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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연구

우리말 / 글동네 말동산

작성자배우리|작성시간25.01.13|조회수15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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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 글동네 말동산

새벗 글동산 말동네

 

꽃처럼 예쁜 꽃이름들

050730 저서 모음


꽃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빛깔도 모양도 그 내음도 아름답다.

그런데, 꽃들의 종류가 많아서인지 그 이름들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그리고, 꽃이름들도 옛날과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지금의 꽃이름들을 보면 한자로 된 것이 많으나, 우리 조상들이 붙인 꽃이름들 중엔 순수하게 우리말로 붙인 것이 많다.

'앉은뱅이꽃'이라고 하면, 지금은 아는 이가 별로 없으나, 한자로 된 '채송화(菜松花)'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안다. 옛날 사람들은 이 꽃이 다른 꽃보다 키가 작기 때문에 '앉은뱅이꽃'이란 이름을 붙였다. 또, 땅에 달라붙어 핀다고 '땅꽃', '따꽃'이라고도 했는가 하면, 모여서 듬뿍듬뿍 핀다고 해서 '뜸북꽃'이라고도 했다.

이에 반하여 해바라기는 키가 크다고 해서 일부 지방에서 '키다리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에선 해를 바라보며 돌아가는 꽃이라 해서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해바라기'로 부른다. '해자부리' 또는 '해자브래기'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해를 잡는다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다.

해바라기와 상대되는 뜻으로 붙여진 것에는 '달맞이꽃'이 있다. 빛깔이 달빛처럼 노란 데다가 해진 저녁에 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바라기처럼 어떤 천체를 따라 꽃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달맞이꽃은 우리 나라에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우리 꽃이름들은 이처럼 대개 그 모양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나팔 모양 같다고 해서 '나팔꽃'이 나왔는가 하면, 방울 같다고 해서 '방울꽃' 같은 이름이 나왔다.

'접시꽃 당신'이란 글로 유명한 '접시꽃'은 그 모양이 접시처럼 넓게 벌어져 있어 나온 이름이고, 배고픔과 관련된 전설을 안고 있는 있는 '밥풀꽃'은 그 모양이 밥풀과 같아서 나온 이름임을 누구나 쉽게 짐작한다.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싹 날 때에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이런 동요를 부르노라면, 꼬부라진 꽃대에 매달린 할미꽃이 머리에 금방 그려진다.

미꽃은 '닭벼슬꽃'이라고도 했다. 줄기까지 닭벼슬처럼 빨간 데다가 몽톡하게 핀 모양이 꼭 닭의 벼슬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식 이름도 닭의 벼슬이란 뜻의 '계관', '면두'이다. 맨드라미꽃을 줄여서는 '맨드리'라고 한다.

머리에 쓰는 패랭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붙은 '패랭이꽃'은 우리 나라 자생꽃으로, 산야에 널리 자라고 있다.

붓처럼 생긴 '붓?', 은방울처럼 생긴 '은방울꽃', 구슬처럼 생긴 '구슬봉이', 초롱처럼 생긴 '초롱꽃' 등도 모두 그 모양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광대수염'이나 '범부채' 같은 꽃이름도 재미있다. '광대수염'은 광대의 긴 수염 같아 붙은 이름이고, '범부채'는 넓은 부채살 모양에다가 범가죽처럼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꽃을 다만 그 모양으로만 아름답다고 하지 말자. 꽃도 아마 사람들이 자기 모양만 보아 주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하나 우리의 꽃들의 이름을 잘 일러 주는 것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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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호 촬영 수분리

사전 따로 말 따로

사전 따로 말 따로 가는 세태



사람들의 말이 옛날과 달리 크게 거칠어졌다.

사회가 매끄럽게 돌아가질 못해서인가, 아니면, 불만 많은 세상에 그러한 '거친 말'이라도 써서 불만을 해소해 보겠다는 생각에선가?

골 때려-열 받아-찍 쌌어

싸랑(사랑)-딲아라-씻쳐라

숏다리-롱다리

엑스세대-또라이-학삐리-야리꾸리

사전에 없는 말들이 마구 난무하고 또 그렇게 써도 크게 흉잡히는 세상이 아니다.

문제는 국어 사전이 지금의 말(통용어)대로 따라 가 주던지, 말(통용어)이 올림말(사전 등재어)대로 철저히 가 줘야 할 텐데, 말은 이미 사전이나 규칙에 앞서 저만큼 딴 길을 가고 있는 점이다.

그런 데다가 방송은 방송대로 우리의 말을 바르게 이끌어 주지 못한다. 바르게 이끌어 주기는커녕 우리말을 완전히 딴 길로도 가게 만든다.

방송 언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방송에서 누가 이상한 말 한 마디만 하면 그 말은 금방 학교나 직장 등에 퍼져 버린다. 방송 중에서도 특히 코미디 등의 오락 프로가 저속한 은어를 남발하면서 그러한 흐름을 주도한다.

