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바쁘더라도 자녀들을 위해서 일본과 중국의 야욕을 바로 알아야한다.
우리 민족이 대대로 행해오던 제천의식, 도천(禱天) 무천(舞天) 제천(祭天) 교천(郊天) 영고(迎鼓) 동맹(東盟)등은 본래 "하느님에 대한 제사"에서 유래한 문화이다.
유교의 『서경』이나 『시경』이 상제님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유교의 원형, 원시 유교는 상제님에게서 천명을 받아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이 상제문화가 희석되면서 성리학이 나오고, 그러면서 유교가 망한다. 사실은 조선도 그 때문에 망해버린 거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는 理를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존재론적 天으로 한정시키고, 그러한 천리(天理)가 인성(人性)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아 수양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늘을 공경하며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 사라짐으로써’ 주재자로서의 上帝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성리학은 점점 공리공담(空理空談)에 빠지게 되었고, 이 고착된 이념의 둑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산 정약용선생은 간절히 상제님을 외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산은 ‘지천知天, 상제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상제님이 내려주신 천명을 깨닫는 것’,‘사천事天, 상제님을 두려워고 공경하며 섬기는 것’, 그리고‘격천格天, 올바른 예법과 정성으로 상제님께 제사 드리는 것’의 방법으로 상제님을 섬길 것을 주장하였다.
유, 불, 선, 기독교의 뿌리종교『신교(神敎)』
1) 유교의 뿌리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하였다. '나는 기술을 한 것이지 창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공자는 누구의 사상을 기술했느냐, 중용 30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 ', 즉 중니(공자)는 요순의 가르침을 기술했으며, 문왕과 무왕의 도를 법으로 삼아서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요순의 도를 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고손자로서, 황제헌원이 현효를 낳고, 현효가 제곡고신을 낳았다. 이 제곡고신의 아들이 바로 요임금이다.
황제헌원은 사기 13권을 보면, '黃帝生於白民 自屬東夷'라 해서 동방의 백민에서 출생을 했다고 되어있다. 환단고기에 보면, 황제헌원은 배달국 8대 안부련 환웅 때 이복형인 신농씨와 함께 동이족에서 분파해 오늘날 중화족의 정신적 시조가 된다.
순임금에 대해서는 맹자가 말하기를 '舜生於諸風 遊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즉 순舜은 제풍諸風에서 태어나 부하負夏에서 살다 명조鳴條에서 죽었으니 동이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나오는 지명인 제풍, 부하, 명조는 모두 동이족의 땅이었다.
서경에 '東巡望秩 肆覲東后'라 해서,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사지내고 '동방의 임금을 뵈었다'는 구절이 있다. 사근동후(肆覲東后)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후(東后)는 단군왕검을 말한다. 즉 고조선의 제후 순은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을 보면, "나(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지역의 산동성 일대에서 살던, 흰옷을 입고 백색을 숭상한 은족(殷族)이 전형적인 동방조선족 계열의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중국학자 서량지나 임혜상도 말하고 있다.
2) 불교의 뿌리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으로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만든 불교를 최초의 불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 초대 구류손 부처, 2대 구나함모니 부처, 3대 가섭 부처가 있었다. 석가 부처는 네번째 부처이다. 그런데 이 전불(前佛)시대의 유적이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다.
◆ <삼국유사: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그의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말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처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 여기서 일곱 처는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黃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천왕사(天王寺), 담엄사(曇嚴寺)를 가리킨다.
◆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과 제가전기(諸家傳記)에 모두 이르기를 "신라의 월성동용궁(月城東龍宮) 남쪽에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으니 그 곳은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본사(本師) 석가불은 제4존불(尊佛)이며 가섭불은 제3존야(第三尊也)라고 되어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석가불 이전 가섭불(迦葉佛)시대에 이곳이 불국사(佛國寺)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7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大伽藍) 터이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 있다.
하나 더 든다면 화엄경에 바다 건너의 동방나라가 불교의 종주국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화엄경>에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들이 그 산 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고, 불교의 대웅전(大雄殿)은 본디 환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시던 대시전(大始殿)이었다.'대웅(大雄)'이란 뜻은 큰 스승이란 뜻이다. '환웅(桓雄)은 광명의 스승'이란 뜻이다.
