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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 1597년 8.28일부터의 전주성의 북진은 양동작전

작성자신나 (충장공파 종손)양형식|작성시간20.05.17|조회수55 목록 댓글 0

임진왜란

정유재란 : 1597년 8.28일부터의 전주성의 북진은 양동작전



작성자:황석

백성의전쟁 황석산성 대첩
일본군 전주성에서의 양동작전

8월14일부터 18일까지
황석산성을 공격한 모리데루모도의 우군이 궤멸되자 우기다히데에이는 좌우군을 폐지,
북진과 남진의 동시진행이 불가능하고 전주성의 부상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4개부대로 재편성하고 양동작전을 한다.

-긴급양동북진부대: 가도오와 구로다 15,000명 28일 북진, 구로다는 직산에서 명군과 조우, 청주로 유인,
일본군은 경상도로 간다라고 만천하에 노출
-북진양동본대: 우기다히데이에 우군 나베시마나오시게 좌군 약4만여명 29일 북진 부여/석성까지 북진,
-양동남진부대: 고니시우기나가 14,700명 29일 양동남진 순천에서 축성
-잔류부대 : 깃가와히로이에 :부상자 약3만여명

8월28일부터 9월 16일꺼지 20여일간 전라도는 일본군이 없는 무주공간이 되어
이순신의 조선수군재건과 명량대첩준비가 가능했음
양동작전부대장 우기다가 9,19일 전남보성에 도착해서야 16일의 명량대첩 소식을 접함

긴급북진부대의 조명연합군 유인양동작전으로 조명연합군이 경상도로 따라감 , 울산성전투가 전개됨

전주성의 일본부상자들이 치료를 하고 부상을 회복함 .................경상도로 이동 울산성 전투지원을 함

황석역사역구소장 박선호



조선왕조실록에 분명 황석산성은 왜군에 의해서 점령당했다고 기록했는데요, 무슨 대첩인가요???
난중잡록이나 징비록에서도 조선군 패배로 나오는데, 무슨 대첩인가요? 김해부사 백사림의 뻘짓(도망)으로 잘 저항하던 성은 건잡을 수 없울 정도로 무너져 버려서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보고서에 김해부사 백사림이 항왜(조선군에 투항한 일본군) 사백구 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고 기록했는데요. 그 보고서에서도 황석 산성이 무너졌다고 분명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1910년대에 다시 돌아온 일본인들이 황석산성대첩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렸지요. 그래서 잃어버린 역사가 되었습니다. 1597.8.14일부더 18일까지 5일간 노약자. 부녀자, 농민,사냥꾼 등 7000여명과 일본우군 모리데루모도의 75,300과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완벽하게 궤멸을 당했지요. 백성의 전쟁 황석산성대첩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황석산성대첩 이 없었다면 이순신의 명량대첩이 있을 수 없고 나라 또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300년이 지난 역사적 복수로 황석산성대첩 은 잃어버린 역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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