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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땅이름

원산시 명사십리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작성자배우리|작성시간15.02.26|조회수923 목록 댓글 0

원산시 명사십리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http://mn.kbs.co.kr/mobile/news/mNewsView.do?NEWS_EXEC_RESULT=success&ref=A&SSO_RTN_URL=http%3A%2F%2Fnews.kbs.co.kr%3A80%2Fnews%2FNewsView.do%3FSEARCH_NEWS_CODE%3D3024127%26ref%3DA%26&SEARCH_NEWS_CODE=302412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226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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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3113631

 

150301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원산1



원산 1


국토교통부 국가지명위원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1. 최근 KBS 보도를 보니 북한이 오는 2025년까지 원산-금강산 지구를 국제관광 지구로 조성한다는 총개발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고 하죠? 그래서 타박타박 북녘 기행 이 시간부터는 원산 지역에 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원산 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계획.. 어떤 계획인가요?


KBS가 단독 입수한 북한 국가설계지도국의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총계획'을 보면, 북한은 2단계로 나눠 원산-금강산 관광지구를 역사, 경제, 문화 교류를 위한 4계절 국제관광지구로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북한은 우선 1단계로 오는 2017년까지 원산을 집중 개발하기로 하고, 원산 도심부와 마식령 스키장, 울림폭포, 원산비행장에 호텔과 오락시설, 골프장, 생태공원 등을 조성하기로 했다.

군사공항이었던 원산 갈마공항은 인근으로 이전하고, 하루 4천 명이 이용 가능한 국제공항으로 확대할 계획.

이어 2단계 개발은 2025년까지 금강산 지구에서 진행되며 현대아산이 운영해온 내금강과 외금강, 삼일포-해금강 지구에 통천 지구와 석왕사 지구가 추가되고, 호텔과 골프장, 휴양소, 해양 오락시설 등이 대거 들어선다.

하루짜리부터 3박 4일까지 4가지 유형의 관광 일정도 수립됐다.



2. 게획 중에 울림폭포도 들어 있는데, 어디 있는 폭포인가요?

강원도 천내군(전 문천군 일부) 동흥리에 있는 폭포. 높이 75m로 북한에서 손꼽히는 폭포 중의 하나. 

법동군의 용포 혁명사적지에서 동북쪽으로 25리 가량 떨어져 있다.

장엄한 폭포소리가 온 골 안을 울리며 멀리로 메아리쳐 간다고 하여 울림폭포로 불렀단다.

주변은 높이 솟은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둘려 있고 그 아래에 칼벼랑들이 빙 둘러 막혀 있다. 마식령산줄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이곳에 이르러 아슬하게 솟아 있는 벼랑 중턱에서 지심을 꽝꽝 울리며 쏟아져 내린다.



3. 원산이 금강산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이런 계획이 나온 거겠죠? 지금은 이 도시가 강원도가 되는 건가요?


1945년도의 인구는 12만 3443명. 88개 동, 시청 소재지는 춘일동이었다. 전에는 함경남도, 지금은 강원도에 속해 있고 도에서 가장 큰 도시여서 도청소재지이다. 1946년 9월 북한 관할 북부 강원도로 편입-이관되면서 도 소재지가 되었다. 현재 38개 동과 15개 이로 되어 있다.

강원도 북부의 영흥만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전에는 원산포라 하였다.

서쪽은 법동군, 남쪽은 안변군, 북쪽은 문천시, 동쪽은 동해에 면해 있다.

원산포는 고려 때 원산시 지역에 있던 옛이름이다. 마늘처럼 둥글게 생긴 산을 낀 포구마을이라는 뜻이다. 원산(圓山)이라고도 하였다.

 

 



4. 해안가의 도시니만큼 평야가 많을 것 같은데요. 섬도 있을 거구요.


강원도 북부의 영흥만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북동쪽에는 호도반도(虎島半島)가 길게 뻗어 송전만(松田灣)을 둘러싸고 있고, 남동쪽은 갈마반도(葛麻半島)가 돌출해 덕원만(德源灣)을 형성한다.

북서쪽은 문천군, 남서쪽은 안변군과 접하고 있다.

마식령산맥의 지맥들이 영흥만 쪽으로 점차 낮아지면서 구릉성 산지를 이루어 시루봉[甑峰], 장덕산(長德山), 여왕봉(女王峰) 등의 낮은 산지와 적전천(赤田川)이 있으며, 남쪽은 산기천(山岐川)을 건너 안변평야(安邊平野)로 이어진다.

영흥만 안팎으로 크고 작은 20여 개의 섬이 있다. 대표적인 섬으로 신도(薪島), 송도(松島), 웅도(熊島), 여도(麗島), 황토도(黃土島), 장덕도(長德島) 등이 있는데, 이들은 갈마반도와 더불어 원산항의 자연적인 방파제 구실을 한다.

이에 따라 항내(港內)는 물결이 잔잔하고 수심이 8∼13m에 불과하며, 간만의 차는 1m 이하로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항구이다.

