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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Re:Re:남원 양씨와 육량(陸梁)

작성자신나 (충장공파 종손)|작성시간18.12.12|조회수69 목록 댓글 0

삼성신화 (三姓神話)

작성자:working poor


제주의 옛명칭은 도이(島夷), 동영주(東瀛州), 섭라(涉羅), 탐모라(眈牟羅), 탁라(托羅) 등으로 불리워져 왔다.
이들 명칭중 '동영주'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섬나라' 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개벽신화인 3성(三姓)신화에 의하면 태고에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 라고하는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현재의 삼성혈) 이라는 땅 속에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살고 있었다.
이들 삼신인들은 '벽랑국(碧浪國)'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등을 갖고 목함을 타고 제주도 동쪽해상으로 들어온 삼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렸다.
이때부터 이들은 오곡의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살기 시작했다.

그후 '고을나'의 15대 후손 3형제 (후, 청, 계)가 당시 한국의 고대왕조의 하나인 '신라'(B.C 57~A.D 935)에 입조(入朝)하여 '탐라'(제주도의 옛명칭) 라는 국호를 갖게 되었고, 또 이때부터 '탐라'는 '신라'를 섬기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탐라국은 고구려, 백제 및 신라로 분열된 삼국시대에는 이들 나라들과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이러한 관계는 그후 고려 시대에도 계속되면서 탐라국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의 맥을 이어왔다.
1105년에는 고려의 행정구역인 탐라군으로 바뀌었으나, 왕자의 지위는 그대로 존속되어 실질적인 탐라의 통치자 역활을 하였다.


첨부파일1스크랩 원문 : 제주정보

고, 양, 부의 성씨로 보아 제주도 삼성의 기원은 고구려로 보이고 신라에 입조한 시기는 통일신라 이후인것으로 보이고
제주에서 발견되는 유물로는 북방유물 즉 고구려 유물이고
화살을 쏘았다는 1도동 2도동 3도동의 설화도 활을 중요시하는 고구려계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남에서 배를 타고 한라산을 보면서 항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라입조는 통일신라 이후로 보임
신라의 역사기록 자체가 고구려보다 길게 잡은 것도 믿기 어렵고

세계적으로보면 제주도는 아주작은 섬입니다..
거기에 나라가 있었다 하더라도 짧은 기간은 우연히 존재했을수 있겠지만, 천년가까이 나라를 유지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네요.나라가 유지되려면 일본열도 전체의 크기 정도는 되야 가능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따라서 탐라국은 절대 제주도가 아닐거라고 생각되어 집니다..이상은 양가로서 더큰 섬을 찾아달라는 의미로 의견제시했습니다.(자존심상함 ㅋ)

탐라가 제주도란건 이치적으로 택도없지요~일본열도,호주,아무리 못해도 타이완 섬 정도는 돼야 되는대 말이죠..가만, 대만도 너무 작내요...제주도 보다는 크지만~

삼성이 벽랑국 공주....(동해로부터 온)를 신부로 맞이했다는 ㄷㅔ 벽랑국이 어디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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