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사진전’
(~2012. 9. 2.)
단 한 장의 사진에서 그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모든 정황과 핵심을 말이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그는 무수한 기다림의 시간을 쏟아야 했으니…….
아무 데서건 셔터를 마구 눌러대는 이즈음의 스마트한 세상에서 그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프랑스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1908~2004).
2004년, 서울 강남의 어느 갤러리에서 그의 전시를 둘러보던 중 사망 소식이 전해져 작품 판매가 중단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을 통해 사진계에 열풍을 일으킨 후 현재까지도 그의 영향력은 많은 인파를 전시장으로 이끌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품 250여 점을 비롯해 가족 사진, 편지, 자필 원고와 사진이 게재된 잡지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찰나의 미학’, ‘내면적 공감’, ‘거장의 얼굴’, ‘시대의 전설’, ‘휴머니즘’.
이렇게 5개의 섹션으로 구분된 전시장을 돌아보며 그의 사진의 바탕을 이루는 ‘결정적 순간’이란 단어를 곱씹게 되더군요.
그가 미술을 공부한 때문인지 ‘그림과 같은 사진’이란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그의 눈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가장 조화롭고도 절제된 한 순간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그가 들인 노력과 수고, 또 무엇보다도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시선이 신선했습니다.
서가를 등지고 선 사무엘 베케트, 책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서 밀러,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는 피카소, 십자가를 배경으로 서 있는 화가 조르주 루오, 자신과 닮은꼴의 작업을 하고 있는 자코메티, 꽃과 새를 관찰하며 데생하는 마티스…….
이런 예술가들의 사진을 대하며 브레송의 정직한 앵글과 자연스런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요.
1937년에 있었던 영국 왕 조지 6세의 대관식 사진에서는 조지 6세가 아닌, 구경꾼인 길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에게 사진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몽마르뜨르로 향하는 파첼리 추기경을 찍은 사진에서는 추기경보다 그의 손에 입 맞추는 대중이 그의 관심에 있었지요.
새를 관찰하며 데생하는 마티스
프랑스의 섬유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고, 바칼로레아(대학입학 자격 시험)에 떨어진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예술 쪽으로 진로를 모색하여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미술과 문학을 공부하러 갔으나 정작 사진에 빠지게 되었다는 브레송.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종군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하여 도피 생활을 하다 1944년에 파리가 해방된 뒤 본격적인 포토저널리즘에 입문하였다는군요. 1946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이 열렸고, 47세 때인 1955년에는 루브르박물관에서 사진전이 열리기도 하였지요.
그는 운도 좋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인도에서 간디를 취재한 지 한 시간 만에 간디가 암살당하는 통에 유명세를 더하게 되었고, 중국 내전이나 러시아와 쿠바 등 일반인들에겐 통제된 상황에서도 그는 현장에 존재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진 한 점 한 점에는 절제된 마음과 진지함이 있었습니다. 세계 사진작가 협회인 매그넘의 공동창립자이기도 한 브레송은 ‘사진의 톨스토이라 할 만큼, 20세기를 직시한 시대의 눈이었고 현대 사진의 문을 연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전시회에 가기 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세기의 눈 (을유문화사)》, 《영혼의 시선(열화당)》, 《앙리 까르띠에-브레쏭/열화당 사진문고2(열화당)》 등의 책과 나무숲에서 나온 《사진가 임응식》도 읽으면 관람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전시 일정 : ~2012년 9월 2일까지
전시 장소 :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입장료 : 성인 12,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7,000원(인터넷 사전 예매 시 할인)
도슨트 설명 : 평일 오후 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