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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방송
010-2220-0900 배우리 회장
140622 KBS1 방송 2005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땅 기행 <평양>
이 자료는 2014년 KBS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대담 질문은 명지대의 신율 교수, 답변자는 한국땅이름학회의 배우리 회장입니다.
평양에 관한 방송 대담은 2014년 4월 13일부터 시작해 3 차례에 걸쳐 했습니다.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땅 기행
평양1
1. 이제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 관해서 알아볼 예정.
평양은 북한의 중심 도시여서 다른 지역보다 이야기할 내용이 많을 듯.
앞으로 내용을 어떤 순서로 말씀해 주실지?
우선 평양의 현황을 개괄적으로 설명할 예정. 그리고 다음 순서로 역사, 지명, 중요 시설, 유적지 등을 설명해 나갈 것이다.
2. 그럼, 먼저 평양이 어떤 곳이지 개괄적으로...
평양은 잘 아는 바와 같이 북한의 행정, 경제, 문화 등의 중심지.
한반도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시. 북한의 수도. 동부는 평안남도-황해북도, 남부는 황해북도, 남서부는 남포시, 서부와 북부는 평안남도와 접해 있다.
현재 행정구역은 19구역 4군으로 되어 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9월에 평양시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확대위원회 결정에 의하여 평안남도에서 분리되어 특별시로 개편되어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의 남사리, 북사리, 청호리, 양암리, 고산리, 상오리를 흡수하여 중구(中區), 동구(東區), 서구(西區), 북구(北區)를 설치한다. 그 후 구역을 계속 확대하거나 개편을 단행하여 지금과 같은 행정 구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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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양은 역사가 매우 깊은 도시죠? 고구려 때부터 수도로 정해졌으니까요? 예로부터 지정학적으로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테고...
서울이 한강을 끼고 북한산과 북악을 끼고 한강을 앞에 두고 있는 배산임수의 길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평양도 이와 비슷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금수산을 북쪽에 두고 앞으로 대동강을 두고 있으며, 너른 평지 곳곳에 물길이 골고루 퍼져 있다.
기름진 너른 평야가 있어 에로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아주 좋았을 터였다.
4. 고구려의 수도로 정해지기 이전부터도 주목을 받았던 곳이죠?
고조선 때부터 요지로 여겨 왔다는 사실이 왕검성 도읍지 이야기를 통해 증명된다.
왕검성은 왕험성(王險城)’이라고 표기하기도 하였다. 《삼국유사
그리고 《삼국사기
한편 중국 사서인 《사기
이렇게 고조선의 수도는 기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사기》〈조선열전〉, 《한서기원전 109년에 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하자 우거왕은 1년 동안 왕검성에서 농성하였고 이듬해 왕검성이 함락되어 고조선은 멸망하였다
5. 평양은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죠?
평양은 단군조선이 도읍한 후 고조선의 전 기간 수도로 되어 있었던 것만큼 그 영역이 자주 변동되었다.
고조선 말에도 대동강유역의 평양성을 기본 수도로 하고, 요동지방에도 부수도로 또 하나의 왕검성을 두고 있었다.
큰 고대국가였던 고구려가 평양을 제2의 수도(부수도)로 정한 사실은 평양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는 삼국 통합정책을 추진하면서 그와 상응하게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당시 평양성은 내성, 중성, 외성, 북성의 4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신라의 서북 변방 지역으로 있으면서 심히 황폐화되었다.
고려는 918년에 평양이 차지하는 지리적 위치와 경제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서부지역의 수도로 삼고 개경(開京)에 못지않게 큰 규모로 건설하였다. 이 기간 평양의 이름이 여러 번 개칭되었으나 고려 전 기간 제2의 수도로서 매우 중요시되었다. 고려건국 초에는 평양에 대도호부를 두었으나 얼마 후에는 서경(西京)으로 개편하면서 그 지위를 높였으며 930년에는 행정통치 구역을 서경 6부로 분리하였다.
12세기(1106년)에 전국을 5도 양계로 나누고 그 밑에 목, 군, 현으로 지방행정 체계를 정비할 때 평양은 북계(北界) 서경(西京)으로 되었다.
서경에 직속되는 군, 현으로서 동-서-남-북에 각각 강동(江東), 강서(江西), 순안(順安), 중화(中和) 등 4개 군을 두어 서경의 지위를 높였고 화폐 주조 기관을 서경에 두었다.
고려 말기인 1391년에는 서경을 평양부(平壤府)로 고쳤다.
