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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했던 남원성의 혈전 - 프롤로그

작성자신나 (충장공파 종손)양형식|작성시간20.02.22|조회수39 목록 댓글 0

처절했던 남원성의 혈전 - 프롤로그




1597년 정유년 7월 15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참패를 당하며 붕괴합니다.
이로서 조선의 서해 해상방어선은 그대로 소멸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원래 히데요시가 계획했던 수륙병진정책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전라도의 방패역할을 하던 조선수군이 전멸하자 조선조정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원래 수군의 해상방어선차단을 전제로 했던 지금까지의 방어전략이 무용지물이 되버렸기 때문이었죠

그 방어 전략이란 왜군의 경상도 북부로의 진출은 김응서와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 주력이 방어하고
전라도로 가는 왜군의 해상 보급은 수군이 차단하고
전라도로 가는 통로에 위치하는 마을등은 모두 청야전술을 펼치며 백성과 군을 근처 산성에 집결시켜 방어하면
하나하나 모두 함락시키기 어려울 뿐더러 왜군의 희생도 커지고
그냥 통과해갈때는 뒤에 남아있는 산성의 군사들이 내려와 육상보급로마저 차단해린다는 전략이었거든요
그러면 결국 보급이 끊긴 왜군이 후퇴할수밖에 없을거라는 착안이었지요

하지만 이 전력의 대전제인 수군이 사라지면서 왜군은 육상보급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도리어 경상도 북부에 주둔하던 김응서와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은
뒤에 남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왜군에게 발목을 잡혀 전라도구원이 힘들게 되버렸고
길목에 있던 대부분의 산성들 역시 함락 시켜도 되고 안시켜도 되는 수준으로 전략적 가치가 크게 떨어져버리게 됩니다...
이제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앞에는 지방관들이 자체적으로 이끄는 소규모 부대들 밖에 남지 않게 되어 버렸죠.

선조 90권, 30년(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7월 22일(신해) 3번째기사



선조 : 어이 신하들 뭐 대책 없어?


유성룡 : 지금 이 상황에 무슨 대책이 있겠어요 이제 시망인거죠...


선조 : 야이 ㅅㅂ 지금 그걸 말이라고해? 이 무능한 놈들아!
그러길래 내가 한산도만 똻 지키면 된댔잖아!!
그런데 왜 출진하라고 ㅈㄹ 해서 이 모양을 만들어놔!!
아오 저놈의 하늘은 뭐 일을 이따구로 진행되게 만드냐!!


유성룡 : ...................
(하늘이 문제가 아니고 니가 문제야...
순신이가 무리해 싸울것 없이 한산도만 잘 지키면 된다니까
니가 나가 싸우라고 ㅈㄹ하고 반죽여서 쫓아냈잖아!!!
근데 이제와서 왠 하늘드립이야?!!)

이런 찬스를 맞게된 왜군이 가만히 있을리 없죠
왜군 총대장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군을 좌우군으로 나눈후 전라도방면으로의 총공격을 지시합니다.
그리하여.....

우군 총대장 : 모리 히데모토
지휘관 :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나베시마 나오시게, 초소카베 모토치카
병력 : 64000
작전계획에 따른 진격로 : 양산->밀양->창녕->합천->안의->진안->전주

좌군 총대장 : 우키타 히데이에
지휘관 : 시마즈 요시히로, 하치스카 이에마사, 고니시 유키나가등
병력 : 50000
작전계획에 따른 진격로 : 고성->사천->하동->구례->남원->전주

수군총대장 : 도도 다카토라
지휘관 :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이케다 히데우시, 구루지마 미치후사
병력 : 7200
작전계획에 따른 진격로 : 해안을 통해 항해하다가 하동에서 상륙하여 좌군에 합류

경상도 방어담당 :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병력 : 20000

이제 임진왜란의 2라운드격인 정유재란의 막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스크랩 원문 : 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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