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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연구

만초천 천지일보 251124

작성자배우리|작성시간25.11.19|조회수160 목록 댓글 0

땅이름 산책 13

서울 용산 만초천

- 용산국제업무지구의 탄생으로 구용산이 확 달라진다 -

1966년 만초천 보개공사

 

서울 무악재 골짜기에서부터 청파동, 용산전자상가를 지나 원효대교 밑에서 한강으로 들어가는 내가 있다. 만초천(蔓草川)이다.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맞을 당시, 일본식 이름인 '욱천(旭川.아사히카와)'에서 우리식 이름인 '만초천'으로 되돌려 놓은 내이다. 이 내는 복개되어 지금은 전자상가가 들어서 있지만 옛날에는 그 주위가 냇줄기 한 가닥이 지나가는 벌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에 대규모 고층 건물들이 들어설 전망이다. 이른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들어서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공간 대개조의 핵심사업으로 '용산서울코어라'는 이르므로 출발한다. 시는 도시공간 대개조를 통해 서울을 글로벌 탑5 도시로 올려 놓겠단다. 이 지구는 서울의 심장이자 대한민국의 얼굴인 용산 일대의 입지적 잠재력을 극대화해 서울역~용산역~한강변 축을 하나로 연결하는 입체복합수직도시 비전을 실현하는 초대형 도시개발사업이다.

용산구 한강로3가 40-1일대 45만6099㎡ 구역을 개발하는 이번 사업은 도로와 공원 등 2028년까지 부지조성공사를 완료하고 이르면 2030년 기업과 주민 입주를 시작한다. 용산이 서울의 중심이고, 그 중심인 한강로, 원효로 일대의 모습이 서울의 얼굴을 크게 바꾸어 놓을 판이다.

 

이 지역에 새로 들어서게 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역사를 보면 일제 강점기 한일의정서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이 조약을 근거로 용산(구용산) 일대 약 3백만 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하였고 여기에 철도와 군사시설을 집중적으로 건설했다. 1907년에는 일본의 철도국이 인천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용산이 철도 시설이 모여드는 중심지가 되었다. 용산철도공장으로 불려 오던 이곳은 광복 후 철도청의 관리하에 들어갔고 1996년에는 서울철도차량정비 본부로 개편되면서 한국 철도산업의 발전, 철도 차량 유지 보수의 핵심기지가 되었다. 그러나 뒤 여러 복잡한 과정 속에 수십 년 동안 빈 터로 남아 있다가 2000년대 초에 업무지구로 계획되었었다. 그러나 자금 문제 등 여러 사정으로 무산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이제 와서야 본격적인 새 작업을 착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개발 계획을 보면 이 지역에 지나는 옛 하천을 잘 살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 서울시가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추진하면서 개발계획안에는 ‘물길의 흐름을 이어받아 수공간을 조성한다’는 대목만 보이니 말이다. 잃어버린 만초천의 모습을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만초천. 어떤 하천인가?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의 건국공신 하륜이 한강운하를 파자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임금이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되었다고 적고 있다. 하륜의 주장은 만초천을 확장해 큰 배가 도성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조선시대에도 만초천을 매우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만초천은 옛날에는 청계천과 함께 서울 사람들의 좋은 젖줄이었다. 특히 이 내의 게잡이 불빛이 유명해서 이를 ‘만천해화(蔓川蟹火)’라 했다. 용산팔경(龍山八景)의 하나로도 이 만천해화가 나온다.

용산팔경은 다음과 같다.

청계조운(淸溪朝雲): 청계산의 아침 구름.

관악만하(冠岳晩霞): 관악산의 저녁 안개.

만천해화(蔓川蟹火): 만천의 게잡이 불빛.

동작귀범(銅雀歸帆): 동작나루의 드는 돛배.

율도낙조(栗島落照): 율도(밤섬)의 지는 해.

흑석귀승(黑石貴僧): 흑석동의 돌아오는 중.

노량행인(露梁行人): 노량(노들길)의 길손.

사촌모경(沙村暮景): 사촌(새남터)의 저녁경치.

(여기서의 '만천'과 ‘사촌’은 지금의 서부이촌동 근처)

 

만초천 일대의 땅이름들을 몇 살펴보자.

만초천은 전부터 ‘덩굴풀내’로 불려 오던 하천이다. 그래서 한자 이름도 만초천이다. 만초(蔓草)는 덩굴이 뻗는 풀이다.

이 내는 서울 무악제 밑에서부터 흘러내리는데, 서대문구의 독립문 근처를 거쳐 중림동으로 흐른다. 서부역 앞을 지나 청파로를 따라 원효로 입구를 지나 영산전자상가를 지나 원효대교 밑에서 한강으로 유입한다.

남역역 근처에서의 만초천 물가에는 ‘돌모루(石隅.석우)’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이름은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멀지 않은 곳인 삼각지 부근에는 ‘당고개’라는 고개 이름이 있는데, 여기에 천주교의 당고개성지가 있다.

원효로3가쯤에서는 ‘미나리깡’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미나리가 자라던 곳인데, 만초천 본류에 있던 것이 아니고 하천 둑방 밖 낮은 자역에 길게 형성된 일종의 연못이었다. 겨울이면 여기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이 많았다.

한강 가까이 이르면 ‘새남터’라는, 옛날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을 당했던 성지가 나온다. 한강의 모래사장으로, 풀과 나무를 의미하는 새나무터에서 유래한다. 1801년 주문모, 1846년 김대건 등의 로마 가톨릭 신부들이 순교한 장소라서, 1987년 순교를 기념하는 천주교 성당이 건축되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순교한 성직자 14명 중 11명이 순교한 한국의 대표적 순교 성지다.

만초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는 ‘여울목(灘項.탄항)’이라는 땅이름이 나온다. 옛 지도에는 나오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 외에 만초천 근처에 있는 옛 땅이름으로는 용문동 지역의 ‘짠우물’, ‘단우물’, 원효로3가의 ‘함벽정터’, 원효로4가의 ‘형제우물(兄弟井.형제정)’과 ‘똥골’, 청암동의 ‘벼랑창’과 ‘용머리’ 등이 있다.

 

이제, 만초천과 더불어 서부이촌동, 원효로, 한강로 일대가 천지개벽이 될 것 같다. 약 5년 후에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성되면 큰 빌딩들이 우뚝우뚝 들어서고 친환경의 공원화 도시가 되면서 서울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

 

만초천 1925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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