조선 초기인 15세기(1413년)에 전국을 8도와 대도호부, 부, 목, 도호부와 군, 현으로 행정구역 체계를 정비할 때에는 평안도에 속했으며 이 도에서 유일한 부로 되어 있었다. 조선 초에는 고려 말기의 제도를 계승하여 평양부에 관찰사를 두고 평안도를 통치하게 하였다.
1895년 8도가 폐지되고 23부가 설정되었으나 1896년에 전국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평안남도의 도청 소재지로 되었다.
6. 광복 이후로 행정구역도 많이 달라져 왔을 테구요.
광복 직후인 1946년 9월 평양시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확대위원회 결정에 의하여 평안남도에서 분리되고 특별시로 개편되었다.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의 남사리, 북사리, 청호리, 양암리, 고산리, 상오리를 흡수하여 중구(中區), 동구(東區), 서구(西區), 북구(北區)를 설치하였다.
그 후 시 영역에서 주민수가 늘어나 1948년 7월에 중구 관할 구역을 중구와 남구의 2개 구로 분리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인 1952년 12월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구역제를 실시하면서 평안남도 중화군 일부가 평양시에 편입되어 5개 구역, 92개 리(그 가운데서 21개 리는 농촌리)를 관할하였다.
1955년 2월에 도시구내에 있는 리들을 동으로 하고, 5개 구역, 67개 동,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뒤에 대동군 일부를 분리하여 5개 구역, 109개 동,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2년 4월 평안남도 순안군을 평양시 순안구역으로 개편하였고, 11월에 여러 구역에서 새로운 동을 신설하였으며, 그 후 약간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1974년에 평양시는 19개 구역, 3개 군에 228개 동, 110개 리, 3개 읍으로 되었다.
2002년 현재 행정구역은 19개 구역(대동강구역, 대성구역, 동대원구역, 낙랑구역, 역포구역, 용성구역, 만경대구역, 모란봉구역, 보통강구역, 사동구역, 삼석구역, 서성구역, 선교구역, 순안구역, 승호구역, 은정구역, 중구역, 평천구역, 형제산구역), 4개 군(강남군, 강동군, 상원군, 중화군)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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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9 KBS1 방송 2005 땅방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녙 땅 기행 013 `평양2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땅 기행
평양2
1. 평양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어떤 분야의 이야기를...?
평양의 철도나 도로, 그 밖의 시설들에 관해서...
2. 평양이 북한의 수도인 만큼 도로나 철도망 등이 잘 갖추어져 있겠죠?
평양시는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였다.
광복 전에 경의선(京義線), 만포선(滿浦線), 평원선(平元線), 승호리선(勝湖里線) 등으로 철도망이 형성되었으며 도로는 평양~원산, 평양~남포 간의 국도와 지방의 여러 지역으로 통하는 도로망이 있었다.
광복 후 평양시 교통망은 급속도로 발전되었는데, 철도, 도로, 수상통로, 항공 등 여러 영역에서 입체적인 수송망을 이루고 있다.
철도망은 평양시의 교통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김일성 주석의 철도운수를 앞세울 데 대한 교시를 따라 철도시설 및 구조물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수많은 지선, 전용선, 인입선 철길들을 새로 놓아 북한 철도운수의 중심지로서의 완비된 철도망이 형성되었다.
현재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으로 뻗어나간 주요 철길로는 평부선(平斧山, 평양~부산), 평의선(平義線, 평양~신의주), 평라선(平羅線, 평양~나진), 평남선(平南線, 평양~평남온천) 등이 있고 또한 평강, 청수, 만포, 해주, 장연, 철광 방면으로도 철도망이 형성되어 있다.
평양~모스크바, 평양~베이징 사이에는 국제열차가 운행되며 강동, 순안, 대평 등 방향으로는 통근열차가 다닌다.
3. 도로망은 어떤가요?
도로망도 새로 건설하고 원래의 도로를 개건, 확장하는 사업을 전면적으로 진행함으로써 도로부문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현재 평양을 중심으로 신의주, 원산, 만포, 사리원, 개성, 남포 등 여러 방면으로 국도가 개설되어 있다.
시에는 지역 간의 운수적 연계를 위해 옥류교(玉流橋), 보통교(普通橋), 만수교(萬壽橋), 충성의다리(忠誠~), 양각다리(羊角~), 능라다리(綾羅~), 청류다리(淸流~) 등을 건설했다.
