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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손등룡기05 왜국(倭國),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작성자양승철문양공후|작성시간21.08.24|조회수30 목록 댓글 0

다음날 아침. 선단은 하동포구에서 곧장 대마도로 향해 출항했다. 선단이 항해하는 뱃길 오른쪽에 돌산도, 왼쪽에 남해도가 장엄한 산세를 자랑하며 우뚝 서 있었다.

“대마도 남섬 이시야네(石屋根)포구에 잠깐 들러 지형을 살피고, 섬 반대쪽 이즈하라(いずはら,厳原) 포구에 기항할 예정입니다. 이즈하라 포구는 대륙과 왜의 공식 무역창구로 번화한 포구입니다.”

대장선 선장 만길이 대마도가 멀리 보이는 해상에 이르자 앞으로의 항해 일정을 대장선의 행수들과 참모들에게 알렸다.

오늘 아침 출항하기 전 선단의 행수들과 참모들 그리고 선장들에게 왕건은 해적들의 대마도 은광 습격 첩보를 포함하여 이번 왜국 항차의 상세한 일정들을 회의를 통해 알려줬다. 그리고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았다.

파격적인 일이었으나 왕건은 선단의 간부들의 공감대와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큰 배가 접안할 수는 없는 작은 포구라, 해적들도 작은 배를 타고 해안에 상륙해야 되겠습니다. 하동포구에서 송악에서 신라 남해안으로 파견된 첩자들에게 해적의 대마도 습격 건에 대해서 신라 서남해안 전체를 뒤져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남원경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모두 저희에게 전달해주어서 일이 한결 수월합니다. 남원경의 정보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첩자들이 정보가 수집 되는대로 빠른 배로 저에게 알려올 것입니다.”

이시야네(石屋根)포구를 둘러보며 송악의 정보책임자인 춘길이 왕건에게 보고했다.

 

이즈하라(いずはら,厳原) 포구에 선단이 기항했다.이즈하라 포구는 제법 큰 항구로 왜 조정의 관리들이 무역분소를 열어 상주하고 있는 곳이다.

“도주(島主)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무역분소의 소장(所長)인 야마모토(山本)가 선단의 대행수인 왕건에게 말했다.

왕건은 왜 말을 능숙하게 구사했으므로 역관(통역사) 없이 직접 일을 처리했다. 왜 말이 탐라 말과 비슷한 점이 많아 왜 말을 익히는 것은 수월했다.

왕건과 야마모토는 대마도주인 소오 이찌로(宗一郞)를 만나러 대마도 정청(政廳)으로 같이 갔다.

극비 사항인 언월도 무역 건만 해도 대단히 중요한 건으로 왜 조정에서도 수시로 진행사항을 보고하라고 대마도에 지시가 내려오고 있어서 중앙정부의 파견관리인 야마모토 뿐만 아니라 대마도주까지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항차는 후쿠오카에 있는 다자이후(太宰府,왜국의 무역대표부)에 가지 말고 카와치(河內,오사카의 옛이름)로 직접 가시오. 야마모토가 카와치까지 같이 갈 것이오.”

대마도주 소오 이찌로(宗一郞)가 말했다. 총기 있게 생긴 젊은이로 대대로 대마도를 지배하고 있는 소오(宗)씨 집안의 수장(首長)이다.

왜국의 모든 대외 무역은 다자이후(太宰府)를 통해서 하게 되어 있으므로 직접 카와치(河內)로 가라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그리고 긴히 드릴 말이 있는데 주위를 물리쳐 주십시오.”

주위를 물리고 대마도주와 야마모토만 남게되자 왕건이 말했다.

“대마도 은광(銀鑛)을 신라구(新羅寇,신라해적)들이 습격하여 약탈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대마도주와 야마모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희 상단에서 해적들의 구체적인 일정은 신라 서남해안을 뒤지며 탐문 중에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만사불여튼튼(有備無患)이라고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대마도 은광(銀鑛)은 왜국에서 유일하게 은(銀)이 생산되는 곳이다.은의 가치는 금의 1/10 정도로 은 열량이 금 한냥인 것이다.

국제무역을 하려면 교역수단으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금 은이므로 왜국에서 대마도 은광(銀鑛)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만일 대마도 은광이 털린다면 우리는 모두 할복(割腹)해야 하고, 소오(宗)씨 가문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것이오. 어찌 하면 좋겠소.”

대마도주 소오 이찌로(宗一郞)가 다급하게 말했다.자칫하면 가문이 망할 위기인 것이다.

