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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연구

둔지산(둔지미) / 두운지정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221012

작성자배우리|작성시간22.10.12|조회수676 목록 댓글 0

군사요충지 ‘둔지산’의 ‘둔지’의 뜻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용산과 둔지산(둔지미)의 위치  

 

  • 서울 용산의 둔지산
  • 전북 대둔산(한둔산)과
  • 전남 두륜산(한듬산)

http://v.daum.net/v/20240609140809884

 

오랫동안 수도 서울에서 군사요충지가 되어 왔던 곳이 있다. 바로 둔지산이다. 둔지산(屯之山)은 용산구 이태원동과 용산동 일대에 솟은 야트막한 산이다.

이 산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군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용산병영’으로 통해 오면서 둔지산보다는 ‘용산(龍山)’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용산’이란 산은 용산구의 북서쪽, 즉 용산구와 마포구의 경계에 있다.

이 산은 지금까지는 군 시설 때문에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접근이 어려웠던 만큼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고 그 이름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모으고 있다. 덕분에 ‘둔지산’이란 이름도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이 둔지산의 작은 골짜기에는 마을이 여럿 있었으나 19세기 말부터 외국군의 주둔하게 되면서 큰 변화의 바람을 받게 되었다. 마을들이 사라지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왕래가 적어지면서 이 산은 서서히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강세황의 두운지정 화첩 중 옥후북조도 현 대통령실 남쪽 어린이정원 부근에서 바라본 남산(오른쪽)과 북한산(남산 왼쪽), 북악(북한산 앞), 인왕산(북한산 왼쪽)의 모습. 마이아트옥션 제공

 

둔전(屯田)을 두어 ‘둔지산’이라지만

 

조선시대 이 일대에 군량을 조달하기 위한 둔전(屯田)을 두어 ‘둔지산’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둔’은 땅이름에서 ‘언덕’이나 ‘산’을 말하므로 그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 산 일대에는 새말, 큰말(대촌.大村) 정자말 등의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을 모두 아울러 ‘둔지미’라고 불렀다. 일제 때 군 기지가 되면서 이곳 주민들은 근처 보광동과 서빙고 등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둔지미가 공식적으로 ‘용산’으로 바뀐 것은 1906년이었다. 당시 일본군이 둔지미 일대를 그린 지도가 있는데, 〈용산 군용 수용지 명세도〉라는 이름의 이 지도에는 둔지산이 표시되어 있고, 일본군도 이 일대 지명이 둔지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지도의 제목을 ‘용산’이라 붙였다. 이렇게 해서 450년 이상 사용한 ‘둔지미’라는 지명은 우리 입에서 멀어져 가게 된 것이다.

 

둔지미(둔지산)이란 이름은 거의 ‘산·언덕’과 관련이 있다

용산구 둔지산 일대는 토질이 좋아 조선시대에 벽돌을 생산했다. 명동성당의 벽돌도 여기에서 생산된 것이다. 둔지산 남동쪽의 서빙고초등학교 근처에는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사용하는 얼음을 저장하는 빙고(氷庫)가 있었다.

서빙고라는 얼음 창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 기슭 한강가에 있었다.

고려시대의 관습에 따라 조선 건국 초에 설치된 서빙고는 얼음의 채취·보존·츌납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서이다. 여기에는 8개의 저장고가 있었고 많은 얼음이 저장되었는데, 이는 동빙고(東氷庫)의 12배, 내빙고(內氷庫)의 3배가 넘는 규모였다. 동빙고가 국가 제사용 얼음, 내빙고가 궁중전용 얼음을 저장한 데 비해, 서빙고는 궁중, 문무백관 및 환자나 죄수들에게 나누어 줄 얼음까지 저장하였다.

얼음의 저장은 한강이 두껍게 어는 12월(양력 1월)에 시작되었고, 이듬해 3월부터 빙고를 열고 반출하기 시작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고 반출할 때는 먼저 추위를 관장한다는 사한신(司寒神)에 대한 제사의식이 있었다.

