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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연 시인의 방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93〉봄밤

작성자하지연 (하현식)|작성시간25.07.31|조회수36 목록 댓글 0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93〉봄밤

 

 

봄밤 ― 이기철(1943∼ )

 

봄밤

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낫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

여기에 우리는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어느 집인들 한 오라기 근심 없는 집이 있으랴

군불 때는 연기들은 한 가정의 고통을 태우며 타오르고

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여기에 우리는 한줌의 삶을 기탁하려 왔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행복의 모습은 하나이고,

불행의 모습은 여럿이니 행복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불행의 많은 경우들을 모두 제거해야만 가능하다.

전형적인 행복과 다양한 불행을 생각하다 보니 어쩐지 우리에게 행복은 이상이고 불행은 현실인 듯싶다.


그런데 시는 행복과 불행의 이분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행복이냐 불행이냐 어느 쪽을 선택하지도 않고

어느 쪽을 추구하지도 않는 아주 많은 시를 알고 있다.

인생을 담은 우리의 시들은 행복과 불행 그 사이쯤에 놓여 있다.

그런 시들은 내가 있고, 세계가 있고, 둘 다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 예로 이기철 시인의 ‘봄밤’을 읽는다.

형벌 같은 세월을 사니 이 시인은 불행할까. 봄풀이 푸르게 돋으니 이 시인은 행복할까.

우리는 이 시에서 행과 불행의 글자를 잠시 지울 수 있다.

생은 행복을 잡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은 그보다 훨씬 더 위에 있다.

한줌의 삶을 기탁하려,

주소를 잠시 적으려 왔을 뿐이라는 말에서 더 큰 삶의 의미가 느껴져 마음이 울컥한다.

과연 오늘 우리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이 질문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리의 삶은 행복해서 성공하고 불행해서 망친 것이 아니다.

삶은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고 쉽게 재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동아일보20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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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의 「봄밤」은 봄이라는

계절의 생명력과 생의 고단함을 대비하며, 삶의 일시성과 기억의 슬픔을 정서적으로 담아낸 시입니다. 

 

🌱 시의 핵심 주제

주제설명

세월과 기억의 슬픔“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는 구절은, 잊지 못하는 기억일수록 고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시적으로 말합니다.
삶의 일시성과 고단함"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 → 밥벌이의 일상을 노동의 무게로 표현. 나이테 없는 삶은 자신의 시간을 세는 일마저 고통이 된다는 자각을 담고 있습니다.
생명과 반복의 이미지"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는 구절은 생의 반복성과 희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희망이 과거의 아픔 위에 돋아난다는 점에서 이중적 정서를 전달합니다.
집과 삶의 상징성"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 한 가정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강렬한 이미지로, 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삶의 감정이 물리화된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 표현 기법

  • 은유법

    •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 인생의 흔적이 사라졌고, 나이의 계산마저 고통이 됨

  • 반어적 명상

    •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 살아가는 일도 결국 잠시 머무는 과정이라는 무상함을 암시

  • 의인화와 감각적 시각화

    •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 근심이 물리적으로 집을 눌러앉게 만드는 듯한 이미지

🌌 정서적 흐름

  1. 기억의 슬픔

  2. 세월의 고단함

  3. 생명의 반복과 고통의 연속

  4. 집이라는 공간의 삶의 투영

  5. 삶의 한 순간을 기탁하며 머무름

📜 이 시는 화려한 봄밤에도 어두운 삶의 실상이 깃들어 있는 정서를 그리며,

한 사람의 일생이 자연과 사회, 집이라는 구조물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보여주는 깊은 성찰의 산문시예요.

 

 

단어는

이 시에서 사용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단어 하나하나가 정서적 깊이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 주요 단어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설명해드릴게요:

 

🌘 감정과 기억을 담은 단어

  • 잊혀지지 않은 것들: 과거의 흔적, 잊으려 해도 마음에 남는 상처나 추억

  • 슬픈 빛깔: 슬픔을 시각적으로 표현, 기억의 정서적 색채를 암시

🔧 삶과 노동의 상징어

  • 숟가락: 일상, 생계를 의미하는 도구

  • 되질해온 생: 노동으로 다져진 인생, 단조롭고 반복적인 삶의 표현

  • 형벌인 세월: 고통스러운 시간, 무게감 있는 인생의 흐름

🌿 자연과 순환

  • 봄풀: 생명력과 계절의 순환, 새로운 시작을 상징

  • 그루터기: 이전 생명의 흔적, 아픔과 기억의 자리

  • 푸르게 돋는다: 다시 시작되는 삶, 희망의 단서

🏡 가정과 근심

  • 군불: 집안의 따뜻함과 함께 숨어 있는 고통의 상징

  • 근심: 삶에 깃든 걱정과 무게

  •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시각적 은유로, 고단함이 쌓여 공간 자체가 낮아짐

✒️ 철학적 표현

  •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삶의 일시성과 무상함

  • 기탁: 잠시 맡기는 것, 삶 자체가 영구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인 여정임을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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