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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연구

용산의 용머리와 벼랑창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220615

작성자이름사랑|작성시간22.06.08|조회수178 목록 댓글 0

새용산신문 `용머리 `벼랑창 220615 / 배우리의 용산 땅이름 순례 (4)

 

용산의 용머리와 벼랑창

용이 한강쪽으로 입을 내밀어 물을 마시다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산수의 형세가 매우 좋았던 용산 지역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그 위치의 중요성이 인정되었다. 빼어난 경치로 인해 귀인들의 별장지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삼호정(三湖亭), 함벽정(涵碧亭), 심원정(心遠亨) 등의 정자들이 있었음은 좋은 전망 때문이었다. 이들 정자에서는 조선시대에 명사들의 시회(詩會)도 자주 열렸었다. 용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들이 여기서 많이 나왔다.

용산 산마루에서 바라보는 주위의 경치들이 용산팔경(龍山八景)으로 나타난다.

<용산팔경>

1경 청계조운(淸溪朝雲)-청계산의 아침 구름

2경 관악만하(冠岳晩霞)-관악산의 저녁 안개

3경 만천해화(蔓川蟹火)-만초천의 게잡이 불빛

4경 동작귀범(銅雀歸帆)-동작나루로 돌아오는 돛배

5경 율도낙조(栗島落照)-밤섬 너머로 지는 해

6경 흑석귀승(黑石歸僧)-흑석동의 돌아오는 스님

7경 노량행인(露梁行人)-노들길의 길손

8경 사촌모경(沙村暮景)-새남터의 저녁 풍경

 

서울 북쪽 인왕산에서부터 뻗어 온 산줄기가 구불구불 뻗어내려오면서 한강쪽에 이르러 용(龍) 형상의 산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산이 바로 용산(龍山)이다. 그 용산 위에 지금 용산성당이 있고, 여기서 한강쪽으로 더 나아가면 용의 머리같은 용머리(용두.龍頭)가 된다. 여기가 바로 북악(北岳)을 주산으로 하는 한양 우백호(右白虎)의 끝자락이다. 이 용머리 부분은 경치가 좋아 자유당 시절에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한강 중에서도 용산 지역 앞을 흐르는 강을 따로 용산강, 용강(龍江), 용호`

이 용산강에 일제 강점기에 세운 수위측정소가 있다. 정식 이름은 ‘구용산 수위관측소’이다. 한강 수위를 살피고자 한강변 최초의 관측소인데, 1976년 9월까지 관측이 이루어지다가 1977년 폐쇄되었다. 등대처럼 보여 이를 등대로 아는 사람도 있다.

이 관측소 근처의 한강변 비탈을 ‘벼랑창’이라 했다. 군대 별영(別營)의 창고인 별영창(別營倉)이 변한 이름이 벼랑창인데 근처에선 해마다 물사고가 많았다. 그 상류쪽의 여울목(탄항.灘項)에서도 해마다 물사고가 잦았다. 용산강 유역에 부군당들이 많은 것은 마을의 평안과 무사고를 빌기 위함이었다.

용산강으로 흘러드는 덩굴풀내(만초천.蔓草川)는 일제 강점기에 욱천(旭川)이라 했다. 이 내의 하류 부근(지금의 원효로 일대)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나라 일본에서 많이 붙이는 ‘아사이카와’란 이름을 여기에 붙였다. 그 아사히카와의 한자식 표기가 욱천이다.

이 내는 1960년대에 복개되어 한때 농수산물 시장이었다가 그 시장이 가락동으로 이사간 후에 용산전자상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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