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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손등룡기11 수달장군(水獺將軍) 능창(能昌)과 아지태

작성자양승철문양공후|작성시간21.08.24|조회수446 목록 댓글 0

갈초도 포구 앞, 거대한 그물 안에 갇힌 벌거벗은 사내들 십여 명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사내들은 입에 물고 있던 칼로 그물을 찢으려고 했으나 배 위의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겨누자 칼을 버리고 항복했다.

 

“네 놈이 자칭 수달장군(水獺將軍) 능창(能昌)이로구나. 위험한 놈들이니 능창만 제외하고 모두 이 자리에서 참(斬)하라. 능창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사지를 꽁꽁 묶어서 배 안의 감옥에 쳐 넣어라.”

능산(能山)이 준엄하게 명령을 내렸다.

 

태봉제국 수군 대장군인 왕건이 갈초도로 염표(鹽豹)를 직접 만나러 온다는 정보를 들은 능창은 자신이 직접 왕건을 잡기로 하였다. 물에서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하는 능창은 수하 정예 해적 십여 명을 데리고 갈초도 포구에 정박한 왕건의 배에 물속으로 헤엄쳐서 잠입하려 했다.

그러나 배 위에서 거대한 그물이 덮치는 바람에 한 순간에 잡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능창이 왕건을 잡는 순간, 염표의 갈초도 해적들이 왕건의 배로 쳐들어와 배를 나포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갈초도 해적들은 능창이 잡히는 것을 보고 해변에서 환호성을 올리고 있었다.

 

“덫에 큰 수달(水獺)이 제대로 걸렸네. 설마 능창이 직접 올까 했는데 동생 말이 딱 맞았어.”

능산이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능길을 보고 말했다.

“공명심과 제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놈이라 스스로 사지(死地)를 찾아온 것입니다. 직접 왕건 대장군을 잡아 공을 뽐내려한 것이지요.”

 

능길은 압해도의 능창이 왕건을 잡으러 직접 갈 터이니 갈초도 해적들도 협조에 만전을 기하라는 연락을 압해도로부터 받고 바로 행동을 개시하여 수하의 백여 명 심복 해적들을 데리고 갈초도의 염표 일당을 모조리 제거했다.

능길의 압도적인 무예 실력을 잘 아는 갈초도 해적들은 염표 일당이 제거되어 장대에 목이 걸리자, 바로 능길에게 투항했다. 평소 능길이 갈초도 해적들 사이에서 인심을 얻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능산은 왕건 대신에 금빛 찬란한 대장군용 갑옷을 입고 갈초도에 나타났다. 만일을 모르니 대장군 대신 자신이 가겠다는 능산의 제안을 왕건은 바로 승낙했다.

능산의 실력과 충성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성 잠행시 아찔했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순이가 아니었으면 자칫 목이 잘릴 뻔 했던 것이다.

 

왕건은 송악 수군 이십여 척을 거느리고 갈초도 시야권 밖의 먼 바다에서 기다리다 수달장군(水獺將軍) 능창(能昌)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압해도 해적들을 공격하여 격파했다.

급습을 받은 압해도 해적들은 이내 와해(瓦解)되어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해적들은 전면전에 능숙한 정규군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던 수달장군(水獺將軍) 능창(能昌)이 없어진 것도 큰 요인이었다.

이어서 압해도 전 섬을 샅샅히 훑은 송악 수군 육전대(陸戰隊)에게 압해도 해적들은 모두 잡혀서 끌려나왔다.

“신라 부녀자와 아이들 고기를 즐겨 먹는 짐승 같은 놈들이다.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참(斬)하라.”

왕건의 명령에 신라 서남해 일대를 이백여 년 이상 주름잡던 압해도 해적들은 모두 목이 달아났다.

그동안 악명을 날렸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망한 압해도 해적들의 최후였다.

태봉 수군의 대승을 알리는 전령선이 태봉 수군의 본진이 있는 진도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해적들과의 싸움에서 대승한 후, 송악 수군 이십여 척은 압해도와 고이도 앞 수심 깊은 포구에 정박했다. 해적들과의 전투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왕건은 정예부대인 송악 수군만 이번 전투에 이끌고 왔던 것이다.

