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에서 유전을 발견한 사연
문학산에서 유전을 발견한 사연
“밭에 웅덩이 파놓고 물 위에 뜬 기름을 연료로 썼어.”
“우물에 기름이 둥둥 떠서 후∼ 불어서 물을 마셨어.”
“옆집 할머니도 뒷집 아저씨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50년 동안 오염된 문학산
2000년 10월, 문학산(文鶴山)에서 기름이 난다는 소식에 인천이 떠들썩했다. 포클레인으로 밭을 팠고 주민들은 앞 다퉈 증언에 나섰다. 문학산 위 미군 유류저장탱크들이 있었는데 기름이 흘러내려 옥골(연수구 옥련동)과 학골(미추홀구 학익동) 수십만 평 땅이 오염됐다. 문학산 토양오염 관련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환경부까지 나서 조사단을 꾸려 2년여 토양조사를 했다. 민방위 교육장용으로 지자체가 마련했던 땅 100여 평을 정화하고 문학산 유전(油田) 이야기는 사람들 기억에서 잊혔다.
“경기장 공사 중단으로 아시안게임이 차질이 빚어지면 환경단체가 책임질 거냐?”
“아파트값 떨어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오염정화공사로 휴교하면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해요?”
2012년 10월, 문학산 유전(油田)은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수원과 인천을 연결했던 협궤열차노선을 지하화하는 과정에 문학산 구간에서 유류오염이 또 확인된 것이다. 학교가 코앞인 지하철 공사현장에선 기름 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공사를 강행하다가 인천녹색연합이 밝혀냈다. 지하철공사는 1년 넘게 중단됐다. 막대한 정화비용, 아파트분양 문제와 얽힌 탓에 주민들과 재개발조합은 토양오염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문학산 기슭 2014 인천아시안게임 사격경기장 공사현장에서도 유류오염 징후가 있었지만 서둘러 토양을 파내버렸다.
송도신도시와 인천항 매립으로 지금은 제법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문학산은 원래 바닷가였다. 백제 사신들이 중국으로 출항하던 ‘능허대(凌虛臺)’가 바로 앞에 있다.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문학산에 유류저장시설 수십 개가 들어섰다. 공식 확인된 것만 최소 24개다. 유조선에 파이프로 문학산 위 저장탱크까지 끌어올린 기름을 다시 철길 따라 파이프로 전국 미군기지에 공급했다. 탱크와 파이프에서 샌 기름은 50년 넘게 문학산을 오염시켰다. 지하철공사현장, 도시재개발부지, 학교운동장, 전철역과 도로부지같이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확인된 것만 문학산 3분의1 가량이다. 장비 진입이 어려운 산꼭대기는 전체 정밀조사가 쉽지 않았고 산 아래 건물이 들어선 자리도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땅속 15미터 깊이까지 유류오염이 확인돼 암반 사이로 기름이 흘러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지하수 관정에서는 여전히 기름띠가 보인다. 지하수를 따라 오염이 확산되거나 추가 오염이 확인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 우물은 폐쇄됐고 오염정화는 진행형이다.
미군기지 오염 끝장판
2017년 10월, 환경부는 반환 예정인 부평미군기지의 환경조사 결과를 전격 발표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이옥신 농도가 무려 1만347 피코그램(pg-TEQ/g)로 밝혀졌다. 피코그램(pg)은 1조분의 1그램, 티이큐(TEQ)는 독성등가환산농도(Toxicity EQuivalency)를 뜻한다. 200가지 넘는 다이옥신 가운데 독성이 가장 높은 독성을 1로 두고, 여기에 다른 다이옥신 물질의 독성 값을 환산해 독성을 계산한 것이다.
미군기지 내 땅 속에 고엽제와 폴리염화비페닐(PCBs)을 묻어 버린 의혹이 모두 사실이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비슷한 오염 사례를 찾기 어려운 고농도 다이옥신 오염이다. 다이옥신은 인류가 만든 물질 가운데 목숨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독성물질이며 1급 발암물질이다. 부평미군기지 가운데 다이옥신이 고농도로 확인된 지역은 ‘미군물자재활용 유통센터(DRMO)’가 있던 곳이다. 주한미군 폐품처리장이다. 이곳 토양에서 다이옥신 말고도 벤젠, 크실렌, 납, 비소, 카드뮴, 6가 크롬, 수은 같은 맹독성 1급 발암물질들도 많은 양이 나왔다.
2011년 5월, 경북 칠곡 미군기지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한 퇴역군인 증언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이곳 고엽제 드럼통을 파내 어딘가에서 처리했는데 그곳이 부평 폐품처리장(DRMO)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시 불똥은 인천으로 튀었다. 부평미군기지는 도시 한복판 아파트 밀집 지역이다.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처리장의 존재와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1987년부터 3년 동안 부평폐품처리장(DRMO)에서 폴리염화비페닐 448드럼을 처리했다.’
‘캠프 캐럴에서 오염 흙 100톤을 가져와 처리했다.’
‘부평미군기지 토양의 4.7퍼센트는 기름(TPH)이다.’