“여기 자세하게 표문(表文)을 작성하여 왔습니다. 먼저 조정에 가장 빠른 배를 보내 사정을 알리고 대마도 자체적으로도 방어책을 마련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렇게 합시다.병관(兵官,군사 책임자)과 은광 책임자를 불러 대책을 마련하겠소. 표문이 아주 명문장이오. 대행수는 학자이지 상단에 계실 분이 아닌 듯 하오. 시간이 된다면 나중에 배움을 청해도 되겠소?”

소오 이찌로(宗一郞)가 표문을 살펴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어느새 다급하던 표정을 감추고 품위 있게 자세가 바뀐 것이 그릇이 대마도주를 맡을 만 했다.

“첩보선이 신라에서 이런 비표를 가지고 와서 도주께 추가 정보를 전달할 것입니다. 도주께서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 하지요. 본 섬의 수비 병력은 사실 보잘 것 없소. 나도 본 섬의 실정을 알리고 원병을 요청하는 표문을 같이 조정에 보내도록 하겠소.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면 대행수의 공은 내가 절대 잊지 않겠소.”

“그리고 해적들의 첩자가 이미 대마도에 여럿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첩보를 입수한 것을 첩자들이 절대 모르게 해야할 것입니다. 첩자가 어디까지 침투해 있는지 모르니 도주께서는 절대 보안을 유지해 주십시오.”

“알겠소. 내 측근까지 모두 검증해 보도록 하지요. 교토까지는 먼 길이요. 조심해서 다녀오도록 하시오.”

 

송악상단은 왜국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에 들어 섰다. 여기서 카와치(河內,오사카)까지는 1,000리(약 400km) 물길이다. 통상 여드레(8일) 정도 걸리는 물길인데 섬이 점점이 박혀 있는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는 경관(景觀)이 아주 좋았다.

송악상단의 선장들도 처음 와보는 물길이라 대마도에서 야마모토가 데리고 온 왜국 선장(船長)이 뱃길 안내를 맡았다.

이때 상단을 향해 커다란 배가 빠르게 다가왔다. 격군(格軍,노젓는 병사)이 노를 젓는 군선(軍船)이었다.

“조정에서 빨리 들어오라는 명(命)이시오. 대마도 무역분소장과 대행수는 우리와 같이 갑시다.”

왕건은 능산(能山)일행 10여명을 데리고 목궁과 화살, 그리고 언월도 몇 자루를 챙겨서 군선으로 옮겨 탔다.

 

카와치(오사카)항에 내린 왕건과 야마모토는 조정 관리의 안내를 받아서 왜국의 수도(首都)인 교토(京都)로 들어갔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대행수는 표문의 내용을 폐하께 상세히 아뢰도록 하라.”

의전을 맡은 조정 관리가 왕건을 보고 하명했다.

폐하께 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천황 또는 상황 아니면 둘 다 주렴 안에서 듣고 있을 것이다.

왕건은 높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할듯한 큰 정보들 위주로 간략하게 보고를 했다.

“음,그러한가. 수고했다. 네가 공이 크다.”

주렴 안에서 가느다란 노인의 음성이 들리더니 주렴 사이로 천황과 상황이 나타났다. 상황(上皇)은 천황(天皇)의 아버지인데 머리를 깍고 스님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천황은 20세 남짓한 젊은이인데 깍듯이 상황을 모시고 있었다.

“방금 아뢴 바와 같이 신라구(신라해적)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궁병들의 집중 사격인데, 현재 왜국의 활로는 불가함을 아뢰었습니다. 제가 가져온 목궁 활의 위력을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라. 진시(辰時,오후3시)에 격구장에서 시범을 보이도록 하라.”

 

격구장은 길이가 2리(800미터), 폭이 1리(400미터)정도 되는 넓은 운동장이었다. 격구를 관람하는 전망대에 상황과 천황 그리고 왜 조정의 중신들과 장군들이 앉아 시범을 보고 있었다.

“먼저 멀리 쏘기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남원의 궁수들이 2인1조로 3개조로 나누어 시범을 보였다. 1명은 궁수이고 또 1명은 화살을 주고 방향을 알려주는 보조 역할이었다.

궁수는 양 발에 활을 걸고 가슴 쪽으로 활을 크게 당겨 사각(45도)방향으로 화살을 날렸다. 사거리 200장(약600미터) 조금 넘어 화살이 꽂혔다.

전망대의 단상에서 감탄의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국의 활은 남원의 활보다 2배는 크지만 최대로 쏘아도 40장(120미터)정도 날아가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궁수들은 연거푸 5발을 쏘았다.모두 15발의 화살이 탄착군을 형성하면서 200장(약600미터) 너머의 좁은 지역에 꽂혔다.

