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십일조
석탄일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주 월요일 오후!
할머니 권사님 따님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를 시작으로 분주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4인실에 계셨던 모친이 음압 병실로 옳겨야 된다는 병원측의 판단을 들었다는
연락에 급하게 방문했더니, 때 마침 의료진분들이 1층 음압실로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산소를 투입해야 할 정도였기에 마음의 준비를 정말 해야 할 시간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권사님은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약 3개월 동안 병실을 찾으며 남다른 정이 들었든지 보내 드리는
예식을 인도하며 감정 이입이 되었기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수십년간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시골교회 교우분들께서 위로 예식과 입관,
그리고 발인예식에 성심껏 협력해 주셔서 울먹이느라 찬송을 부르지 못하는
목사를 도와 주었습니다.
새벽6시 30분의 발인 예식이었음에도 찬양대의 조가와 환송 찬송 가운데
정든 가족의 곁을 떠나가신 권사님은 어쩌면 복이 많은 어르신이다 싶었습니다.
총 다섯번의 예식 시간에 순서지를 준비하며 권사님과의 추억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부군의 묘소 옆에 안장식을 마치고 상주되는 아드님이 감사 인사를 전하며
꼭 찾아 뵙겠다기에, 편하게 생각하시라며 식사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맞이한 주일 예배를 인도하려고 예배당을 들어 서려는 순간
권사님 자제분들이 예배를 참석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따님 내외분과 아드님 부부와 손자까지 반 평생 어머니가 예배드리던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헌금 기도를 하려고 봉투를 정리하는 순간 할머니 권사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헌금(십일조, 감사) 봉투가 눈에 띄였습니다.
“어머니 장례를 은혜 중에 마치게 됨을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을 겉 봉투에 적고서 하나님께 드린 헌금 봉투를 집어 들며
그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모친의 젊은날부터 노년의 추억이 깃든 교회를 통하여
지역속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힘에 겹도록 헌금을 드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복잡미묘 해짐을 느낍니다.
예배를 마치고 배웅을 하는데 권사님 아들이 하는 말,“ 모친께서 병원에 계실 때부터
장례의 모든 순간과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하는데
목회자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목회자로 살아갈 수 만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아가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더욱 짙어지는 것은,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고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 어떤이라도,
누구이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46:3-5)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