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의 [다시,역사의쓸모] 목록중에 이완용을 만든 교육과 윤동주를 만든 교육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다른 나라와 교섭이 활발 해지자
조선 정부는 통역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통역관 양성을위해 육영공원(영재를 육성하기 위해 국가가 세운학교)을 세웠습니다.
현직 관료와 양반집 자제 가운데 똑똑한 사람만 뽑아 기숙사에 교재, 용돈까지 주었다고 합니다.
이완용은 육영공원 1회 입학생 이었습니다.
어린시절 머리가 좋고 무엇을 배우든 열심히 했다고 하네요.
육영공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을 한 이완용은 고종의 눈에 들어 조선 공사관으로 미국에 갑니다.
미국 생활을 한 이완용은 대표적 친미파 인사가 됩니다.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 시키는데도 큰 역활을 했다는군요.
금광 채굴권에 눈독을 들인 러시아가 아관파천이후 간섭이 심해지자 이완용은 러시아에 적대적 입장을 취합니다.
러시아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이완용을 내치라는 압박을 줍니다.
그결과 지방 관찰사로 좌천되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덕분에 일본공사의 추천으로 학부대신(지금의 교육부장관)으로 임명이 되는데요ᆢ
이후에, 을사늑약(외교권박탈),정미7조약(군대해산.내정장악),경술국치(국권강탈)을 주도하는
반민족 행위자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답니다.
촉망받던 엘리트가 이런 길을 걷게된 이유에 대해 최태성님은 그가 오로지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서 공부했기 때문인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육영공원과 전혀 다른 교육 목표를 표방한 학교가 있었는데요ᆢ
1908년 김약연이 북간도 지역에 설립한 명동학교가 있습니다.
교육 목표는 한반도의 빛을 밝히는 인재,즉 독립에 힘 쓸수 있는 인재를 양성 하겠다는 의미 입니다.
국어와 역사를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생각하고, 작문 시험에도 반드시 애국과 독립의 내용을 포함 시켰다고 하네요.
매주 토론회도 열어 민족 독립 사상을 고취 시키기도 하고요ᆢ
이 학교는 1925년에 폐교가 됐는데, 그때까지 1,000명의 졸업생들이 우리 역사의 한획을 그었습니다.
그중 대표적 인물이 시인 윤동주 입니다.
명동 학교는 민족 교육 기관의 원조로서 뚜렷한 교육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해 낼수 있었습니다.
'육영공원'과 '명동학교'의 사례는 교육이 얼 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는것 같네요 ᆢ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