여객수송의 큰 몫을 하는 현대적인 무궤도 전차도 있고, 지하전동차도 있다.
평양지하철도는 4단계로 나뉘어 건설되었다.
지하철도는 시안의 중심거리를 따라 동서, 남북 두 개의 노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7개의 중심구역을 포괄하고 있는 이 노선들에는 주민들의 교통에 편리한 장소들에 역들이 건설되어 있다.
평양지하철은 지하 100~150m에 있고, 내부가 비교적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근 100편의 대형벽화와 100여 점의 조각 및 부각상들로 장식된 역들의 구내는 하나의 미술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넓은 홀에 수십만 개의 구슬로 각이하게 장식하여 설치한 무리등과 특색 있는 조명들도 이채를 띤다.
4. 평양에는 만수대궁전, 개선문, 고려호텔, 김일성광장...,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많은 시설물들이 있는 걸로 보이는데...
만수대학생소년궁전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궁전인데, 만수대학생소년궁전이 정식 이름이다.
만수대는 높이가 84m인 작은 산이다.
만수대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군의 충혼비가 있었는데 사라졌다.
대리석의 웅장한 건물로 청소년들의 방과 후 과외 학습장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어릴 때부터 소질이 있는 학생을 뽑아 특기교육을 시키고 있다.
대동강변에 백색의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전통 석탑건축양식의 높이 170m의 탑이다. 탑신이 150m이고 탑신위의 봉화가 20m이다.
주체사상탑
주체사상탑에서 직선으로 대동강 건너에 있는 인민대학습당 그리고 김일성 광장을 연결하는 선이 평양의 최고 중심선이 된다.
전면에는 농민을 상징하는 낫을 든 여인, 지식인을 상징하는 붓을 든 학생, 노동자를 상징하는 망치를 든 근로자를 조각한 거대한 청동 조형물(3인군상)이 있다.
탑의 뒤편에는 각국에서 보내온 격려문이나 휘호들을 적은 돌들이 붙여 놓았다.
고려호텔
북한 평양직할시의 신시가지인 창광거리에 있는 특급호텔로 1985년 8월 개관했다.
연건축면적 8만 4,000㎡이며, 외관이 동일한 45층(140m) 높이의 2개 동이 공중통로로 연결된다. 객실은 1등실 54개, 2등실 222개, 3등실 224개로 모두 510개이며, 한꺼번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45층에는 매시간마다 1번씩 회전하는 전망대가 2개의 식당으로 꾸며져 있어 식사를 하면서 평양시를 관망할 수 있다.
겉모습이 똑같은 2개 동이 공중통로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외국 기업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호텔이며 남측 인사들이 방북하면 거의 대부분 이곳에 묵는다.
북한에는 이 호텔 외에도 양각도국제호텔, 청년호텔, 량강호텔, 보통강호텔 등이 있다.
5. 김일성종합대학, 개선문이라는 것도 있죠?
김일성종합대학
평양특별시 용남동에 위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종합대학교이다.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과 근대 과학이론을 체득한 민족간부의 양성'을 대학 설립의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북한의 주체교육을 담당하는 핵심 교육기관이다.
1946년 10월 1일 김일성 주석을 기념하기 위해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채택한 법령 40호에 의거해 개교하였다.
설립 당시 7개 학부에 24개 학과로 출발하였으며, 68명의 교원과 1,500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1948년 종합대학에서 공학부, 운수공학부, 농학부, 의학부 4개의 학부가 분리되었다. 약 156만 ㎡의 부지에 본교사, 제1호 교사, 제2호 교사, 체육관, 과학도서관, 해양실습소, 기숙사, 박물관, 병원 등이 갖추어져 있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영어를 필수 교양과목으로 가르쳤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해온 황장엽(1923년~2010년) 전 노동당 비서가 이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김일성경기장
1969년부터는 관람석과 기본적인 시설들을 갖추고 모란봉경기장경기장 이름도 김일성경기장
경기장에서는 축구·농구·배구·육상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축구경기장
그밖에 TV송신시설과 동시통역시설·야간조명시설 등을 비롯하여 대형 전광판, 음향시설, 이동식 체육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해마다 크고 작은 체육경기는 물론 매스게임
평양에는 유독 김일성당학교, 김일성정치대학교, 김책공업대학교, 김형주교육대학교, 김철주교육대학교, 강건종합군관학교, 김만유병원 등처럼 인물 이름이 들어간 학교 이름이 많다.