太白逸史(태백일사)의 三神五帝本紀(삼신오제본기)중에서 五帝說(오제설)에 '환웅을 일러 대웅(大雄)'이라 하였으니 불가佛家의 대웅전(大雄殿)이란 본래 환웅전의 별칭으로 환웅을 모셨던 곳이다. 그러므로 대웅전은 본래 우리나라 밖에는 없는 것으로 아주 극소수 존재하는 외국의 대웅전은 근대에 이르러 우리 한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역사가 왜곡되고 신교(神敎)가 쇠퇴하면서 대웅전의 환웅 신상은 점점 부처상으로 바뀌었으니, 현대까지 산신각에 주신으로 모셔져 있던 호랑이 등에 올라 탄 단군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신상마저 부처상에 자리를 내주고 구석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환웅전이 대웅전이 된 정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유서깊은 사찰에는 아직도 대웅전을 제외하고도 칠성각, 산신각, 삼성각, 명부전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우리 신교(神敎)의 흔적이라 하겠다.
3) 도교(道敎)의 뿌리
일반적으로 중국의 도교는 황노교(黃老敎)라고 한다. 황제는 그 혈통이 우리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갔다. 갈홍(葛弘) {포박자(抱朴子)}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
황제가 청구靑丘에 와서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렸다.
부연하자면 일찍이 황제는 14대 자오지 천황(치우천황;서기전 2707-2599) 때, 배달국의 수도인 청구(靑邱: 오늘날의 요령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삼청궁(三淸宮)에 들러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선사(紫府仙師)를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음부경}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을 전수받았다. 이것은 황제 학문의 맥 자체가 우리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계미(B.C. 518년)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의 성(姓)은 한(韓)이요,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先祖)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 이것은 노자 역시 황제와 더불어 동이족이며, 노자의 성은 원래 한씨로서 李耳의 李는 木의 子, 즉 東方의 子란 뜻이다. 이렇게 도교의 원뿌리도 우리나라 신교(神敎)에서 나왔다.
4) 기독교의 뿌리
슈메르 연구학자인 S.N 크래머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는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에서 지적했듯이, 서양에 있어서 최고(最古)의 문명은 슈메르 문명이다. 이 슈메르 문명은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삼성기전 하편(三聖記全 下篇)을 보면 환국에는 12환국이 있었는데, 그 중 바이칼호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수밀이국(須密爾國, Sumer)과 우루국(虞婁國, Ur)이었다. 수밀이국과 우루국 사람들이 알타이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가서 문명을 일으켰다.
당시 슈메르 민족이 사용하던 설형문자는 태호복희씨가 사용했던 8괘와 흡사하며, 언어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였다고 한다.
서양 유대교 문화의 뿌리되는 아브라함의 고향은 바로 슈메르 문명이 자리잡고 있던 갈대아 우르(Ur)이다. 그가 아버지 데라를 따라 서기전 1950년경 우르를 떠나 유프라테스 강의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이주하는 과정에서, '강을 넘어온 사람'의 뜻으로 헤브루인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또 유대족이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인과 근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서양의 모체 문명의 뿌리는 바로 우리 환국문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슈메르의 종교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이라는 제천단 유적들은, 신교(神敎)의 삼신신앙과 제천문화가 환국의 후예인 슈메르인들의 삶과 신앙의식 속에서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로 슈메르의 지구랏이다. 이처럼 서양의 종교도 그 원뿌리를 신교(神敎)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모세의 5경인 구약의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 쓰여진 제사음식.性행위.종족번식.사회규율 등의 율법은 그 제정 유래 및 각 法條의 형식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함무라비法과 같다고 한다.
함무라비法의 기원은 바로 인류최초의 법전인 수메르법전이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거의 같다.
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말하기를 풍류라 한다.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 三敎 接化群生
종교를 일으킨 연원은 선사[仙家史書]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유 불 선 삼교를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집에 들어온 즉 효도하고 나아간 즉 나라에 충성하니, 그것은 노사구(공자)의 교지(敎旨)와 같다.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하염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교지와 같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석가)의 교화(敎化)와 같다.
불교,유교,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 우리 민족의 고유 종교와 사상은 바로 신교(神敎)이다. 신교(神敎)는 본래 우리민족의 국교였다. 신교(神敎)는 이신설교(以神說敎)의 준말로써 신의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으로 신교(神敎)문화는 한마디로 신(神)과의 교감과 제사문화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우주의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바로 신교(神敎)이다. 이 신교(神敎)가 왜 중요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바로 이 신교(神敎)가 유불선(儒佛仙)의 모체종교라는 점이다. 유불선이라는 종교가 신교(神敎)에서 가지를 쳐 뻗어나갔던 것이다.
