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토), 날씨가 제법 더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랜만에 외출을 했는데요, 점심을 조금 일찍 챙겨 먹고 나가는데...
아파트 살구나무 아래를 지나면서 문득, 고개를 위로 올려보았습니다.
왜냐면, 엊그제 장을 보러 갔더니 거기서 살구를 팔기에, 한 바구니를 사다가 먹었기 때문에...
'요즘이 살구가 익어가는 철인가 본데......'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지요.
근데요,
"에게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제법 큰 살구나무에, 열매라곤... 달랑 하나가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아래)
웃기드라구요.
이 큰 나무에 저렇게 달랑 하나가 붙어 있다니......
그러니, 당연히 옛생각이 났구요, 제 머릿속에서는 그 이미지마저 잡혀오는(기억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초창기... 봄마다 이 부근의 봄꽃을 찍어 제 홈페이지와 나중엔 까페에 사진을 올리곤 했었는데... 그 중에는 이 나무에 많은 먹음직스런 살구 열매가 달린 사진도 찍어서 올렸기 때문입니다.
'근데, 왜 이렇게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따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희박한 가능성이었고,
어쩌면(?) 기후의 변화 때문이거나, 영양이 부족했거나... 좌우간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 터였습니다.
어째, 그런 것들마저... 세상이 변해가는 것(세월이 흘러간 것도)이 즐겁지만은 않게 다가오더군요.
그러다 보니,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제가 감상에 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살구.
과일은 과일인데, 우리에게 아주 일상적이거나 흔한 과일이랄 수는 없습니다.
이 과일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감도 별로이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저 개인적으론, 이 '살구'가 예삿과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동안(몇 십년에 걸쳐?) 제가 가끔, 이런 얘기를 (까페에)이미 했을 텐데요......
일단 20년 전쯤, 제가 이 아파트에 살기 시작했을 즈음의 그 기록을(위 사진 찾는 김에) 잠깐 소개한다면요...(아래)
그 당시엔, 봄이면... 이런 꽃사진도 찍느라 바빴었는데요,
그리고 그 자료를 찾다 보니, 그 즈음(서명으로 보면 2002년 같은데)엔 '살구' 그림도 그렸네요. (수채)
근데요, 최근엔... 그런 기억만을 머릿속(가슴)에 담고 있을 뿐,
올해도 봄에(아래), 그저 아파트 안에서 내려다 본 사진만을 찍었을 뿐입니다.(아래) 아파트 건물과 딱 붙어있는 나무가 그 살구나무랍니다.(아래) 그 앞쪽은 벚나무구요.
근데, '살구'가 왜 저에게 예삿과일이 아니냐면요...
저에겐 이런저런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서랍니다.
살구를 보거나 그 얘기만 들어도, 저에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거든요.
(이미 아시는 분도 있을 텐데, 아무튼 옛 감상에 젖어보고 싶어서... 제 '글 작업'에서 퍼왔는데요.)(아래)
이 상황은(아래) 1990년 봄, 제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서 살던 첫해 벌어진 일이었는데,
글 작업(소설)에 있는 한 대목을 그대로 퍼온 것입니다. (아말리아는 '호아낀'씨의 부인)
# 아말리아 친정아버지 #
며칠 전 나는 외출에서 돌아와 여느 날이나 마찬가지로 제일 먼저 집의 뒷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그 날도 편지함이 텅 비어있음에(아니 전화세나 그 밖의 세금 영수증이 있기는 했지만),
실망한 나머지 잠깐 멍하게 서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때, 웬 비닐봉지 두 개가 문 틀 사이 바깥쪽에 걸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반사적으로 그 봉지를 살펴보니, 밭에서 캔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아직 습기가 밴 흙이 묻어있는 양파와 감자였다.
‘근데, 이게 왜 여기에 걸려있다지?’ 하긴 했지만,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어서 그냥 내려왔다.
사실, 내가 사는 집 문틀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떼어내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있었지만, 누구의 어떤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잊어버렸다.
저녁 무렵에 전화가 왔는데 아랫집 아말리아(Amalia)였다.