-영흥만

만 안팎으로 크고 작은 20여 개의 섬이 있다. 대표적인 섬으로 신도(薪島), 송도(松島), 웅도(熊島), 여도(麗島), 황토도(黃土島), 장덕도(長德島) 등이 있는데, 이들은 갈마반도와 더불어 원산항의 자연적인 방파제 구실을 한다.

이에 따라 항내(港內)는 물결이 잔잔하고 수심이 8∼13m에 불과하며, 간만의 차는 1m 이하로 우리 나라는 물론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항구이다.

-원산만

함경남도 금야군 호도반도와 강원도 통천군 압룡단 사이에 깊이들어간 만. 해안선의 길이는 200km, 만어귀의 너비는 24.1km, 제일 깊은 곳은 31m이다.

동해안이 침강될 때 함께 이루어졌다. 북부와 남부는 송전만, 답촌만, 풍전만, 석전만, 송전반도, 갈마반도, 합진끝, 압룡단을 비롯한 여러 개의 만, 반도, 끝, 단 등이 있어 해안선의 굴곡이 비교적 복잡하나 중부의 해안선은 단조롭다.

북부에는 비교적 넓은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원산깊은바다골

강원도 원산바다분지의 축을 따라 동해 바다분지까지 뻗어 나간 깊은 바다골짜기. 길이 약 150km 정도이다. 동한만 바깥경계 부근에서부터 남서~북동 방향으로 수심이 2,300~3,200m 구간에 뻗어 있다. 원산깊은바다골은감탕막흐름이 동해중앙바다분지로 흘러 내려간 흔적으로 보고 있다.

 

 

 



5. 예전부터 원산이라고 계속 불러 왔나요?


원산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 되어 천정군(泉井郡) 또는 어을매(於乙買)라고 불렀다. 후에 신라의 판도로 되어 정천군(井泉郡)으로 개칭되었다. 덕원군 지역은 매시달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때는 선산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고려시기에 선산현을 원산으로 개편하였다.

원산이란 이름은 둥글게 생긴 산을 낀 고장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지명으로서 후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둥글 원(圓)자가 소리가 같은 으뜸 원(元)자로 바뀌었다.

고려 태조왕 시기에 고려의 영토로 되어 용주(湧州)로 고쳐 부르다가, 고려 성종시기에 이르러서는 의주(宜州)라 불렀다. 1018년에 진명현(鎭溟縣) 또는 수강(水江)이라고도 하였다. 후에 오랫동안 외족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가, 공민왕 시기에 다시 수복되었다.



6. 원산을 ‘의주’라고도 불렀다면 압록강 유역의 의주와 혼동이 적지 않았겠죠?


조선 초기에는 의천군(宜川郡)으로 개칭되었고 그 후 1437년 덕원군(德源郡)으로 되었으며 1445년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5년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함흥부(咸興府) 덕원군으로 개편되었고 그 이듬해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덕원군으로 되었다.



7. 원산이 시가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가요?

  

1912년에 덕원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를 신설하고 관하에 여러 면을 두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원산부의 대부분 지역이 덕원군에 편입되었고 그 일부와 옛날 일본 거류지, 청나라 거류지 지역 등을 통합, 새로운 원산부를 이루었다.

1943년에 덕원군이 폐지되면서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다. 1945년에 원산시로 개편되었다.

1946년에 원산시가 함경남도에서 강원도로 되고 도청 소재지가 된 이후 행정 구역이 계속 조정되면서 1993년 현재 행정구역은 45동과 14리로 구성되어 있다. /// (글. 배우리)

 

 

 

 

 

150308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원산2


 

원산 2


국토교통부 국가지명위원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1. 원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서 역사가 오랜 도시라고 볼 수 없죠? 어떤 유적들이 있을까요?


중평동에서 1953∼1957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산포지역이 발굴되었다.

용주동에는 조선왕조의 첫 기틀을 다진 곳이라고 해 함경도 관찰사 정민시(鄭民始)가 조정의 명을 받아 건립한, 태조의 증조부 익조의 탄생지에 세운 성허지비각(聖墟之碑閣)이 있다.

성라동과 안변 남대천 하구와 접하는 구릉 위에는 고려 현종 연간에 축성했다는 진명성(鎭溟城) 성터가 있다.

중청동 산정에는 발산(拔山) 봉수대를 비롯해 여러 개의 봉수지가 있으며, 산정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성지와 성곽들이 산맥을 따라 도처에 산재해 있다.

당중동에는 안양사(安養寺) 절터가 있으며, 성라동에는 이성계의 소년시절 승마 단련장이었던 치마대(馳馬臺)가 있다.

안변군과의 경계인 와우동 계곡에는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능인 고릉(古陵)이 있으며, 덕원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는 장림사(長林寺), 무달사(武達寺) 등이 있다.



2. 여기도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북방의 변방 지역인 셈인데, 나라에서 국방에 좀 신경을 썼을 것 같기두 하구요.

   

고려 태조는 건국 후 곧 동북경 방면의 개척에 힘써 고려 영토로 편입했고, 정천군을 용주(湧州)로 개칭하였다. 995년(성종 14) 용주에 방어사를 두었다가 뒤에 의주(宜州)로 개칭했으며, 1108년(예종 3) 이곳에 성을 쌓았다.