이어서 능산이 나서서 60장(약180미터) 거리에 설치된 사람크기의 정사각형 과녁에 화살을 다섯 발 연거푸 쏘았다. 왜국에서는 20장(약60미터)거리에서 쏘는 과녁을 세 배 먼 거리에 옮겨다 놓았는데 동그란 동심원을 여러 개 그려 놓았다.

능산의 화살은 다섯 발 모두 과녁의 정 가운데 원 한 가운데 명중했다.

“신궁(神弓)이다.”

전망대의 단상에서 다시금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능산이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 차례대로 서 있는 다섯 개의 표적에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다섯 개 모두 과녁의 정중앙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꽂혔다.

왕건도 능산의 활솜씨에 속으로 감탄했다.

“참으로 탐나는 무예로다. 활의 성능도 대단하구나. 수고하였다. 교역관(交易官)은 상단이 가져온 활과 화살 모두를 상단이 원하는 가격에 사들이도록 하라. 나무 묘호렌겟교(南無 妙法蓮華經)”

상황(上皇)이 흐믓한 표정으로 치하를 하고 전망대에서 내려갔다. 상황(上皇)의 옆에서 천황(天皇)이 수행했다. 사실상 실권자는 상황인 것이다.

상황(上皇)은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어 현재 왜국 법화종(法華宗)의 수장으로 있다. 그래서 나무 묘호렌겟교(南無 妙法蓮華經)라고 법화종의 염불을 하는 것이다.

 

“나는 대장군 타이라 마사오(平正夫)다. 대마도에 파견할 궁수 천 명과 보병 천 명을 훈련시키고 지휘해줄 수 있겠는가? 이는 천황폐하(天皇陛下)의 하명이니라.”

교역관과 같이 온 왜국장수가 요청 겸 명령을 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고맙다. 폐하께서 군사들을 지휘하려면 직위가 필요할 터이니 대행수를 정이장군(征夷將軍)으로 임명하시겠다고 하명하셨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활은 1자루당 금(金) 열량(약375그램,한냥은 37.5g)씩 총 금 만냥을 받기로 하고,화살은 100발에 금(金) 열량(약375그램)씩 10만발이니까 총 금 만냥을 받기로 하여 총 금(金) 2만냥의 거래가 추가로 성사되었다.

본 거래인 언월도 이천 자루가 총 금 6만량 거래이니 적지 않은 추가 수입이었다.

 

며칠 후 카와치(오사카)항구에 도착한 송악선단에서 언월도 이천 자루와 활 천자루, 화살 십만발의 인도가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가지고 온 교역품들도 후쿠오카의 다자이후(太宰府,왜국의 무역대표부)와 거래할 때보다 곱절이 넘는 가격에 모두 순조롭게 거래되었다. 간만의 교역 기회에 왜국의 귀족들이 서로 나서서 사겠다고 하여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송악상단은 두달 동안 왜국의 특산품들을 싸게 사들여 차곡차곡 선적했고, 왕건은 그사이 능산과 같이 대마도에 데려갈 궁병 천 명과 보병 천 명을 조련했다. 그사이 능산은 왕건의 능력을 보고 감복해서 왕건의 충성스러운 부하가 되었다.

 

“9월 초하루(1일)에 해적들이 습격한다고 합니다.

경로는 예상했던 바와 같이 이시야네(石屋根)포구로 들어와 계곡길로 은광산을 습격할 예정입니다.

해적 총 인원은 7백명이며 큰 배 10척에 나누어 타고 와서 큰 배에 싣고 온 작은 배로 이시야네(石屋根)포구에 상륙할 예정입니다.

대마도 내의 해적 첩자는 은광산에 두 명, 이즈하라에 세 명이 파악되어 현재 감시 중에 있습니다. 본국(倭)에서 원병이 도착하기 전날 모두 잡아들여 심문 후 대마도의 지하감옥에 수감할 것입니다.

송악상단의 첩보망이 계속 연락을 보내주고 있으니 변동사항이 있으면 바로 표문을 보내겠습니다.”

대마도주 소오 이찌로(宗一郞)의 표문이 왜(倭) 조정에 당도했다. 그간 여러 차례 대마도에서 표문이 왔으나 이제 온 표문은 습격날짜까지 파악한 결정적인 정보였다.

 

“9월 초하루면 이제 이십여 일 남짓 남았으니 정이장군(征夷將軍)은 대마도로 바로 출발하도록 하라. 부월(斧鉞)을 하사하니 원정군의 모든 살생권은 이제 정이장군(征夷將軍)에게 있다. 무운장구(武運長久)하기 바란다.”

