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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09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함흥1
1. 함흥 애기를 하자니까 우선 함흥냉면이 떠오르는데, 함흥냉면... 옛날부터 알아 줘 왔던 음식인가요?
함흥지방 향토음식의 하나인데 회냉면이라고도 부른다.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는 질이 좋은 감자가 많이 산출되어 감자를 소재로 한 향토음식이다.
함흥냉면도 감자녹말을 주원료로 하여 매우 질긴 국수를 만들고, 함흥지방 바닷가에서 잡히는 신선한 가자미로 회를 떠서 양념하여 얹어 먹는다. 평안도의 메밀 물냉면과는 달리 맵게 양념하여 비벼 먹는 냉면.
함경도지방에서는 먼저 가릿국이 음식점에서 팔렸고, 다음에 이 회냉면이 번지기 시작하여 유명하여졌다. 6·25 이후에는 월남민에 의해서 남쪽지방에도 알려졌는데, 함경도지방과는 풍토가 달라 재료에 차이가 나고 있다.
냉면국수에 들어가는 녹말이 감자녹말에서 제주도의 고구마녹말로 바뀌었으며, 회도 가자미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홍어회로 바뀌었다. 본래 북쪽지방은 매운 것을 많이 먹는 식성이 아닌데 이 냉면만은 유독 매운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2. 함흥시에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는데, 이름이 신흥관이던가요?
신흥관(新興館)은 함흥시의 식당으로 예로부터 유명한 함흥냉면의 본산지.
1976년 6월 1일에 현재의 대형건물이 준공되었다. 부지면적은 22,000여㎡이고 건축면적은 7,500여㎡로서 지상 2층과 지하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식사실과 주방칸이 있고 2층에 연회장이 있다.
건물은 크고 작은 합각지붕, 기둥과 난간, 창 등이 한데 어울려 민족적인 정서가 짙고 현대적 미감도 잘 나타내도록 형성되었다.
식사칸에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어서 손님들의 편리를 도모하며 주방설비들도 현대적으로 갖춰져 있다. 신흥관에서는 녹말국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이곳을 찾아오는 근로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3.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함흥시, 함경남도의 도청소재지죠? 이 함경도 지역이 삼국시대엔 고구려 영역이었던가요?
청동기시대 또는 그 이전 시기부터 인류가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계급사회에 들어서면서 남옥저에 속해 있다가 후에 고구려의 판도에 편입되었다.
진흥왕순수비와 마운령순수비 등으로 미루어보아 이 지역은 오랫동안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지난번 나선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아는 이야기지만, 이 함경도 지역이 주로 여진족이 자리잡았던 곳이 아닌가요?
고려왕조가 건립된 이후 고려의 판도로 되었지만 그 후 여진족의 손아귀에 들었다가 1258년에 몽고의 지배하에 들어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 소속되었다.
1356년(공민왕 5년)에 공민왕에 의해 다시 고려의 영토로 수복되었다.
5. 함경도는 함흥과 어느 고을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건가요?
원래는 영안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이다.
1509년(종종 4년)에 영안도를 함경도로 개칭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때 당시 전국을 8개 도로 개편하면서 함흥과 경성의 첫 글자들을 따서 함경도라고 하였다.
1895년에는 분리되어 경성부와 함흥부, 갑산부로 되었다가, 1896년에 함경북도(경성부)와 함경남도(함흥부)로 되었다.
1416년(태종 16년)에 영길도를 도내의 큰 고을인 함흥과 길주의 첫 자를 따서 함길도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영흥부의 급을 낮추어 화주목으로 하고 함주를 승격시켜 함흥부로 하면서 함흥과 길주의 첫 자들을 따서 함길도라고 하였다.
1470년에 영안도로 된 것인데, 이시애 농민전쟁 후 길주와 함흥의 급수를 한 급 낮추고, 도 관찰사도 영흥으로 옮기면서 도내의 큰 고을인 영흥(오늘날 금야군)과 안변의 첫 자를 따서 영안도라 한 것이다.
6. 이 지역에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것을 보면 신라의 영토가 된 적도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요?
함흥시 지역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있다가 신라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황초령진흥왕순수비(黃草嶺眞興王巡狩碑)
함흥시 흥남구역 소나무동의 비. 북한산순수비와 함께 4대 진흥왕순수비의 하나. 신라 진흥왕이 568년 확장된 나라의 영역을 순시한 후 그것을 기념해 세운 비이다. 진흥왕이 순시할 때의 사실이 적혀 있다. 사각받침돌 위에 비체를 세웠다.