방송 위원회가 몇 해 전에 은어 사용 실태 조사에서 대표적으로 지적한 몇 예를 보자.

"찍 쌌어."

"?피박이네."

"못 먹어도 고네."

"정말 골 때리네."

"죽여 준다, 죽여 줘."

"?띨띨하다구요."

"김일성이가 또라이인데, 또라이가 보턴만 누르면?"

"영계 술집?영계 사냥꾼?영계와 포주의 협의 기구가 생긴다면?"

"네 사진 보고 뿅 갔다."

"학삐리 깔치가 붙을 리가 있냐?"

"야마가 돌아요."

"가리지날 매리지날 또라지날 조포카 돌돌카 제안카 열카?"

은어는 그 뜻 그대로 '숨은 말'이다.

은어를 모르면 그 시대의 바보가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은어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알려면 따로 공부(?)하거나 머리를 번쩍번쩍 굴려야(?) 한다. 정 모르면 그 앞뒤 말을 살펴서 분위기를 읽어서라도 말하는 이의 숨은 뜻을 짐작해야 한다. 은어는 시대를 타고 계속 변하고, 또 기발하다고 할 만큼 새롭고 깊은 것들이 나오고 그 빈도도 더 심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은어가 일시적으로 씌었다가 사라져야 하는데, 계속 남아 우리말을 더럽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표준말처럼 쓰이고도 있다.

토박이말이 한자말에 눌려 죽어 가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한자말은 우리말을 지금도 계속 마구 잡아먹어 나가고 있다. 그런 데다가 요즘은 서구어까지 마구 들어와 합세를 하고, 이 나라 언어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고 있다.

"그까짓 집 헐어 버리고 좋은 '주택'을 짓게나."

이렇게 '주택'이 '집'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집'은 저 아래로 떨어져 버리고, '주택'이 올라섰다. 그러더니, 이젠 '하우스'까지 들어와 '집'을 죽이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런 '주택'이나 '하우스'에는 '부엌'과 '뜰'이 없고, '주방'과 '정원'이 있단다. '집'이 죽으니까 '부엌'과 '뜰'이 함께 죽어 갔다.

어느 방송인의 얘기.

주부 관련 프로를 진행했을 때인데, 대담자와 화분 흙갈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닭똥'이란 말을 썼는데, 한 청취자로부터 호된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왜 '계분'이란 말을 안 쓰고 그런 천한 말을 썼느냐고.

골이 아프면 '골병원'이 아닌 '뇌병원'에 가야 하고, 콩팥이 고장나 병원에 가면 의사는 '신장'을 고쳐 주겠다고 한다. '피'를 검사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피'가 아닌 '혈액' 검사를 받고, 염통이 아프다면 '심장병'을 의심받는다.

옛 자연 교과서 인체 항목에는 '큰골-작은골-등골-숨골'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뇌-소뇌-연수-척수' 등의 말이 자리잡고 있다. 토박이말이 쫓겨나고 한자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물에게는 '골'이 있지만, 사람에겐 '뇌'가 있다고 생각하는 '골 빈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

돼지 몸 속에는 분명히 '가로막'이 있는데, 사람 몸에는 그것 대신 '횡격막'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로막의 살은 '가로마기살'로 되었다가 줄어서 '갈매기살'이라는 기형아를 만들어 놓았다. '가로막'은 죽고 그것에서 나온 기형아가 살았다.

'달거리'가 '월경'이란 때문에 죽어 버리더니, 이젠 '멘스'가 그 자리를 차지해 들어갔다. '코막힘'이란 우리말도 '비색'이란 말이 대신하고 있다.

식물에 관한 이름이나 바위 이름들도 이젠 교과서에서조차 모조리 한자식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녹말만들기'가 '광합성'으로, '잎파랑이'가 '엽록소'로 변해 버렸다. '쑥돌-변쑥돌-횟돌'같은 이름들도 '화강암-편마암-석회석' 등으로 옮겨갔다.

'세모-네모'가 '삼각형-사각형'이 돼 버리더니, '나란히꼴'은 '평행사변형'이란 말로, '맞모금-맞줄임' 등의 말도 '대각선-약분' 등의 말로 둔갑했다.

이렇게 해서, 그 동안 우리가 잘 키워 왔던 이름들이 한자말들에 치어 죽어 나갔다.

"상기 1997년도 취학 적령 아동을 하기 학교에 배정하였사오니 소정 시일에 등교 취학시키심을 무망합니다."

수년 전에 어느 동사무소에서 학교에 새로 들어갈 어린이들 가정에 보낸 통지문의 내용이다.

이 통지문을 받은 어느 가정에선 이 통지서를 처음 받아 든 어린이가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단다. 사실, 이런 통지문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아도 모두 알 수 있는 말로 만들어도 좋았을 것이다.

