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씨와 신라, 그리고 왜왕 미나모토 가문(신라계 천황)
동이족 역사는 찬란하다(중국단오절의 유래인 굴원의 초사에 의하면,춘추전국의 조상은 단군이며,단군은 동이의 시조이며 조선을 개국하였다==>고로 동이=조선인,동방족 조선인을 동이라 한다)
동이=동이남만(중국고고학의 태두 소병기왈 동이의 남하가 남만)=흉노선비(흉노의 일파가 선비,선비도 흉노를 자신의 원조상이라고 한다)
은-동이족
주-숙신계 서융,선비,동이족
진-숙신계 서융의 일파,선비,동이족
한-고구려와 같은 부여의 갈래(한서-조선왕 준이,성을 위씨에서 유씨로,이름을 준에서 방으로 바꿨다,명사-고구려가 한을 완전병합했다(중국사,한국사 어디에도 한이 독립한적이 없음)
위-북흉노
촉-남흉노
오-남방 민계(남만),산월,산융의 후예
북위-탁발씨
수-우문선비의 외척 보육여선비
당-탁발씨
송-돌궐사타족(사타는 백제8대성씨로서,사씨로 바꾸었으며,수많은 분파성씨가 있다,중국사에서 송의 조씨(조광윤)는 영씨의 갈래,진시황이 영씨)
명-송의 부활을 외침~(고려인일 가능성이 가장많음)
왜-백제계와 신라계(모용,탁발,우문)
모용씨와 신라, 그리고 미나모토 가문
일본의 천황가는성씨가 없답니다(왜왕이 맞겠죠~사실,중국에서 칭하는 천자란 호칭도 동이족의 천왕과 천군 아래인 천후의 칭호중 최하위에 지나지않습니다.(천후==>왕후장상의 후-왕아래는 공이라고 불림,주나라 봉건국인 연제등 춘추전국의 각국도 자칭 왕이라 하기전,원래는 공이라 했음,은을 멸한 주무왕의 동생 연왕 모용석이 소공 석이었듯~)미나모토씨나 다이라씨같은 성씨는 원래 성씨가 없었던 황족이 황위계승권을 포기하고신하로 내려갈 때 황실에서 내렸던 성씨로 이같은 성씨를 가진 황족을 사성황족(賜姓皇族)이라고 불렀습니다.아시카가씨는 미나모토씨에서 갈려나온 성씨로 무로마치바쿠후를 연 무가이고요.후지와라씨는 천황에 의해 사성된 성이기는 하지만 원래는 황족이 아닙니다. 신하가문이죠.그러나 다른설에 의하면,일본의 천황가는 주로 倭씨라는 성을 사용한다. 지금 일본 천황의 성씨가 오무로입니다. 메이지 천황 이전의 일본 천황의 성은 아시카가였어요.남북조 시대의 천황의 성은 오가사와라 집안이었는데, 고사가 천황 이전에는 다케다였죠.그리고 우다 천황부터 안토쿠 천황까지는 미나모토였습니다.게다가 그 이전은 잘 모른답니다~
중 국사에 의하면 왜왕은 원래 유씨였답니다(한서에는 분명 유방은 본래 조선왕 준이었는데,위씨성을 유씨로 바꾸고,이름을 방으로 바꿨다고 합니다,위서에도 고주몽은 원래 위씨인데 제곡고신의 후예라서 고씨로 바꿨다고 나오죠,그 위씨의 후예가 고씨,유씨,사마씨입니다~==>고로 유씨는 부여계라는 소리죠)
대대로 겐지(미나모토)씨의 후손들만이 세이다이쇼군(征夷大將軍)에 오를 수 있었읍니다, 겐지는 미나모토 요리토모 직계외에도 많은 집안분파를 가지고 있었다. 수호역(슈고)중에도 오미겐지(교고꾸씨), 가히겐지(다케다씨)등 많은 집안이 겐지계열이었다. 슈고다이묘(조정에서 임명한 지방관)에서 센코쿠다이묘(실력으로 실권장악한 호족다이묘)들로 세력이 넘어올 때 많은 겐지가 무너졌는데, 그래도 오다 노부나가시절까지 많은 겐지 다이묘들이 남아있었다. 이마가와도 스루가 겐지였고, 호조도 겐지라고 할 수 있고, 도쿠가와의 원래 씨족이었던 마쓰다이라씨도 닛따 겐지라는 겐지계열 이었다.
