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름
김영란
왕이면서 누군가의 아들이고 싶었을
그 얼굴 떠올리면 강물이 먼저 흐른다
섬 아닌 섬에 갇혀서 하루하루 서성였을
바람에게 말 걸고 갈대에게 대답 들으며
자기 이름을 한 번쯤 불러도 보았겠지
누군가 물 건너에서 답해줄 것만 같아서
저녁은 일찍 내려와 어린 그림자 길게 눕히고
바람 불면 흔들리고 해 지면 어두워질 뿐
짧은 생 풀잎처럼 눕고 일어나지 못했지
강은, 끝내, 다정하지, 않았다
차마 흔들지 못한 손 가슴속에 남기고
왕이라 불리던 날들 물비늘로 부서진다
- 《유심》 2026.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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