원래 말이 빠른 그녀의 천천히 설명하는 말로는, 문에 걸려있는 양파와 감자는 그 위 밭을 가꾸는 자기아버지가 나 먹으라고 걸어놓았다는 것 같았다. 일단 그렇게 이해가 됐음에도 확신할 수가 없어서, 전화를 끊고 바로 아말리아 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말리아의 자세한 설명으로는, 자기 아버지가 오늘 오전에 감자와 양파를 캤는데 나 먹으라고 문에 한 봉지씩을 걸어놓았다는 것이고, 조금 전에 그쪽을 지나가면서 확인해 보니, 아직도 그대로 문에 매달려있어서, 자기 딸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게 알려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나는 그 분이 아말리아의 아버지고, 그 동네 다른 집에서 또 다른 딸(아말리아의 동생)과 둘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야, 비록 이 동네로 이사온지 두 달이 돼가고 있었다고는 해도, 알고 지내는 이웃도 많지 않았기에, 어차피 동네 사람들(아말리아 친정아버지 포함)에게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말도 못하는) 동양에서 온 조용한 외국인이었을 뿐이니까.
아무튼 상황은 그랬다. 그리고 고마웠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에게서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호의를 받아 그 감동은 뭐라 형용할 수 없기도 했다.
그래서 아말리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는 말을 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올라와서 그 것들을 들여왔다. 그러면서,
‘나에게 직접 얘기해도 되었을 텐데... 그랬다면 더욱 고마웠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아말리아의 아버지가 뒷문 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인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랬더니 그 분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았을 뿐이었는데, 역시 말도 없이 그런 호의를 베풀어왔던 것이다.
그러다 또, 그 얼마 전엔 뒷문 쪽으로 그 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인사를 하니까, 미소를 지으며 손만 번쩍 들어보이던 일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렇게 그 분은 별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역시 편지함에 갔다가, 또 하나의 비닐봉지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우리나라 배추 같은 여기 상추 두 포기에, 못 생긴 토마토도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물론, 그것 역시 아말리아 아버지가 걸어놓고 갔을 터라,
‘이거, 고마워서 어떡한다지?’ 하면서 이번에는, 집으로 들어와 바로 아말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띄엄띄엄 그 상황을 설명한 뒤,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아무튼 요즘, 그런 분이 이렇게 오며가며 나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
난 괜스레 든든한 후원자가 한 사람 생긴 기분이다. #
근데요, 이 일을 시작으로 그 얼마 뒤 그 영감님이... 한 봉지의 '살구(스페인어로 '알바리꼬께'라는 이상한 이름)'를 갖다 주셨는데, 그 살구가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때까지(30대 중반까지 한국에 살면서는) 살구라는 과일을 거의 모르고(무관심)지냈던 저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켜 줬을 뿐만 아니라... 그 살구는, 여태까지 제가 먹어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도 맛이 있었기에(원래는 그맛이 살구 본연의 맛인 줄 알았는데, 그 다음해부터 현지 바르셀로나에서도 시장에서 사다 먹고, 다른 곳(한국 포함 제 3국들)에서 일부러 사먹어도 그 맛이 아니어서)... '살구' 하면 그때가 떠오르고, 그 살구맛도 제 미각을 자극하는...
근데요, 그러고 보니... '살구꽃'도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야(여기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야(2000년 이후)) 알게 된 것 같네요. (그 전에는 '매화' '살구' '자두' '벚꽃' 등을 구별하지도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결과는 비극적으로(제 그림 '빠블로씨의 죽음') 끝난 이야기로... 제 가슴에 진하게 남아 있는데요,
그 에피소드도 찾으려고 아무리 뒤져봐도, (있기는 분명한데)찾지 못해...
그냥 이렇게 간단하게 결말을 맺습니다.
근데, 제가 최근에 알게 된 정보(?)로는... '히말라야 산맥' 주변의 국가들(아프가니스탄? 등의 '스탄' 공화국들. '실크로드') 쪽의 살구가 맛있다던데,
맛있는 살구를 먹기 위해서는 거기까지 찾아가야 하는 건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