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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컬럼&토론]]탁구마니아열전 #41 - 원조 탁구 아이돌...아마최강 윤홍균 동호인

작성자아침이슬(김경미)|작성시간11.10.07|조회수1,062 목록 댓글 0

원조 탁구 아이돌 - 아마최강 윤홍균 동호인

봄이 활짝 열리면서 그동안 다소 움츠렸던 탁구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전국 각지의 탁구대회 소식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취재요청으로 월간탁구 전화통에 불이 나면서 편집부도 덩달아 바빠진다. 생활탁구인 100만 시대! 이제 전국오픈대회 뿐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나 클럽 타이틀이 걸린 탁구대회까지 가세해 그 수조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길을 지나다 보면 탁구대회 현수막이 걸려있는 걸 자주 만나게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 어디서건 탁구대회에 도전해 볼만한 분위기가 된 것이다.
그 같은 풍경은 시각을 통해 탁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불고 있는 탁구계의 세대교체 분위기도 생활탁구인구의 유입을 기대해 볼 만한 새로운 흥미유발 요소이다. 바꾸어 말하면 생활탁구계의 차세대 성장 동력이 등장한 셈이다. 이른바 탁구왕으로 군림했던 정동조, 최정환 등 아마최강 양대 산맥과 황재성, 박은환, 이순민 등 30~40대의 고수들 모습이 최근 들어 주춤하다. 대신 허남규, 조민철, 조훈태, 한재희, 윤홍균, 선우혁, 정가람, 장태진 등 봄같이 파릇한 20대 신진세력이 바통을 이어받아 군웅할거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열고 있다.
 
생활탁구계 최정상으로 떠오른 20대 동호인
K-1 TEAM 김광일 회장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생활탁구에 대거 영입된 실업이나 대학선수 출신으로부터 1:1 레슨이나 시합을 통해 이전에 몰랐던 기술을 빠르게 몸으로 습득한 결과”라며 “그들 젊은 세대의 기량이 너나 할 것 없이 급성장한 만큼 이젠 누구 한사람 찍어 최강자라 말하기 힘들다”고 한다. 연예계 뿐 아니라 탁구계에서도 소위 ‘아이돌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원조 아이돌 탁구동호인이 있다. 30~40대가 돌풍을 일으킬 때부터 우승권에 들었고 최근까지도 아마최강으로 불리던 윤홍균. 그가 이번 호 탁구마니아 주인공이다.
탁구마니아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곳은 경기도 안양에 있는 조민철탁구클럽. 알고 보니 이전에 안양탁구회관이었던 곳이다. 낮 12시40분경이었는데 레슨회원이 꽤 많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클럽을 구경하고 있는데 조민철 관장이 다가온다. 그와는 초면이었다. “조민철 관장이시죠?” “예, 혹시 윤홍균 인터뷰 때문에?” “네, 맞습니다! 1시 약속인데 조금 일찍 도착했네요.” “아! 예! 근처에 있는데 곧 올 겁니다. 커피 한 잔 하면서 기다리시죠.” 조 관장에게 받아든 커피를 마시며 레슨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 그가 나타났다. “일찍 오셨네요! 시간이 좀 남아서 사우나 하고 왔어요.” 무림고수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예리한 눈매. 그러나 나이에서 오는 앳된 모습이 강한 느낌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주는 느낌이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이번 호 주인공 윤홍균 동호인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진지함과 표정의 함수관계
‘탁구장에선 탁구 잘 치는 사람이 왕’이란 말이 있다. 고수 앞에선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말도 제대로 붙이기 어려운 게 하수 입장이다. 윤홍균도 그런 고수 중 한사람이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생활탁구계를 접수하고 최강으로 군림하던 그였기에 더욱 그렇다. 때문에 주위에서 ‘어린 나이에 건방지다’거나 ‘탁구를 성의 없게 대충 친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터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포커페이스, 특유의 무표정 때문이다. 시합에 나서도 오버액션이나 표정변화가 거의 없다보니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예전엔 안 좋은 얘기 참 많이 들었어요. 저는 아닌데 그런 오해를 받을 때마다 억울할 때도 많았죠.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해주시는 얘기가 있어요. 나이도 어린 네가 너무 잘하다 보니까 질시 아닌 질시로 그런 얘기 듣는 거다. 그러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어떤 경우라도 겸손하게 예의를 갖추고 진지하게 하라. 그런 말씀이시죠. 진지하려고 했던 게 어느 순간 무표정이 되다 보니까 그런 얘길 들었던 것 같아요.”
 