겅건 ; 김일성 빨치산 동료.
김철주 ‘ 김일성 동생
김형주 ; 김정일 삼촌
김만유 ; 조총련계 의사이자 북한의 현재식 병원인 '김만유병원'의 설립자.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출생. 1931년 중국 만저우(滿洲)에서 발생한 '만보산사건'과 관련 일제를 규탄하는 격문을 붙이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의사생활을 했다. 도쿄(東京)에서 병원을 운영했고 82년에는 22억엔을 북한에 기증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 돈으로 1986년 평양에 병상 1300개를 갖춘 '김만유병원'을 설립하고 김만유씨에게 명예원장의 직책을 맡겼다. 김만유병원은 북한에서 현대적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중의 하나로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거리 대동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개선문
‘개선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문이 세계 몇 곳에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선문이다.
김일성 70돌 생일을 맞아 1982년 4월 14일에 제막하였다. 김일성의 혁명업적과 혁명사적을 선전하기 위해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평양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김일성경기장의 앞 도로에 세웠다.
높이 60m, 너비 50m, 폭 36.1m의 4층으로 된 석조건물로 1층 앞뒤에는 높이 27m, 너비 18m의 무지개형 문이 있다. 1층과 2층은 노대로 경계를 이루고 2, 3, 4층에는 체감식으로 된 지붕이
있다. 1층 앞뒤의 양쪽벽 위에는 1925, 1945라는 연대가 부각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구리로 양각한 4개의 조각상이 있다. 2층 앞뒤면 중심 벽에는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새겨져 있고 그 좌우에는 구리로 양각한 유격대 나팔수의 형상이 있으며 2층의 좌우측면 벽에는 백두산이 새겨져 있다.
개선문의 북쪽 면에 있는 부각상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는 개선연설을 하는 김일성에게 환호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또 남쪽 면에 있는 부각상 ‘장군님을 우러러’, ‘새 조국 건설에로’는 김일성이 제시한 건당, 건국, 건군 노선에 따라 새 조국 건설에 앞장서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개선문의 무지개문은 그 모양과 크기, 장식 등이 웅장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준다. 개선문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물모양과 대조적으로 그 중심부분을 무지개 모양 곡선으로 처리하였고, 테두리에 김일성 생일 70돌을 상징하여 70개의 잔달래꽃 부각판을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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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06 KBS1 방송 2005 땅방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녙 땅 기행 014 `평양3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땅 기행
평양3
1. 북한 평양에 관한 뉴스를 보면, 거리 이름들 개선문거리, 모란봉거리,... 식으로 나오는 것 같던데, 북한의 거리 이름들이 모두 이런가요?
남한에서는 길이름을 대로, 로, 길, ... 이런 식으로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거리’를 붙인 도로 이름들이 아주 많다.
‘~대로’를 붙인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평양 시내에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천리마대로이다.
모란봉거리, 락원거리, 안산거리, 새마을거리, 봉화거리, 영웅거리, 비파거리, 역전거리, 영광거리, 승리거리, 혁신거리, 청춘거리, 청년거리, 새살림거리 등이 있다.
2. 모란봉거리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이르는 길인지?
평양직할시 개선문광장에서 만수교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개선문광장을 거쳐 개선거리, 칠성문거리와 이어지고 거리의 중앙과 끝에서 서평양으로 향하는 인흥거리, 영웅거리와 교차되며 만수교를 건너 봉화거리와 연결되어 있어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거리는 1980년대에 새로 조성된 안상택거리와 통일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평양시의 면모를 더욱 웅장하고 화려하게 해 준다.
3. 거리 주위에서는 어떤 시설물들을 볼 수 있을까요?
차도, 인도, 녹지가 잘 정비된 도로 양쪽에는 주택들과 학교, 유치원
거리의 특징은 모란봉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리지 않으면서 개선문
또한 개선문
특히 인흥거리와 교차되는 거리의 중간에는 넓은 앞마당이 있는 봉화산여관이 들어서 있어 거리의 건축 형성상 중심이 강조되었다.
4. 북한에는 100층 이상의 호텔도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호텔이고 그 앞으로 지나는 거리는 무슨 거리인가요?
류경호텔(유경호텔)
최근에 건설한 105층짜리 피라미드형 고층호텔이다.
유경(류경)이란 이름은 옛 평양의 이름이고 이 호텔은 1987년 8월 28일 착공되어, 92년 4월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에 맞춰 완공 예정이었으나, 제난으로 공사가 한동안 중지되었었다.
