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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손등룡기12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과 지옥도(地獄道)

작성자양승철문양공후|작성시간21.08.24|조회수73 목록 댓글 0

‘내가 지금 지옥도(地獄道,죄를 지은 중생이 죽어서 간다는 지옥의 세계)로 들어 왔구나.’

철원에 도착한 왕건은 예상보다도 심각한 상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종간과 은부에게 아지태의 역모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왕건은 궁예를 알현했다.

궁예는 한 눈에 봐도 몸과 정신이 완전히 병든 환자(患者)였다.

저녁에 철원에 있는 송악 관사로 돌아온 왕건은 은밀히 내군장군 복지겸을 만났다.

 

궁예는 모든 호족들과 그 직계 가족들은 철원 성내에 집을 장만하여 일 년에 육 개월씩은 거주하도록 엄명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번듯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호족들의 관사들은 텅 비어 있었다.

까딱하다가는 궁예의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에 걸려 능지처참을 당하거나 재수가 좋아도 철퇴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한 호족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비밀리에 모두 철원을 떠나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은 조정의 관직을 받아 근무해야하는 사람들 뿐 이었는데 그마저도 남자 혼자 하인들을 데리고 남아 있는 형편이었다.

 

궁예는 아녀자들도 ‘짐이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으로 보니 네가 간음을 했구나.’하고 잡아들여 심문 후 간음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부녀자는 발가벗겨 형틀에 묶고 3자(약 90cm)나 되는 쇠몽둥이를 장작불에 시뻘겋게 달궈서 옥문에 찔러 넣어 죽였기 때문에 아녀자들도 언제 비참하게 죽을지 몰라 서둘러 철원에서 피신하고 있었다.

 

“아지태가 역모를 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궁예황제의 정신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어 제 놈도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상세한 증거들은 은부대장군이 가지고 있으니 폐하의 재가를 받아서 아지태를 잡아들여 국문하면 모든 것들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번 사태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명백한 청주(淸州,웅주와 서원경의 바뀐 이름)사람들은 아지태가 끝까지 지켜주려 할 것입니다. 저희 입장에서도 청주사람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지태라는 대가리만 잘라버리면 청주는 일단 조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 황제로 거론된 청광보살의 처벌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궁예가 제 자식을 어떻게 다루는지 자켜볼 일입니다. 이미 혼인하여 처자식까지 있는 태자를 죽이기까지야 하겠습니까. 잠시 귀양 보냈다가 불러들이겠지요. 저희는 이번에 아지태만 잡으면 된다고 봅니다.”

“다만 아지태가 죽고 나면 종간과 은부의 다음 목표는 승상 합하가 될 것입니다. 철저히 대책을 수립해놓아야 합니다.”

복지겸이 차분한 목소리로 조리 있게 이야기했다.

“물론 그렇지요. 내가 세운 계책을 한 번 들어 보고 의견을 주기 바라오.”

왕건의 계책을 집중하여 들은 후 복지겸이 환한 표정으로 왕건에게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이 방도대로 하면 이미 저희가 이겼다고 봅니다. 주군께서는 저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십니다. 다만 인명의 손실을 최대한 막으려는 주군의 선한 마음씨는 문제가 있습니다. 천성이 어지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냉혹해지셔야 이 지옥도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습니다. 각별히 유념해 주시오소서.”

“알겠소. 황해용왕께서 주신 내 이름이 무휼(無恤,동정심이 없다는 뜻)이오. 나도 무휼(無恤)을 마음속에 새기고 이번 사태에 임하도록 하겠소.”

 

국문장에 잡혀온 아지태를 궁예가 국문하기 시작했다. 명백한 증거가 연이어 나오자 아지태는 궁예를 똑바로 쳐다보며 외쳤다.

“그래. 모든 것이 맞다. 그러나 이것은 태봉제국을 살리려는 나의 충성심의 발로였다. 가짜 미륵아. 너는 이미 쓰임새가 없는 폐물(廢物)에 불과하다.”

“자! 죽여라. 이번 생의 나의 운은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아지태는 예상대로 청주사람들은 쏙 빼놓고 궁예의 태자인 청광보살과 태자의 외가인 패서지방 신천의 강장자(康長者)와 같이 역모를 꾀했다고 토설했다.

 

가짜 미륵 소리를 듣고 외눈이 뒤집힐 정도로 분노한 궁예는 아지태와 자신의 장인인 강장자(康長者)와 장모인 강장자의 부인 백씨를 형틀에 각각 발가벗겨 묶어놓고 능지처참할 것을 명했다.

국문장에 늘어선 조정 신료들 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형리(刑吏)들이 능지처참 형을 집행하고 있는 중에 궁예는 황후와 아들들인 태자들 청광보살과 신광보살을 불러오게 하였다.