1258년(고종 45) 원나라가 영흥 이북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자, 정주 이남, 안변 이북의 땅이 모두 원나라에 몰입되었고,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이 화주 이북의 땅을 수복했을 때 이곳 의주도 수복되었다.

조선 중기인 1445년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4대의 어향(御鄕)이라 해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가토(加藤淸正)가 함경도를 침공했을 때 이곳도 큰 피해를 입었다.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일부인 몽고군이 함경도를 거쳐 철수함으로써 덕원부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3. 원산 항구가 입지가 매우 좋다고 하셨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주변국들이 욕심을 내지 않았을까요?


원래 원산시의 전신인 원산진(元山津)은 영흥만에 위치한 덕원부의 작은 어촌이었다.

러시아 군함이 원산진 앞바다에 정박해 조선 정부에 통상과 거주지를 요구하다가 대원군의 거절로 돌아간 일이 있다.

1878년 4월 일본 군함이 영흥만에 들어와 덕원 연안을 측량했고, 다음 해 일본의 요구로 원산개항예약(元山開港豫約)  7조를 의정하였다. 이에 따라 1880년 7월 정식으로 개항해 일본영사관이 설치되고 일본인이 살기 시작하였다.

1889년 11월에 일어난 원산방곡령사건은 일본의 침략과 횡포에 대한 배일감정이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을사조약 후 원산에 이사청(理事廳)이 설치되고 일본인 거류민단이 조직되면서 일본인 거주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양적으로 팽창하는 일본인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으로 원산학사(元山學舍)가 세워졌다. 8,29 국난 직후에 덕원군을 원산부로 승격-개칭했다가 1914년 3월 행정구역 개편 때 원산부의 대부분이 덕원군으로 복귀하고 일부분이 원산부로 개편되었다.



4. 일제강점기에 와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겠죠?


1914년 8월 경원선이 개통되어 원산항의 교통, 운수에 획기적인 발달을 가져왔으며, 동해안의 풍부한 수산물을 비롯해 농산물, 광산물 등을 쉽게 서울로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1927년 동해안을 따라서 안변∼양양간의 동해북부선, 1928년 함경선, 1941년 원산을 기점으로 동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평원선이 각각 개통됨으로써 관북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원산부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상공업, 수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각지에서 인구가 몰려들어 인구가 급속도로 늘었는데, 특히 일본인이 많이 몰려와 살았다.

1942년 4월 덕원군을 폐하고 그 북부지역을 문천군에, 나머지를 원산부에 편입하였다.

원산은 무역도시로서의 발전은 있었으나 공업계는 부진한 상태였다가 만주사변 후 대륙침략의 전진기지로서 대규모의 공장이 잇달아 들어서게 되었다.

삼일운동 때는 3월 1일 이곳 상시장(上市場)에 기독교인, 천도교인 등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집회 횟수 7회, 집회인수 2,500명, 부상자수 21명, 피검자수 91명이었다.

1929년 1월에는 남상옥(南相沃) 등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원산자유노동조합의 부두노동자 총파업에 각급 학교가 궐기해 시위를 벌이다가 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하였다.

 

 

 



5. 분단 이후 원산이 북한 관할로 들어가고 나서는 동이름들도 변화를 가져왔겠죠?

  

행정구역이 많이 조정되고 일부 이름들이 바뀌었다.

-새로 붙인 동

세길동(덕원동) 등 새 이름이 많이 생기고 일부는 노동자구로 개편했다. 문천노동자구, 성문노동자구, 문평노동지구, 가은노동자구, 가평노동자구, 옥평노동자구, 고암노동자구 등의 노동자구 등이 있었는데, 뒤에 동으로 많이 고쳐 지었다.

전쟁 관련 의 동이름도 많이 나왔다. 전진동(산제동), 승리동, 해방동, 평화동, 개선동(철산일동) 등.

-내원산동

1950년에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갈마리를 신설하였고, 1955년에 원산시 내원산동으로 되었다. 이곳은 안원산이라고 불렸던 지역이다.

1957년에 명사동이 편입되었고, 1961년에 포하동 일부가 흡수되었다. 1993년에 장촌동 일부를 흡수하는 동시에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명사십리동을 신설하였다.

지금은 원산시 45동 14리의 하나이다. 시의 동남쪽 동해의 원산만 기슭의 동. 동쪽은 명사십리동(갈마반도), 동남쪽은 용천리, 서쪽은 갈마동, 남쪽은 복막동, 북쪽은 포하동과 접해 있다.

-장촌동

본래 원산부 현면의 지역으로서 장마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함경남도 원산부 장촌동으로 되었다.

1946년에 원산시 장촌동으로 되었다가 1950년에 원산시 장촌리로 되었다. 1955년에 다시 장촌동으로 되었고, 1961년에 원산시 용교동 일부와 포하동 일부를 흡수하였으며, 1993년에 일부 지역이 포하동과 내원산동에 편입되었다.