지금 서빙고니 동빙고니 하는 이름은 서쪽과 동쪽의 얼음 창고라는 뜻이다. 그 얼음 창고가 둔지산 기슭 한강가에 있었다는 얘기다.

산 남쪽 완만한 평지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이 있고, 북쪽 비탈 아래로는 전쟁기념관이 있다.

 

전국에는 ‘둔지미(둔지산)’란 이름이 많은데, 이 이름은 거의 ‘산·언덕’과 관련이 있다. 대개 외따로 떨어진 산, 둥그스름한 모양의 산들이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다. ‘둔지’는 ‘둔-둠-덤-담’ 계열의 땅이름으로, 이런 지명은 산지에 많이 분포한다.

 

 

19세기 후반부터 군사적인 요충지

 

둔지미가 군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둔지미 일대가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군이 둔지미에 주둔하면서 이 일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일본군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빌미로 조선에 들어와 용산의 효창공원(효창원), 만리창과 둔지미 일대에 주둔하고, 청나라군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조선이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고 이듬해 ‘한성부’로 개칭한 뒤 서울에 중·동·남·서·북부 등 오부(五部)를 설치했다. 이 오부 체재는 조선시대 내내 유지되었다. 오부는 지금의 구(區)와 비슷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대부터 각 지역의 훼손이 본격화되었는데, 서울에서도 특히 용산과 둔지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심했다. 일제 군 기지 설치로 인해 둔지산 일대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둔지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 문헌은 1454년 완성된 것인데, ‘경도 한성부’ 편에 이 둔지산에 노인성단, 원단, 영성단, 풍운뢰우단이 모두 숭례문 밖 둔지산에 있다고 적혀 있다.

‘둔지방’은 둔지삼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한 행정구역이었다. 18세기부터 서울 각 부(部) 밑으로 방(坊)을 두었다. 한성부의 행정구역이 5부 52방(坊)으로 나뉘어졌을 때 현재의 용산 미군기지 일대는 둔지방이라는 행정구역에 속했다.

 

둔지미계에는 큰말(대촌.大村)과 제단안말(단내촌), 정자골(亭子洞), 새말(신촌.新村) 등의 마을이 있었다. 이들 4개 마을에는 대략 가구 수가 3~4백호 정도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 이루어졌다는 신촌(새말)이 근처에 있었는데, 현재 미군의 드래곤힐호텔 자리이다. 정자동은 국방부 남쪽에 있었고, 내촌(제단안말)은 현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대촌(큰말)은 박물관 바로 위 둔지산 아래에 있었다.

안말, 큰말, 새말, 정자골 등의 토박이 땅이름은 모두 한자식 이름인 ~동(洞) 형태의 한자식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18세기 중반 겸재 정선이 그린 ‘서빙고 망 도성도’(서빙고에서 도성을 바라보다). 한강 남쪽에서 본 둔지산(아래 왼쪽)과 서빙고(아래 오른쪽), 남산(서빙고 위), 남대문(한가운데), 북한산(맨 뒤), 북악(북한산 앞), 인왕산(북악 왼쪽)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강가에서 본 모습이지만, 도성 안 산들의 모습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극적으로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둔-둠’은 ‘덩어리’와 친척말

 

‘둔지산’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왔을까?

그 배경을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둔전(屯田)’과 연결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방향을 돌려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둔(둠)’이라는 지명과 관련해 ‘도막(돔악)’, ‘뜸’, ‘둥지’, ‘덩이(덩어리)’, ‘더미(덤+이)’, ‘덩치’, ‘둥글다’, ‘덩그렇다’ 등의 말과 연관 짓는다. 이 말들을 서로 비교하고 그 뜻을 새겨 보면 서로 통하는 점이 발견된다.

토박이 땅이름을 살펴보면 이와 연관되었음직한 것이 많다.

돌로 쌓은 울타리를 ‘담’이라 하는데, ‘돔’, ‘둠’ 같은 말과 연관지어 볼 만하다.