신교(神敎)의 기원은 초대 환인(桓仁)께서 천산(天山)에서 삼신상제께 천제(天祭)를 지내면서부터 비롯한다. 그 때는 제정일치(祭政一治) 시대로서 환인(桓仁) 자신이 정치적인 군장이면서 프리스트(Priest-성직자)의 역할을 동시에 했다.
환인(桓仁)께서는 전 백성들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아 통치를 했는데, 그 구심점이 바로 삼신상제(三神上帝)님께 드리는 천제(天祭)였다. 천제(天祭)는 3월 16일과 10월 3일 두번에 걸쳐서 지냈다.
옛 부터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내던 장소는 아사달(阿斯達)이었다.
아사달에서 '아사'라는 말은 최초라는 뜻과 최고라는 뜻이 있다. 또 '달'이란 땅을 뜻한다. 흔히 양달 응달이란 말을 많이 쓴다. 양달과 응달은 양지 바른 땅과 그늘 진 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사달 하면 최고의 땅, 최초의 땅을 가리킨다. 또 아사달은 최초, 최고의 땅으로 수도(首都)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수도가 위치했던 하얼삔, 백두산, 장당경 모두를 아사달이라고 했던 점을 생각하면 된다.
이 아사달에 소도(蘇塗)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천제를 지내는 곳이다. 그래서 아사달은 후세에는 소도(蘇塗)라고도 불렸다. 소도에서 지내는 제사의 대상은 우주의 절대자인 삼신상제였다. 부여에서는 이것을 영고(迎鼓)라고 했다.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성조께서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굉장히 많다. 몇가지 예를 들면, 5세 구을단군 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계해 2년(B.C.2098) 5월 황충(蝗蟲:메뚜기)의 떼가 크게 일어 온통 밭과 들에 가득 찼다. 단제께선 친히 황충이 휩쓸고 간 밭과 들을 둘러보고는 삼신에게 고하여 이를 없애주기를 비니, 며칠사이에 모두 사라졌다.'
6세 달문단군 때에는 '임자 35년(B.C.2049) 모든 한(汗:지방 통치자)들을 상춘(常春)에 모이게 하여 삼신을 구월산(九月山)에 제사케 하고'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11세 도해단군 때에는'경인 원년(B.C.1891) 단제께서는 오가(五加)에 명을 내려 열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를 설치케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강화도 마니산은 원래는 마니산이 아니라 마리산이다. 마리는 머리(首)를 뜻한다. 초대 단군이 여든여덟살 되던'무오 51년(B.C.2283)에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을 강화도에 보내서 삼랑성을 짓고 마리산에 제천단(祭天檀)을 쌓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강화도 마리산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제천단이다.
동방 한민족의 3대 경전
경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대교라든지 힌두교, 유·불·선, 기독교 등, 동서 각 종교와 지역문화에 고유한 원전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보다 수천 년이나 앞서서 인류 문화의 시원시대를 연 경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우리 동방 한민족의 뿌리역사 시대인 환국, 배달, (고)조선의 삼성조 시대에 만들어진 경전들이 그것이다. 먼저 환국 때 만들어진 우리 한민족 시원문화의 성전聖典, 『천부경天符經』이 있다.
『천부경(天符經)』에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관계에 대한 인성론의 문제가 담겨있고, 배달국의 개창자 배달환웅이 열어주신 우리 한민족의 신관, 신학의 원전『삼일신고三一神誥』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를 통해 내려온 366가지 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덕목을 기록한 내려주신『참전계경(參佺戒經)』 이것이 우리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다.
『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 88쪽을 보면 ‘『천부경(天符經)』’ 의 유래가 나와 있다.
천부경은 “천제환국구전지서야(天帝桓國口傳之書也)”라. 천부경은 환국(桓國)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한 글이다. 환웅천왕의 배달국 때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해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하셨는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신지(神誌)가 남긴 전고비문(篆古碑文)을 보고 작첩(作帖)을 복원해서 傳於世者也라. 세상에 전하게 된 바다.
이런 한민족의 시원경전들은 모두 동방 한민족 고유의 뿌리 문화인『신교(神敎)』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삼신 상제님과 조상 선령신을 모시는 한민족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것이다.
출처 다음카페 한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