 

 

 


 

150315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원산3



원산 3


국토교통부 국가지명위원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1. 원산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는데요. 북한이 원산 지역을 금강산과 함께 집중 개발하려고 한다고 하셨죠? 집중 개발, 왜 하필 이 원산 지역인지?


2011년부터 원산시에서 재개발 사업을 크게 벌였다.

원산은 후계자 김정은의 ‘제2의 고향’이라고 선전해 온 지역인 만큼, 김정은 우상화 작업일 일환일 수 있다. 김정은의 3대 세습과 관련해 김정은이 원산초대소에서 태어났다거나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가 원산으로 이주해 살았다는 소문을 내기도 했는데, 이는 북한이 원산을 그만큼 중요시한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에 원산혁명사적관과 인근의 기념물이 사라지고 건축물이 새로 많이 들어섰다. 원산혁명사적관은 김일성 전 주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장마당도 2003년에 하나만 관찰되던 것이 2009년 서쪽구역에 새 장마당이 더 생겼다.



2. 김정은은 출생 연도도 또 출생지도 정확히 공개되지 않고 있지 않나요? 원산과 무슨 관계라도?

  

김정은은 1982년에서 1984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출생연도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출생지도 아버지 김정일은 백두혈통을 강조하며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했으나, 김정은은 원산 초대소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최근 강원도 항구도시 원산에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하는 등 특구로 지정해 국제적 휴양도시로 개발하는 것도 김정은 출생지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출생지 우상화 작업이 완성되면 생일을 법정 휴무일로 지정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9월에는 4주일째 공개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김정은이 통풍으로 인해 원산에서 요양 중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3. 이 지역의 교통은 어떤가요? 지난 주에는 철도 교통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이 원산이 평양하고도 잘 통하게 되어 있나요?

 

-육상 교통

원산시를 중심으로 평양과 금강산 사이에는 관광-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있고, 함흥, 통천, 고성, 고산 등 인접 시, 군과 연결되는 도로망도 발달해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는 곳도 있다.

원산에서 평양까지는 147km이다.

-해상 교통

원산시 동쪽 바다 기슭 즉 송전만 남쪽에 그 유명한 원산항이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 뻗은 항구를 북항, 그 남쪽의 항구를 남항이라 부른다. 원산항은 갈마반도가 천연의 방파제역할을 하여 물결을 잠재워 주고 수심이 깊으며, 아침저녁으로 수면의 차이가 적어 큰 선박들이 정박하는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지난날 조그마한 화물선과 어선이 드나들 수 있던 자그마한 포구였는데, 광복 후 여러 차례 확장공사를 통하여 현재 동해안의 중요한 무역항구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북한 화물뿐 아니라 대외 수송이 진행되고 있다.

원산~문천~답촌, 원산~통천~고성, 원산~흥남, 원산~신포, 원산~청진, 원산~니이가다(일본) 간 정기항로가 운행되고 있다. 현재 원산에서 만경봉호가 드나들고 있다. 라선시에 있었는데, 2014년 6월에 이곳으로 복귀했다. 

동해안의 중요한 수상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4. ‘원산’ 하면 우선, 군대에서 훈련 때 많이 듣던 ‘원산 폭격’이라는 게 생각나네요. 이 말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거죠?


뒷짐 굽혀 머리박으라는 구령. 또는 구령따라 행하는 동작.

"원산 폭격"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을 가능케 했던 대표적인 정보전의 일환으로 펼쳐진 작전이다. 유엔군이 원산을 통해 상륙할 것이란 거짓 정보를 흘리고, 북한군의 주의가 원산에 몰려 있을 때 인천을 때린 작전.

그런 이유로 폭격 작전의 대표적 이름으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5. 원산이라고 하면 명사십리를 많이들 떠올릴 텐데, 여기가 어떤 곳인가요?


“명사십리에 해당화야 / 꽃이 진다고 설워를 마라 / 잎이 진다고 설워를 마라 / 동삼(冬三) 석달을 꼭 죽었다가 / 명춘 삼월에 또다시 오마.”

원산시 갈마반도(葛麻半島)의 남동쪽 바닷가의 백사장.

바다 기슭을 따라 흰 모래톱이 10리(4km)나 이어지고 있어 명사십리라고 한다.

안변의 남대천(南大川)과 동해의 물결에 깎이고 씻긴 화강암의 알갱이들이 쌓여서 이루어졌다.

일대에는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들이 자라며 특히 해당화가 많다.

명사십리의 돌단부(突端部)는 본디 섬이었는데, 바닷물의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갈마반도를 형성하였다. 원산시와 명사십리 어귀를 잇는 구간에는 현대적인 고층건물이 늘어서고, 부근에는 송도원(松濤園)해수욕장이 있다.



6. 얘기를 듣고 보면 명사십리 참 좋을 것 같은데, 이 명사십리 말고 또 좋은 관광지가 있을지?


원산시는 북한 최대의 관광권인 금강산권에 인접해 있어 국제적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명사십리해수욕장, 송도원유원지, 송도원 국제관광호텔, 송도원 국제소년 야영소가 있다.