"위의 어린이는 올해에 학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알려 드린 날짜에 학교로 가셔서 수속을 마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쓰면 얼마나 알기도 편하고 부드럽겠는가. 한자투의 말을 쓰면 더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가 문제이다.

무분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외래-외국어 등도 그런 일에 한 몫을 했다.

아가 용품점에 가 보면 '베이비'란 말이 들어간 상품들이 널려 있다.

어른 옷가게를 가 봐도 온통 외래-외국어 이름을 단 옷들이 활개를 친다. 우리말 이름의 옷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한 광고 문구조차 온통 외래어다

'바겐쎄일 오픈'

'이벤트-코디네이션'

'패션 캐릭터 토탈전'

'디자이너 브랜드-캐쥬얼-니트'

'니오베-아첸토-랭글러'

외국 상표를 붙이면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던가?

부부가 거리를 지나다가 앞에 지나는 한 아가씨를 보았다.

"어머, 저 아가씨 미니스커트 참 잘 어울린다. 나도 한번 저런 멋진 미니스커트 한번 입어 봤으면."

"당신은 미니스커트 안 어울려."

"그럼, 롱스커트가 어울려요?"

"아니, 당신은 롱스커트 미니스커트 다 안 어울려. 긴치마 짧은치마는 몰라도."

우리말은 이렇게 외래어 속에 철저하게 천대받다 죽어 간다.

앞으론 우리 국어 사전에 이런 외래어나 외국어로 잔뜩 그 부피가 늘어나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의 토박이말들은 그러한 말들 틈에서 어떻게 제대로 숨을 쉴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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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드는 우리말
우리말이 병들고 있다

우리 겨레가 말글살이에서 행복할 수 있음은 훌륭한 나라말과 나라글이 있음에서다. 땅 조각이 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 오는 남과 북이지만, 오직 '한 겨레'로 느낄 수 있음도 같은 말과 같은 글을 쓰고 있음에서다.

그만큼 우리는 고유의 말과 글을 가져 복된 민족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말과 글의 고마움을 잊고 산다. 마치 물이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함에도 그 고마움을 잊고 살듯이.

말과 글을 지킴은 무엇보다 큰 '나라 사랑'이다. 아니, 나라 사랑 이전에 당연히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의 말에서 우리말을 천대하고 남의 말을 존중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아 온다.

"여보, 저 아가씨 미니스커트 참 잘 어울리죠? 나도 한번 저런 멋진 미니스커트 한번 입어 봤으면."

"당신은 미니스커트 안 어울려."

"그럼, 저한텐 롱스커트가 어울려요?"

"아니, 당신은 롱스커트나 미니스커트 다 안 어울려. 긴치마 짧은치마는 몰라도."

예쁜 다리에는 '미니스커트'가 어울리고, 보기 싫은 다리에는 '긴 치마'가 어울린단다.

"그까짓 헌 집 헐어 버리고 좋은 '주택' 하나 짓고 살게나."

낡아서 헐어 버려야 할 집은 '집'이고, 새로 지을 좋은 집은 '주택(住宅)'일까? 주택을 서양식으로 지으면 '하우스'가 된다고나 하지 않을지? 또, 그런 '주택'이나 '하우스'에는 '부엌'과 '뜰' 대신에 '주방(廚房)'과 '정원(庭園)'이 있다고 할 것이다. 주방에 들어가면 '밥상'이 아닌 '식탁'이 있다 할 것이고, '부뚜막'이 아닌 '싱크대'가 있다고 할 것이다. 사라진 부뚜막이야 없어져 그런 말을 쓸 수는 없겠지만. '부엌'이나 '뜰'은 엄연히 있는데도 그 말들은 우리 입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주부 관련 프로를 진행하던 어느 여류 방송인이 화분 흙갈이 설명에서 '닭똥'이란 천한 말을 썼다고 한 청취자로부터 호된 항의를 받았다 한다.

"아니, ××× 아나운서는 그런 말을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 '닭똥'이 뭐요? 나 지금 점심을 먹고 있다가 밥을 삼키지 못했소. 방송에 그런 말을 써도 되는 거요?"

이 항의대로라면 '계분(鷄糞)'은 냄새가 안 나고 '닭똥'만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다. 우리말은 천하고 냄새 나고 형편 없고,…… 우리말을 그런 형편 없는 물건(?)들에만 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닭똥'이란 말을 쓴 아나운서에게 항의의 화살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말에 대한 푸대접은 우리 몸 부분의 이름만 생각해 보아도 안다.

골이 아프면 '골 병원'이 아닌 '뇌 병원'엘 간다고 한다.

그렇지. '골 병원'이 없기 때문이겠지. 아니, 그런 이름을 단 병원이 없어서겠지. 콩팥이 고장나 병원에 가면 그 콩팥은 그 곳에선 '신장'으로 바뀐다. 염통이 병 나면 그 병은 '심장병'이 돼야 하고, '피'를 검사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피 검사'가 아닌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한다.