신라 사람들의 통일의지가 간직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본래 영광군 황초령에 있던 것을 함흥시 흥남구역 소나무동에 있는 함흥본궁으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마운령진흥왕순수비(磨雲嶺眞興王巡狩碑)
함흥시 흥남구역 소나무동의 비. 황초령비, 창녕척경비, 568년 신라 진흥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국경지대를 순시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 한다.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리를 올렸었다. 원래 이원군 마운령에 있던 것을 현재 함흥시 흥남구역 소나무동에 있는 함흥본궁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141116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함흥2
1. 함경남도가 북한에서는 꽤 넓은 지역인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많이 좁아진 것 같애요
북쪽의 삼수갑산의 개마고원 지역이 대부분 양강도로 분리되어 나갔고, 남쪽으로는 원산과 안변 지역이 강원도 들어가 영역이 상당히 좁아졌다.
1954년 10월 행정구역 개편시 함경남도의 혜산군, 보천군, 운흥군, 갑산군, 삼수군, 신파군, 풍산군, 부전군 등 19개 군과 함경북도의 백암군과 무산군의 일부, 자강도 후창군의 일부지역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2. 통일신라 때까지 함경도 지역이 어떤 곳이었나 하는 것은 지난 시간에 들어 대충 알겠는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또 어떻게 변해 왔는지?
발해 개국에 이르러 발해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소속되었다.
발해가 패망한 뒤 함흥시 지역은 오랫동안 여진족에 예속되어 있었다.
1107년(예종 2년)에 고려의 영역으로 되었고 그 후에 함주라 칭하였다. 13세기 중엽 몽고의 손아귀에서는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 속하였다.
1356년(공민왕 5년)에 쌍성총관부가 수복됨에 따라 고려의 영토로 되었고 1369년에 함주목으로 격상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서 1416년(태종 16년)에 함주도독부와 덕주를 병합하여 함길도 함흥부로 되었다. 1470년(성종 원년) 함길도가 영안도로 개칭되면서 함흥군으로 강등되고 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홍원군을 신설하였다가 1509년(중종 4년) 영안도가 다시 함길도로 됨에 따라 함흥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전국 8도제를 23부제로 개편하면서 함흥부 함흥군으로 되어 주남사(州南社), 덕산사(德山社), 퇴조사(退潮社) 등 24개 사(社)를 관할하다가 1896년(고종 33년) 전국 23부제를 13도제로 개편하면서 함경남도 함흥군으로 되었고, 주남사를 주남면으로, 덕산사를 덕산면으로, 퇴조사, ․원천사, ․보청사는 홍원군에 편입시키고 연포면(連浦面)이 군에 편입되어 30개 면을 관할하였다.
3. 그렇다면 함흥군이 함흥시로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가요?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주남면을 함흥면으로, 하는 등 개편을 단행하고 20개 면을 관할하였다.
1930년에 함경남도 함흥부로 승격하면서 함흥면의 여러 리를 함주군에 편입하였으며, 흥남면과 운전면 일부로 흥남읍(興南邑)을 신설하였다.
1933년에 하서리를 분리하여 황금정 일정목․, 황금정 이정목으로, 하는 등 리를 정(町)으로 하면서 구분에 따라 1정목, 2정목 등의 이름을 넣었다.
1939년과 1943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38개 구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함주군 일부를 편입, 38개 구 2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함주군 일부 리들이 편입되어 38개 구 28개 리를 관할하였다.
4. KBS 드라마를 보면 함흥이 이성계가 본궁인 걸로 나오던데, 이성계의 고향이 함흥이 맞나요?
함흥본궁 / 함흥시 흥남구역 소나무동의 조선시대의 건물.
조선 태조인 이성계가 자기 조상들이 살던 집터에 새로 건설한 건물이다.
이성계가 왕으로 되기 전과 왕을 그만 둔 다음의 일정한 기간 살던 살림집터에 세운 건물이다.
본래의 건물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왜적에 의하여 불타버리고 지금의 건물은 1610년에 다시 지은 것을 여러 차례 보수하고 17세기 말에 다시 지은 것이다. 지난 한국전쟁 때 폭격에 의하여 일부 부속건물이 불에 타고 파괴되었는데, 전후에 원상대로 복구되었다.
이성계는 여기서 태조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을 죽여버리거나 감금하곤 하였는데 함흥차사란 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이곳에 신라 진흥왕 황초령순수비와 마운령순수비가 보존되어 있다.
함흥본궁은 정전(중심건물), 이안전, 풍패루, 안삼문과 바깥사문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졌다.
함흥본궁은 살림집이면서도 그 구조와 양식이 매우 화려하다. 특히 나지막한 소란반자에 비단무늬를 장식한 내부단청과 앞툇마루, 앞툇마루에 둘려져 있는 난간들은 고려 말, 조선 초의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건물이 우수할 뿐 아니라 정원구성이 특이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원에는 오랜 세월 자란 잣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정전 앞에 있는 북한에 단 한 그루밖에 없는 300여 년이나 되는 반송(가지를 아래로 드리우는 소나무의 일종)은 정전의 운치를 한층 돋구어 준다.