부친 윤성진 씨도 탁구마니아
윤홍균에게 최고의 멘토인 아버지 윤성진 씨도 열혈 탁구마니아다. 현재 고등학교 사회교사인 그는 윤홍균의 오늘이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끔씩 탁구장에 아들을 데리고 다닌 것도, 본격적으로 탁구를 한 번 해 보라고 권한 것도 그였다.
“어쩌다보니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 나왔어요. 서울 중랑구에 있는 신내초등학교부터 상봉, 동원, 장충, 백문까지요. 일년 반마다 한 번씩 전학을 간 셈이죠. 탁구는 동원초 3학년 때 시작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남자는 저까지 달랑 두 명이고 여자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장충으로 옮겼죠. 그렇게 탁구에다 이사까지 겹치다 보니 다섯 군데를 다니게 되더군요.”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수시로 코피를 쏟았던 그는 부친의 권유로 시작한 탁구를 통해 건강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발군의 실력으로 일취월장, 탁구선수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전국대회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4학년 때는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주최한 초등학교 우수선수 초청대회에서 4강까지 올랐다. 하지만 5학년 때 여수에서 열린 교보생명컵에 출전해 학년별 대회에서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어머니 고형옥 씨는 아마바둑계 스타
“어머니가 시합장인 여수에 도착하시기도 전에 떨어졌어요. 그 전까지 늘 전국 8강권에는 들었기 때문에 충격이 컸죠. 아버진 경험이라 여기고 더 해보라 하셨지만 어머니 볼 면목이 없었어요. 공부 때문에 늘 불안하다며 운동 안했으면 하는 게 어머니 마음이셨거든요. 심리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그때 운동을 그만 뒀죠.”
그의 승부근성과 진지함은 어머니 영향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홍균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바둑 7급 수준을 이수하면서 유소년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바둑에도 소질을 보였다. 당시 어머니가 학원을 운영할 정도로 바둑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고형옥 씨는 현재 아마바둑 6단으로 1980년대부터 여성아마바둑계 정상권 고수이다. 지난해에는 (사)대한바둑협회 시니어 여류우수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2010 여성바둑연맹부회장으로 활동하며 기우회초청바둑대회, 여성바둑강좌 등 바둑계에 널리 알려진 여류기사로 올해 초 창립한 서울시동대문구 바둑협회 초대회장으로 취임한 유명인이다.
 
윤홍균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여기서 잠깐 그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언젠가 온라인 탁구사이트에서 그의 선수경력이 논쟁의 중심이 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도 선수를 했기 때문에 선수부로 나와야 한다는 문제제기였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됐듯이 윤홍균은 장충초등학교 5학년 초여름 전남 여수에서 있었던 교보생명컵대회에서 예탈한 뒤 곧바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경기도 구리시 백문초등학교로 옮겼다. 평범한 학교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얘기로는 그 뒤 생활탁구에 입문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라고 한다.
“중 3때 한 탁구대회에 출전했는데 진행부에서 이름을 부르더니 참가비를 돌려주는 거예요. 중학교 선수출신이라 참가를 못한다는 거죠. 고 1때도 팀을 짜서 대회 나가려다 출전금지 당한 때가 있었죠. 처음엔 나이 제한에 관한 얘기가 전혀 없었는데 신청하고 3일 지난 뒤 인터넷에 보니까 대회요강이 바뀌었어요. 20세 미만은 출전을 못한다고요. 인터넷에 들어가 있는 그대로 얘기를 밝혔죠.”
어린 나이에 생활탁구에 입문해 일찍부터 돌풍을 일으키다보니 어느 순간 주위가 온통 적이 되고 만 셈이다. 그의 얘기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해 본 결과는 이렇다. 윤홍균은 구리중학교 1학년 때 대광중·고등학교 탁구부 코칭스태프로부터 선수합숙기간에 함께 운동해 보지 않겠냐는 전화연락을 받는다. 그때 잠깐 대광중학교 선수들과 운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탁구동호인을 통해 오해가 생긴 것 같다는 얘기이다.
“제가 좋아서 하는 탁구지만 어떤 때는 어른들한테 상처받는 느낌도 없지 않았죠. 사실이 아닌데 그렇다고 하니까요. 그때마다 옆에서 격려와 자신감을 북돋아 주신 분이 아버지세요. 모두 너에게 주는 칭찬이라고 생각해라.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네 재산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더 열심히 해라. 어깨에 힘주지 마라. 그런 얘길 늘 가슴 속에 담아두고 했죠.”
 