송악 수군은 왕건의 전투태세 준비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다음 전투를 위한 배의 정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송악 수군의 대장선에서 왕건, 능창, 능길 삼인(三人)의 의형제가 반갑게 만났다.

“오랜만에 우리 의형제가 한 자리에 모였구나. 박술희까지 있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박술희는 류금필(庾黔弼)장군과 같이 금성으로 진격 중이니 어쩔 수 없구나.

우리 삼 형제 모두 천손(天孫) 량씨(梁氏)로구나. 지금은 나는 왕(王)씨이고, 우리 천손(天孫) 량씨(梁氏)는 외지에서는 성(姓)을 바꾸는 것이 관례이니 능산에게는 성을 새로 주도록 하마. 능산은 본디 량숭겸(梁崇謙)이었으니 이제부터 신숭겸(申崇謙)이라고 하라.

이번 대승으로 모두 장군으로 승차할 터이니 성(姓)이 있는 것이 좋을 듯하다.

능길은 원래 량능길(梁能吉)이었지.

어떤 성(姓)이 좋겠느냐?”

“저는 량능길(梁能吉)로 평생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진도에서 영암으로 우회상륙을 한 태봉제국 육군은 영암 월출산 옆을 지나 나주를 향해 순조롭게 진군 중이라는 전령선의 연락이 왕건에게 전해졌다.

 

“형님. 견훤의 수군은 모두 덕진포에 모여서 배와 배를 연결하여 영산강 하구를 모두 막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금성을 육지에서 공격하려는 우리 육군의 작전에도 악영향을 줄 터인데 현재로서는 견훤의 수군을 격파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신숭겸(申崇謙)이 목포 쪽 율도와 외달도를 보며 왕건에게 말했다. 율도와 외달도 사이의 영산강 하구 진입로인 바다는 폭이 무척 좁아 마치 강물처럼 보였다.

 

“바다의 냄새가 좀 달라지지 않았느냐?”

왕건이 신숭겸(申崇謙)과 량능길(梁能吉)에게 뜬금없이 말했다. 마치 혼잣말 하듯이 무심한 말투였다.

“예. 갯벌의 짠 내가 사라지고 먼 바다의 내음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목포 앞바다에서 칠년 동안 해적으로 살아 바다에 익숙한 량능길(梁能吉)이 대답했다.

“내 장인인 다련이 목포 앞 바다에서 뱃일을 오래한 노인들에게서 얻은 정보인데, 목포 앞 바다는 겨울에는 통상 북서풍이 불지만 한 달에 하루 정도는 풍향이 정반대로 바뀌어 남동풍이 분다고 한다.

남동풍이 불기 전에는 바람이 멈추고 먼 바다의 상쾌하고 따뜻한 내음이 은은하게 난다고 한다.

나는 이때를 맞춰 견훤의 수군을 화공으로 공격하려고 예성강 포구에서 출발할 때 송악 수군의 배에 화공 장비를 잔뜩 싣고 왔다.

만일 정월 한 달 내내 남동풍이 불지 않는다면 이는 하늘의 뜻이니 진도로 후퇴해서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 하는데, 마침 지금부터 남동풍이 불 모양이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구나.”

왕건은 대장선에서 간단하게 남동풍을 주신 하늘에게 감사 제사를 드렸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믿는 송악 수군 군사들의 사기도 크게 올랐다.

 

“송악 수군은 덕진포구로 출정한다.”

“전령선은 진도에 있는 태봉 수군 전 함대는 지금 즉시 목포 앞 영산강 하구까지 진출하라고 명령을 하달하라.”

왕건이 송악 수군 전 함대에 즉각 출전 명령을 내렸다.

 

남동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왕건은 송악 수군을 이끌고 덕진포구를 향해서 전속력으로 항해했다.

언제 풍향이 다시 북서풍으로 바뀔지 모르니 화급을 다퉈야 했다.

이윽고 송악 수군은 덕진포구 앞 견훤의 대함대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생각지도 않던 태봉 수군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견훤 함대에서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전투준비에 부산했다.

 

“화공을 시작하라.”

왕건의 대장선에서 화공 공격 개시를 알리는 색색의 깃발들이 돛으로 연신 올라갔다.

