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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연구

용산팔경과 옛 용산 영역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작성자이름사랑|작성시간22.03.04|조회수429 목록 댓글 0

은빛소식 220325 배우리의 용산 땅이름 기행

 

산이름 때문에 나온 용산

이 용산성당이 있는 곳이 바로 용산의 산마루이다.
용산 자락의 끝 부분 용머리

 

용산구 발행 <은빛소식> 2022년 3월 25일자

용산팔경과 옛 용산 영역

 

 

용이 물 먹는 모습의 산

 

'용산(龍山). 하면 우선 용산구를 떠올리듯 단순히 한 지역의 이름으로 인식을 한다. 왜 그럴까? '용산'이란 산은 지도에도 없고 그 높이조차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용산'의 위치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용산구 원효로4가, 산천동과 마포구 도화동 사이에 있는 산이다. 지금 여기에는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그 앞의 한강으로는 마포대교가 가로놓여 있다.

용산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지세부터 알 필요가 있다.

서울의 주산은 백악(북악산)인데 여기서 흘러나온 서쪽의 맥이 우백호(右白虎)이고, 동쪽의 맥이 좌청룡(左靑龍)이다. 좌청룡은 동쪽의 성북동 방면으로 해서 낙산(駱山)까지 짧게 뻗었으나, 우백호는 만리재와 효창원을 거쳐 마포쪽의 한강까지 매우 길게 뻗어 있다.

북악산 서쪽 인왕산의 산세를 무악재를 통해 이어받은 길마재[鞍山=안산]는 그 줄기를 계속 남쪽으로 뻗쳐 '둥그재'[圓峴=원현], '애오개'[阿峴=아현], '큰고개[大峴=대현, 만리재], 연화봉(蓮花峰),효창원(孝昌園), 용마루 등을 거쳐 한강까지 다가와 용머리 모양의 등성이를 솟군 후, 강물 앞에서 그 기(氣)를 죽인다. 이 맥이 바로 한양고을의 우백호이다. 이 우백호의 끝 부분이 용의 머리를 닮아 '용산(龍山)'이라 했다. 지금 그 용산 산비탈에는 오랜 역사의 용산성당이 있어 원래의 용산이 여기였음을 말해 준다.

용산은 그 앞으로 한강이 휘어돌아 경치가 무척 좋았다.

고려 명종 때의 학자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가 이 곳의 정자에 묵으면서 지은 이런 시를 읊었다.

 

두 물줄기 질펀히 흘러 / 갈라진 제비 꼬리 같고 /세 봉우리 산 아득히 서서 / 자라 머리에 탔네 / 만약에 다른 날 / 비둘기 단장을 모시게 된다면 / 함께 저 푸른 물결 찾아 / 백구(白鷗)를 벗하리

 

용산팔경과 용산 영역의 변화

 

산 아래 푸른 강물에 너벌섬[仍火島=잉화도](지금의 여의도)과 밤섬[栗島=율도]이 보이고, 강 건너 멀리 관악산, 청계산 등이 보이는 산마루. 이 용산 마루에서 바라보는 8가지 좋은 경치를 용산팔경(龍山八景)이라 했다.

 

1경 청계조운(淸溪朝雲)-청계산의 아침 구름

2경 관악만하(冠岳晩霞)-관악산의 저녁 안개

3경 만천해화(蔓川蟹火)-만천의 게잡이 불빛

4경 동작귀범(銅雀歸帆)-동작나루의 돌아오는 돛배

5경 율도낙조(栗島落照)-밤섬의 지는 해

6경 흑석귀승(黑石歸僧)-흑석동의 돌아오는 스님

7경 노량행인(露梁行人)-노량진의 길손

8경 사촌모경(沙村暮景)-새남터의 저녁 경치

 

경치가 좋은 이 그 일대에는 심원정(心遠亭), 삼호정(三湖亭), 함벽정(涵碧亭) 등의 정자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용산'이라 하면 대개 용산역을 중심으로 한 일대로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지금의 마포구 염리동까지가 용산 영역에 속했다.