함흥본궁은 조선시대의 살림집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서 자료로 될 뿐 아니라 고려시대의 건축구조와 양식을 계승한 조선시대의 건축술과 정원의 구성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5. 함흥 건물 말고는 이성게와 관련된 유적, 또 어떤 것이 있나요?
귀주사터(歸州寺~)
함흥시 금실동의 서남쪽 절골의 절터.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가 임금으로 되기 전에 글을 읽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본래 정수사(淨水寺)라 하던 것을 1401년에 귀주사라 개칭하였다.
1878년에 화재로 소각되었던 것을 1880년에 새로 지었다. 현재 그 터만 남아 있다.
141123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함흥3
1. 북한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를 평양시, 나선시, 개성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함흥시는 어느 정도의 시로 생각할까요?
1953년에는 25개 동 16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1954년에는 25개 동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55년에는 34개 동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60년에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흥남시 퇴조군 전체와 함주군 일부, 오로군 일부를 병합하여 성천구역(城川區域), 반룡구역(盤龍區域), 회상구역(會上區域), 덕산구역(德山區域), 사포구역(沙浦區域), 본궁구역(本宮區域), 용성구역(龍城區域), 흥남구역(興南區域), 퇴조구역(退潮區域) 등 9개 구역으로 개편하였다.
직할시였던 함흥시는 1970년에 함경남도 관하의 일반시로 강등한다. 그리고 덕산구역과 퇴조구역을 분리하여 덕산군과 퇴조군을 신설하였다.
이후 1995년까지 관할 구역과 구역 이름의 변경이 있었고, 1995년에 흥덕구역(興德區域)을 신설하였다.
2001년 8월에 흥남구역, 흥덕구역, 해안구역 전체와 사포구역의 일부를 분리하여 흥남시를 신설하였다.
2002년 현재 행정구역은 1구(내일노동자구), 56동이다.
2. 어떻든 함경남도의 도청소재지이고, 관북지방의 중요한 시. 교통 시설은 잘 돼 있나요?
함흥시는 북한 동해안 북부지역과 북부내륙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 지역에는 평라선과 신흥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함흥역, 서함흥역, 가담역, 부민역, 함흥조차장 등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원산~우암 간 1급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함흥~흥남, 함흥~낙원, 함흥~용림, 함흥~부전, 함흥~대흥 간 2급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시내교통으로는 회양동~덕성동, 회양동~은덕동(흥남) 간에는 무궤도전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회양동~덕산동, 용성동~은덕동(흥남), 용성동~흥남 간에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3. 함흥시니까 함흥역이라는 역도 있겠죠?
함흥역은 평라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기술역이다.
열차의 기술작업과 여객취급을 기본으로 한다.
1974년 4월 15일에 새 역사가 준공되었다.
역사는 함흥시 중심지역인 역전거리의 축선상에 배치되었다. 역사는 지상 4층과 지하 1층으로 형성되었다. 정면은 축대칭이며 4층 부분은 길이를 줄여 중심부분을 높이 하였다.
역사 중심 윗부분에는 대형 4각벽시계를 설치하였다. 역사 안에는 대기실들과 상점, 도서실, 진료소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편의봉사시설들이 있다.
함흥역에서는 평양과 원산 방면으로부터 혜산과 청진, 나선 방면으로 오가는 모든 여객열차들을 맞고 떠나보내며 그 밖의 구간별 여객열차와 교외여객 열차들을 취급한다.
함흥역은 여러 개의 역 구내선과 전용선을 가지고 있다. 함흥역은 1968년 9월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20주년기념' 칭호를 받았다.
4. 함경도라고 하면 보통 우리의 강원도처럼 산지가 많은 곳으로 모두들 알고 있는데, 함흥 지역도 그렇게 산이 많은가요?
북쪽으로 산지가 있으나 함흥지역은 시 서쪽으로 성천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해안을 끼고 있어서 벌방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 벌방 지역을 함흥벌방(함흥평야)이라 한다.
함흥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함경남도의 중부 함흥만을 끼고 함흥시와 함주군, 정평군 해안지대에 펼쳐진 벌이다.
성천강 하류에 펼쳐져 있는 충적평야를 기본으로 하고 정평 남쪽의 언덕 벌과 성천강 어귀로부터 금진강 어귀에 이르는 바닷가벌로 이루어졌다. 함주백리벌이라고도 한다.
5. 바닷가별로 이루어졌다고 하셨는데, 해수욕장도 있겠군요. 이곳 바다, 어떤 모습인지 소개해 주시죠?
함흥만은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구역의 남쪽 외양도단과 금야군의 북동쪽 백안단 사이의 만.
함흥시, 함주군, 정평군의 바닷가를 포괄한다. 가장 깊은 곳은 32m이다.
만 안에는 화도를 비롯한 작은 섬들이 있으며 해안선의 굴곡은 심하지 않다. 또한 물결이 잔잔하고 깊지 않으며 바다 기슭에는 바위들과 섬들이 있다.