불화살이 하늘을 가득 덮고, 불쏘시개를 잔뜩 실은 작은 배 등이 견훤의 함대를 향해 남동풍을 타고 돌진했다.

이내 견훤의 함대는 불길에 휩싸였다.

불타는 백제군 함대 위에서는 견훤의 백제 수군들이 불에 타 죽고 일부는 강물에 뛰어들며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참사가 일어났다.

마치 지옥처럼 끔찍하고 비참한 모습이었다.

 

백제군 함대가 모두 불에 타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금성을 향한 영산강 뱃길이 열렸다.

왕건의 송악 수군은 환호성을 지르며 금성으로 진격했다.

영산강 하구에 도착한 태봉 함대의 본진도 바로 뒤따라 왔다. 다련은 첩보부대를 이끌고 강물 속에 빠진 백제군들을 나포하여 심문하여 정보를 캐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위엄 있는 모습이 이제 제법 첩보대장 티가 났다.

 

“백제군 함대에는 견훤왕도 있었는데 작은 배를 타고 허둥지둥 도망갔다고 합니다. 지금쯤 무주(武州,광주)를 향하여 도망가고 있을 것입니다.”

다련이 왕건에게 보고했다.

 

“금성산성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류금필 장군이 특공대 오십 인을 이끌고 어젯밤에 금성산성 안으로 침투하여 성문을 열어줘서 큰 희생 없이 작전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연이어서 낭보가 왕건에게 들어왔다.

 

왕건은 안도의 큰 한 숨을 내쉬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인원은 모두 패서 호족들의 사병(私兵)들로 구성된 연합군이었다.

승리를 하더라도 인명과 선박의 피해가 크다면 승리의 의미는 많이 퇴색될 터인데 인명과 선박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대승을 이루어 냈다.

 

“금성산성 안에서 견훤왕이 버티고 있었으면 금성산성 공략은 아마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육전(陸戰)의 귀재(鬼才)인 견훤왕이 마침 수군진영에 있다가 갑작스런 패전에 당황해서 도망치는 바람에 육지의 백제군 진영도 일시에 무너진 것이다. 뜻밖의 쉬운 승전에 자만하지 말고 전 군은 사전에 지시한대로 금성 수비 작전 대형으로 전환하여 물샐 틈 없는 방어대형을 갖추어라.”

왕건이 엄명을 내렸다. 적국(敵國) 백제국의 남쪽 끝에 와 있는 것이다. 승전의 쾌감에 젖어 자칫 방심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왕건은 각 진영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밤늦게까지 승전의 마무리를 하였다.

 

“황제폐하께서 대승의 소식을 듣고 금성으로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이틀 후에 금성에 도착하실 것입니다.”

전서구를 운용하는 전령이 궁예가 금성으로 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륵의 행차는 요란했다.

앞뒤에서 불경을 독경하며 수십명의 미륵교 승려들이 수행하는 가운데 궁예의 금빛 찬란한 가마가 금성으로 들어왔다.

 

“먼 바닷길에 얼마나 피로하십니까. 황제폐하께서 이 먼 금성까지 오시다니 모든 금성 백성과 태봉제국군의 영광입니다.”

왕건이 궁예를 맞이하며 치사(致辭)를 했다.

“힘든 전투를 해서 금성을 탈환한 군사들도 있는데 짐이 무슨 피로를 느끼겠소. 아우야. 정말 수고했다.태봉에는 쓸 만한 장수가 없어서 아우에게만 큰 짐을 계속 맡기는구나.”

“당연히 신하의 할 도리를 했을 뿐입니다. 자, 다 같이 만세를 부릅시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환영식이 끝나고 왕건은 궁예와 독대했다. 독대였지만 궁예의 곁에는 아지태와 새로 내봉성에 들어온 최응이 서있었다.

최응은 열여덟 살의 소년이었으나 신동(神童)으로 어릴 때부터 소문이 자자하던 천재였다. 머리만 좋을 뿐 아니라 식견도 뛰어나고 실무에도 탁월해 궁예가 가장 아끼는 신하 중의 한 명이었다.

왕건은 이틀 동안 작성한 이번 금성 공략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궁예에게 올렸다.