미육군공병단 보고서와 미공군 대위 논문에는 부평처리장(DRMO)의 오염 심각성을 추측하기에 충분했다. 폴리염화비페닐(PCBs)는 1급 발암물질이다. 1970년대 세계에서 취급 금지한 물질이다.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이옥신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평미군기지에서 ‘고엽제를 흘려보내는 것을 봤다’, ‘배터리를 파묻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미군기지 내부 공동조사와 주한미군처리를 요구했다. 부평구가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주변지역을 조사했는데 처리장 담벼락에서 우리나라 평균치에 24배 넘는 다이옥신이 나왔다. 주변지역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시민사회와 지자체는 환경부에 주변지역 정밀조사와 반환협상 시 기지 내부에 다이옥신을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미군기지 반환논의가 시작되면 소파(SOFA,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에 의해 환경부는 주한미군과 공동으로 환경조사와 평가를 진행한다. 그 뒤 반환이 확정되면 국방부가 주한미군으로 부지를 넘겨받고 오염을 정화한 뒤 지방자치단체 같은 곳에 매각한다. 지금까지 반환하기 전 미군기지 오염을 정화한 사례가 없다. 2019년 4월, 현재 국방부는 부평미군기지 다이옥신을 비롯한 복합오염정화를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불평등조약인 소파에 들어있는 ‘인간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알려진 오염’(KISE) 규정을 적용해 부평미군기지 다이옥신 오염은 미군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쉽지 않다.
다이옥신 정화 첫 사례
토양이 오염되면 오염물질에 따라 세척과 세정, 경작, 열처리 같은 방법으로 정화한다. 세척과 세정은 계면활성제나 세정제로 토양에 붙어 있는 중금속 오염물질을 씻어 내거나 용해시켜 제거하는 방법이다. 경작은 오염된 토양을 미생물로 정화하는 방식으로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때맞춰 오염토양을 갈아엎는 과정을 반복한다. 열처리는 오염토양에 열을 가해 오염물질을 분리하거나 태워 제거하는 방법이다. 주로 유류오염에 적용한다. 오염확산방지, 토양복원을 위해 오염정화는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오염부지 안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토양오염이 확인되면 보통 오염토양을 파내서 정화하는데 시설물 탓에 땅파기가 어려울 때 세제나 공기를 주입한 뒤 오염물질이 포함된 지하수나 공기를 뽑아내 지중정화(地中淨化)를 시행하기도 한다. 정화가 곤란한 공유지에서는 오염 확산 방지, 인체접촉 차단 같은 위해성관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다이옥신은 토양에 잘 달라붙어 물에 거의 녹지 않는다. 미생물에 의한 다이옥신 분해가 학계에 보고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오염정화에 적용한 사례는 없다. 토양에서 다이옥신을 분리하려면 500도 넘는 고온으로 가열해야 한다. 일명 열탈착이다. 킬른(kiln)이라는 가마에 오염토양을 넣고 가열해서 다이옥신을 분리한 뒤 1200도 넘는 온도에서 태워야 완전히 분해된다. 부평미군기지 토양은 다이옥신으로만 오염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척이나 세정과정을 추가해야 한다. 다이옥신 오염토양을 정화한 사례가 없고 정화 기준도 없는 탓에 파일럿테스트(실증실험)를 거쳐 정화방법과 정화목표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세제 사용은 또 다른 오염을 유발시켜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화보다 그냥 놔두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정화가 끝난 뒤에도 모니터링은 계속해야 한다.’
문학산 오염정화는 50여 년 전에 일어난 오염을 국가가 조사하고 오염을 정화하는 첫 사례다. 냄새가 많이 날 뿐 아니라 제법 오염수치가 높은데 환경부 조사로도 그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지 못했다. 유류가 자연 상태에서 어떤 물질로 전환되는지 기초연구와 오염물질에 대한 전체 조사연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전국 1만2천 개가 넘는 주유소가 있다. 크고 작은 토양지하수 기름 오염문제는 발생했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수많은 공장과 소각시설 주변 토양은 다이옥신으로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부평미군기지 다이옥신을 정화하면 정화방법과 정화기준이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오염정화는 오염물질을 100퍼센트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농도를 법적 기준치 아래로 낮추는 것일 뿐이다. 물이나 공기와 달리 토양 오염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 더디지만 빗물과 지하수를 따라 확산되고 토양마다 성분도 달라 오염조사, 정화와 관리가 어렵다. 땅과 토양은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다. 사람을 위한 법 기준을 다른 생명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4 : 400, 오염정화와 오염관리
폐기물관리법이 시행되기 전 쓰레기를 묻었던 비위생쓰레기매립장이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분리수거와 재활용이 안 된 생활쓰레기뿐 아니라 산업폐기물까지 함께 묻었다. 비위생매립장이었던 청라가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가 올라갔다. 동양제철화학 공장부지와 폐석회를 쌓았던 곳에서도 아파트 공사를 시작했다. 인천의 또 다른 쓰레기매립장이었던 송도매립지에는 테마파크를 만들겠다고 한다.
미국은 러브캐널사건을 계기로 400여 종 화학물질을 토양오염물질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오염정화보다 관리개념을 적용한다. 부평미군기지의 다이옥신 오염 논란 뒤 환경부는 다이옥신을 비롯한 3종을 토양오염물질로 추가 지정했다. 현재 우리나라 토양환경보전법에서 토양오염물질은 24종이다. 2015년 부평미군기지반환을 위한 한미공동환경조사를 시작할 때 주한미군은 과거 미군 부평폐기물처리장에서 처리한 폐기물들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국내 토양환경보전법에서 규정한 21개 토양오염물질과 다이옥신만 조사했을 뿐이다. 반환된 부평미군기지 대부분은 공원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발 딛고 서 있는 땅속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땅 오염을 되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미래세대에게 대답할 말을 준비해야 한다.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이다. 2004년부터 15년 동안 환경운동에 몸담았다. 늘 환경현장에서 대안을 찾아왔다.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생태환경분과장, 인천시 습지보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 섬 생태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이 글은 생태환경잡지 <작은것이 아름답다> 266호 특집 ‘땅’ 꼭지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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