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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양씨 문중 탐라 제왕세기 해상왕국 탐라

작성자법선- 양 인|작성시간19.08.03|조회수78 목록 댓글 0


제주양씨 문중 탐라 제왕세기

해상왕국 탐라(海上王國耽羅)

 

제주양씨(濟州梁氏) 문중 사료(史料)에 삼성혈(三姓穴)에서 삼신인(三神人)(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이 솟은 이후 벽랑국의 세공주가 제주도에 와서 각각 결혼을 하였다는 신화가 있다. 서기전 2369년 임진(壬辰)년에 탐라(耽羅)국을 건국(建國)하였다고 한다.

 

단군조선 개국년(檀君朝鮮開國年)이 무진(戊辰)년 서기전 2333103일에 양을나의 삼성혈 출현 40년에 조카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니 축하 사절로 태자를 보냈다 하였으니 탐라국 개국은 이보다 36년 전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사성조(四聖祖) 시대

[마고성(麻姑城)시대의 황궁씨(黃穹氏)로부터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계승하고 승계하신 환인(桓仁), 환웅(桓雄), 양을나(良乙那), 단군(檀君)시대를 말한다.]

 

1. 환인(桓仁)의 환() 나라 :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桓仁) 환기 1. 서기전 7198~ 환기 3301. 서기전 3898년 제7대 지위리(智爲利) 환인

 

2. 환웅(桓雄)의 신시배달(神市倍達) 나라 : 1대 거발한(居發桓) 환웅(桓雄) 환기 3301. 서기전 3898~ 환기 4817. 서기전 2381년 제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

 

3. 양을나(良乙那)의 탐라(耽羅) 나라 : 1대 양을나(良乙那) 환기 4829. 서기전 2369~ 환기 8110. 서기 912년 제108대 을나 선위왕 ~ 환기 8136~ 서기 938년 고자견(高自堅)

 

4.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조선(朝鮮) 나라 : 1대 단군왕검(檀君王儉) 환기 4865. 서기전 2333~환기 6903. 서기전 295년 제47대 단군 고열가(高列加)

 

신시배달(神市倍達) 나라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인 것과 같이 영주지(瀛洲誌)에 의하면 삼성혈(三姓穴)에서 솟은 세분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우러러 보아 삼도리(三徒里)로 나누어 도읍(都邑)을 정하고 나라의 호칭(呼稱)을 탐라(耽羅) 라고 하였다. 이때 온 나라 인심(人心)이 연장자인 양씨(良氏)에게 있으므로 양씨(良氏)를 임금을 삼았다고 한다.

우리 신시배달(神市倍達) 민족은 북두칠성(北斗七星 하늘)에서 왔기에 천손(天孫)이다. 수천년간 개천절(開天節)103일 천제(天祭)를 지냈다. 배달민족(倍達民族)은 사람이 사망(死亡)하면 관()에 칠성판(七星板)을 깔고 시신(屍身)을 눕힌다. 그리고 한 곳에서 일곱 날씩 일곱 곳에서 일곱 번 제사를 지냈다. 그리하여 49일 후이면 칠성판을 지고 북두칠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배달의 후손인 탐라 사람들도 이를 따랐다. 제주도(濟州島)에는 북두칠성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이 있는데 이곳이 제주시에 위치한 일곱 곳의 칠성제단(七星祭壇)이 있었고 그중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에 있는 칠성통이다. 고서(古書)인 탐라지에 칠성단(七星壇)에서 천제(天祭)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천제(天祭)를 지낸 것과 같다.

또한 배달국에서 내려온 삼신인(三神人)은 하늘에서 명()을 받고 땅에서 영()을 길러 이기(理氣)로 화생(化生)하여 덕()을 이룬 것이라고 믿었다.

탐라국은 여러 면에서 우리 민족의 국통맥(國統脈)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방 한()민족 시원 역사 시대의 역년(歷年)

환국

7

환인시대

3301년간

배달

18

환웅시대

1565년간

조선

47세 단군시대

2096년간

기원전 2333

탐라

108세 을나시대

3307년간

기원전 7197

기원전 3897

기원전 2369

국통맥

극존칭

즉위년도

통치기간

환나라 건국

환인

(7)

임술壬戌

서기 전 7197~3897

3301

신시배달 개국

환웅

(18)

계해癸亥

서기 전 3897~2333

삼성혈 고을나 900

1565

단군조선 개국

단군

(47)

무진戊辰

서기 전 2333~238

2096

탐라국 건국

양을나

(108)

서기전 2369~ 서기 938

BC2369+AC938= 3,307년 통치

3307

북부여 개국

해모수

(6)

임술壬戌

서기 전 239~58

181

고구려 개국

고주몽

(28)

계해癸亥

서기 전 58 ~서기 668

726

대진/발해 개국

대조영

(56)

무진戊辰

서기 668~918

250

신시배달국은 구려하(句麗河 지금의 요하遼河) 주변으로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으며 해수면이 지금보다 10미터나 높았다. 그러나 18세 환웅시대에 들면서 기후 환경이 급변하여 홍수로 인하여 구려하(句麗河) 강이 자주 범람하였다.