아지태와 최응이 왕건의 보고서를 보면서 논공행상의 자료를 만들어 궁예에게 올렸다.

자료를 한 번 훑어 본 궁예는 그대로 시행하라고 아지태에게 지시했다.

이어서 덕담이 오가고, 궁예는 아지태와 최응도 물러가게 하고 왕건과 형과 아우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궁예는 왕건과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서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좋을 연차였다. 그래서 그런지 궁예는 평소 왕건을 친아들 같이 아꼈다.

왕건은 금성의 오다련과 정주의 류긍달과의 두 건의 혼인에 대해서 보고하고 궁예의 허락을 구했다. 금성의 다련은 성이 없었으므로 왕건이 중국의 오나라를 본떠서 오(吳)씨 성을 만들어 주었다.

궁예는 크게 기뻐하며 최응을 다시 불러 정식 칙명으로 두 건의 결혼을 윤허했다.

 

이튿날, 궁예는 왕건이 올린 보고서대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세밀하게 시행하도록 했다.

논공행상에는 철저하고 공평한 것이 궁예의 장점이었으나 현재의 궁예에게는 재물이 부족하여 상으로는 명예 밖에 내려줄 것이 없었다. 부상(副賞)은 없고 벼슬만 높여주는 이름뿐인 논공행상이었다.

공치사의 논공행상이 끝나고 왕건은 옥에 갇혀 있던 수달장군(水獺將軍) 능창(能昌)을 금성 백성들과 태봉군이 모여 있는 국문장으로 끌어내었다.

궁예가 왕건의 보고서를 보고 능창은 직접 국문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네가 해적두목 능창이냐? 신세가 처량하게 되었구나. 네가 미륵의 자비를 구해보겠느냐.”

궁예가 짐짓 인자한 미소를 띄며 능창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야. 이 가짜 미륵아. 나는 너 같은 놈이 가장 밥맛이 없다. 잔소리 필요 없고 어서 죽여라.”

능창이 전혀 죽음이 두렵지 않은 말투로 외쳤다. 며칠 전만 해도 금성에서 왕처럼 군림했던 능창이었다. 비록 잡힌 몸이 되었다지만 대단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궁예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능창 앞으로 걸어가서 능창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짐이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으로 보니 네 마음속에 마구니가 잔뜩 있구나. 이 마구니 새끼를 능지처참(凌遲處斬)하라.”

아지태가 데리고 온 형리(刑吏)들에게 능지처참(凌遲處斬)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형리(刑吏)들은 능숙하게 능창을 국문장(鞫問場)의 십자가 모양으로 생긴 나무틀에 묶고 능창의 입에 비명을 못 지르게 나무공을 끼우고 능지처참형(凌遲處斬刑)을 가하기 시작했다.

능지처참형(凌遲處斬刑)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하는 형벌(刑罰)이다.

형리(刑吏)들은 가장 먼저 능창의 생식기를 작은 칼로 거세하여 불알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옆에 있는 나무통에 담았다.

그리고 손가락, 발가락부터 시작하여 능창의 살을 조금씩 저며서 발라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연하던 능창도 온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능창의 팔다리가 뼈만 남고 몸통을 저며 내기 시작했을 때에는 백성들과 군인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처참한 광경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궁예는 외눈을 번득이며 이 장면을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보고 있었다.

궁예의 몸속에서 잔인하고 사악한 기운이 퍼져 나와 관중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윽고 능지처참이 끝나고 능창의 목이 장대에 매달려 효수되었다.

궁예는 ‘옴 마니 반메 훔’을 독경하며 귀신을 위로하는 의례를 잠시 치루고 국문장에서 퇴장했다.

 

“철원에서는 자주 이런 일이 있습니다. 백성들과 신료들에게 공포심을 주어 기강을 바로 잡자는 거지요. 아지태가 이런 일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을 벌거벗겨 묶어서 뭉툭하게 깍은 꼬챙이 위에 항문을 끼워 죽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무게로 장이 뚫려나가서 한 시진(약 두 시간)동안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지요. 더 큰 문제는 황제가 이런 잔인한 일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미륵인지 야차인지. 참 큰일입니다.”

