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곡서원의 창건
조선을 중흥시킨 군주 정조께서 규장각을 설치하였는데 규장각의 설치가 이미 300년 전에 문양공 양성지께서 제안하신 것임을 아시고 정조는 문양공에 대해서 알고자 문양공이 남긴 글들을 찾아서 읽어 보았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방대하고 실용적인 방안들이라서 정조는 굉장히 감명을 받았고 문양공이 남긴 글들과 문양공을 배향하는 곳들을 조사하라고 명하셨다. 그 때 호남의 유림에서는 묵재공 양우와 문양공 양성지와 금헌 이대헌을 배향하는 월곡서원을 창건 하여줄 것을 예조에 청하였고 왕명을 통해 장수군 산서면 봉서리에 월곡서원을 창건하였다. |
1-1. 월곡서원 배향위
묵재공 양우는 고려의 판도판서 겸 대제학으로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여 마지막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시어 두문동 서원에 배향된 고려의 충신이며 문양공 양성지는 좌리공신에 봉해진 대제학으로 묵재공 양우의 증손이며 대포서원, 구암사, 별묘등에 배향되었다. 금헌 이대윤은 효령대군의 후손이며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정랑을 지내고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창의 하여 일어난 의병장이시다. |
1-2. 묵재공 양우 | 1-3. 문양공 양성지 |
2. 월곡서원의 훼철
월곡서원은 고종 시대에 전국의 서원과 함께 훼철되었고 묵재공의 위패는 산소 아래에 묻고 영구히 향사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충장공 양헌수께서 전국의 후손들에게 통문을 보낸 후 재물을 모아서 산소 아래에 건물을 완공하고 향보재라 현판을 걸었다. 문양공의 위패는 월곡서원이 있던 곳에 세거한 문양공의 자손들이 산서면 백운리에 별묘를 세워서 모셨다. |
2-1. 향보재(남원시 송동면 송상리 산35-3번지)
2-2. 양성지 별묘(장수군 산서면 백운리 구창마을)
3. 월곡서원 구재통문
조선시대 서원은 초기에는 명현의 제사를 지내고 인재를 키우며 향촌 질서를 유지하고 사림의 공론을 형성하는 공간이었지만 후대에는 혈연과 지연 및 학벌 등과 관련하여 이익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서원에 소속된 학생은 균역을 면제하였기 때문에 서원은 이익집단체로 변경되었고 그리하여 고종 시대에 대원군이 중심이 되어서 서원을 철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월곡서원은 재물을 전혀 탐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향위에 대한 향사도 변변하지 못하여 구재통문을 발기하기도 하였다. 여기 1803년 발기한 월곡서원 구제 통문을 통하여 월곡서원이 월곡서원으로 현존하였던 과거의 모습을 살펴보고 오늘 우리는 어떠한 것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묵재공 양우의 장자인 시승공 양우룡의 후손인 양처해 선조님께서 1803년 월곡서원 구재통문을 발기하셨고 그 원본 보관자는 양처해 선조님의 후손인 거제 관포문중의 양방수님이시다. |
월곡서원 구재통문을 발기하신 양처해는 거제 관포문중의 입향조가 되시고 양처해의 아들 양성구가 월곡서원의 유사이셨다. 문양공의 자손인 양몽대와 양중대도 월곡서원의 유사이셨는데 밀양 덕암마을에 입거한 병부공 21세 양태수의 자손이시다. 거제 관포의 남원양씨는 대사간을 지내신 양사귀의 6子 양준의 후손이며 양준이 군수를 지내셨기 때문에 그 후손은 남원양씨 병부공후 묵재공후 사간공후 군수공파로 분파하셨다. 묵재공의 장자이신 시승공 양우룡의 후손들은 묵재공의 자손임을 잊어버리고 대방군파라는 종파를 세우고 계보를 수호하지 못하였는데 군수공 양준의 후손이신 병부공 21세 양처해와 그 일가 선조님들께서 계보를 바로 세웠고 월곡서원의 유사까지 맡아보셨다. 월곡서원 구재통문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기한 것이다. 또한 월곡서원의 유사를 맡으셨던 선조님들의 깊은 인연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왔다. 월곡서원의 유사 양성구의 후손이신 양방수께서 남원양씨 병부공파의 계보를 바로 잡으셨고 유사 양몽대의 후손이신 양입모께서 그 사실을 확인해 주셨다. |
3-1. 원본소장 : 미주방송인협회/여의도클럽USA 총무국장 양방수(병부공파 30세손 거제 관포문중)
3-2. 해석(원본 소장자 양방수) - 남원양씨 종친회(클릭) , 남원양씨 거제문중(클릭)
월곡서원 구재통문은 월곡서원의 유사가 누구이셨던가를 알려주고 있으며 묵재공의 자손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거제 관포문중의 양방수, 밀양 덕암문중의 양입모 종인께서는 월곡서원의 유사를 맡으셨던 선대조부님들의 인연을 오늘날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니 묵재공파 종인의 본보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