명사십리는 북한천연기념물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도원해수욕장 

원산 시가지의 북쪽 약 3㎞ 지점에 영흥만을 동으로 접하고 있다. 물결이 잔잔하고 맑으며 백사장에 아름드리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고, 별장과 해수욕장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여름철이면 원산시내 중등학교 학생들의 수영장으로 이용될 뿐 아니라, 피서객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룬다.

유적으로는 영삼리 속고산에 1771년(영조 47)에 창건한 명적사가 현존하고 있다.

-원산금송(元山錦松) 

원산시 송천동의 천연기념물. 1980년 1월 국가자연보호연맹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1890년경에 약 30년생 되는 것을 옮겨 심은 것이다. 높이는 18m, 밑동둘레는 2m, 가슴둘레는 1.86m, 수관직경은 6.4m이다. 나무의 세력은 좋은 편이다. 줄기가 곧으며 높이 약 1.5m에서부터 가지들이 거의 수평으로 뻗어 있으며 원추형을 이루고 있다.

나무는 동해안의 북부에서 자라는 가장 큰 금송으로서 풍치상으로나 학술적으로 의의가 있다.

-원산동물원 

1962년 5월 18일 중앙동물원 원산분원으로 발족하여 1962년 8월 1일부터 개관하였다. 그 후 중앙동물원에서 분리되어 1968년 7월 1일부터 원산동물원으로 되었다.

이 동물원에는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과 학자들이 김일성에게 올린 선물 동물을 비롯하여 총 190종, 1,3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있다. 70% 정도는 공작새, 앵무류, 꿩, 밀화부리, 원앙, 두루미류 등 아름답고 고운 소리로 우는 새들이며, 보기 좋고 순한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등과 관상적 가치가 있는 물고기들이 있다.

약 70동의 현대적인 동물사와 야생동물의 수집과 길들이기 및 기르기, 질병의 예방치료, 야생동물을 경제발전에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방도, 이로운 동물의 보호와 증식에 대한 연구 사업 진행을 연구실 등이 있다.

원산동물원은 휴양지의 특성에 맞게 북한과 남방의 아름다운 새들을 위주로 하면서 기린, 코끼리, 하마, 약대 등을 비롯한 큰 동물들을 더 많이 기르며 바다를 낀 자연적 특성을 이용하여 수족관을 더 크게 만들어 바다포유류와 바다와 민물의 어류들을 종합적으로 사육할 수 있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동물자원과 그 생태에 대한 연구사업 특히 동물관리운영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강화하여 동물학 지식보급과 교육실습 기관으로서의 사명도보다 원만히 수행하고 있다.



150323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원산4



원산4


국토교통부 국가지명위원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1. 원산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는데요, 원산 지역에서 보이는 특별한 지명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팔배미(팥배미) / 내원산동 동쪽 바닷가 마을. 옛날 원산항 자리에 들어섰다. 원래 원산부 두방리의 지역.

-볼미 / 현동리 동쪽의 마을. 1952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

-바깥말 / 칠봉리 서북쪽 마을. 원산∼평양 간 관광도로 옆에 위치. 마봉 안쪽 마을이라 안마봉이라고도 한다.

-가는골 / 장산동 서쪽의 마을. 본래 원산시에 소속된 리였는데, 1952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

-노동거리 / 명석동 소재지의 동쪽의 거리. 광복 전 원산 노동자 총파업 당시 노동총연합회 지휘부가 있었다.

-장승거리 / 수상리 동쪽의 거리. 지난날 장승을 세웠다 한다.

-구유골(구승곡) / 내원산동 동쪽 골짜기. 조선시대 기마병들이 구유를 걸고 말을 먹였단다.

-피란고개 / 중청동 원산담배공장에서 원산샘물공장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지난날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

-바람난골봉 / 칠봉리 소재지 서남쪽 큰바람난골의 봉우리.

-두도(豆島)  / 장덕섬. 송흥동 동쪽 앞바다 섬. 바닷가에서 장덕섬까지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섬에는 원산항으로 배들을 인도하는 등대가 있다. 콩알처럼 생긴 섬이라 하여 두도라고 한다.



2. 원산에도 행정구역 조정으로 없어진 동들이 있겠죠?


-춘성리 / 원산시 송흥동.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함경남도 원산부 부내면의 성동과 성일동을 병합하여 함경남도 덕원군 부내면에 신설한 리. 고려시대 윤관이 장덕산에 의춘의성을 쌓고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하여 의춘의성에서 ‘춘’자와 ‘성’자를 따서 춘성리라 하였다. 1943년에 문천군 덕원면 춘성리로 되었다가, 1946년에 원산시 춘성리로 되었다. 1961년에 일부 지역을 분리, 봉춘동으로 개편하였고, 1967년에 송흥동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물아리 / 원산시 낙수리 영역에 있던 폐리. 본래 함경남도 원산부 적전면의 지역으로서 적천천 아래쪽의 마을이라 물아래였던 것을 이두식으로 표기하여 무라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적전면의 대통리·신흥리와 병합하여 함경남도 덕원군 적전면 무라리로 되었고, 1946년에 원산시 무라리로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원산시 낙수리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삼월리 / 원산시 세길동.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함경남도 원산부 부내면의 삼대동과 수월동을 병합하여 덕원군 부내면에 신설한 리로서 중심부락에서 강을 세 개 건너야 이를 수 있는 마을이라고 삼월리라 하였다. 1943년에 강원도 문천군 덕원면 삼월리로 되었고,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문천군 덕원리에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3. 원산은 해안이니만큼 섬들도 많을 텐데... 섬에 관련된 지명 설화 같은 것도 있을까요?

