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회서신

방언의 한계와 예언의 유익-참된 영성은 나의 영과 마음이 함께 깨어 있고 (고전 14:1-19)

작성자pinetree|작성시간26.06.22|조회수30 목록 댓글 0

고린도 교인들이 예배 때 자기 은사를 과시하려고 방언을 남발하는 바람에 예배가 무질서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원리를 따라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권합니다.

 

1-5절 바울은 가장 좋은 길인 사랑을 따르는 구체적인 지침으로 은사의 활용법을 제시합니다. 특히 방언과 예언을 대조하며 공동체 예배의 본질이 덕을 세움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말로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사역을 뜻합니다. 은사 자체에 우열은 없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에게만 유익한 방언보다 공동체 전체를 유익하게 하는 예언이 더 훌륭하고 추구할 만합니다. 나의 은사가 나만의 만족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지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세워 주고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6-13, 18-19절 바울은 악기의 비유를 통해 명료한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피리나 거문고가 구별된 소리를 내지 못하면 곡조를 알 수 없고, 나팔이 희미한 소리를 내면 군사들이 전투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배 중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통역 없는 방언은 예배 시간에 부적절합니다. 공적 예배에서는 회중에게 뜻이 선명히 전달되도록 말해야 합니다. 일만 마디 방언보다 의미가 선명한 다섯 마디 말이 더 낫다는 바울의 말처럼, 모든 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해야 좋은 기도, 좋은 설교입니다. 내 은사와 신앙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사랑의 원리로 소통하는 것이 예배에 적합한 태도입니다.

14-17절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되 마음(지성)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방언은 영적인 뜨거움을 주지만, 지성이 배제된 기도는 당사자에게도 반쪽자리 신앙 활동입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그 영적 경험은 인격적인 변화나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 나 홀로 신비에 취해 있을 때, 곁에 있는 지체는 그 의미를 모르기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습니다. 참된 영성은 나의 영과 마음이 함께 깨어 있고 타인이 공감할 수 배려를 포함해야 합니다. (매일성경, 2026.05/06, p.164-165, 방언의 한계와 예언의 유익, 고린도전서 14:1-19에서 인용).

 

① 고린도 교인들이 예배 때 자기 은사를 과시하려고 방언을 남발하는 바람에 예배가 무질서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원리를 따라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권합니다. 바울은 가장 좋은 길인 사랑을 따르는 구체적인 지침으로 은사의 활용법을 제시합니다. 특히 방언과 예언을 대조하며 공동체 예배의 본질이 덕을 세움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말로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사역을 뜻합니다. 은사 자체에 우열은 없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에게만 유익한 방언보다 공동체 전체를 유익하게 하는 예언이 더 훌륭하고 추구할 만합니다. 나의 은사가 나만의 만족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지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세워 주고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② 바울은 악기의 비유를 통해 명료한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피리나 거문고가 구별된 소리를 내지 못하면 곡조를 알 수 없고, 나팔이 희미한 소리를 내면 군사들이 전투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배 중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통역 없는 방언은 예배 시간에 부적절합니다. 공적 예배에서는 회중에게 뜻이 선명히 전달되도록 말해야 합니다. 일만 마디 방언보다 의미가 선명한 다섯 마디 말이 더 낫다는 바울의 말처럼, 모든 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해야 좋은 기도, 좋은 설교입니다. 내 은사와 신앙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사랑의 원리로 소통하는 것이 예배에 적합한 태도입니다.

③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되 마음(지성)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방언은 영적인 뜨거움을 주지만, 지성이 배제된 기도는 당사자에게도 반쪽자리 신앙 활동입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그 영적 경험은 인격적인 변화나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 나 홀로 신비에 취해 있을 때, 곁에 있는 지체는 그 의미를 모르기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습니다. 참된 영성은 나의 영과 마음이 함께 깨어 있고 타인이 공감할 수 배려를 포함해야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