고 바꾸었단다.

상원사는 고려 말의 충신 원천석(元天錫)의 은거지여서 그의 묘소, 사적을 기록한 묘갈(墓碣), 재실(齋室)이 있는 석경사, 태종이 찾아와 스승을 기다리던 태종대(太宗臺), 할미소〔老姑沼〕, 수레너미재, 대왕재 등 태종과 원천석에 얽힌 지명과 명소가 많이 널려 있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