이곳은 좋은 자연어장과 양식장으로 되고 있다.
만에는 흥남항이 있고 북쪽에는 해수욕장이 있다.
명태, 청어, 대구, 꽁치, 낙지 등 수산자원이 풍부하며 다시마, 미역, 조개류 등을 양식하고 있다.
만으로 성천강과 금진강이 흘러들며 연안의 광포에서는 오리들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그 연안에 동해안에서 이름난 함주벌이 전개되어 있다.
6. 함흥 지역 북쪽은 산지라고 하셨죠? 이 산지에는 어떤 산들이 솟아 있나요?
·동흥산(용산)
함흥시 남서쪽 산. 해발 319m.
생김새가 용이 서리고 있는 듯하다고 용산 또는 반룡산이라고 불렸는데, 1977년에 북한 동부의 번영하는 도시 함흥에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동흥산으로 개칭하였다.
부전령산줄기의 금패령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의 남부에 위치해 있다. 남서쪽 기슭으로는 성천강이, 동쪽 기슭으로는 호련천이 흐르고 있다.
산마루에 오르면 함흥시의 시경과 무연한 함흥벌을 부감할 수 있다.
동흥산공원이 있다.
·동흥산공원
함흥시 시경과 함주벌을 비롯한 농장벌 및 성천강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정각, 휴식시설, 야외극장, 동물원, 유희장 등이 설치되어 있고 인공 폭포와 못, 덩굴덕대들이 조성되어 있다.
300년 이상 자란 동흥산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고구려시기의 함흥성터와 구천각, 조선시대 건물 함흥선화당, 제월루 등 유적들이 있다. 함흥 구천각에서 산릉선을 따라 내려오면 4각정, 8각정, 동흥산정 등 정각들이 있다.
·함관령
함흥시의 동북쪽 홍원군과의 경계. 해발 462m. 예로부터 북동쪽에서 함흥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는 뜻에서 함관령이라 하였다. 함관령산줄기의 중부에 솟아 있다.
절벽이 많아 험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함흥~홍원 간 2급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가칠봉(加七峯)
함흥시 흥남구역의 경계. 해발 378m. 함관령산줄기의 남단.
예로부터 들에서 살던 일곱 마리의 날새가 날아드는 산이라고 가칠봉이라 하였다.
신생대 마이오세 이후 지각의 융기운동에 의하여 형성된 산인데, 북쪽은 완경사로, 남쪽은 비교적 급한 경사면으로 되어 있으며 남쪽 경사면에는 강한 침식작용을 받아서 형성된 골짜기들이 널려 있다.
산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요 수종을 이루고 있으며 머루, 다래, 돌배, 도라지, 송이버섯, 싸리버섯 등 산중부원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다.
·천주봉(天柱峯)
함흥시 흥남구역 새마을리와 낙원군 장흥리의 경계. 해발 561m. 함관령산줄기의 남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기둥모양의 산이라고 천주봉이라 하였다.
있으며 남쪽 경사면에는 장흥천상류의 침식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깊은 골짜기들이 있다.
여울과 폭포, 자연동굴, 암석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산의 자연풍치를 한층 돋구고 있다.
산봉우리에 오르면 낙원군 앞 바다와 함흥시가를 볼 수 있다.
기슭에는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피나무, 음나무, 박달나무가 분포되어 있다. 산에는 가축들의 방목지가 조성되어 있다.
141130 KBS1 통일로 가는 길 타박타박 북녘 기행
함흥4
1. 오늘은 함흥의 지명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 볼 텐데요, 우선 함흥의 지명부터... 함흥은 원래부터 그렇게 불러 온 지명이 아니죠?
<고려사>의 기재에 의하면 고려 때는 이 지역을 함주(1108년, 예종 3년) 또는 함주목(1369년, 공민왕 18년)이라고 했고, 함평(咸平), 함산(咸山)이라고도 하였다. 한때는 갈라전(曷懶甸), 합란부(哈蘭府)라고도 하다가 1416년에 부로 승격하면서 함주(咸州)의 '함'자에 흥하는 고장으로 되라는 뜻에서 '흥'자를 따서 함흥부라 하였다.
큰 평야를 끼고 있는 고장이라고 함평이라 한 것이 고려 때인데, '함'은 '크다/큰'의 고어인 '한/간'을 비슷한 음의 한자로 적은 것이고, '평'은 '평야'를 나타낸 것이다.
고장의 동부와 동북부에 반룡산(盤龍山)(현 동흥산)과 백운산, 천불산 등이 있어 '산'자를 따 함산이라고도 했다.
2. 북한 도시 지명들에는 순 한글 지명이 많은 것 같던데 함흥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세거리동
함흥시의 1구 56동 14리의 하나. 시의 서쪽. 1977년에 함흥시 회상구역 치마삼동을 회상구역, 동흥산구역, 성천구역 등 세 구역으로 분기되는 거리에 있는 동이라고 세거리동이라 개칭하였다. 함흥화학공업대학이 있다.