눈앞에 부모가 발가벗겨져 능지처참 형을 당하고 있는 광경을 본 황후는 눈이 뒤집혔다.

“야! 이 가짜 미륵아. 인간 백정 놈아. 나도 죽여라.”

가짜 미륵 소리를 하루에 몇 번씩이나 들은 궁예는 화가 머리 끝 까지 치밀어 올랐다.

“저 년을 발가벗겨 형틀에 묶어라. 그리고 쇠몽둥이를 달구어 가지고 오너라.”

벌겋게 달구어진 쇠몽둥이가 도착하자 궁예는 쇠몽둥이를 황후의 옥문에 찔러 넣게 하였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살이 타는 누린내가 심하게 나는 중에 황후는 비명을 지르다가 절명했다.

그리고 궁예는 옆에 있는 내군장군의 칼을 빼들고 황후를 살려달라고 애걸 중인 태자들 청광보살과 신광보살을 마구 찔러 살해했다.

국문장에 태자들이 흘린 피가 낭자한 가운데 궁예는 칼을 집어던지고 궁궐 내실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내실에서 두문불출하던 궁예는 조정으로 나와 왕건을 불렀다.

“아우야. 아지태의 역모 건을 잘 처리하였다. 아우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명료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잘 하였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으로 보니 아우가 어제 사람들과 역모를 꾀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구나. 네 놈이 이럴 수 있느냐. 어서 자백해라.”

궁예의 양옆에는 미륵교 광신도인 내군장교들이 서있었다. 이들은 궁예가 명령만 내리면 무슨 일이라도 할 자들이었다.

왕건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황해용왕이 준 단도들을 양팔에 차고 있었으므로 만일의 경우에 자신의 몸을 지킬 자신은 있었다.

“폐하! 제가 역모를 할 리가 있겠습니까. 오해십니다. 다시 살펴주시옵소서.”

이때 궁예의 아래에 앉아 심문조서를 꾸미고 있던 최 응이 붓을 마루 바닥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최 응이 왕건 옆에 와서 떨어진 붓을 집으며 슬쩍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인하시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왕건은 무슨 얘긴지 금방 알아들었다. 궁예의 관심법에 토를 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용서해주시오소서. 제가 어제 역모를 꾀했나이다.”

왕건이 무릎을 꿇고 자복하자 궁예의 표정이 갑자기 활짝 펴졌다. 그리고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우가 잘못을 자복했으니 내 어찌 용서를 안 해줄 수 있겠는가? 아우의 솔직한 마음을 칭찬하는 의미에서 내가 크게 상을 내리겠노라.”

 

왕건은 조정에서 퇴청하자마자 단기(單騎)로 도피안사(到彼岸寺)로 향했다.

도피안사에는 류금필, 신숭겸, 복지겸이 송악군(松岳軍)의 정예병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밤 해시(亥時,저녁9시)에 거사(擧事)한다. 도피안사의 스님들은 이미 철원성 안에 들어가 있다. 무술에 능한 스님들이 성문을 지키는 내군들을 제압하고 해시(亥時)에 성문을 열면 기병들은 ‘왕공(王公)이 드디어 의로운 깃발을 들었다’라고 외치며 철원성내를 질주하라.

류금필 장군과 신숭겸 장군은 송악 병사들을 이끌고 궁으로 돌격하여 궁예와 종간, 은부를 처단한다. 저항하는 자는 모두 참살하라. 복지겸 장군은 내응하기로 되어 있는 내군장교 홍유와 백옥삼과 합류하여 궁 안의 잔적들을 소탕한다. 바로 출발한다.”

 

거사(擧事)는 싱겁게 끝났다. 궁예와 종간, 은부는 모두 이내 살해되어 차디찬 시체가 되어 태봉 조정(朝庭) 마루에 눕혀지는 신세가 되었다.

대항하는 내군은 아무도 없었다. 송악군(松岳軍)이 궁내에 진입하자 내군 병사들 모두 병장기를 내던지고 항복했다. 대부분 미륵교 신자들이었지만 이미 궁예에게서 마음이 완전히 떠나 있었던 것이다. 철원성 안 백성들은 ‘왕공(王公)이 드디어 의로운 깃발을 들었다’라는 외침이 들리자 농기구와 식칼 등을 들고 나와 ‘야차를 죽이자.’라고 외치며 왕건 일행을 환영했다.

 

허세만 가득하던 궁예의 태봉제국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왕건은 각 지방에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전령을 보내고, 송악군(松岳軍) 삼천 명을 포함한 패서지방의 대군(大軍)을 철원에 불러들였다.