다 이라씨 후손이었던 오다 씨나 미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기노시다 히데요시(일왕에게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받아) 도요토미는 겐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군에 오르지 못했다(일설에는 히데요시의 원래 가문인 木下가문은 (청년시절 이름 기노시타木下 도치키로藤吉郞) 다이라노 키요모리의 후손으로 전해지는데 헤이지 가문으로 추측되는 바도 있다고 한다.)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의 이름변화~
잔나비를 닮은 못난 얼굴에 작은 체구때문에 어릴때 자주 불리워지던 이름은 고자루(小猿)
아명 히요시마루(日吉丸) → 기노시타 도키치로(木下藤吉郞) →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 후지하라 히데요시(藤原秀吉) →도요토미히데요시 豊臣秀吉
일본 역사학계에서 겐지(源氏)가 신라계, 헤이케(平家)가 백제계라고 했지만 사실 헤이케는 백제계가 아니다.
미나모토 씨(源氏)는 천황의 자손이 신하의 신분으로 강등될 때 내려지는 성씨 중 하나이다. 미나모토 성을 받은 일족을 통틀어 겐지(源氏의 일본식 한자 독음)라고 불리기도 한다. 814 년 사가 천황(嵯峨天皇)이 후손에게 미나모토 성를 내린 이후 세이와 천황(?和天皇), 무라카미 천황(村上天皇), 우다 천황(宇多天皇), 다이고 천황(醍?天皇)의 후손들이 미나모토 성을 받아 약 10개파의 겐지가 생겼다. 일본 최초의 무신 정권을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朝)와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세이와 겐지(淸和源氏)에 속한다.
그러나,일본 야사에 의하면,다이라 가문이 오토모, 소가, 이시카와 가문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면 사실 이 세 가문의 조상이 텐지 천황으로 다이라가문 정체가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였다
( 다이라(平) 가가 백제 계통임을 부인하여 우문(宇文)씨, 영호(令狐)씨, 선우(鮮于)씨 등 선비계라는 설과 다이라가 백제 왕족인 부여씨에서 파생되었고 그 부여씨의 원형이 황보(皇甫)씨라는 설 두가지가 있다,
부여씨와 다이라 가문은 같은 황보씨에서 파생된 집안이다.
황보씨는 자(子)성에서 파생된 가문이자 부여국의 왕성(王姓)으로 굳어진 상태이므로, 그들이 상대하던 미나모토(源) 가문이 신라 김씨, 즉 모용(慕容)씨 계통임은 이미 입증되었는데 황보씨 계통의 다이라 가문과 부여씨는 전통적으로 상나라 때의 풍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증거를 말하자면 백제 유적 일부에서 갑골 부분이 발견되었고, 또한 마한의 영향까지도 받았기에 황보씨, 부여씨, 다이라 가문의 공통적인 원형이 바로 상 왕실이었음을 입증하는 바이다.
부여는 동부여, 북부여, 가섭원 부여 등으로 세 부류로 되어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국성은 황보씨로 그 외는 사마(司馬)씨, 주(朱)씨, 유(劉)씨, 공손(公孫)씨, 담태(澹台), 전(田)씨, 칠조(漆雕), 제갈(諸葛) 등이었다. 어쨌든 황보씨 성을 가진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곧바로 축출되어 다른 황보씨 왕족을 앉히는 부여국이라 특히 사출도의 심사대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전설 상 온조, 비류의 생부인 우태(優台)의 성이 황보씨이다, 사실 그들 중 백제를 세운 온조의 후손들이 황보(皇甫)라는 성을 사용하다 근초고왕 때 이르러 부여(扶餘)씨로 개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성을 새로 변경해도 본성(本姓)은 황보씨라 백제 유적에 발굴된 갑골이 그 증거로 흑치(黑齒), 귀실(鬼室), 다이라, 게이타이(繼體) 천황, 비다츠(敏達) 천황, 조메이(舒明) 천황, 텐지(天智) 천황 계열의 천황 후손 가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 집안은 고고학적으로 보자면 황보씨에서 파생된 별종 가문이었기에 이 부분은 이제 더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어 여기서 입증하게 되었지만, 상 왕실의 후예이자 자성 출신의 가문이라 그 명맥은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어쨌든 황보씨에서 파생된 다이라 가문은 황별(皇別)로 거듭났으나, 다른 황별인 미나모토 가문은 황보씨와 다른 선비족 모용씨 계통이고 황보씨는 한족에 해당된다.)