·금빛동
흥남시 1구 43동 5리의 하나. 시의 서쪽. 1977년에 함흥시 용성구역 구룡일동을 흥남제련소가 있으므로 금빛동이라 개칭하였다. 1990년에 해안구역 금빛동으로 되었다가 2001년 8월 흥남시 금빛동으로 개편되었다.
·은빛동
시의 서남쪽. 1977년에 함흥시 용성구역 구룡이동이 은빛처럼 눈부시게 변화-발전되었다는 뜻에서 은빛동이라 개칭하였다.
·흰실동
시의 서쪽. 1977년에 함흥시 사포구역 용흥동을 흰 실을 생산하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건설된 곳이라고 흰실동이라 개칭하였다.
·소나무동
시의 서쪽. 1977년에 사포구역 궁서동을 함흥반송이 있는 지역이라고 소나무동이라 개칭하였다. 1996년에 일부 지역이 수변동에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흥남시 소나무동으로 개편되었다.
·연못동
시의 서남쪽. 1977년에 사포구역 본궁이동을 지난날 연못이 있던 마을이라고 연못동이라 개칭하였다. 1995년에 흥덕구역 연못동으로 개편되었다가, 2001년 8월에 흥남시 연못동으로 되었다.
·샘물동
시의 서남쪽. 1977년에 사포구역 본궁삼동을 좋은 샘이 있다 하여 샘물동이라 개칭하였다. 1995년에 흥덕구역 샘물동으로 개편되었다가, 2001년 8월에 흥남시 샘물동으로 되었다.
3. 정부 배려로 좋은 동이 되었다는 뜻으로 붙인 지명들도 있는지?
·새별동
함흥시의 서쪽. 1977년에 반룡구역이 동흥산구역으로 되면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투쟁한 곳이라고 용마동을 새별동으로 개칭하였다. 영광중학교와 사적지로 보존하고 있는 함흥형무소가 있다.
·영광동
흥남시 1구 43동 5리의 하나. 흥남시의 서남쪽. 1977년에 영호동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이곳을 현지지도 할 때 이곳에 영광을 지녔던 공장이 있다 하여 영광동으로 개칭하였다.
·은덕동
시의 서쪽. 1977년에 사포구역 본궁일동을 이곳에 비날론공장과 화학공장을 건설해 준 정부의 은덕이 깃든 동이라고 은덕동이라 개칭하였다.
·새마을리
시의 동쪽. 정부의 배려로 외진 마을이 몰라보게 변모되어 주민들이 행복하게 사는 고장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1977년에 능동리를 새마을리라고 개칭하였다. 북부에 함관령산줄기가 뻗어 있으며 낙원군과의 경계에 천주봉(561m)이 솟아 있다. 새마을협동농장, 새마을피복공장 등이 있다.
남쪽으로 평라선이 통과하고 있고 마전리~함흥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도 소재지인 함흥까지는 약 13km.
4. 함흥시가 작지 않은 도시이고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인데, 그런 만큼 교육기관이나 행정기관 같은 것도 많겠죠?
·함흥수리동력대학(咸興水利動力大學)
수리 및 동력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의 육성 대학. 1959년 9월 건설건재대학(당시 건설대학)의 수력건설학부와 원산농업대학의 관개학부가 분리 통합되어 평煐嗤?淪隙막?창립되었다. 1961년 함흥시로 옮기면서 함흥동력대학과 병합하여 함흥수리대학으로 되었고 1990년 10월 수리동력대학으로 되었다가 함흥수리동력대학으로 되었다.
현대과학기술로 무장한 수많은 과학자, 기술자들을 육성해 내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감사문, 당중앙위원회 축하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함흥의학대학(咸興醫學大學)
함흥시 이화동. 보건간부양성기지로 되어 있다. 함흥의학전문학교를 개편하여 1946년 10월 15일에 함흥의과대학으로 창립 되었으며, 1960년 1월 1일 함흥의학대학으로 개편되었다.
대학졸업생들은 예방을 치료에 확고히 앞세우면서 신의학과 한방의학을 배합하여 함경남도 내의 주민들에 대한 의료봉사사업을 원만히 담당 수행, 1967년 11월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와 북한 내각의 공동명의로 된 표창장과 축기를 받았고, 1971년 3월 '천리마대학' 칭호를 받았다. 대학창립25돌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북한 내각의 공동명의로 된 축하문과 '국기훈장제1급'을, 대학창립30돌에는 '김일성훈장'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북한 정부의 공동명의로 된 축하문을, 대학창립40돌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축하문을 받았다.
·함흥화학공업대학(咸興化學工業大學)
함흥시 세거리동. 화학공업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을 육성하는 종합적 성격을 띤 기술대학.