궁예를 수행한 태봉의 고위급 신료 중 한 사람이 왕건에게 슬쩍 말했다. 신료가 패서지방 출신이라 왕건과 안면이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궁예가 철원으로 돌아갔다.

금성의 백성들과 금성에 주둔하는 태봉군인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궁예의 실체를 본 금성의 백성들은 혼란스러운 표정들이었다.

늑대를 피하려다 범을 만난 심정인 것이다.

왕건은 이러한 금성 민심을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태봉제국 황제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태봉제국에 대한 불신만 잔뜩 조장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태봉 조정의 최고의 자리인 승상에 더하여 태승상대막리지(太丞相大莫離支)를 논공행상에서 제수받은 왕건은 태봉 조정의 으뜸으로서 당연히 철원으로 들어가야 했으나, 금성이 안정될 때까지는 금성에 남아 있기로 하였다.

 

왕건이 금성에 머물며 금성을 태봉제국의 확실한 영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지도 어언 4년이 지났다.

왕건은 궁예에게 주청하여 금성(錦城)을 나주(羅州)로 이름을 바꿨다. 금성의 호족 종례에게는 나(羅)씨 성을 하사하여 종례는 나주(羅州) 나(羅)씨 나종례(羅宗禮)가 되었다.

패서지방에서 온 병력 중 육군은 송악군(松岳軍)을 제외한 패서 호족들의 병력을 모두 패서지방으로 돌려 보내고 현지에서 모병을 하여 나주군(羅州軍)을 편성하였다.

류금필,신숭겸,박술희,량능길 등 송악군의 장수들이 이들을 잘 조련하여 4년 사이에 삼천 명의 정예군으로 만들어 놓았다.

최대의 요충지인 금성산성은 곡도(백령도)에서 탐라 법화사 승병들을 이동시켜 지키게 했다. 법화사 승병들을 금성산성 내에 상주하는 핵심 병력으로 주둔시키고 금성산성 내에 사찰을 여러 곳 건립하여 승병을 추가로 모집하여 배치했다.

승병 일천 명에 송악군의 정예병사 일천 명이 지키는 금성산성은 예전의 난공불락의 요새의 위용을 다시 회복했다.

탐라 법화사의 상단 선박 열 척은 오다련의 나주상단에 포함시켜 압해도를 기지로 삼아 무역에 종사하게 하였다.

곡도(백령도)는 아직까지는 너무 외지고 생활하기가 불편한 절해고도(絶海孤島)였기 때문이다.

 

오다련은 열심히 나주상단 운영을 하였으나 상단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력은 아직 미숙하여 송악상단의 행수들과 대행수들이 오다련을 도와 나주상단의 전반적인 업무를 주도하여 수행하고 있었다.

견훤의 백제군이 여러 차례 도발을 하여 왔으나 나주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왕건은 견훤에게 배운대로 낮선 자는 모두 잡아들여 심문 후 수상하면 바로 목을 베도록 했다. 잔인하지만 백제첩자의 암약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어쨌든 나주는 삼국시대부터 몇백 년 동안 백제영토였기 때문에 안전에 안전을 기하여 통치해야 했다.

순이는 나주부인(羅州婦人)마님으로 불리며 나주상단의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겼다. 당차고 영리한 모습은 여전하여 아비인 오다련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는 사람들의 평을 듣고 있었다.

순이는 삼년 전에 왕건의 아들을 낳았다. 왕건은 첫 아들 이름을 무(武)라고 지었다. 왕무(王武)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나주의 모든 것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 철원에서 내원경 종간이 직접 나주로 찾아왔다.

“오랜만입니다. 태승상대막리지(太丞相大莫離支)께서는 나주 경영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종간은 반갑게 왕건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뭔가 곤혹스러운 그늘이 종간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철원에서는 아지태가 여전히 말썽입니다. 당나라에서 도교의 도술을 배운 자라 무병장수(無病長壽)한다는 신비한 영약을 환으로 제조하여 폐하께 매일 진상하고 있습니다. 이 환약들이 폐하의 기력에는 효험이 있는 것 같은데 폐하의 성정이 날로 포악해지고 의심이 많아지는 것도 이 약들 탓이 아닌가 싶어 심히 우려됩니다.”