천황(天皇)의 칙명(勅命)이 내려왔다.

 

왕건은 큰배 30척에 궁병 천명, 보병 천명을 나눠싣고 대마도로 출발했다. 송악의 참모들도 동행했다. 송악상단의 다섯 척 선단은 카와치항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출발한지 열흘 만에 왕건은 대마도의 이즈하라 항구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첩자 다섯 놈은 어제 모두 잡아들여 지하감방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정이장군(征夷將軍)께서 군(軍)을 지휘하시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당연히 대마도의 병력까지 모두 지휘하시면 됩니다.”

대마도주 소오 이찌로(宗一郞)가 살았다는 표정으로 왕건 일행을 환대했다. 이제 품계 상으로도 왕건이 대마도주보다 두 단계나 위인 상전(上典)이다.

 

왕건은 남아 있는 10여일 동안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군을 배치했다. 도선대사에게 배운대로 대마도의 상세한 지형도를 만들고, 지형도를 보며 각 제장(諸將)에게 각각 군령을 내리니 제갈공명이 따로 없었다. 지형에 밝은 대마도군(對馬島軍)의 장교(將校)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이미 이겨놓고 전쟁을 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조심성 많은 송악의 참모들도 이제 마음을 놓는 기색들이었다.

 

송악상단 정보망의 첩보는 한 치의 틀림도 없었다. 습격 예정일 오후가 되자 이시야네(石屋根)포구 앞으로 정체불명의 큰 배 열 척이 들어오고 이어서 작은 배들이 해적무리들을 싣고 해안에 상륙해 왔다.

오백여명의 해적들이 대오를 갖추고 은광으로 향하는 계곡으로 들어섰다. 나름 조심성 있게 첨병을 운용하면서 첨병에게서 안전하다는 신호가 오면 한 구간씩 전진하면서 이윽고 계곡 중간의 넓은 구역에 다다랐다. 대장 인듯한 자가 해적 5백명 전원을 모아놓고 은광 진입시 각자의 임무를 다시 하달하고 조별로 대오를 정돈시켰다.

이때 효시(嚆矢)소리가 날카롭게 나더니, 이내 공중에서 새까맣게 하늘을 덮으며 화살의 비가 해적들을 덮쳤다. 연이어 날아오는 수천발의 화살에 해적들은 속수무책 순식간에 절반 정도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살아남은 해적들은 일제히 해안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좁은 계곡 안으로 화살의 비는 계속 소낙비 같이 날아들고 해적들은 연이어 쓰러져갔다.

“항복해라. 너희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신라말과 당나라 말로 계곡을 뒤흔들며 항복을 종용하는 큰 목소리가 들리자 도주하기를 포기한 해적들은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었다.

 

이때 이시야네(石屋根)포구 앞의 해적선 열 척에는 물에 익숙한 대마도 군사들이 헤엄을 쳐서 배에 기어 올라가 해적선을 장악하고, 이어서 본국(倭)에서 온 함선 이십여 척이 이들에게 접근하여 해적선 선원 이백여 명을 체포하고 해적선 열 척 모두를 나포했다.

 

“대승입니다. 아군은 부상자도 한 명 없습니다. 완벽한 승리입니다.”

대마도주 소오 이찌로(宗一郞)가 흥분하여 왕건에게 말했다.

“대마도주는 전장정리(戰場整理,전쟁터의 시신을 수습하고 병장기를 챙기며 포로를 수습하는 일)를 지휘하고, 해적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신라인과 당나라인을 구분하여 포로 취조단에게 인계하라.”

왕건이 군령(軍令)을 내렸다.

신라 말이나 당나라 말을 할 줄 아는 대마도의 통역관들이 포로들의 취조를 시작했다. 포로 취조 현장에서는 매질이 난무하고 포로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해적들은 당나라인 400여명, 신라인 300여명으로 구성된 다국적 해적단입니다. 배후는 해적들이 굳게 입을 다물어서 캐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해적단을 조직하여 스스로 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마도주 소오 이찌로(宗一郞)가 왕건에게 보고했다.

 

“정이장군(征夷將軍)께서는 천황폐하(天皇陛下)에게서 부월(斧鉞)을 하사받으시어 전장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들을 어찌 처리할지 하명을 내려주시옵소서.”

“군령(軍令)은 추상(秋霜)과 같은 것이다. 해적 칠백명 전원을 이 자리에서 참수(斬首)한다. 수급(首級)은 소금에 절여서 포장하여 노획한 해적선 10척에 실어서 천황폐하(天皇陛下)에게 진상한다. 해적들의 병장기와 갑옷도 남김없이 수습하여 수급과 같이 진상한다. 바로 시행토록 하라.”