 

· 이 이십리 히 이시니(離)《박통사신역언해》(1권, 13)

· 각閣애서 이 언메나 머뇨 離閣有多少近遠《노걸대언해》(상, 43)

 

한라산을 ‘두무악(頭無岳)’ 또는 ‘원산(圓山)’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산봉우리가 둥글어 나온 이름일 것이다.

‘둠’은 ‘두르다’의 명사형 ‘두름’이 줄어든 말이기도 해서 둘레, 두름(물고기 엮음), 들러리, 돌리다, 두르다(구르다), 도로(反,復), 도리어(반하여) 등의 말들과도 서로 먼 친족 관계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산지에 많은 땅이름인 ‘동막(東幕)’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동막의 ‘동’은 ‘둠’을 한자로 음차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둠막(돔막)’이 발음 변화를 일으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산’을 뜻하는 ‘둠’과 ‘마을’을 뜻하는 ‘막’이 합쳐진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동막’은 산속 마을이거나 산 아래 마을, 즉 ‘산촌(山村)’과 같다고 본다. 전국에 ‘동막’은 많지만 이의 상대적 지명인 ‘서막(西幕)’, ‘남막(南幕)’ 등의 이름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여기서의 ‘동(東)’이 동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둔지산은 여러 한자로 표기되어 왔는데, 음역 과정에서의 차음(借音)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둔지’는 ‘둠지’의 변음일 수 있고, ‘미’는 ‘산(山)’을 뜻하니 이를 음·의역해 ‘둔지산’이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산이나 높은 곳은 말(마루), 몰, 달(돌), 뫼(메, 미), 술(수리), 부리(비로), 둠(둔) 등으로 불렸다.

둔지산이 토박이 땅이름이라면 ‘둔지’는 과연 어떤 뜻일까? ‘둔-둠-덤-담’ 계열의 땅이름으로 본다면 이는 단순히 ‘산(山)’과 연계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계열의 지명은 산지 일대에 많이 분포한다. ‘둔지(둠지)’라는 이름은 모나지 않은(둥그스름한) 산이거나 따로 떨어져 있는 산에 많다.

대전시 서구와 대구시 동구에 있는 법정동인 둔산동(屯山洞)은 토박이 땅이름인 ‘둔지미’기 그 바탕인데, 이처럼 ‘둔지’라느 이름을 가진 곳이 너무도 많다. 이것은 ‘둔지’가 일반 용어처럼 씌어 왔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둔지미’란 이름은 충남 천안, 예산, 충북 충주, 경기 이천, 포천, 강원 춘천, 강릉, 홍천, 삼척, 평창, 전남 영광 등에 있는데 분포 지역을 지역적으로 분석해 보니 대부분 산간 지역이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는 걸까? ‘둔지’가 ‘산(山)’과 관계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둔지미 외에도 둔지골, 둔지말, 둔지실 등 ‘둔지’라는 이름을 단 땅이름은 여러 가지다.

제주도 제주시에 있는 둔지봉은 ‘둔지오름’이라고도 하는데, 둔지를 오른다는 뜻이니 그곳이 높은 지역임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전남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둔지머리도 그 이름만으로도 높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전라도에서는 ‘이’ 모음의 사투리가 발달해 있는데, 이 때문에 전남 영광군 군서면 가사리의 둔지산과 그 골짜기 마을을 ‘뒨지미’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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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말>

둥금, 동그라미, 둥우리, 덩어리, 덤, 덩치

 

<친척 땅이름>

둔지미(둔지) [마을] 충남 천안시 삼룡동 등

둔지(屯地) [마을] 경북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 등

둠바위 [바위] 경기 여주시 북내면 현암리

둔말(둔촌) [마을]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진암리

듬실 [마을] 경남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

두무실(斗舞室) [마을] 충북 청주시 문의면 두모리

 

용산공원 산마루길. 왼쪽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멀리 남산이 보인다.
‘둔지미’란 이름을 가진 곳은 전국 여러 곳에 있다.
둔지방 내에는 전생동, 이태원동, 서빙고 등 여러 동(洞)이 있었다.
둔지산의 여러 한자 표기. 부캐 그림은 강세황의 <남산여삼각산도(南山與三角山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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