그러므로 18세환웅천황 거불단(居弗檀)은 황제(皇弟)를 시켜 구려하 범람을 막을 수 있는 비책(秘策)을 찾게 하였다. 천황의 명을 받은 황제는 비책의 답을 구하고자 20여명의 생각이 깊은 자들과 함께 숙의(熟議)하였다. 우선은 구려하 주변의 산세와 바다 멀리까지 강의 상태를 조사하기로 하였다.

18세환웅 즉위 9년 기원전 23737월에 황제의 일행 12명은 구려하에서 어로활동을 위해 쓰던 통나무배를 여러 개 연결한 통나무 뗏배를 타고 구려하 하구 바다로 나갔다. 때마침 홍수와 함께 불어 닥친 폭풍에 만나 휘말리기 시작하였고, 결국은 열흘 동안이나 불어 닥친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먼 바다로 표류하고 말았다. 먼 바다에 표류하고 폭풍우에 시달리기 십 여일이 지나니 높은 파도를 이겨 내지 못하고 한 사람씩 죽거나 바다에 추락하여 실종되고 말았다. 이십 여일이 지나니 살아남은 자도 정신을 잃고 실신 상태 이었다. 바다 위에 태양 빛이 작렬하고 있었다. 바닷물로 입술을 적시며 어쩌다 잡힌 물고기로 연명하기를 사십 여일이 지났다.

어느 날 해안가에 도착하여 눈을 떠 보니 멀리 산이 보이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 이였다. 그 곳이 바로 탐라(耽羅 지금의 제주도)의 해안 이었다. 그 곳이 지금의 한라산 기슭의 모흥혈(毛興穴) 이었다. 그 때가 기원전 23739월 이었다.

12명이 출발한 일행은 구사일생으로 겨우 세 사람만 살아 해변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일행 중에서 나이 어리고 젊은 세 사람만이 살아 무인도 탐라 땅에 오른 것이다. 한분은 17세환웅 혁다세(赫多世)의 아들 양()이요, 또 한분은 촌장의 아들 고()이며, 또 다른 촌장의 아들 부() 이었다.

()17세환웅 천황 혁다세(赫多世)와 구다천국(勾茶川國 일명 독로국瀆瀘國) 왕의 딸 사이에 셋째 황자(皇子)B.C 2394년 계미(癸未)410일 인시(寅時)에 태어났었고, ()B.C 2391년 경진(庚辰)1010일 술시(戌時)에 태어났으며, ()B.C 2389년 무인(戊寅)1210일 묘시(卯時)에 태어났었다.

그리고 양을나(良乙那) 왕의 배위配位는 벽랑국왕(碧浪國王)의 장녀로 옥함(玉函)(옥으로 치장한 배) 타고 왔다고 하였다.

 

탐라국(耽羅國) 왕계표(王系表) (제주양씨 문중)

제주도의 옛 명칭 : 탐라국(耽羅國), 국성 : (), 건국 : 서기전 2369,

1대 양을나왕 ~ 서기 912108대 선위왕 ~ 고자견왕 938년까지 3,307년간 통치

세수

국왕명

생년

(서기)

탐라왕 재위

천수

()

기간()

