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을 물으면 양가라고 한다
그러면 상대가 목양이요 수량이요 한다
梁을 수량이라하고 楊 을 목양이라하여 양씨를 구별하였다
梁은 삼수변(물수변)을 쓰고 楊 은 마무목변을 쓰기 때문이다
한자에서 氵와水 는 둘다 물수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양자를 한문으로 써야하는 곳에 호적서기에게 불러줄때 삼수변에 수량이요 하고 한자로 가르칠 때는 물양자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우리 양문의 상식이다 들보량이라고 하지 않았다 비록 옥편에 梁자나 樑 자 둘다 들보량자라고 했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우리의 성씨 양을 말할때는 물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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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천산 작성시간 17.12.20 楊萬春(양만춘)인가?
梁萬春(양만춘)인가? 합니다.
楊씨는 고구려와 발해와 금나라의 지배씨족이었고
남원은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인을 남쪽으로 분산 배치하기 위해
신라가 만들었던 도시(소경)인데
신라하대에 남원지역의 호족으로 성장한 어떤 가문도
고구려의 유예를 잇지 못했습니다.
남원楊씨 또한 그 선대를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은 요하와 태자하 하류에 있습니다.
태자하는 양(梁)수라고 불렀고
양(梁)씨의 족원은 양수에 있었다고 합니다.
물양과 목양은
발음도 같고
본관도 같고
역사도 공유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