일본에서 폭로한 명치천황(메이지유신)의 실체-가짜 천황가문(전에 따로 글올렸으니 내용생략)
명치천황(메이지유신)의 실체-북조천황가를 살해하고 가짜등장~
미나모토(源) 가문에서 파생된 오무로가문의 오무로 토라노스케(大室寅之祐) 명치천황에 올라 남조천황가를 탄생시키다~
일본 역사학계에서 겐지(源氏)가 신라계, 헤이케(平家)가 백제계라고 했지만 이중 오점인 부분이 있는데 사실 헤이케는 백제계가 아니다. 신라계인 겐지가 흰색을 중요시하는 반면, 헤이케는 붉은색을 중요시하는데 몽골 역사 내지 중국 역사상으로 보자면 흉노족은 붉은 색을 숭상하고, 선비족은 흰색을 숭상한다. 붉은 색은 태양과 불을 숭상하는 흉노의 색으로 훗날 우문(宇文)씨, 독고(獨孤)씨, 혁련(赫連)씨의 상징적인 색으로 굳어졌고, 흰색은 빛과 광명, 밝은 하늘을 숭상하는 선비족의 색으로 훗날 모용(慕容)문중의 상징적인 색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겐지는 모용씨의 후예일 뿐만 아니라 신라 김씨의 갈래이기도 하는 중요한 일본 성씨다.
(왜왕이 백제계라는 설과 신라계라는 설이 있듯,신라왕도 모용씨라는 설과 탁발씨라는 설이 있음~
고구려의 5가가 있었던것처럼,원래 탁발,우문,단등의 선비족은 모용부족에 속했으나,선비족이 분열할때 떨어져나갔음~)
그러나 헤이케의 정체는 불투명해보인다. 우문씨인지 독고씨인지, 혹은 혁련씨인지 확실치 않아보이는 사례가 너무 많았지만 정황은 이러했다. 혁련씨는 북위의 탁발(拓跋)씨들에게 괴멸당하여 복속되었고, 우문씨는 탁발씨의 위나라를 멸하여 북주를 세웠으나 양견(楊堅)에게 찬탈당하여 복속되다가 후일 양광(楊廣)을 제거하고 나라를 허(許)로 재건하였으나 1년 밖에 안되어 괴멸되었다. 반면 북주의 외척 집안인 독고씨가 신라 말엽부터 이주한 것으로 보자면 우문씨 설이 더욱 유력하다고 봐야 할 듯 싶다. 즉 괴멸당한 우문씨 일부가 당나라의 보호를 받기도 했으며 이들 중 하나가 일본으로 건너갔을 확률이 매우 높아보인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단서가 된다.
사실 텐지(天智) 천황의 실제 출생연도가 614년이었고, 죠메이(舒明) 천황과 거리가 매우 멀었으며 중국의 모든 문물을 수용할 정도로 열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대는 처음부터 붉은 색을 중요시했고, 훗날 사가(嵯峨) 텐노에 의해 축출되어 헤이케를 형성하여 그 명성을 계속 유지한 상태이다. 지금까지의 천황가는 미나모토 계통에 속한 오무로(大室)씨가 다스리는 상태이므로 처음부터 겐지의 세상이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헤이케는 백제계가 아닌 우문씨 계통의 일본 성씨라는 것이다.
장한식의 저서인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
애신각라(愛新覺羅) 문중은 전에 공친왕이 언급했듯이,유길만의 "이순신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기록된 대로 모용(慕容) 문중에서 파생된 가문이다.
(원나라는 원씨로 바꾼 탁발선비족의 북위의 속민이던 몽골족이 북위를 재건한다는 의미에서 원이라 했다)
물론 모용문중은 고구려와 맞먹을 정도로 뛰어난 제철 기술을 지녔고, 광대한 초원을 누벼 온 황제 헌원씨의 후예이다. 이들은 춘추전국시대 연 왕실의 후예로 동호에 숨어들어 도읍 수복을 꾀했으며 서진(西晉)시대가 시작될 무렵에 도교를 받아들이기 시작, 이를 토대로 금덕(金德)을 숭상하여 흰 깃발을 이끌고 진(晉)나라를 침공한다.