 

원산은 항구와 바다에 면해 있어서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그 중 대표적인 <영흥만 연기설화>는 다음과 같다.

태초에 백두산에 살던 호랑이가 굶주리다 못해 마천령 위에서 바라보니 낭림산 산중에는 곰, 이리, 돼지, 말, 노루, 토끼 등 온갖 짐승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군침이 돈 호랑이가 으르릉 하고 개마고원에 앞발을 내딛는 순간 혼비백산한 짐승들은 그만 엉겁결에 동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배고픈 호랑이는 물속도 불사하고 따라 들어갔다. 동물들은 결사적으로 헤엄쳐 달아나는데, 이를 지켜보던 백두산 산신령은 동물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가여워 오른손을 내밀어 호랑이의 꼬리를 움켜잡았다.

호랑이는 꼬리를 잡힌 채 늘어나면서 물속에 영원히 잠겨 버렸는데, 호랑이는 꼬리부분이 잘록하게 빠지다 말아 범섬, 즉 호도(虎島)가 되고, 헤엄 잘 치는 곰은 멀리 도망가 웅도가 되었으며, 말은 여도(麗島)에, 토끼는 모도에 숨고, 큰 돼지와 작은 돼지는 마을 근처로 피난해 육지와는 가장 가까운 대저도(大猪島)와 소저도를 이루었단다.

이와 같이 원산항과 영흥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설화는 지리, 풍토 등 자연의 묘리와 인간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이 밖에도 <용주리전설>, <유석이야기> 등이 전한다.



4. 명사십리에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설워를 마라... 일종의 민요일 텐데 또 다른 민요도 있는지?


대표적인 민요가 <명사십리>다.

술집이 많은 원산에는 역시 ‘먹고 노세’조의 민요가 많았다. 잡가라 해서 꽤나 풍류스러운 민요가 상류사회에서 유행하였다. 현실 도피적이고 남녀 상열적인 노래 하나.

“강초(江草) 일월에 환수생 / 강물만 푸르러도 낭군 생각이라 / 건곤불로 월장재하니 / 적막강산 금(今)백년이라 / 청산만리 일고주하니 / 배를 타고 선유나 할꺼나….”

이곳에서 흥겹게 지내는 명절이 단오와 칠석인데 이 때 즐겨 부르는 노래는 <단오요>와 <칠석요>이다.

술집이 많은 원산에는 역시 ‘먹고 노세’조의 민요가 많았다.

이곳에 일본인 거류민이 살기 시작한 뒤부터 우리의 민요도 차츰 빛을 잃어 갔고 고유한 문화나 생활도 일본 상가풍속으로 바뀌어 갔다.

-단오요 

“오월이라 단옷날은 천중가절 아니냐 / 수양청청 버들숲에 꾀꼬리는 노래하네 / 휘여청청 버들가지 저가지를 툭툭차자 / 휘여청청 버들가지 청실홍실 그네매고 / 임과 나와 올려뛰니 떨어질까 염려로다 / 휘여청청 버들가지 저가지를 툭툭차자…”

-칠석요 

“애야애야 애야 좋네 / 칠석놀이 좀더 좋네”라는 후렴으로 끝나는 연속체의 민요이다. 이 밖에 <어랑타령>이 다른 고장보다 구성지다.

민속놀이로는 단오놀이가 으뜸이다. 기후가 온화하며 물이 맑고 녹음이 싱그러운 이 고장의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삼단 같은 머리채를 드리우고는 그네뛰기를 하며, 남자들은 다른 고장과 같이 씨름을 한다.



5. 원산에서 주목할 만한 시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원산역사박물관 

원산시 명석동의 역사박물관. 1952년 3월 10일에 창설되었다. 원시사회로부터 삼일운동까지의 문화유물을 비롯한 각종 직관자료들이 진열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 및 동명왕릉과 관련한 자료,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보여주는 영역도, 강원도 철령과 판교군에서 나온 쇠말 모형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고구려의 발전된 제철기술과 강대한 군사력을 보여주는 유적유물들을 비롯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으며 수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색이 변하지 않고 있는 고국원왕릉 벽화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와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부분에는 7세기에 건설된 세계에 이름 있는 천문대인 경주첨성대,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명하여 출판사업을 크게 발전시킨 고려 금속활자와 세계최초의 측우기, 거북선 등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의 하나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세계인쇄역사상 손꼽히는 대규모적인 출판인쇄물인 『고려팔만대장경』과 판목을 비롯하여 선조들의 높은 과학기술적 재능을 보여주는 과학적 발명과 과학기구들의 직관자료들이 진열되어 있다.