돼지 몸 속에는 '가로막'이 있는데, 사람 몸에는 그것 대신 '횡격막'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면 '뇌'가 좋다 하고, 머리가 나쁘면 '골'이 비었다고 한다. 동물 머리에는 '골'이 있지만, 사람 머리엔 '골'이 아닌 '뇌'가 있다고 생각하는 '골 빈 사람들'이 많다.

'달거리'가 '월경'이란 때문에 죽어 버리더니 이젠 그 '월경'도 쫓겨 나가고, '멘스'가 그 자리를 차지해 들어갔다.

교과서에서조차 우리말을 푸대접한다.

70년대까지의 교과서에서는 순수 우리말이 많았는데, 그 뒤로 교과서의 그런 말들이 하나하나 바뀌어져 나갔다. 우리말을 밀어 내고 그 자리에 한자말을 앉혀 놓은 것이다.

'녹말만들기'가 '광합성'으로, '잎파랑이'가 '엽록소'로 변해 버렸다. '쑥돌-변쑥돌-횟돌'같은 이름들도 '화강암-편마암-석회석' 등으로 옮겨갔다.

'세모-네모'가 '삼각형-사각형'이 돼 버리더니, '나란히꼴'은 '평행사변형'으로, '맞모금-맞줄임' 등의 말도 '대각선-약분' 등의 말로 둔갑했다.

'세모-네모'는 지금도 어린이들에게는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이름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삼각형-사각형'으로 다시 배워야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어른들의 장난(?)으로 이중의 부담을 안아야 한다. 어린이들은 '속셈 학원'에 가서 '속셈'을 배우지만 학교에 가면 이 '속셈'은 '암산'으로 바뀐다.

우리말은 또 억지 외국 옷을 입고 신음하고도 있다.

'다리'라는 좋은 우리말에 웬 영어 찌꺼기를 얹어 놓고, '롱다리', '숏다리'인가?

우리말이 된소리로 변해 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사이즈는 짝지만 성능은 쎄다."

"눈썹이 뾻구……"

"쬐끄만 녀석이 쑬이 쎄서 쐬주를 잘 들이키더러구."

"쪼끔씩 쭐여 볼까?"

"안 ?았어? 이 쌔끼, 팍 쭉여 놀래."

'껀(건)'을 물어서 '쩐(돈)'이 생겼다고 하는가 하면 누구는 '꽈(과)'를 잘 선택해서 '쩜쑤(점수)'가 낮아도 '째수(재수)' 좋아 잘 들어갔다고 '쑹(흉)'들을 본다고 한다.

이렇게 순한 소리를 딱딱하게 만들어 쓰고 있으니, 우리말이 '간 경화 현상(?)'으로 죽어 가지나 않을지?

우리말은 이렇게 철저히 병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국어 사전은 한낱 옛말(?)이나 지키고 있는 고물로 만들어 놓고 말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알퐁소 돗데는 그의 '마지막 수업'이란 소설에서 주인공의 대사를 빌어 이런 말을 남겨 놓았다.

"나라를 잃어도 그 나라 말만 잘 지키고 있으면 감옥 안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같다."

말과 글은 그것을 제대로 지켜 갈 때 그 가치를 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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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가는 우리말

-쓰임말과 국어 사전의 엄청난 차이를 어찌할 것인가?-

앞으로 몇십 년 후의 우리 국어 사전에는 지금의 국어 사전에 있지 않은 말들이 적잖이 들어가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의 국어 사전이 그 때 쓰는 말들을 많이 담아 놓지 못해서 필요한 낱말을 찾을 수가 없고, 한낱 옛말이나 찾는 데나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지금의 우리 국어 사전은 완전히 '사전 따로 말 따로'식으로, 옛날 걸음만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들을 보자.

'검은돈'이니 '흰돈'이니 하는 말들이 방송이나 신문에는 펑펑 나오는데, 이 말이 우리의 국어 사전에는 없다. '그녀'와 같은 말들을 소설 같은 데서 아무런 문제 없이 쓰이고 있지만, 이 말이 없는 사전도 많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 생겨난 '돈세탁'이라는 신조어라든가 '복지부동(伏地不動)'에서 태어난 '복지안동(伏地眼動)' 같은 괴상한 말도 나와 돌고 있지만 이 말이 사전에 들어가 있을 리가 없다. '통치자금'이란 말도 그럴 것이다.

'노래방'이라는 간판이 거리에는 많아도 국어 사전엔 없다.

"달동네에서 기껏해야 손국수나 사 먹을 수 있는 신세--. 아 쪽팔려."

