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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산 작성시간14.05.15 남원양씨 병부공후 문양공 양성지께서는 대제학을 지내시고 이조,공조판서를 지내신 분이신데 살아 생전에 부모님을 공양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생각하여 나라에 청하여 큰 아들 양원을 양지(용인)의 수령으로 보내어 아버지 산소를 살피게 합니다. 너무 오래 머물렀던 탓인지 고향인 통진으로 오지 않고 진천에 정착합니다. 도 경계는 달리하지만 용인, 안성, 진천이 가깝지요. 원래는 한강이남에는 생거진천 사거용인하여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혀야 최고라 하였는데 반대로 하였지요. 양원의 자손들이 그 일대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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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산 작성시간14.05.15 양원의 둘째 아들 양제는 신창현감을 지내셨는데 할아버지 양성지가 공신에 책록되어서 그 자손들은 충의위에 입속하여 관직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양제의 큰 아들 양윤검은 충의위에 입속하여 관직생활을 하였고 정5품 사직을 지내시어 그 자손들은 사직공파로 분파를 합니다. 양윤검의 큰 아들 양사근 또한 충의위에 입속하여 관직생활을 하셨고 양원 이하 진천에서 세거하였으나 양사근의 둘째 아들인 양정의 자손은 안성으로 이거를 하였고 양응석은 양정의 둘째 아드님이 되십니다. 족보자료실 문양공파, 사직공파에 보면 이미 족보가 올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