1947년 9월 15일 북한에서 첫 공업대학으로 창립되었다.
풍부한 과학기술지식을 소유한 화학공업부문의 유능한 기술인재로 육성하는 것이 사명.
김책공업종합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함흥약학대학이 창립될 때 여기에 해당한 학과들을 넘겨주고 화학공업부문의 기술공학학과만을 가진 화학공업대학으로 개편되었다. 그들은 비료공장을 비롯한 모든 화학공장들과 기업소들을 움직이고 있고 경제를 현대화, 과학화하는 사업에 적극 이바지한다. 졸업생들은 과학 및 교육기관, 국가경제기관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현대적 실험기구와 설비, 교육기재, 연구수단들이 갖추어져 있다.
창립30돌에 즈음하여 영예의 '김일성훈장'(1977년)을, 창립25돌, 30돌, 40돌 및 50돌에 즈음하여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의 축하문을 받았으며 '국기훈장제1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20주년대학' 칭호를 받았다.
·함흥제1교원대학(咸興第一敎員大學)
함흥시 덕성동.
1968년 9월 함흥교양원대학으로 창설, 1972년 교원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1974년 7월 함흥제1교원대학으로 되었다. 그 후 1990년 10월 항일투사 최희숙대학으로, 1997년 2월 최희숙함흥제1교원대학으로 개칭하였다. 대학에는 소학교교원을 양성하는 교원학과와 체육학과, 유치원교양원을 양성하는 교양원학과와 체육무용학과가 있다.
·함흥제2교원대학(咸興第二敎員大學)
함경남도 내의 소학교 교원을 양성하고 있다. 대학은 북한에서 전반적 11년제 의무교육이 실시되는 것과 관련하여 늘어나는 교원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1972년 9월에 창설되었다. 3년제 단과대학으로서 산하에 교원학과, 체육학과, 통신학과를 비롯한 여러 학부와 재교육반들이 설치되어 있다.
5. 문화예술 기관으로는 또 어떤 것이....?
·함흥방송
함흥시 지역방송기관. 함경남도 방송위원회가 함경남도내의 주민들을 위해 조직 운영하는 지방방송.
1945년 10월 17일에 개시되었다. 함경남도내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행사소식들과 경제생활, 과학, 교육, 문화, 보건, 체육 분야의 소식들, 교통질서, 공중도덕과 관련한 방송기사 등 주민들의 교양에 필요한 내용들을 내보낸다.
산하에 각 시, 군 방송을 운영하는 주재기자들과 방송원을 두고 있으며 노농통신원들을 통하여 현실 속에서 채집되는 새롭고 의의 있는 소식들을 수시로 받아서 방송하고 있다. '함흥방송'은 '조선중앙방송'의 흐름속에서 매일 2회에 걸쳐 제정된 시간에 무선으로 진행한다. '함흥방송'은 방송개시30돌에 즈음하여 '국기훈장제1급'을 받았다.
·함흥대극장
함흥시 은정동. 1984년 4월에 준공되었다. 연습실, 녹음실, 공연준비실, 각종 기술실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800여 개의 방들이 있다. 1층부터 2층까지 관통된 중앙현관홀이 있다. 회전무대와 미끄럼무대, 승강무대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무대가 있으며 이 무대들은 원격조종하도록 되었다.
회전식물구슬대형무리등과 분수를 비롯한 실내장식들이 조형예술적으로 잘 결합되어 있다. 또한 환기조건, 난방조건, 음향조건 등이 현대설비들로 원만히 갖추어져 있다.
함흥대극장은 거리형성 조건에 맞게 앞뒤를 독특한 부채형으로 넓혀주고 정면은 반원형주랑식으로 처리하면서 측면은 덧기둥에 처마식으로 하였다. 건물의 크기를 조형적으로 변화를 주어 주변의 풍치공간과 잘 어울리도록 하였다. 함흥대극장은 건축형식이 독특하면서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처리되었다.
·함흥역사박물관
1947년 10월에 처음으로 개관한 후 역사박물관으로 정식 발족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1948년에 국립함흥박물관(1960년에 함흥역사박물관으로 됨)이 창설되었다. 오늘 함흥역사박물관은 지방박물관으로서의 특색을 가지고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주의식을 높여주는 교육문화기관으로 되었다.
특히 고구려인들의 강의성과 전투기상이 반영된 벽화가 있는 고구려벽화무덤,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쓴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조선시대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등 인류문화 보물고에 기여한 문화유물들과 직관자료들은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 증거물로 된다.
·함흥의학대학병원(咸興醫學大學病院)
도내 근로자들의 예방치료사업을 담당수행하며 함흥의학대학 학생들의 임상실습기지가 되는 도 중앙병원이다.
도내의 보건일꾼들의 임상재교육기지로, 조선의학과학원의 임상연구기지로도 되고 있다. 1946년 10월 15일 함흥의학대학부속병원으로 발족되었다.
