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우물 파기 40년 세월!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80년대와 90년대는 격동의 세월로 불립니다. 군사정부에서 민주정부로 교체되는 시절이었고, imf라는 치명적 경제위기를 헤쳐 나온 인고의 세월 이었습니다. 그러한 80년대 초반, 전매청이라는 그 당시 공기업에 입사한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1982년 2월1일 전매청에 입사하여, 공사 및 민영회사 케이티앤지로 회사명이 바뀌는 세월이 올해로 40년째 이랍니다. 내년 2023년 6월에 정년퇴직을 앞두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중인 이분은 최근 강원노회 소속의 한 부서 모임을 통하여 알게 된 분입니다. 부서의 임, 역원 회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동일한 회사 근속이 40년째라는 말씀에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파란만장한 세월 동안 한 직장을 근속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p 장로님이 대단하다 싶은 것은 입사 당시에는 공기업이었던 회사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민영회사임에도 명예로운 퇴직을 하신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몇 차례 그 살벌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장로님의 40년 근속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장로님께“ 직장에서도 장로인 것을 주위분들이 아시는지요?”했더니, 즉시“그럼요. 다 알죠!”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같이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는 시대에 첫 입사한 회사에서 수 십년을 근속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념물(?)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며 직장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와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듣기로는 교회에서는 신실한 장로 역할을 잘 수행하던 분이 직장에서는 장로임을 숨기고 지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주변 동료분이 그 분이 교회 장로임을 알고서 행한 첫마디, “그 사람이 교회 장로였어?”하더랍니다. “그가 장로였어?”라는 한마디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반문입니다. 어쩌면 그분의 가치관에는 성속이 분리된 신앙 기준이 자리잡고 있었을 수도 있을것입니다. 교회일은 거룩한 것이고 세상일은 속된 것이기에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처신을 다르게 할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성경적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자리 곧 삶의 터전이 복음화 되도록 섬김과 나눔을 실체화(實體化)하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함은 당연지사입니다. 미소년의 신분으로 조국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의 삶에서 전쟁터 같은 직장 살이를 해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6:3-4)> 자신의 직임에 충실하여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다니엘의 모습은 그야말로 프로 직장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자신의 시대에 쓰임 받았던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맡은 일에 성심을 다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현할 것을 권면하며 종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로새서 3:22)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주님 앞에서의 삶임을 알게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은 참 간단하면서도 지난(至難)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언제쯤 나는(우리는) 눈가림만이 아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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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라와 브리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