"발랑까진 듯한 오빠부대가 쉰세대를 쫑코놓고 톡끼더니---"

명사에서의 '마른안주'나 '바램(소망)', 그리고 '징검다리휴일'이나 '컴맹'도 사전에 없는 말이고, '표밭'이나 '돌대가리'도 역시 있지 않은 말이다.

동사나 형용사에서 '꼴값한다', '열받다(화가 나다)', '열불나다', '짬뽕되다', '찍싸다' 같은 말들도 잘들 통하고 있는 말들이지만, 실제로 이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려면 쉽지가 않다.

이러한 '무등록(無登錄)'의 새말들은 음식 이름에도 아주 많다. 여러 가지를 모아 끓인 찌개를 '모듬찌개'라 하고, 이와 비슷한 찌개를 또 '부대지개'라고도 한다. '모듬찌개'는 '모아서 만든 찌개'의 뜻을 담은 말이고, '부대지개'는 과거 군 부대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모아 끓여 낸 찌개를 일컫던 말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아주 어엿한 하나의 요리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그밖에 다음과 같은, 왠만한 국어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식 이름이 있다.

불백('불고기 백반'의 준말)

불낙곱(불고기에 낙지와 곱창을 곁들인 음식)

갈매기구이(짐승의 횡격막 살을 구워 낸 고기)

은어나 속어도 문제다. 이러한 말들이 한때 유행처럼 씌었다가 사라지면 모르되 몇십년이고 계속되다 보면 버젓이 통용어로 자리잡는다.

왕자병-걸리다(잘난 체하다)

땡땡이-치다(수업에 빠지다)

열-받다(화가 나다)

왕재수(크게 나쁜 재수)

범생이(모범생)

내꺼(마음에 드는 이성)

캡(최고)

튀다(도망가다)

싸가지-없다(성미가 고약하다)

좆나게(매우 심하게)

새끼(다른 남자를 나쁘게 지칭하는 말)

쪽-팔리다(창피하다)

대빵(선배)

말-씹다(말대꾸하다)

우리말은 이처럼 계속 '말법 따로 말 따로' 가고 있다. 그리고, '말 따로 뜻 따로' 달려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국어 사전이 쓸모 없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고, 맞춤법이나 표준말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지금 모르고 지내고 있다.

국어 사전을 이젠 지금 실지로 많이 통용되고 있는 말 중심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러한 우려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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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드는 우리말

 

멍드는 우리말

잘못 쓰는 말 몇 사례를 짚어 보면서



말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말(말씨)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씨까지 알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점에서 '말'은 어려서부터 좋은 정서를 깔아 길러 가야 할 한 덕목이다.

그러나, 엄격한 가풍을 지닌 집안에서도 자녀들에게 생활 예절을 가르치는 모습은 볼 수 있으나, 언어 예절을 가르치는 모습을 별로 볼 수가 없다.

어린이는 어른의 모습을 닮아 간다. 말 역시 어른의 말투나 말씨를 그대로 닮는다. 어른이 거친 말을 쓰면 어린이도 거친 말을 쓰고, 고운 말을 쓰면 어린이도 고운 말을 쓴다. 따라서, 어린이가 거칠고 이상한 말을 쓰는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먼저 어른이 모범적으로 곱고 올바른 말을 씀으로써 어린이도 자연스럽게 그런 버릇을 들이기에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도 말을 조심해 쓰지 않고, 제대로 된 말법에 따르지 않은 이상한 말을 쓰는 것을 흔히 본다. 이 바람에 아이들까지 자연히 그런 좋지 못한 말버릇으로 옮겨 가고 있다. 특히, 사전에도 없는 말, 외래-외국어, 된소리의 말, 사투리, 어법에 맞지 않는 말 등이 이 땅의 언어 문화를 크게 짓밟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가정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자주 접하는, 그리고 우리의 언어 생활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TV나 라디오, 또는 신문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더욱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첫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낱말을 제 뜻대로 쓰지 않는 것이다.

모든 말은 모두 나름대로 그 고유의 뜻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뜻을 올바로 쓰고 있지 않은 예를 많이 볼 수가 있다.

몇 예를 들어 보자.

"맛이 담백하고 좋지요? "

그러나, 대개의 사전에는 '담백하다'는 말이 없다. '담백(淡白)' 또는 '담박(淡泊)'이 있는데, 그 뜻도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 또는 '맛이나 빛이 산뜻함'의 뜻일 뿐이어서 사전과는 거리가 먼 말로 옮겨 가고 있다.

우리 누리에는 '사모님(?)'이 너무나 많다. 복덕방을 찾아오는 복부인 아줌마도 '사모님'이고,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물건을 사러 간 손님도 '사모님'이다. 아파트 경비원, 세탁소 주인 앞에선 어느 주부고 '사모님'이 아닌 사람이 없다. 직장이나 모임에서도 이 '사모님'이란 말이 남발된다.