 

철원성 밖에 주둔하고 있던 명주군(溟州軍) 일만 명은 명주(溟州,강릉)로 돌려보냈다. 명주군장 금순식에게 보내는 왕건의 간곡한 서신을 지니고 왕건의 사신이 명주군(溟州軍)과 같이 명주군장 금순식이 있는 명주(溟州)로 갔다.

 

철원은 쉽게 점령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미륵교의 본거지인 청주(淸州)에서는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다.

궁예가 특별히 관리하던 곳이라 궁예가 살해당하고 태봉제국이 무너진데 대해서 반발이 무척 거셋던 것이다.

 

역성혁명이 일어난 며칠 후 청주에 주둔하던 마군대장군 환선길이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철원 궁내로 진입했다.

혁명이 일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어수선한 가운데 피아간의 식별이 쉽지 않아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궁 안 지리에 익숙한 환선길은 곧장 왕건이 있는 집무실로 들이 닥쳤다.

그리고 환선길이 소리쳤다.

“역도 왕건을 죽여라.”

그러나 왕건은 옆에 있는 활을 들어 선두에 섰던 군졸들을 쓰러뜨리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환선길에게 말했다.

“환선길 장군. 이쪽으로 와서 나와 이야기를 좀 나눠보세.”

환선길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 왕건에게 놀라서 필시 사방에 복병이 매복해 있다고 지레짐작하고 도망갔다.

환선길은 철원에서 청주로 도주하다가 잡혀서 참살되었다. 청주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장군인 환선길이 어이없는 일을 벌이다 죽은 것은 왕건에게는 다행이었다. 용맹한 장군인 환선길이 청주에서 사람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면 진압하기가 매우 곤란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명주군장 금순식에게 보냈던 왕건의 사신은 참수를 당해서 잘린 목만 돌아왔다.

금순식이 궁예가 죽었다는 사신의 전갈에 불같이 화를 내면서 사신을 처형했던 것이다.

명주의 금순식은 3~4만의 군대를 거느린 강력한 호족이고, 신라 태종무열왕계의 적손(嫡孫)으로 정통성 또한 갖추고 있는 거물 호족이었다.

왕건은 금순식은 일단 아무 조치 없이 놔두기로 하였다. 금순식은 현재로서는 방임이 최선의 조치였다.그러나 금순식이 언제 철원으로 쳐들어올지 몰라 왕건은 첩자들을 명주로 급파했다.

 

이때 중원(中原)의 호족 류긍달에게서 전갈이 왔다. 명주의 금순식이 왕건의 사신을 목 베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류긍달이 북원경(원주)의 궁예 잔당을 소탕하고 명주에서 오는 길목마다 중원군을 배치시키고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중원의 호족 류긍달의 발 빠른 조치와 우수한 정보망이 새삼 놀라왔다.

북원경 일대는 궁예가 최초 거병한 세달사가 있는 곳으로 궁예의 지지 기반이 강한 곳이라 류긍달의 신속한 대응이 없었더라면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위험한 고장이었다.

왕건은 류긍달에게 감사를 표하고 철원이 안정되면 빠른 시일 내에 중원을 방문하겠다고 전갈을 보냈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중원지방의 류긍달이 확실한 왕건 편이 되었으므로 청주지방만 안정되면 일단 이 혼란한 정국을 어느 정도는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주에서는 마군장군 임춘길 등의 반란이 잇달아 일어나고 결국 삼년산군(보은)의 난공불락의 요새인 삼년산성의 성주(城主) 공직(公直)의 주도하에 청주 일대가 모두 백제국의 견훤에게 귀부해버렸다.

금강(錦江) 북쪽의 주요한 방어거점들이 있는 방대한 지역이 모두 백제국에 넘어간 것이다.

특히 전략적 요충지인 연산(燕山),매곡(昧谷)지역과 속리산 아래의 삼년산성(三年山城)을 잃어버린 것은 큰 손실이었다.

삼년산성(三年山城)은 수백 년 동안 백여 차례 공격을 받았으나 단 한 번 ‘김헌창의 난’때 어이없는 실수로 성을 빼앗긴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수성(守城)에 실패한 적이 없는 천험의 요새였다. 그리고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왕건은 당진의 호족 박득의(朴得宜,박술희의 아버지)와 목천의 호족 금긍률(金兢律)에게 박술희가 이끄는 이천병력을 보내어 금강 이북지역의 방어선을 다시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때 백제황제 견훤이 왕건의 역성혁명을 축하하는 축하사절을 철원에 보내왔다. 견훤은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제안을 해왔다.