용산은 고려 말 이전에는 과주(果州)에 딸렸었다. '과주'는 지금의 '과천'에 해당한다. 이 용산 지역은 고려 22대 충렬왕 12년에 '부원군(富原郡)'이 되고, 조선 초에는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가 되었다가 중기 이후에는 한성부 서부(西部) 용산방(龍山坊)으로 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직후인 1911년에 용산 일대는 경성부(서울) '용산면(龍山面)'이다가 그 3년 후에 이를 고양군으로 돌렸고, 1936년에 경성부 구역 확장에 따라 경성부로 다시 편입하였다. 이어서 같은 해 2월 13일 경성부 출장소를 설치하고, 1943년에 경성부 용산출장소로 개칭하였으며, 같은 해 6월 10일에는 용산구역소(龍山區役所)로 개칭함으로써 처음으로 '구(區)'자가 붙은 이름을 달게 되었다.

광복 후에 정식으로 '용산구'가 되긴 하였으나, '용산'이란 산의 북쪽 일대를 마포구로 넘겨 주면서 영역이 많이 바뀌게 됐다. 즉 한때 용산면 관할이었던 도화동과 마포동, 공덕동, 염리동, 토정동까지를 마포구로 넘겨 주면서 용산은 지금과 같은 지역을 갖게 된 것이다.

 

용산구에서 잘 알려진 토박이 땅이름

 

용산구 일대에는 예부터 잘 알려진 토박이 땅이름이 많다.

새남터, 새푸리, 용머리, 벼랑창, 둔지미, 찬바람재, 당고개, 새창고개, 두텁바위, 돌모루, 배다리 등이 그것이다.

우선 한강가의 새남터는 조선시대부터 사형장으로 잘 알려진 곳인데, 한자로는 사남기(沙南基)라 한다. 이 새남터란 이름은 ‘새나무터’가 줄어서 된 이름인데, 이 지역에 새(풀)과 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의 ‘사남기’는 ‘새남터’를 음차한 것일 뿐 원래의 뜻과는 관계가 없다.

근처이 새푸리는 현재 한강로3가쯤 되는 곳에는 새푸리 마을이 았었다. 한자로는 ‘신초리(新草里)라 하는데, 이 지역에도 풀이 많아 ’새풀‘이라는 땅이름이 한자의 ’신초(新草)로 옮겨간 것이다.

용산(산) 자락의 끝 부분인 용머리는 용의 머리를 닮아 이름이 붙은 것인데, 한자로는 용두(龍頭)라 한다. 근처에 벼랑창이란 이름은 별영창(別營倉)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 변한 것이다.

삼각지족에서 국방부 앞을 지나 용산구청쪽으로 가는 곳에 찬바람재라는 고개가 있었는데, 지금 이곳에는 지하철 녹사평역이 있다.

새창고개는 용산구에서 마포구로 넘는 고개인데, 사창(私娼)이 있어서 이 이름이 나왔다고 하나, 원래 새 창고가 있어서 ‘새창고고개’라 했던 것이 변한 이름이다. 이 새창고개에서 삼각지쪽으로 오다 보면 당고개성지가 있다. 당고개는 이곳에 옛날에 당(堂)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청파로와 원효로가 갈라지는 곳, 남영역 선린인터넷고 입구를 돌모루라 했다. 물이 돌아가는 곳이라 해서 돌모루인데, 한자로는 석우(石隅)라 한다. 이 돌모루는 덩굴풀내(만초천) 옆인데, 이 내를 따라 북쪽 서게동으로 가다보면 배다리기 나온다. 옛날에 배처럼 놓인 다리가 있어 나온 이름인데, 이 배다리와 돌모루는 <춘향전>의 이도령 남행길에도 나온다.

지금의 후암동(厚岩洞)은 두꺼운 바위가 있어 두텁바위라 했던 것이 한자로 옮겨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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