'사모님'은 사모(師母)의 존대말, 또는 웃사람의 아내의 존칭으로 쓰이는 말이고, 스승의 아내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 가정의 어린이에게는 '사모님'이 이젠 모두 '부인'의 뜻으로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을 '안전부절못하다'라고 한다. '좌불안석(坐不安席)'이란 말도 있는데, 이 말처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이 바로 '안전부절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안전부절못하다'란 말이 지금에 와서는 그냥 '안절부절하다'로 쓰고 있어 우스운 말이 돼 가고 있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방송말에 의한 오염이다.

"이게 무슨 송아지 껌 씹는 소리냐?"

"이놈의 지지배."

"웃기는 짜장면-짬뽕."

"야리꾸리하게 말도 안 되게---"

이것은 몇 년 전에 방송위원회에서 지적한 그 당시의 유행어의 몇 예이다.

몇 년 전 어느 텔레비젼 방송의 코미디 프로인 '코미디 전망대'에서 '모의국회'라는 단막은 무척 많은 유행어를 낳게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돌리도'와 '물리도'였다.

"내 청춘 돌리도."

"아까 준 것 이리 물리도."

이러한 유행어는 바보스런 말투를 이용한 것이다.

"이제 고마해(그만 해)"

"안녕하시렵니까?"

"실례하시렵니다."

유행어는 우리말만 가지고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외국어를 이상하게 발음함으로써 새로운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어느 개그우먼이 극중에서 자주 썼던 '알라뷰'도 그 보기에 해당한다. '알라뷰'는 '아이 러브 유'를 우스꽝스럽게 발음한 것이었다.

"지가요----했걸랑요"

어느 콧수염 가수의

"앗, 나의 실수."

"아, 응애예요."

등은 발음과 몸동작이 특이해 유행이 된 예였다.

"띠용."

놀랐다는 뜻의 이 표현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상당히 오래 유행이 되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제로 극을 펼쳤던 어느 텔레비젼 코미디에선 학생들이 저마다 손을 들고 "저요,저요"를 남발해, 이것이 점잖은 회의 석상에서까지 파고들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고마해."

"누버 자자."

"밤나 눈탱이 벌개 갖고---"

이 모두 코미디를 좋아하는 층들에게 폭소의 마력을 던져 준 것들이었다.

코미디에서는 일부러 사투리 대사를 많이 넣는데, 그 중에서도 충청도 사투리가 더 많이 쓰인다.

"괜찮아유.----했시유."

사투리는 재미가 담겨 있고, 재치가 넘쳐 있다. 그래서, 우리의 찌든 삶 속에 윤활유를 제공해 주고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칠 때는 우리의 건전한 언어 생활을 잘못 이끌어 갈 수도 있다.

은어도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주범 중의 하나이다.

'학삐리 깔치 땜에 뿅 깠어'

"골 때리네."

"---정말 죽여 주는군.'

"---띨띨하다구요."

"야마가 돌아요."

"찍 쌌어."

"---피박이네."

"못 먹어도 고네."

"김일성이가 또라이인데, 또라이가 보턴만 누르면---"

"영계 술집--영계 사냥꾼---영계와 포주의 협의 기구가 생긴다면---"

"가리지날 매리지날 또라지날 조포카 돌돌카 제안카 열카---"

비속어도 우리말오염에 단단히 한 몫을 한다. 비속어 중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사람 몸 부위에 관한 것이다.

주딩이-눈깔-쪽-턱쪼가리-대갈통-머리팍-귀싸대기---

외국어와 우리말의 부적절한 조합도 지적 대상이다.

그 중 요즘 많이 쓰는 것 중의 하나가 '롱다리-숏다리'이다. '롱다리'라는 말은 어느 개그맨이 몇 년 전에 퍼트린 말로, 영어 단어와 우리말이 어설프게 뒤섞인 말이다. 처음엔 젊은 층에서 장난기 섞인 말로 하는 것이니 조금 돌다가 사라질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날이 갈수록 이 말은 사회 어느 층에나 마구 퍼져 가고 있다.

또,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자꾸 퍼져 가고도 있다.

'역전(驛前)'이 부족해 '역전앞'이 되고, '고목(枯木)'이 부족해 '고목나무'가 되고, '약수(藥水)'가 부족해 '약수물'이 되더니만 급기야 토씨까지 '역전앞'꼴의 말투로 옮겨 가고 있다.

'김일성이가 죽고 김정일이가 정권을 잡다'식으로 '이가'가 마구 쓰이고 있는데도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정권을 잡다'식이어야 하는데, 필요없이 '-가'가 붙고 있는 것이다.

"야, 그 사람, 얼굴 용모 하며, 헌칠한 키 하며, 정말 '왔다'더라."

이처럼 '왔다'를 동사가 아닌 명사로 쓰고 있다. 만들어진 명사이고, 억지 낱말이다. '최고'라는 말 대신에 이 '왔다'를 쓰고 있다.

