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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신사동이 3곳
1. 신사동(新沙洞) / 강남구
2. 신사동(新寺洞) / 은평구
3. 신사동(新士洞) / 관악구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1. 신사동(新沙洞) / 강남구
이 이름은 한강변에 있었던 자연 마을인 새말(新村)의 '신(新)'자와 사평(沙平)의 '사(沙)'자가 합쳐진 것에서 유래되었다.
새말은 한남대교 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명칭이 붙었다. 사평은 한강변에 모래가 펼쳐져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에 고려시대부터 사평원(沙平院)이라는 주막이 있었고 시장이 있었으며 한강 건너편으로 가는 나룻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마을은 사라지고 모래벌만 남아 ‘모래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62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소속이었다.
1963년 1월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었다가 1975년 10월부터 서울 강남구에 속하였다. 1977년 논현동이 분동되었고, 1980년 행정동 압구정동이 분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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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남구 / 본래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의 일부인데, 1914년 3월 1일 경기도 구역 획정에 따라 한강새말, 동산말, 사평을 병합하여 신사리(新沙里) 라 하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신사동( 新沙洞) 이 되었다.
2. 신사동(新寺洞) / 은평구
은평구의 법정동이다.
행정동은 응암역에서부터 새절역사거리까지의 신사1동, 새절역사거리부터 와산교사거리까지의 신사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은평구 신사동이라는 식으로 은평구를 반드시 앞에 붙인다. 강남구 신사동이 훨씬 유명하기 때문. 새절역의 명칭이 새절로 정해진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은평구에는 석기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은평구 지역은 일부 지역에서 혈연을 같이하는 씨족끼리 취락을 이루어 집단생활을 하였으며, 움집 같은 곳에 기거하면서 농경과 수렵, 어로활동을 통하여 음식물을 구하고 원시적인 방직술을 습득하여 간단한 천(직물)을 짜 입기도 하였다.[3]
삼국시대인 백제 때에는 위례성, 신라시대에는 신주, 통일신라시대에는 한산주로 부르다가 757년 경덕왕 7년에 ‘한주’로 고쳤다. 그리고 서울 지방에는 ‘한양군’을 설치했는데 서울이라는 이름의 하나인 한양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한양군’을 ‘양주’라 고치고 1087년 문종 21년에 ‘양주’를 ‘남경’으로 승격시켜 ‘서경’(평양), ‘동경’(경주)과 더불어 3소경이 되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후 1308년 충렬왕 34년에 ‘한양부’로 개칭하였다.
1394년 조선 태조 3년에 한양부로 도읍을 천도하면서 ‘한성부’로 이름을 바꿨으며, 서울 지역은 5부 52방으로 개편했는데, 지금의 구(區)에 해당하는 5부(동, 서, 남, 북, 중) 중 은평구 지역은 북부의 성외인 연은방, 상평방 지역에 해당되었으며 ‘은평’이라는 말은 이 두 지명(연은방+상평방)에서 유래된 것이다.
1466년: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구파발리, 진관내리, 진관외리 설치. 나머지 지역은 한성부 연은방, 상평방.
1949년 8월 13일 :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녹번리, 응암리, 불광리, 신사리, 갈현리, 역촌리, 대조리, 구산리, 증산리, 수색리) 일원이 서대문구에 편입되고, 서대문구 은평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7월 1일 :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내리, 진관외리, 구파발리가 서대문구에 편입되었다.
1979년 10월 1일 : 서대문구 녹번·응암·불광동 등이 은평구로 분리되었다.[6]
15행정동 : 녹번동, 응암1동, 응암2동, 응암3동, 불광1동, 불광2동, 신사동, 갈현동, 역촌동, 대조동, 구산동, 증산동, 수색동, 진관내동, 진관외동2001년 11월 20일 :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남청파인힐아파트 일대 지번[7]이 응암동으로 편입됨.[8]
2007년 8월 13일 : 법정동 진관내동, 진관외동, 구파발동을 진관동으로 통합하고, 행정동 진관내동, 진관외동도 진관동으로 합동하였다.[9]
2008년 6월 2일 : 행정동인 응암2·3·4동, 불광1·2·3동, 역촌1·2동이 각각 응암2·3동, 불광 1·2동, 역촌동으로 통합되었다. (16행정동, 11법정동)
3. 신사동(新士洞) / 관악구
신사동(新士洞)은 서울 관악구의 행정동이다
동 이름은 과거에 신림4동이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신림4동이면 신사동(新四洞)이라 해야 했으나 뜻이 좋은 신사동(新士洞)으로 하였다.
옛 신림동에 있었던 토박이 땅이름들
가는골 【골】 골짜기가 가늘다 함.
강홍립묘 【묘】 낙굴 뒷 산에 있는 강 홍립의 묘.
거는장 【산】 옛날에 장이 섰었다 함.