서진(西晉) 시대가 끝난 뒤, 5호(흉노, 선비, 갈, 저, 강)들이 제각기 나라를 세우는데 모용문중 역시 자신들이 수복한 도읍인 계(북경)와 근거지인 용성(龍城 : 요녕성 조양)을 토대로 연나라를 제건했는데 고구려와 검은 깃발의 전진(前秦)에게 망하고 비수대전 뒤 다시 궐기하여 연나라를 또 재건한다. 그러나 노란 깃발의 탁발(拓跋) 문중과 고구려에게 또 망가지고 말았다. 이 와중에 동쪽으로 망명한 모용문중의 일부가 있는데 바로 신라의 김(金)씨 임금과 미나모토(源) 가문, 텐무(天武) 천황 계통의 천황가들로 이들이 숭상하는 색이 곧 흰 색, 즉 금덕을 상징하는 색이다.
미나모토 계열의 무가들은 흰색 깃발을 숭상했고, 흰색의 일본어 시로(しろ)는 신라왕, 즉 모용선비의 후손인 김씨 임금들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신라계 천황의 치세 때 흰색 제비를 길조로 여겼는데 역시 자신들의 옛 조국인 연(燕)나라를 존경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가 고려에게 망한 뒤, 그 일부인 권(權)씨가 망명하여 세운 금(金)나라도 흰색을 숭상했고, 청조를 세운 우리 애신각라 문중의 숨겨진 의미는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 "김씨 문중"이었다. 물론 미나모토 가문은 아시카가(足利) 장군가와 도쿠가와(德川) 장군가를 배출한 집안인데 도쿠가와 가의 에도 막부가 번벌(藩閥)에 의해, 청조가 손문(孫文)의 혁명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왔다.
이러한 사실들과는 달리~
이들 미나모토 씨(源氏)는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북위를 세우고 원(元)씨로 바꾼 북위왕실 탁발씨의 일파 독발씨의 후예(북위의 왕이 (源氏)로 사성,성씨의 단성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는 북위의 효문제때~고구려태왕이 돌아가시면 모후와 함께 바닥에 돗자리깔고 통곡했으며,바람난 황후로 골치썩이다 목숨을 살려줬으나,자신의 사후 국정이 염려스러워 측근을 통해 자신이 죽기직전 황후를 죽이라고 명함,북위의 정권을 좌지우지한것은 고구려인~천자는 천후(후는 왕후장상의 그 후로서,천왕의 아래계급이고,천자는 천후중 가장 아래이며~태왕은 천왕의 주인이므로,동이족 최고의 호칭,따라서,중국사를 보면 흉노족 한왕이나 선비족 대선우라는 당왕은 천군을 자처하고,옥황상제는 상제,또는 대제라고 함,근세조선의 왕은 자신을 황천(번의 주인이며,중화의 하늘인 皇天)이라 칭하고,신하는 상이라고 부름)
(어쨌든 왜 또한 숙신계인 선비족이며~,모용이든 탁발이든,신라계이며,몽골족과 혈연적 친연성을 강조하는 한국인보다 더욱 일본은 몽골과 친연성을 가지고 있음~
중국에서 흔히 왜를 지칭하는 부상은 바로 산해경의 그 동이의 신목인 조선의 신단수~
명사에서나 중국의 무협지에서 그 왜국이라는 부상은 해남너머 동남아에 있는것으로 자주 표현되며,동남아의 습속과 명치유신전 왜의 풍속은 상당히 유사함~ )

오무로 토라노스케(大室寅之祐)는 메이지(明治) 천황의 실제 이름으로 지금까지 알려져왔던 무츠히토(睦仁) 친왕은 메이지 천황이 아니었고, 그는 고메이(孝明) 천황과 함께 살해당했다.(일본에서 폭로한 명치천황(메이지유신)의 실체-가짜 천황가문)
중국 학계의 냉정한 해석"실제 왜구의 상당수는 해금령을 어기고 일본에 거점을 마련한 뒤 교역을 진행했던 중국인 출신""왜구는 당시 자본주의 싹을 키웠던 교역가"
중국 안후이(安徽)성에 일본인들이 王直(휘주(徽州: 安徽省) 출생)의 묘 앞에 세운 '왜구 출신 중국인'의 비석이 있으나,중국인이 파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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