196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20주년병원' 칭호를, 1972년 4월 15일에는 '김일성훈장'을 수훈하였다.
·함흥경기장
함흥시 금사동의 종합경기장. 광복 전에 야구장으로 발족되었다. 광복 후에 달리기를 비롯한 축구, 농구, 배구, 국방체육, 민족체육 종목들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대폭 확장하였다. 1961년 5월 비날론공장 준공식 경축행사를 앞두고 주석단과 휴게실, 관람석을 비롯한 경기장의 내부와 외부를 개건 확장하였다. 1973년 5월 20일부터는 대규모의 종합경기장으로 건설하는 사업에 착공하여 1975년 7월 30일에 완공하였다.
·함흥염화비닐신발공장
함흥시의 기업소. 함흥시 경공업부문에서 비중 있는 업체이다. 5개 년 계획기간에 발족되었다. 전반 생산공정이 기계화, 자동화되어 있다. 주로 비닐신발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밖에 질 좋고 맵시 있는 가죽신발, 천신 등 여러 가지 신발을 철별, 성별, 나이별, 호수별, 색깔별로 생산하고 있다.
·흥남제련소
함흥시 흥남구역 금빛동. 조선의 대형 유색 금속 제련소의 하나.
1930년에 설립된 흥남제련소를 광복 후에 개건 확장하였다. 한국전쟁 시기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되었던 것을 전후 복구시기에 다시 복구건설을 진행하여 1955년 가을부터 조업을 시작하였다.
현재 니켈, 동, 납, 아연 등 유색금속을 생산하고 있다.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咸興榮譽軍人樹脂日用品工場)
함흥시 회상삼동. 합성수지를 주원료로 하여 경제 여러 부문과 생활에 필요한 수지일용품을 생산한다. 1953년 5월 25일에 창립되었다. 전시환경에서 생활필수품에 대한 수요를 보장하려 함흥시내의 15명의 영예군인들은 함흥영예군인철제생산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처음에는 철제일용품을 생산하였다. 함흥지구에 대화학공업기지가 창설되면서 1961년 5월부터 공장의 영예군인들은 자력갱생정신으로 수지일용품생산기지를 갖추고 품종을 늘리면서 생산을 정상화해 나갔다.
공장은 '김일성훈장' (1973년), 김일성 주석의 '표창장' (네차례)과 김정일 위원장의 감사문(두차례), '2중3대혁명붉은기공장'칭호(1988년), '국기훈장제1급' (1980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20주년기념공장' 칭호(1968년), '조선인민군창건20주년기념공장' 칭호(1968년)를 받았다.
6. 우리가 함흥을 간다고 하면 어떤 유적지를 보고 오는 것이 좋을지?
·함흥본궁
함흥시 흥남구역 소나무동. 조선시대의 건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기 조상들이 살던 집터에 새로 건설한 건물이며 왕으로 되기 전과 왕을 그만둔 다음의 일정한 기간 살던 살림집이다.
이성계는 여기서 태조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을 죽이거나 감금하곤 하였는데 함흥차사란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함흥본궁은 정전(중심건물), 이안전, 풍패루, 안삼문과 바깥사문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졌다.
본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현 건물은 1610년에 다시 지은 것을 수차례 보수하고 17세기 말에 다시 지은 것이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일부 부속건물이 불에 타고 파괴되었는데, 전후에 원상대로 복구되었다.
건물이 우수하고 정원 구성이 특이하다. 조선시대의 살림집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 자료가 되고, 고려시대의 건축구조와 양식을 계승한 조선시대의 건축술과 정원의 구성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현재 이곳에 신라 진흥왕 황초령순수비와 마운령순수비가 보존되어 있다.
·함흥반송
함흥본궁 정원에는 오랜 세월 자란 잣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들이 자라는데, 정전 앞에 있는 북한에 단 한 그루밖에 없는 반송(가지를 아래로 드리우는 소나무 일종)은 정전의 운치를 한층 돋구어준다.
모양이 기묘하여 식물학적 의의가 커 1980년에 국가자연보호연맹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된다.
함흥반송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고 기묘하며 450여 년 자란 나무이다.
·귀주사터(歸州寺~)
함경남도 함흥시 금실동의 서남쪽 절골의 절터.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가 임금으로 되기 전에 글을 읽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본래 정수사(淨水寺)라 하던 것을 1401년에 귀주사라 개칭하였다. 1878년에 화재로 소각되었던 것을 1880년에 새로 지었다. 현재 그 터만 남아 있다.
·함흥선화당(咸興宣化堂)
함흥시 옛 건물. 조선시대에 함경도 관찰사(감사)가 행정사무를 보던 지방관청(감영)의 기본건물이다. 조정에서는 지방에 대한 통치 실현을 위해 각 도에 관찰사의 행정기관인 감영을, 그 아래에는 원(부윤, 목사, 군수, 현령)들의 행정기관인 아사를 설치하였다. 함흥은 국방상 중요한 고장이었기에 역대 조정에서 중요시하였다.