아마최강에 자리매김하다
이후 그는 각종 대회마다 우승권에 이름을 올리면서 승승장구 했다. 기라성 같은 최강자들과 만나도 기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마최강이라는 수식어도 따라 붙었다. 3할 내외이던 전국대회 기준 우승확률이 2009년에는 7~8할로 높아지면서 출전만 하면 우승이라는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어떤 때는 탁구관련 한 달 수입만 300만 원 가까운 경우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우승상금만 챙겨도 아파트 한 채 사겠다는 농담도 흘러나올 정도였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된 다음부터 용돈 정도는 부모님께 손 안 내밀고 제가 벌어 쓰는 만큼은 되는 것 같아요. 근데 버는 만큼 쓰게 되더라고요. 우승하면 주위 분들한테 우승턱도 내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생각, 재테크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어요. 좋아하는 탁구를 통해서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뭔가 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여러 요소를 깨우쳐 가는 것 같아요.”
그는 얼마 전부터 조민철탁구교실에서 오전반 레슨코치를 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인 걸로 알았는데 아니다. 휴학계를 내고 잠시 다른 공부를 하면서 시간도 활용할 겸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학교는 5학기까지 마쳤는데 전공인 컴퓨터공학이 제 적성하고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 잠시 대학생활을 접고 영어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중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제 꿈이 원래 학원 영어강사거든요. 근데 하루 종일 공부만 붙잡고 있다 보면 지칠 때가 있잖아요. 전 그럴 때 가장 좋은 게 탁구에요. 완전 스트레스 푸는 거죠. 그러다 마침 여기 장현석 코치가 얼마 있다 군 입대를 하게 돼서 대타로 얼마동안 코치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그의 목표는 학원강사
주변에선 윤홍균이 본격적으로 탁구코치로 나섰다는 얘기가 들렸다. 탁구와 관련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생활탁구인들의 관심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탁구코치는 대학 들어가면서 학교 앞 탁구장에서 아르바이트로 한 적도 있고, 이후로도 간간이 해왔던 터라 이번 코치일이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탁구를 해오면서 업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앞서 밝혔듯 그의 꿈은 학원 강사다. 현직 교사인 아버지와 바둑선생님인 어머니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학원 강사는 최고 인기직종 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영어, 수학은 괜찮게 했던 편이에요. 고 3때부터 시작한 영어과외 일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요. 하지만 가끔 힘들 때도 있죠. 영어도 살아있는 동물 같아서 개인공부를 조금만 소홀히 하면 뒤떨어지기 일쑤죠. 그럴 땐 과외일 접고 다시 책잡고 공부해요. 영어도 저한테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예요. 몇 년 전에 한 탁구용품사에서 현역선수를 협찬해서 해외언어연수를 다녀왔는데요, 감사하게도 제가 부코치 겸 통역을 맡았었죠. 탁구와 영어 때문에 비행기도 타보고 외국여행도 공짜로 한 거잖아요.” 
탁구를 통해 좋은 인맥과 대인관계의 자신감까지 얻었다는 윤홍균. 그에게 시합출전은 마치 의무와도 같다고 했다. 하지만 주말마다 시합이 있다보니 여자친구와 주말약속을 못한다는 게 아쉬움이라고 한다. 왜 안 그렇겠나? 버려진 동전조차도 앞뒷면이 있는데…… 그와의 인터뷰는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뭔가 정제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랄까? 원조 탁구 아이돌 윤홍균의 탁구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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