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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성이 품고 있는 처절한 역사>

작성자신나 (충장공파 종손)양형식|작성시간19.10.31|조회수90 목록 댓글 0

<남원성이 품고 있는 처절한 역사>
본방사수 / 11월 5일(화) 저녁 8시 55분

(잊혀진 전쟁 1597 남원성 전투)
5만 7천의 외군과 대적한
4천여명의 조.명 연합군,
그리고
마지막은 80년 광주도청 사수와 같은 선량한 남원의 백성들... 모두 다 전사하는 한 맺힌 역사...

“임진/정유왜란과 남원”

역사는 기억하는데로 움직인다.
일본의 침략으로 벌어진 7년 전쟁
정유재란丁酉再亂

정유재란의 최대 격전지 전북 남원읍성
전북 남원에서는 뭔 일이 있었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라도는 모두 남김없이 한번에 다 처라

한꺼번에 다 쓸어 버리라는....

그리고
참혹한 역사의 흔적, 교토의 코무덤.
침략에 맞서 정도를 지켰던 불굴의 항일전쟁!
----------☆☆☆☆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蕪瑚南 是無國家)’
‘만일 전라도가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다’ 그대로 였다.

남원성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동충동)
문화재 지정[남원읍성]
사적 제298호(1982.11.03 지정)

조선시대 왜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남원시 동충동에 있다. 본래 남원성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691년(신문왕 11) 쌓은 성이다. 현재의 것은 1597년 선조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리하여 크게 쌓은 것이다. 군사뿐만 아니라 행정 기능도 담당하는 성으로 일반적인 성의 양식과 달리 성곽이 장방형을 띠고 있다. 성곽의 둘레는 2.4km에 달하고, 성벽의 평균 높이가 4m이다. 사방에 성문이 있었고 그 중 남문이 가장 컸다. 성내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남원시 향교동에 만인의총이 있는데,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의해 전사한 군인과 민간인의 무덤이다. 남원성은 사적 제298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토탈관광 http://tour.jb.go.kr/index.do
남원문화관광 http://www.namwon.go.kr/tou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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