'먹었다'는 말 역시 그 원뜻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가고 있다.

'한 방 먹었다-골탕 먹었다.'

집에서는 밥을 먹었는데, 축구 경기에선 고울을 먹어, 감독으로부터 욕을 먹고는 분풀이하겠다고 결심을 먹었다. 우승을 먹어야 하는데, 애를 먹으며 연습했는데도 달리기에선 꼴찌를 먹어 고배(苦杯)를 마셔야(먹어야) 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욕먹을까 봐 겁을 먹었다. ----'먹는 것'은 대개 좋은 것인데, 아무 거나 먹다가는 세상 살기가 정말 어렵게 되었다. 또, '엿 먹어라'는 '당해 보라'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고--

우리말이 된소리 발음쪽으로 옮겨 가고 있음은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잘 좀 따까라(닦아라)."

"쪼끔(조금)만 주세요."

"한 껀(건) 했냐?"

"사사 껀껀(건건) 트집이냐?"

'소주'를 먹어선 안 취하고 '쐬주'를 먹어야 취한다는 세상. 우리말들이 이처럼 '쎈 쑬'을 먹고 있어 걱정이다.

"심심한데 좀 좋은 '꺼리' 하나 없냐?"

돈은 '쩐'으로, '과(학과)'는 '꽈'가 되어 있다. 이런 된소리의 엉터리 새 말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걱정이 든다.

우리말은 지금에 이르러 이처럼 심하게 앓고 있다.

거친 말, 일본어, 서구어, 거기에 은어-비어까지 판을 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이 이렇게 엉뚱한 길을 간다고 쳐다보고만 있어서야 안 되지 않는가? 이런 면에서 자라나는 자녀들 앞에서 부모들의 바른 언어 생활은 그 어느 것보다 크게 요구되고 있다. ///

 

고운 말 쓰기 운동



고운 말 쓰기 운동

말법 따로 말 따로

-국어 사전이 쓸모없게 돼 간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학교'와 '핵교'의 차이는 뭐냐?

'학교'는 '다니는' 곳이고, '핵교'는 '댕기는' 곳이란다.

"학교 다니니?"

"핵교 댕기니?"

위의 두 말 중의 어느 말로 해도 못 알아 들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표준말에 바탕을 둔 정상적인 언어 생활이라면 '핵교 댕긴다'는 말은 못 알아 들어야 할 것이다.

작가나 시인들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도 글을 쓸 때는 거의 말법대로 쓰고 있으나, 실제 그들도 여느 사람들처럼 평상적인 말투에서는 '글 따로 말 따로'이다.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으냐 어냐

앞으로 얼마 안 있어 말을 알아 듣는 컴퓨터가 나온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서 '말'을 하면 그것을 컴퓨터가 '글'로 즉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즉, '국어 연구원'이라고 말만 하면 그것이 바로 '국어 연구원'이라고 '글자화'해 놓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이 두 손을 두들겨서 글자를 만들어 내는 컴퓨터의 자판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니 참으로 꿈만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컴퓨터에 대해서 그리 깊이 아는 바는 없지만, '말을 알아 듣는 컴퓨터'가 아주 편리하고 정확하게 이용되려면 보다 많은 노력이 따라야 하고, 깊은 연구가 전제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얼마 전, 가톨릭 의사회의 한 조찬 모임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 옆자리에서 두 의사가 무슨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언뜻 내 귀에 이런 말이 들려 왔다.

"그 환자가 정상이 정상이 아니더라구.---"

나는 이 말을 듣고 이 짧은 말 속에 두 번이나 들어간 '정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말'에 대해서 평소 따지기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정상'을 말의 뜻을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말한 사람에게 물으면 간단할 일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잠시 생각 끝에 알아 낸 말은 이것이었다.

"그 환자가 증상(症狀)이 정상(正常)이 아니더라구.---"

글로 써 놓으면 이 말을 못 알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말로 하다 보니 이 말이 저것 같고, 저 말이 이것 같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남은 해 전의 일이지만, 내가 있는 출판사에 한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어느 날,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나를 좋은 데로 모시겠단다. 어디냐고 했더니, '엄마 상가'랔고 한다. 그 곳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로, 내가 어느 정도는 잘 아는 지역인데, 처음 들어 보는 '엄마 상가'라 어딘지 궁금했다. 그것을 묻는 나에게 이 친구의 대답.

"엄마아파트 지하에 있심더."

엄마아파트? 거기서 한참 떨어진 곳에 '엄마 상가'가 있는 줄은 알지만, 이 '엄마아파트'는 알 수가 없어 또 물었더니, 바로 앞에 보이는 아파트를 가리킨다.

"저예, 엄마아파트 보이지 않십니껴?"

그러나, 그 아파트 건물에는 '엄마'가 아닌 '은마'라는 큰 글자가 씌어 있었다.

