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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연구

도로명 주소 장승배기로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작성자이름사랑|작성시간21.05.23|조회수293 목록 댓글 0

140118 KBS1 방송 1645 땅방 생방송 토요일 땅이름 순례 89 `도로명 주소(장승배기로)

배우리의 땅이름 순례 -

 

도로명 주소(장승배기로)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1. 세종대로 삼개로 촛대바위길 효창원로 독막길, ... 이런 식의 이름들 이젠 주위에서 많이 보입니다. 올 2014년부터 도로명 주소, 즉 새주소를 전면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주소에 관해서 알아보았으면 해요. 더불어서 이러한 주소 붙은 곳 중 한 곳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도로명 주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부터..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주택ㆍ건물에는 도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번호를 붙여 도로명과 건물번호에 의해 표기하는 새로운 주소를 말한다. 2011년 7월 29일 도로명 주소 고시 이후, 기존 지번 주소와 병행사용하다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행되게 되었다.

종전 지번 주소와 시ㆍ군ㆍ구 및 읍ㆍ면까지는 동일하지만 리(里)ㆍ지번, 아파트 이름 대신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사용한다.

 

 

2. 도로명 주소를 보면 어떤 것은 ~대로 또 어떤 것은 ~로, 또 어떤 것은 ~길 이런 식이던데, 구분이 있는 거겠죠?

 

도로는 폭에 따라 대로(폭 40m, 8차로 이상), 로(12∼40m 또는 2∼7차로), 길(기타 도로)로 나뉜다.

도로번호는 서→동, 남→북으로 진행되고 20m 간격으로 건축물 순서대로 도로의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 번호가 부여된다. 한편, 도로명 주소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에만 적용되므로 임야ㆍ논밭과 같이 사람이 살지 않아 건물도, 도로도 없는 곳은 예전처럼 지번을 사용해 부동산 등을 관리한다.

도로명 주소로 바뀜에 따라 공문서부터 주민등록증까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주소는 모두 도로명 주소로 변경된다. 단, 토지대장이나 등기부 등 부동산 관계 문서에서는 토지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번을 계속 사용한다. 부동산 매매계약 때 부동산의 소재지를 적을 때는 지번을, 부동산을 사고파는 사람의 주소는 도로명 주소를 쓴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문서의 경우 2012년 1월부터 도로명 주소를 일괄적으로 써 왔지만,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의 경우 새로 발급하거나 갱신할 경우에 도로명 주소 즉 새주소를 쓰게 되어 있다.

 

 

3. 도로명 주소의 편리한 점, 그리고 불편한 점은?

 

익숙해지면 우선 길찾기라던가 거리 같은 것을 짐작하는 데 편리한 점이 많을 것이다. 도로 중심으로 번지가 일목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이의 적용이 그리 쉽지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도로 중심의 주소 체계는 선진국처럼 당이 아주 넓거나 바둑형 도로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지역 중심으로 이름을 매기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할 수가 없다.

또 큰길 중심으로만 이름을 매겨 나가다 보니 여기서 분기되는 작은 길들이 숫자 일색으로 가게 되어 ‘어디’라는 지역 인식이 쉽지가 않다.

국회대로를 한 예로 들어 보자.

국회대로는 양천구 신월동에서 한강을 건너 마포구 하정동까지 이르는 길이다. 신월동에 있는 도로까지 국회대로가 되다 보니 국회대로 몇 번지라고 하면 사람들이 국회 근처의 어느 곳으로 여기기가 아주 쉽게 되었다. 공간적 개념의 위치 인식이 매우 어렵다.

천호대로의 예도 들어 보자.

천호대로는 강동구 상일동에서 동대문구 신설동까지 이르는 길이다. 신설동에 사는 사람이 자기 집 주소를 천호대로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과연 듣는 사람이 그 곳이 신설동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4. 앞으로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면 우리의 땅이름(지명)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지명은 주로 주소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게 되면 그 동안 사용해 오던 지명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조상들이 남겨준 좋은 정신적 문화 유산인 땅이름들이 사라져 갈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새주소에선 도로명 주소 끝에 동이름을 괄호 안에 넣어 사용하도록 하고는 있으나 이것은 강제 조항이 아니어서 땅이름 보존에는 한계가 있다.

 

 

5. 땅이름이 사라져 간다? 그래도 도로명 중에는 우리의 땅이름들을 넣은 것이 더러 보이던데요. 예를 들면 장승배기로.

 

서울 노량진에 있는 '장승백이'는 예부터 장승이 붙박아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땅이름이다.

옛날 남도 길손들은 한양에서 남문을 나와 노들나루를 건너 아차고개(지금의 사육신 묘 근처)를 넘어 이 장승백이 앞을 지나 시흥 땅을 거쳐 수원을 거쳐 갔다.

장승은 주로 마을 앞 길가에 세워졌고, 큰길에는 대개 10리에 하나씩 세워졌다.

노량진 장승백이에 장승이 세워진 데는 나름대로 다른 곳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조선 중기, 사도세자가 그 부왕에 의해 뒤주 속에서 참혹하게 죽은 뒤, 그의 아들인 정조는 1777년에 왕위에 올랐다. 그 아버지 사도세자를 잊지 못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원 병점 근처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명복을 빌었다.