견훤도 현 시점에서는 신라 공략이 우선이었고 신라의 요충지인 대야성 공략에 여러 번 실패하면서 북쪽지방까지 전선을 확대시킬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일단 모든 정국은 수습되었고 왕건은 국호를 고리(高麗),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하여 고리제국(高麗帝國) 건국을 선포하였다.

 

고리제국의 수도를 철원에서 개경(開京,송악에서 개칭됨)으로 이전 할 것을 명령해 놓고, 왕건은 중원(中原)으로 행차(行次)했다. 중원 호족 류긍달을 완전히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왕건은 전국의 호족들을 내 사람으로 묶어놓으려면 방법은 혼인정책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되고 나서 첫 번째 혼인을 가장 중요한 중원의 호족 류긍달과 맺을 작정인 것이다.

왕건은 정보망을 통하여 류긍달과 그 주변을 상세히 정탐(偵探) 시켰는데, 류긍달에게는 아들이 넷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은 이제 열여덟이 되었는데 경국지색(傾國之色)인 제 어미를 닮아 천하의 절색이라고 한다. 류긍달의 집안에서는 아들 딸 가리지 않고 글공부와 무예수련을 시켰는데 글공부와 무예실력도 딸이 제일 뛰어나다고 한다.

왕건은 류긍달의 딸을 황비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을 결정하고 류긍달에게 밀서로 사전에 내용을 알렸다.

 

“황제폐하. 불초한 제 여식을 황비(皇妃)로 맞이하시겠다니 황은이 망극합니다.”

류긍달이 친근한 표정으로 치사(致辭)를 했다.

류긍달에게 이 일은 고리제국(高麗帝國) 황제가 사사롭게는 한 식구인 사위가 되는 경사인 것이다.

“이제 제국(帝國)이 시작인 터이라 변변한 예물 하나 제대로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피를 나눈 한 식구가 되는 것에 의미를 두었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예로부터 제왕(帝王)은 무치(無恥)라고 했습니다. 먼 행차에 피로하실 터이니 자잘한 예법에 구애받지 마시고 간단한 혼인 절차만 마치시고 바로 신방으로 들어가시면 될 듯 합니다.”

“부근에 수안보온천(水安堡溫泉)이라는 수질 좋은 온천이 있습니다. 온천 전체를 비워놓고 주변을 삼엄하게 경비하게 하였으니 그 곳에서 신방을 차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왕건은 넓은 온천탕이 붙어 있는 신방으로 들어갔다. 주위에는 시중드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중원군(中原軍)의 경비대는 100장(약 300미터) 바깥에서 경비망을 짜고 있어서 신방 주위는 풀벌레 소리만 나고 있었고, 왕건이 데리고 온 친위대 군사 삼십여 명은 넓은 마당 가운데에 흩어져서 칼을 배 밑에 깔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신방을 빙 둘러서 경호하고 있었다.

 

“소녀, 수인이라 합니다.”

신방에 있던 류긍달의 딸이 몸을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했다. 얼굴은 천하절색(天下絶色)이라 마치 천상의 선녀를 보는 듯한데, 긴장하는 기색은 전혀 없고 마치 친오빠를 대하듯 친근하고 상냥한 말씨였다.

“옷을 벗겠습니다.”

“짐이 벗겨줄까 하오만은...”

“어찌 폐하께 수고를 끼쳐드리겠습니까. 제가 스스로 벗겠습니다.”

류긍달의 딸은 조심스럽게 옷을 모두 벗었다. 키가 크고 무술로 다져진 몸매가 탄탄했다.

왕건은 벌거벗은 처녀를 번쩍 안아 침상에 눕히고 얼른 옷을 벗고 서서히 운우지정에 들어갔다.

숫처녀라서 아플 터인데도 처녀는 왕건의 몸을 부드럽게 애무하며 왕건을 최대한 만족시키려 애썼다.

처녀를 절정으로 이끌며 처녀의 몸 안 깊숙이에서 사정(射精)한 왕건은 잠시 쾌감을 즐기다가 처녀와 따뜻한 온천탕으로 들어갔다.

나른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온 몸을 감쌌다. 그동안 얼마나 긴장 속에서 살아왔던가? 왕건의 십년 묵은 피로가 눈 녹듯이 씻겨 내려갔다. 처녀가 왕건의 온 몸을 정성스럽게 씻겨주었다.

왕건은 처녀를 다시 신방으로 이끌어서 십여 차례 절정을 맛 보여주면서 다섯 번이나 사정했다.

처녀의 옥문(玉門)은 음기(淫氣)가 너무 심하지도 않고 편안했다. 어릴 때 모친을 잃은 왕건은 내색은 안하지만 잔정에 굶주렸었는데, 부드러운 정이 넘치는 처녀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왕건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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