왕건은 단호하게 도살령(屠殺領)을 내렸다. 전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으나, 주위의 일동 모두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해적 칠백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이들을 보낸 자가 있다면 반드시 대마도 첩자들과 접촉을 시도할 것이요. 대마도주는 책임지고 이들을 잡도록 하시오.”

“존명(尊命).반드시 잡도록 하겠습니다.”

 

왕건은 개선장군이 되어 카와치항을 거쳐서 교토로 들어갔다.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환영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천황은 개선장군 왕건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임명하고 10만석의 영지를 하사했다. 왜국의 다이묘(大名,왜국의 영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왕건이 신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천황은 왜국에서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시켜 주고 은 100만량을 하사하였다. 천황의 칙서를 가지고 대마도에 가면 대마도주가 은 100만량을 내어줄 것이다.

 

왕건은 송악상단을 이끌고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은 120만량입니다.20만량은 제가 사비(私費)로 내는 것입니다. 저희 소오(宗)씨 가문의 멸문지화를 막아주셨으니 너무나 황감할 따름입니다.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께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대마도주 소오 이찌로(宗一郞)가 땅바닥에 납작 업드려서 거듭 감사를 표했다.

 

송악상단이 하동포구에 도착하니 량성무(梁誠武)가 마중 나와 있었다. 하동군 동헌에서 왕건은 량성무(梁誠武)와 다시금 독대했다.

“왜국에서의 모든 일들은 다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앞으로 량성무(梁誠武)는 왕건님을 비밀리에 주군(主君)으로 받들 것입니다.

소식을 듣자니 동쪽에서 궁예(弓裔)라는 자가 일어나 자칭 하생미륵(下生彌勒)이라 칭하며 중부지방의 큰 세력인 북원의 량길(梁吉)을 멸하고 세를 크게 확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곧 패서지방으로 세력을 뻗쳐올텐데 미륵을 따르는 광신도(狂信徒)들을 상대하기는 어려움이 많으실 겁니다.

저희 남원은 겉으로는 계속 중립을 표방하고 선대(先代)께서 이르신대로 지랭이(蛟龍)로 살아갈 것입니다. 앞으로 은밀하게 주군을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번 항차의 성공은 전적으로 남원부백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왕건은 량성무(梁誠武)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은인(恩人)인 것이다. 그리고 량성무의 뜻대로 은밀하게 서로 돕기로 약조하였다.

“주신 활과 화살의 대금으로 금 이만 량을 왜국에서 받았습니다. 예상외의 횡재(橫財)라 공금이 아니어서 제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니, 전액을 남원부백께 드리겠습니다.”

금 이만량이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본 거래인 언월도 이천자루를 송악상단에 팔고 받는 대금이 금 육천량인 것이다. 그러나 왕건은 줄 수 있다면 더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량성무(梁誠武)가 너무나 고마왔던 것이다.

 

“감사합니다.금 이만 량은 요긴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량성무가 의외로 선선하게 대금을 받았다.

“그리고 제가 주군께 신하로써 진상품을 올리겠습니다. 언월도 500자루입니다. 왜국에 보낸 언월도의 절반 크기인 작은 언월도입니다. 특별히 좋은 쇠로 만든 것이니 기마병이나 배에서 사용하면 편리할 것입니다. 또한 목궁 천자루와 화살 십만발을 준비해놓았으니 받아주시지요.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거듭 감사합니다.성의를 고맙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왕건은 속으로 탄복했다. 량성무(梁誠武)는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 미리 알고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무서운 사내다.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속으로는 냉정하게 천하정세를 가늠하고 있구나.”

 

“그럼 저는 송악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베풀어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한 말씀입니다. 가르침이라니요. 앞으로 주군을 은밀하게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송악까지 평안히 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예성강 포구가 멀리 보였다.

“형님 덕분에 촌놈이 송악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능산(能山)이 왕건의 옆에서 농(弄)을 했다.

능산은 앞으로 왕건을 주군으로 섬기겠다고 량성무(梁誠武)에게 청원했고, 량성무(梁誠武)는 흔쾌히 이를 허락했던 것이다.

이후 왕건과 능산은 송악으로 오는 배 안에서 왕건의 제안으로 의형제를 맺었다. 능산이 일곱 살 위였지만 동생이 되고 왕건이 형이 되었다. 이번 왜국 항차에서 능산은 왕건에게 진정으로 감복했던 것이다.

 

능산은 평생 모실 주군을 찾았고, 거기에 더해 의형제까지 되었으니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다고 각오를 속으로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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