-원산방송 

원산시의 라디오방송. 강원도방송위원회가 강원도내의 주민들을 위하여 조직 운영하는 지방방송이다.

1946년 1월 1일에 방송을 개시하였다.

원산방송은 첫 전파로 김일성 주석의 1946년 신년사를 중계하였다.

원산방송은 나라에서 강원도에 준 강령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항쟁으로 강원도내의 근로자들을 불러일으키며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수행으로 고무 추동하는 방송선전을 힘있게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강원도내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행사소식들과 경제생활, 과학, 교육, 문화, 보건, 체육분야의 소식들, 교통질서, 공중도덕과 관련한 종목 등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방송종목들을 내보내고 있다.

산하에 각 시, 군 방송을 운영하는 주재기자들과 방송원을 두고 있으며 노농통신원들을 통하여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새롭고 의의있는 소식들을 제때 받아서 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의 흐름 속에서 매일 2회에 걸쳐 제정된 시간에 무선으로 진행한다.



6. 교육 기관들도 꽤 있을 것 같구요.


-교육-문화 

원산은 개항되기 이전까지 덕원군에 소속된 지역이었는데, 덕원에 향교가 생긴 것은 조선 초기로 부사 1명과 교수 1명이 배정되었다. 서당을 거쳐 향교로 모인 청소년들은 주로 사서오경을 배우고 서울의 사학(四學)으로 진출해 과거시험에 대비하였다.1695년(숙종 21)에 용진서원(龍津書院)이 설립되었다.

개항 직후 일본인이 원산으로 많이 진출, 신교육이 일찍부터 활발해졌다. 1926년 원산에는 용동의 제일공립보통학교, 신흥동의 제이공립보통학교가 있었고, 사립학교로는 기독교에서 경영하는 보광중학교(保光中學校)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 및 진성학교(進誠學校), 해성학교(海星學校), 광명학교(光明學校) 등이 있어 사학이 융성했다.

광복 직전에는 중등교육기관으로 일본인과 함께 공부하던 원산간이상업학교가 있었는데 뒤에 원산상업학교로 승격되었고, 원산여자사범학교가 생겼다. 한국여성을 교육하던 명성 높은 교육기관은 루씨여학교가 유일한 중등학교였다. 그리고 일본인만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원산중학교와 원산고등여학교가 있었다.

해성은 기독교 계통이며, 루씨사립여자국민학교와 진성사립여자국민학교는 기독교 계통의 여자만의 국민학교였고, 원산여자사범부속국민학교는 공립의 여자 초등학교였다.

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주종을 이루는데, 덕원에 가톨릭교구와 수도원이 있고 원산시에도 성당과 교회가 있다.

현재의 교육기관으로는 원산농업대학, 동해수산대학, 원산공업대학, 송도원의학대학, 정준택경제대학, 이수덕교원대학, 원산제1, 2사범대학과 공장대학 등 10개의 대학이 있으며, 70여 개의 각급학교가 있다.

시의 중심 광장에는 원산청년회관이 있고 원산경기장이 있다.

-원산공산대학 

원산시의 간부양성기관. 조선노동당이 지방 간부양성기관이다.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실현하며 당의 혁명적대사변을 준비하여 맞이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지방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 및 경제부문 일꾼들을 양성 및 재교육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대학에는 3년제반(주간, 야간), 6개월 재직간부반, 한달강습반 등이 있다. 대학은 1947년 7월 10일에 강원도당학교로 발족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단기 재직간부양성체계를 통하여 초급간부들을 교육교양하였다.

1954년 3월에 강원도인민위원회간부학교와 통합하여 강원도간부학교로 개편되었으며 그 후 2년제양성반을 기본 학제로 하는 정치대학체제를 갖추었다.

강원도간부학교는 1960년 9월에 원산공산대학으로 강화발전되었다. 그리하여 오늘 원산공산대학은 재직간부교양체계와 후보간부양성체계를 정연하게 갖추고 3년제 기본반으로부터 한달강습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제를 가진 지방의 믿음직한 간부양성기관로 그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1976년에 김일성훈장을 수훈하였다.

-원산농업대학 

원산시의 고등교육기관. 북한의 농업부문일꾼들을 양성하고 있다. 1948년 9월 1일에 김일성종합대학농학부로 발족되었다.

그 후 대학에는 김일성동지혁명사상연구실이 갖춰져 있으며 농학부, 농업생물학부, 농업화학학부, 농기계학부, 농업경영학부, 과수학부, 수의축산학부, 잠학부, 수리공학부, 원림 및 경제식물학부, 통신 및 야간학부, 재교육학부 등 10여개의 학부와 수십 개의 전공학과 그리고 박사원, 작물재배연구소, 과수연구소, 채소연구소, 농업기계화연구소 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종합분석실을 비롯한 수십 개의 실험실과 재배실습장, 자동화온실, 축산실습장, 잠업실습장, 농기계실습장 등이 있다. 원산농업대학은 김일성훈장과 국기훈장제1급, 공화국창건20주년영예 칭호, 김일성 주석 표창장, 3대혁명붉은기 칭호를 수훈하였다.