고려 조정에서는 1108년에 여기에 함주대도호부를 설치하였고 그 후 도호부를 폐지하였다가, 1369년에 함주목으로 급을 높였다. 1416년에 종전의 영길도를 함길도로 고치면서 도 소재지를 영흥(금야)으로부터 함흥으로 옮겼으며 그때 관찰사 본영인 감영건물들을 지었다.
지금은 1710년에 크게 보수하고 1764년에 다시 세운 선화당과 그 부속건물인 징청각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 관청건물의 건축양식과 그 규모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유산이다.
·함흥성
함흥시 동흥산의 옛 성터. 1108년에 축성. 조선시대 함흥부 읍성. 동흥산을 배경으로 산과 벌에 걸쳐 쌓은 평산성. 고려시대 북관을 개척하고 설치한 9개 성의 하나. 그때는 함주성이라고 불렀고 여기에 함주대도독부를 두었다.
성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이며 산지대의 성벽은 외겹, 평지대에서는 겹으로 쌓았다. 성문은 지형조건과 교통조건을 고려, 사방의 적당한 위치에 배치하였다. 동문은 패동문, 서문은 풍서문, 남문은 진남문, 북문은 진북문이라 하고 문마다 다락이 있었다.
성 안에는 병영, 무기고, 식량창고가 있었다. 성 안팎이 한눈에 안겨오는 가장 높은 곳에 북장대가 있었고 북장대에는 북상루가 세워졌다. 북상루터에 18세기 초엽에 옮겨 세운 구천각이 있다. 함흥성은 고려시대에는 여진족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조선시대에는 왜적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중요한 요새로 되었다.
·함흥성구천각(咸興城九天閣)
함흥시 옛 누정. 함흥성의 북장대터에 세운 누정이다. 본래의 구천각은 북상루 아래 30~40m 떨어져 있었다.
구천각이란 함흥성구천각을 거점으로 하여 실시된 토지측량과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3년에 북상루터에 옮겨 세워지고 북장대를 구천각이라 했다. 구천각은 높은 축대와 그 위에 세운 누정으로 이루어졌다. 화강암을 잘 다듬어 쌓은 축대의 평면은 방형이며 그 한 변의 길이는 12.1m, 높이는 6.5m이다. 축대의 복판에는 홍예문을 내고 그 속으로 21단의 계단을 쌓아 누정에 오르내리게 하였다.
·함관령성(咸關嶺城)
함흥시 영봉리의 함관령의 옛 성터. 현재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장성의 성벽이 남아 있다. 돌성벽의 옆으로는 너비 6m의 소통길이 개설되었다. 부근에 봉수들이 있다. 고려천리장성을 축조할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황사리성(黃舍里城)
함흥시 영봉리의 동쪽의 옛 성터. 반달형으로 생겼는데 석성으로 되어 있다. 현재 내성과 외성으로 보이는 성벽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원성
함흥시 성원리의 옛 성터. 산중턱을 따라 둘레 2.5km되게 타원형으로 축성하였다. 돌을 다듬어 정교하게 축조한 초원성의 동서남북에 문터가 있으며 남쪽 50m 밖에 외성이 둘러싸고 있다. 고려시대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기와재봉수터
함흥시 영봉리의 중심 봉화재의 옛 봉화터. 고려 공민왕시기에 건립. 주로 북부 지역의 외적들의 침입을 고려 조정에 전달하는 신호연락체계를 갖췄다. 조선시대에서도 이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화덕자리가 남아 있다.
·덕산성(德山城)
함흥시 성원리의 옛 성터. 해발 200m의 대덕산 봉우리를 중심으로 쌓은 성이다. 윤관이 북진을 개척할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성과 돌과 흙을 혼합하여 축조되었다.
·청산토성(靑山土城)
함흥시 흥남구역 운성동의 옛 성터. 청산등성을 둘러 싼 토성이다. 산봉우리를 끼고 둘레 약 600m의 성벽을 흙으로 쌓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밑너비는 3m 정도, 높이는 50cm 정도이다. 바닷가쪽에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아 바다에서 침입해 오는 외적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제월루(霽月樓)
함흥시 동흥산동의 조선시대 누정. 1600년에 축조. 함흥향교에 부속되었던 2층 누정이다. 향교의 다른 건물들은 한국전쟁 때 폭격에 모두 파괴되고 제월루만 남았다. 동홍산 기슭에 남향으로 서 있는데 처음에는 뒤쪽 더 높은 곳에 있었던 것을 1832년에 조금 내려다 지금의 자리에 지었다. 임진왜란 이후 누정건축의 구조와 특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서 옛 모습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한국땅이름학회 02) 703-5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