즉위년도

탐기

서기

1

을나

乙那

B.C2394

100

1

B.C2369

124

2

토신

土神

B.C2329

61

100

B.C2270

119

3

해신

海神

B.C2259

69

160

B.C2210

117

4

풍신

風神

B.C2189

63

228

B.C2142

109

5

조교

朝交

B.C2161

31

290

B.C2080

111

6

마교

馬交

B.C2088

71

320

B.C2050

108

7

하교

夏交

B.C2049

31

390

B.C1980

99

8

변교

弁交

B.C2027

21

420

B.C1950

97

9

진교

辰交

B.C1952

81

440

B.C1930

102

10

율제

律制

B.C1928

51

520

B.C1850

98

11

율치

律治

B.C1883

51

540

B.C1830

103

12

혈제

穴制

B.C1865

11

590

B.C1780

95

13

초지

草地

B.C1847

16

600

B.C1770

92

14

측지

測地

B.C1829

16

615

B.C1755

89

15

해초

海草

B.C1811

21

630

B.C1740

91

16

해제

海制

B.C1793

21

650

B.C1720

93

17

하절

夏絶

B.C1775

11

670

B.C1700

85

18

은교

殷交

B.C1757

31

680

B.C1690

97

19

충렬

忠烈

B.C1740

6

710

B.C1660

85

20

효성

孝誠

B.C1722

11

715

B.C1655

77

21

충효

忠孝

B.C1704

16

725

B.C1645

74

22

문무

文武

B.C1686

26

740

B.C1630

81

23

석술

石術

B.C1657

36

765

B.C1605

87

24

선린

善隣

B.C1635

21

800

B.C1570

85

25

지술

地術

B.C1614

21

820

B.C1550

84

26

풍림

風林

B.C1591

31

840

B.C1530

91

27

천술

天術

B.C1571

11

870

B.C1500

81

28

석림

石林

B.C1551

26

880

B.C1490

86

29

지해

地海

B.C1527

36

905

B.C1465

97

30

지천

地天

B.C1486

51

940

B.C1430

106

31

혈거

穴居

B.C1461

11

990

B.C1380

91

32

혈재

穴再

B.C1430

21

1000

B.C1370

80

33

치지

治地

B.C1402

41

1020

B.C1350

92

34

천해

天海

B.C1373

31

1060

B.C1310

93

35

목초

木草

B.C1342

31

1090

B.C1280

92

36

설술

雪術

B.C1318

21

1120

B.C1250

88

37

변절

弁絶

B.C1285

36

1140

B.C1230

94

38

성술

星術

B.C1255

31

1175

B.C1195

90

39

월술

月術

B.C1231

21

1205

B.C1165

86

40

월성

月星

B.C1199

41

1225

B.C1145

94

41

입석

立石

B.C1165

31

1265

B.C1105

91

42

지석

支石

B.C1138

21

1295

B.C1075

83

43

은절

殷絶

B.C1111

41

1315

B.C1055

96

44

주교

周交

B.C1082

31

1355

B.C1015

97

45

설풍

雪風

B.C1052

31

1385

B.C985

97

46

성광

星光

B.C1022

21

1415

B.C955

87

47

자강

自强

B.C991

41

1435

B.C935

96

48

진지

震地

B.C955

31

1475

B.C895

90

49

지제

地祭

B.C926

31

1505

B.C865

91

50

천제

天祭

B.C900

21

1535

B.C835

85

51

태평

太平

B.C871

41

1555

B.C815

96

52

해술

海術

B.C836

31

1595

B.C775

91

53

민평

民平

B.C804

31

1625

B.C745

89

54

문민

文民

B.C774

31

1655

B.C715

89

55

성측

星測

B.C751

31

1685

B.C685

96

56

월광

月光

B.C722

11

1715

B.C655

77

57

일성

日星

B.C702

31

1725

B.C645

87

58

성국

聖國

B.C658

51

1755

B.C615

93

59

국평

國平

B.C615

31

1805

B.C565

80

60

풍술

風術

B.C589

31

1835

B.C535

84

61

선술

船術

B.C565

31

1865

B.C505

90

62

해풍

海風

B.C534

31

1895

B.C475

89

63

라주

羅州

B.C496

51

1925

B.C445

101

64

양과

良瓜

B.C463

11

1975

B.C395

78

65

주절

周絶

B.C436

31

1985

B.C385

81

66

진교

秦交

B.C404

31

2015

B.C355

79

67

마절

馬絶

B.C382

21

2045

B.C325

77

68

호국

護國

B.C365

41

2065

B.C305

100

69

진절

秦絶

B.C326

31

2105

B.C265

91

70

조절

朝絶

B.C298

31

2135

B.C235

93

71

한교

漢交

B.C263

31

2165

B.C205

88

72

부교

夫交

B.C225

21

2195

B.C175

70

73

평강

平强

B.C205

41

2215

B.C155

90

74

성점

星占

B.C179

31

2255

B.C115

94

75

월점

月占

B.C144

31

2285

B.C85

89

76

풍점

風占

B.C111

31

2315

B.C55

86

77

지해

地海

B.C84

32

2345

B.C25

91

78

민제

民祭

B.C51

31

2376

7

88

79

지신

地神

B.C24

31

2406

37

91

80

지천

地天

8

31

2436

67

89

81

지사

地師

41

31