“몇년전에 완전히 패망한 당나라도 불교를 탄압하고 도교를 권장하다가 나라가 망조(亡兆)가 들었습니다. 당의 마지막 황제는 도교의 도사들이 수은(水銀)으로 만든 영생불사의 약을 즐겨 먹다가 정신병자(精神病者)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지태는 태자사부(太子師父)직도 맡아 폐하의 아들들인 청광보살, 신광보살의 훈육도 맡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아지태에게 푹 빠지시어 소승(종간)이나 은부대장군이 간언을 드리면 역정만 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나라가 망할 징조인데 태승상대막리지(太丞相大莫離支)께서 조정의 으뜸 어른으로서 철원에 가셔서 이 문제들을 바로잡아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우리의 위대한 태봉제국이 아지태 한 사람 때문에 망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종간은 간절하게 애원했다. 예나 지금이나 궁예를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심만은 종간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이런 종간이 평소 경계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요주의 인물 왕건에게 다급하게 하소연하는 것이 사태가 무척 심각함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외지에 몇 년간이나 나와 있어서 조정 실정에 어두운 제가 철원에 가더라도 어떻게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왕건은 거절의사를 분명히 했다.

왕건도 송악의 첩보망을 통하여 철원의 사정은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미 자신에게 진실로 충성할 유력 호족들도 거의 없고 미륵의 권위도 상실한 궁예는 자신의 철옹성인 철원 안에서나마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싶어 했다.

대부분 미륵교 신도들로 구성된 내군이 철원성 내부를 지키고 있었고, 태봉제국군은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 철원 백 리(약 40km) 안에 들어오면 안된다고 엄명을 내려놓아 철원은 궁예에게는 안전한 곳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철원성 바깥 철원평야에는 궁예의 형인 명주의 금순식의 사병(私兵) 일만 명이 주둔하고 있어 궁예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아지태는 중국에서 시행하는 각종 야만스러운 혹형(酷刑,가혹한 형벌 방법)들을 도입하여 자신의 수족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조정 신하들이나 철원 백성들을 무참히 죽여 철원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예전의 영명함은 모두 사라져버린 환자(患者) 궁예는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네 안에 마구니가 있구나.”

“네 놈이 역심을 품었구나.”

궁예의 이 한 마디에 누구도 변명 한 마디 못하고 죽어야하는 것이 현재의 철원 실정이었다.

철원에는 지금 지옥도(地獄道,죄를 지은 중생이 죽어서 간다는 지옥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아지태도 폐하의 광기가 언제 제 놈한테 닥쳐 능지처참을 당할지 몰라 속으로는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아지태가 폐하를 폐하고 태자인 청광보살을 새 황제로 옹립하려 한다는 정보를 제가 입수하였습니다. 태자사부(太子師父)로 있으면서 청광보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놓았기 때문에 새 황제로 새워놓고 제가 제 멋대로 국정을 휘두르려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폐하께 이 사실을 주청드리면 폐하께서는 누구보다 믿고 있는 태승상대막리지(太丞相大莫離支)께 이 사건의 조사를 명하실 것입니다.

태승상대막리지(太丞相大莫離支)께서는 사심 없이 명명백백하게 이 사태를 조사하실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소승과 은부대장군이 옆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부디 태봉제국을 살려주시옵소서.”

‘내가 철원에 가야겠구나.’

왕건은 마음 속에서 결정을 내렸다.

아지태가 제거되고 나면 종간과 은부는 왕건을 집요하게 노릴 것이다. 그러나 왕건이 이 사건을 모른 척하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연루되어 죽게 될 것이다.

일단 어떤 것이 진실인지 자신이 직접 조사해보는 것이 불필요한 희생을 최대한 줄이고 태봉제국의 안정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폐하께서 소환 칙명을 내리시면 내가 철원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내원경께서 태봉제국의 안위를 위하여 이 수고를 하시는데 저도 그 노력에 같이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실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철원으로 돌아가서 이 사안을 목숨을 걸고 폐하께 주청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달 후 궁예의 소환 칙명이 내려오자 왕건은 나름 행복했던 나주에서의 4년 생활을 뒤로 하고 철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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