'엄마'가 아니고, '은마'라고 지적하는 나에게 이 친구의 대답은 더욱 우스웠다.

"예, 맞심더. 엄마아파트 아이고 엄마아파트라예."

이 친구가 또 다시 말한 대목에서도 '은마'와 '엄마'는 똑같이 발음되고 있었다.

이 친구가 사는 곳은 서울 '응암동'인데, 늘 이를 '엉암동'이라고 했다. 서울에 그런 동이 있느냐 했더니 '언평구'에 그런 동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곳은 '정산동' 근처라는 말도 했다. '은마'가 '엄마'로, '응암동'을 '엉암동'으로, '증산동'을 '정산동'으로 들리는 것이 내 귀가 고장나 그런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해 봤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들린다고 하니 내 귀 탓은 분명히 아니었다.

어느 택시 기사가 서울 중랑구 '묵동'에 갈 손님을 그 정반대쪽인 양천구 '목동'으로 안내해서 혼났었다는 이야기는 이런 식의 발음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은 틀림없는 듯했다.

"내 언제 먹동이라캤나? 먹동이라캤지."

'묵동'도 '먹동'이 되고, '목동'도 '먹동'이 되니, 이를 가릴 능력이 컴퓨터라고 있겠는가? 그래서, 어느 컴퓨터 전문가는 말한다.

말을 글자로 바꾸어 놓는 컴퓨터가 나오면, 그 때 우리 나라에선 경상도용 컴퓨터, 전라도용 컴퓨터,---식으로 그 지방 특유의 발음 습관 따라 컴퓨터가 이를 제대로 처리해 주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그렇다 하더라도 컴퓨터가 몹시 피곤할 것이고, 그것이 여의치 못하면 컴퓨터를 쓰는 이들 중에는 컴퓨터가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듣는다고 고장 수리를 요청하는 일이 무척 많을지도 모른다.

"이 보소. 이 컴퓨터 고장이 아이요? '승격'을 '성격'이라 해 놓고, '증거'를 '정거'라고 쳐 놓는데,---"

표준말은 서울말을 표준으로 해서 정했다지만, 지금 서울에서 표준말을 쓰는 사람이 과연 몇 푼이나 되겠는가?

새말도 생기고 새 뜻도 나오는데

사투리나 발음도 문제지만, 국어 사전에도 없는 말들이 자꾸 나오는 데는 더 문제이다.

'검은돈-흰돈'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들이 새로 태어나 마구 쓰이고 있고, 오래 전부터의 일이긴 하지만, '그녀'와 같은 말들이 소설 같은 데서 아무런 문제 없이 쓰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돈세탁'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복지부동(伏地不動)'에서 태어난 '복지안동(伏地眼動)' 같은 괴상한 말도 나왔다. '통치자금'이란 말도 과거엔 없었던 말이었다.

'돈세탁'이란, 금융기관의 입출금 과정을 거치면서 자금의 이동 경로나 그 출처를 알 수 없게 하는 일을 말하는데, 마약 거래자들이 쓰던, 돈거래 방식인 '머니 라운드링'이라 한 것을 우리식으로 옮긴 것이라 하고, '복지안동'이란, 공무원 등이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마루 바닥에 엎드려 상사의 눈치만 보느라고 눈을 요리조리 굴리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나온 말로, '복지부동'보다 더 심하게 꼬집은 말이라 한다. '통치자금'이란 말도 과거엔 없었던 말이고, '범털-개털' 같은 말도 이 즈음에 나온 말이다.

그 밖에 다음과 같은 말들도 국어 사전에 없거나, 있어도 일부 사전에나 있는 새로운 말들로, 지금의 우리 말법으로는 쓸 수 없는 말들인데, 잘도 통용되고 있다.

<명사에서>

노래방

빈차

부처님오신날

달동네

마른안주

대발이-소발이

바램 (바람-소망)

손국수

쉰세대 ('신세대(新世代)'의 상대적인 뜻으로 통하는 말)

오빠부대 (인기인들을 따라다니며 함성지르며 응원하는 소녀들)

징검다리휴일 (하루씩 건너뛰어 이어 있는 휴일)

쪽팔리다 (창피 당하다)

컴맹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

표밭 (선거에서 자신 또는 자기 당의 표가 많이 나오는 지역)

<동사나 형용사에서>

꼴값한다 (잘 생기지도 못한 제 모습대로 행동한다)

발랑까지다 (무서울 정도로 지나치게 약다)

열받다 (화가 나다)

열불나다 (화가 나다, 몹시 급하다)

짬뽕되다 (섞이다)

쪽팔리다 (창피 당하다)

쫑코놓다 (핀잔을 주다)

찍싸다 (일을 그르치다)

토끼다 (후딱 달아나다)

<부사에서>

존나게 (매우. *'□이 나올 정도로'의 뜻인 '□나게'에서 나온 말))

이러한 새말은 음식 이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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