정조는 묘소를 갈 때엔 꼭 이 장승백이를 지나면서 쉬었다 가곤 했었다. 그러나, 이곳은 숲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으스스했다. 정조는 자신이 쉬어 가는 이곳에 장승을 세우도록 어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쓰인 두 개의 장승이 세워지게 되고, 이후부터 정조 임금은 이곳을 안심하고 지날 수 있게 되었단다.

 

 

6. 전국에는 장승배기(장승백이)라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닐 텐데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을 비롯하여 인천 남동구, 경북 문경시, 경남 산청군, 전주 완산구, 전남 나주시 등 여러 곳에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대표되는 곳은 서울 동작구의 장승배기.

이곳 장승배기는 판소리 <변강쇠전>에도 나오는데, 그 글에서 변강쇠와 옹녀는 탕남, 탕녀로 그려지고 있다.

여주인공 옹녀는 사주팔자에 과부살이 끼어 있었다.

열 다섯에 얻은 첫 서방은 급살로 죽고, 열 일곱 살에 얻은 서방 용천병으로 가고, 열 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죽고 마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치기 신물난다.

그러더니, 천하에 오잡놈 변강쇠를 오다가다 만나게 돼 함양땅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가 살림을 이룩해 살게 된다.

"어려서 못 배운 글 지금 공부할 수 없고, 손재주 없으니 장인질 할 수 없고, 밑천 한 푼 없으니 상매(商賣)질 할 수 있나? 그 중에 할 노릇이 상일밖에 없으니,……오늘부터 지게 지고 나무나 하여 옵쇼."

나무하러 나간 변강쇠는 둥구 마천 백모천이라는, 지리산의 한 골짜기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그 곳이 지금의 함양군 마천면 강천리의 백무동 칠산 계곡에서 의탄 일대가 되는 벽송사 입구 부근이다.

낮잠으로 하루를 보낸 그가 장승을 발견하고,

"애 안 쓰고 좋은 나무 거기 있다."

하며 그 장승을 떼어 내려 하니, 그 장승이 화를 내어 낯에 핏기 올리고서 눈을 딱 부릅뜨지만, 아랑곳없이 달려들어 그 장승을 불끈 안고 엇두름 쑥 빼어 집으로 돌아왔다.

"애겨, 이거 웬말인가. 나무하러 간다더니 장승 빼어 왔네그려. ……장승 패어 땐단 말은 언문책 잔주에도 듣도 보도 못한 말……"

옹녀는 이렇게 말리지만,

"나무로 깎은 장승 인형을 가졌은들, 패어 때어 관계한가?"

하며 변강쇠는 땔감으로 써 버리고 만다.

"이 때에 장승 목신(木神) 무죄히 강쇠 만나 도끼 아래 조각나고 부엌 속에 잔 재 되니 오죽히 원통켔나."

하고 이 판소리는 '아니리'를 통해 해설하고 있다.

이 지리산 장승은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팔도 장승의 우두머리격인 한양 노들 강변의 장승(지금의 노량진 장승백이 장승)을 찾아가 원을 풀어 달라고 소청을 한다.

노들 장승은 팔도 장승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날짜를 정해 밤중에 노들 한강 새남터 모래밭에서 변강쇠 규탄 장승 궐기 대회를 연다.

"……그리하여, 조선 지방 있는 장승 하나도 낙루 없이 기약한 밤 다 모이어 새남터(지금의 용산구 서부이촌동)에 배게 서서 시흥 읍내까지 빽빽하구나."

이 자리에는 팔도 99만 9천 9백 장승이 다 모이는데, 여기서는 변강쇠에게 99가지 병으로 온 몸을 도배시켜 서서히 죽어 가도록 결의를 한다.

 

 

7. 장승과 관련한 속담도 있을까요?

 

왕중왕(王中王)이듯이 장승 중의 장승은 이 곳 노들 장승백이의 장승이다. 이 곳이 한양에서 강을 건너와 첫번째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의 장승을 팔도 장승의 우두머리로 쳐 왔는지도 모르겠다.

장승은 우리 공동체 문화의 표상이었다. 공동체적 상상력에 의해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적(神的)인 성격을 부여받아 온 장승은 동구 밖에 세워져 병액(病厄)이 드는 것을 막는 수호신 구실을 해 오기도 했다.

장승은 대개 투박하고 못 생긴 모습을 띠고 있다. 시인 신경림의 시에 '못 난 것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다'는 구절이 있는데, 한국 장승이 바로 그러하다. '장승제'로서 마을 사람들의 위함을 받기도 하였으나, 더러는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개가 장승 무서운 줄 알면 오줌 눌까?'

'개 오줌만 받는 장승 신세.'

'귀신같이 먹고 장승같이 간다.'

'차라리 장승 하고 말을 하지.'

'장승'에 관한 우리의 속담들이다.

 

 

도로명 감수(전) 1990년대 말

http://blog.naver.com/saehanyeseul/130029158243

전국 땅이름

https://blog.naver.com/ureee/10018164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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