거는장내 【내】 거는장 근처로 흐르는 내.
거는장뚝 【뚝】 거는장 근처의 뚝.
구눙당모텡이 【들】 옛날 당집이 있던 모퉁이 들.
궁뚝 【뚝】 궁벌 근처의 뚝.
궁벌 【들】 계동궁에 딸렸던 들.
깨길양 【산】 산 모양이 가파르게 생겼다 함.
낙굴 【마을】 → 난곡.
난곡(蘭谷) [낙굴] 【마을】 신림동에 딸린 마을.
당집 【당】 서원동에 있는 당집. 약 20 년 됨.
독바위 【바위】 앵두꿀 산에 있는 바위. 독처럼 생겼다 함.
된굴고개 【고개】 신림동에 딸린 고개.
된굴곡다리 【다리】 된굴 고개 앞 다리.
못돈지 【들】 옛날에는 물이 많이 났다 함.
방아다리 【다리】 옛날 방앗공이로 놓았던 다리.
방아다리뚝 【뚝】 방아다리 근처의 뚝.
범굴골자구니 【골】 범굴이 있었다는 산 앞 골짜기.
보그니말 【마을】 → 복은말.
복은말(福隱村) [보그니말] 【마을】 옛부터 복 있는 마을.
봉천교(奉天橋) 【다리】 1964년에 새로 준공한 봉천동에 있는 다리.
서원동(書院洞) 【마을】 → 서원말.
서원말 [서원동] 【마을】 옛날 강 감찬 장군이 살던 때 서원이 있던 마을.
서원터 【터】 서원말에 있는 강 감찬 장군의 서원 터.
성주암(聖住庵) 【절】 자하동 앞 산에 있는 500년 전의 절.
신대방교(新大方橋) 【다리】 1964년에 준공한 신대방동 경계에 있는 다리.
신림교(新林橋) 【다리】 1962년에 준공한 다리.
쌍다리목 【다리】 다리가 둘로 되었다 함.
아구할미 【바위】 울배산에 있는 바위. 바위 모양이 악하게생김.
앵두굴우물 【우물】 앵두굴에 있는 우물.
앵두꿀 【산】 신림동에 딸린 산.
약수암(藥水庵) 【절】 이조 명종 왕후 때 김처사가 창건한절. 절벽의 바위에서 약수가 나왔다 함.
약수터 【터】 검지산에 있는 약수터.
양산리(陽山里) 【마을】 마을의 하나.
양산이고개 【고개】 양산이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울배 【산】 신림동에 딸린 산.
웃우물 【우물】 서원말 꼭대기에 있는 우물.
원신림(元新林) 【마을】 신림리의 원 마을.
은정굴 【골】 북향의 골짜기. 옛날에 은이 나왔다고도 함.
인절미바위 【바위】 울배 모퉁이에 있는 바위. 인절미처럼 잘라진 바위.
자운암(紫雲庵) 【절】 자하동 뒷 산에 있는 야 500년 전에 지은 절.
자하동(紫霞洞) 【마을】 이조 때 신 자하 선생이 살던 곳이라 함.
작은굴 【골】 큰골 옆에 있는 작은 골짜기.
장바께 【들】 거는장 바깥 들.
쪽다리 【들】 들 근처에 쪽다리가 있었다 함.
찬웅뎅이 【내】 찬 물이 치솟는 내.
찬웅뎅이뚝 【뚝】 찬웅뎅이 근처의 뚝.
큰골 【골】 골짜기가 크다 함.
학산 【산】 산 형국이 학처럼 생겼다 함.
합실(合室) 【마을】 본동에 있는 마을의 하나.
신림동 행정동별
3.1. 서원동(舊 신림본동)
3.2. 신원동(舊 신림1동)
3.3. 서림동(舊 신림2동)
3.4. 난곡동(舊 신림3동+신림13동)
3.5. 신사동(舊 신림4동)
3.6. 신림동(舊 신림5동)
3.7. 삼성동(舊 신림6동+신림10동)
3.8. 난향동(舊 신림7동)
3.9. 조원동(舊 신림8동)
3.10. 대학동(舊 신림9동)
3.11. 미성동(舊 신림11동+신림12동)
봉천동 행정동별
3.1. 양녕로 서부
3.1.1. 보라매동(舊 봉천1동)
3.1.2. 은천동(舊 봉천본동+봉천9동)
3.2. 북부
3.2.1. 성현동(舊 봉천2동+봉천5동)
3.2.2. 청림동(舊 봉천3동)
3.3. 중부
3.3.1. 중앙동(舊 봉천10동)
3.3.2. 행운동(舊 봉천6동)
3.4. 남부순환로 남부
3.4.1. 청룡동(舊 봉천4동+봉천8동)
3.4.2. 낙성대동(舊 봉천7동)
3.4.3. 인헌동(舊 봉천1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