이 앞을 지나는 거리가 봉화거리이다. 평양특별시 보통강구역의 중심거리.
1,900여m에 이르는 현대적 거리로 모란봉거리와 맞닿은 만수교에서 시작하여 붉은거리와 이어지고 경흥거리, 서성거리와 교차되는 지점까지 이어진다.
1958~1959년에 건설되었으며 1980년대 들어 거리의 주요 지점에 105층의 류경호텔을 비롯한 고층건물이 들어섰다.
차도, 인도, 녹지 등이 잘 정비되어 있고 현대적인 주택과 각종 상점을 비롯하여 각급 학교와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모란봉거리, 붉은거리, 경흥거리, 서성거리 등과 조화를 이루면서 변화와 입체적인 공간미를 살린 것이 거리의 특징이다.
거리가 시작되는 보통강변의 만수교 부근 공간에 18층, 20층의 탑형 건물을 세우고 서성거리와 이어지는 거리 끝점에 15층 건물을 배치하여 거리의 시작과 끝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또한 5층 건물을 기본으로 하고 그 사이에 모양이 다른 10층, 15층의 탑형 건물을 배치하여 웅장함과 율동감을 주었다.
5. 낙원거리라는 거리도 있다고 하셨나요?
락원거리(낙원거리).
평양직할시의 주요 간선 도로로서 1975년에 건설되었다.
보통강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봉화산을 옆에 끼고 낙원다리와 서장대언덕, 보통강의 봉화다리를 지나서 혁신거리와 연결되고 하신거리, 경흥거리, 붉은거리들과는 교차한다.
거리 주변에는 고층 주택과 영화관, 상점, 식당을 비롯한 공공, 문화, 편의 시설이 늘어서 있고, 도로, 보도, 녹지가 잘 정비된 거리에는 여러 가지 현대적인 기술 설비망도 갖추어져 있다.
6. 우리 서을 한강에는 20여 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는데, 평양에도 다리들이 많겠죠?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능라교, 옥류교, 청류교, 대동교, 양각교, 충성의다리 등이 건설되어 평양시를 동서로 연결하고 있다.
7. 그 중에서 특히 어느 다리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릉라교(능나교-능라다리).
북한 평양직할시 대동강구역의 능라거리와 모란봉구역을 연결하는 다리.
능라다리라고도 하며, 길이는 약 1070m이다. 청류교·옥류교·대동교·양각교·충성교와 더불어 대동강에 놓인 6개의 다리 가운데 하나로 청류교와 옥류교 사이에 있으며, 1988년 완공되었다.
대동강 강안에 있는 섬인 능라도와 모란봉구역을 연결하여 해방탑에서 동평양대극장으로 이어진다.
대동교·옥류교와 더불어 대동강변의 승리거리를 형성한다. 위쪽으로 청류정(淸流亭)·부벽루(浮碧樓)·을밀대(乙密臺)·최승대(最勝臺) 등지의 명소가 있다. 북한의 500원권 지폐의 도안으로도 이용되었다.
8. 아주 오래 된 다리도 있나요?
고구려 나무다리.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청호동과 사동구역 휴암동 사이에 있었던 고구려의 나무다리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60호이다. 5세기 초에 대동강에 설치된 나무다리로, 대성구역 청호동과 사동구역 휴암동을 이어주던 나무다리 유적이다.
다리 가운데 부분은 이미 없어졌다. 그러나 남아 있는 부분을 통해 보면 귀틀 모양으로 짠 듬직한 지지기둥 위에 세로 보와 가로 보를 견고하게 맞물린 지지보를 놓은 다음 깔판을 깔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교각에는 못이나 꺽쇠 같은 쇠붙이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다리의 규모는 전체길이 375m·너비 9m이며, 길이 8~10m·너비 0.38m·두께 0.26m인 굵은 나무 각재를 사용하였다.
오래되고 규모가 크기로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나무다리이다. 커다란 나무부재를 견고하게 조립한 솜씨를 볼 때 고구려 사람들의 목조건축기술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다리의 골조와 함께 기와 및 질그릇이 발견되었다. 대동강 건너 다리 북쪽에는 고구려 유적인 대성산성과 안학궁, 청암리성, 고방산성이 있고 대동강 건너 남쪽에는 고구려 시조 무덤인 동명왕릉과 정릉사가 있다. 따라서 이 다리의 역할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방송 대본 정리 배우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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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9일 TV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