-정춘택원산경제대학 

원산시 세길동의 고등교육기관. 경제관리 일꾼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1960년 9월 1일에 원산경제대학의 이름으로 발족되었다.

발족 당시 대학에는 계획경제학부를 비롯하여 경제부문별 학부들과 경제전문학교교원양성을 위한 계획사범학과, 부기사범학과, 기술학교 교원양성반(1년제)이 있었으며 통신 및 야간교육을 진행하였다.

수십 년간 발전과정을 걸쳐 현재 정준택 원산경제대학은 경제계획화로부터 노력관리, 재정관리, 자재공급, 상업경영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전반적 경제관리일꾼들을 양성하는 종합적 기지로 발전하였다.

대학의 총부지면적은 24,361㎡이다. 1990년 10월 31일 북한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으로 정준택경제대학으로, 그 후 정준택 원산경제대학으로 개칭하였다.

대학 산하에는 계획경제학부, 자재공급 및 노동행정학부를 비롯한 여러 학부들과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수십 개의 강좌와 연구소, 박사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대학에는 도서관, 기숙사, 식당 등 현대적인 봉사기관과 편의시설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대학은 김일성 주석의 표창장과 국기훈장 제1급을 수훈하였다.




7. 이 지역의 산업은 어떤가요?


농경지가 좀 있고 과수원이 많은 편으로,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등이 많이 생산된다. 쌀은 인접한 함흥평야와 안변평야에서 대량으로 산출되어 한때는 관북지방의 관문인 원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많이 수출되었다.

원산항은 <한일수교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개항된 항구로 관북, 관서지방의 수출입무역항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주된 수출입품목은 곡물류, 수산물, 광물, 기계류, 피혁, 인삼, 도자기, 목재 등이다.

원산 앞바다는 한류와 난류의 교차가 심하고 플랑크톤이 풍부해 한때 전국에서 가장 높은 어획량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특히 명태가 손꼽히며, 그 밖에 고등어, 삼치, 방어, 게 등이 유명하다. 공업은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석유공장이 건립되면서 대규모의 조선, 철공, 기계, 식품, 수산물가공업 공장들이 건립되어 활발하다.

시장으로는 1921년 조선총독부 조사에 따르면, 원산부에는 원산수정공설시장, 원산가축시장, 제1어시장, 제2어시장, 상시장, 하시장 등이 있었으며, 주요 거래품목은 농산물, 수산물, 식료품, 잡화, 가축, 공산품 등이었다.

그 뒤 시장의 명칭이 바뀌었으며, 정기 시장으로는 명석동의 신탄(나무)장이 매일 열리고, 양촌동의 양촌장과 가축시장은 5, 10일에 개시되며, 해안통에서 5, 10일에 열리는 해안통장에서는 주로 수산물이 거래된다.

-원산조선소 

원산시의 기업소. 북한 대형 선박건조기지의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광복된 지 몇 해 되지 않은 때에 벌써 200톤짜리 배를 만들었으며 그 후에는 대형선미식 트롤선 오가산호와 가공모선 용남산호 등 여러 가지 배들을 건조하였다. 산하에 소재직장, 선체조립직장, 기계화직장 등 십여 개의 직장이 설치되었다.

1978년에 100톤급 문형기중기와 300톤 유압프레스를 제작하여 설치하였으며, 1988년에는 선박건조에 필요한 여러 가지 규격의 환강 소재를 공급할 수 있는 선재압연기를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1974년과 1977년에 3,750톤급 선미식 트롤선 오가산호와 장덕산호를 건조하였으며, 1978년에는 철근 콘크리트제의어선과 원산~함흥 간 유람선을 건조했다.

1980년에는 1만4천톤급 절임가공 모선 용남산호를 건조하였으며, 두 척의 콘크리트배를 건조하였다. 이 콘크리트배는 철선에 비해 수명이 오래가고 조립속도가 빠르며, 철강재를 비롯한 자재의 절약 효과가 있다고 한다.

1987년에는 5월 20척의 배를 건조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88년 6월에 다시 3,750톤급 선미식 트롤선을 진수시켰다.

이 배의 건조시에는 지상확대식 조립방법으로 선체 토막의 대형화를 실현하고 갑판실과 같은 덩이 큰 구조물들을 지상에서 완전히 조립하여 단번에 선체 위에 들어앉히는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선미식 트롤선의 건조과정에서는 해상과 육상조립 가운데 육상조립 비중을 이전보다 10% 높였다고 하는데 권양기, 닻올리기, 단정올림 설비를 비롯한 갑판설비들과 기관실 구역의 주기관, 보조기관, 압축기, 보일러 등 배의 기본 설비들과 의장품들의 대부분이 이미 육상에서 배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0년에 30량의 화차를 수리했다는 보도도 있다. ///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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