2466

97

86

82

지풍

地風

69

31

2496

127

88

83

가교

伽交

99

21

2526

157

78

84

대평

大平

115

31

2546

177

92

85

백교

百交

150

41

2576

207

97

86

신교

新交

191

31

2616

247

86

87

진교

晉交

222

31

2646

277

85

88

고교

高交

255

41

2676

307

92

89

성주

星主

288

21

2716

347

79

90

위양

爲梁

316

31

2736

367

81

91

종제

宗制

343

31

2766

397

84

92

선술

船述

371

31

2796

427

86

93

백절

百絶

405

30

2826

457

81

94

양교

梁交

429

32

2855

486

88

95

가절

伽絶

459

31

2886

517

88

96

백신

百新

490

31

2916

547

87

97

수교

隋交

519

31

2946

577

88

98

무제

武制

555

31

2976

607

82

99

당교

唐交

588

31

3006

637

79

100

탐신

耽新

619

31

3036

667

78

101

역달

易達

651

31

3066

697

76

102

발교

渤交

673

21

3096

727

74

103

남원

南原

695

41

3116

747

92

104

토제

土制

729

31

3156

787

88

105

해제

海制

762

32

3186

817

86

106

천제

天制

795

30

3217

848

82

107

후양

後梁

817

31

3246

877

90

108

선위

禪位

840

6

3276

907

94

평균재위 31.65

평균천수 90.5

3281년간 이어온 양을나 탐라국 912년에 고을나의 후손 고자견왕에 선위하여 서기 938년에 고려에 합병되어 고려 일부가 되다.

 

위 탐라국(耽羅國) 왕세기표에 보면 서기전 2369년에 건국하였다.

이후 서기 938년에 고려(高麗)에 속국(屬國)이 되었으니 BC2369+AC 938=3307년간 지속된 세계 최장수 해상왕국(海上王國)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통맥(國統脈)은 환인(桓因)의 환국(桓國)3,096년간, 계승하여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1,565년간 계승하여 단군조선(檀君朝鮮)2,096년간 이어졌다. 탐라국(耽羅國)3,307년간 인류(人類) 역사상(歷史上) 국호(國號) 변함없이 장자계승(長子繼承)으로 가장 오래 동안 통치(統治)가 이루어 졌던 나라이었다.

 

탐라국의 탐라인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육지와는 차별되는 문화가 발전해 왔으며 언어적으로도 차이가 있으나 현재 우리 민족의 토속어인 산스크리토어인 고어(古語)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때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었다. 한 때는 백제 부흥 전쟁인 백강전투 때 제주도 사람들이 지원한 사실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마저 몰아낸 후 서기 679년에 탐라를 경락(經絡)하여 태자를 볼모로 하고 신라의 복속국이 되었으나 간접통치방식에 따라 국호와 자율권이 인정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고려의 탐라군으로 승격을 하였지만 자치권은 인정받았다. 그러나 원나라(몽골)의 간접지배를 받게 되면서 원나라는 탐라총관부를 두고 직접 지배를 하게 된다. 탐라총관부는 제주도 한라산 해발고도 600m 까지 나무를 모두 불태우고 초원으로 만들어서 말을 키웠고, 또한 일본을 정벌하기위한 핵심 기구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행정구역이 부, , , (부사, 목사, 군수, 현감 또는 사또)으로 나누었는데 제주도에는 12현의 체제를 설치하였다. 즉 제주목과 대정현, 정의현을 설치하고 파견하였으며 곡납으로 특산물을 정기적으로 바치었다. 제주도 백성들이 가뭄이 들고 힘들 때에도 조공을 바쳐야 하는 감귤농사가 너무 힘들어서 일부로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때 유배지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배를 간 것으로 기록되었다. 광해군 및 왕족과 학자, 승려, 선조의 핏줄인 이건이 한말이 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조밥이고, 가장 두려운 것은 뱀이며, 가장 슬픈 것은 파도소리다!" 라고 하였다.

 

탐라국(耽羅國)은 고려 이전인 고구려, 백제, 신라, 신라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된 듯 외교적 관계를 맺어왔지만 탐라국 명칭과 자치권을 잃은 적은 없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대진을 계승한 고려 태조 2(938)에 탐라국왕 고자견(高自堅)이 태자 고말로(高末老)를 고려에 입조시키고 속국(屬國)됨을 자청(自請)하였고, 고려 태조(太祖)는 탐라국의 왕에게 성주(星主), 2등 권력자에게는 왕자(王子)라는 관직을 제수(制守)하였다. 이때부터 탐라는 왕이 아니라 성주라고 불렀다.

 

탐라국왕의 태자 고말로가 고려에 입조한 후 고려 충열왕 시대 1275년에 다시 탐라국 국호를 회복하였지만 1294년에 다시 고려에 환속(還屬)되었다.

서기 1,402년 성주인 고봉례(高鳳禮) 가 성주와 왕자의 호칭이 분수에 맞지 않으니 개정하여 줄 것을 청하며 인부(印符)를 조선 조정에 반납하여 마지막 성주가 되었다. 그 후 1,403년 조선 조정은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개칭하였고 전라도 관할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을 설치, 완전하게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는 행정구역으로 하였다.

 

고려가 원나라(몽골) 간섭 기에 접어들자 고려군 주력부대인 삼별초가 진도에 이어 제주도에서 고려군과 원나라군에 대항하여 최후의 결사 항전을 제주도에서 하였으나 패하였다. 이후 원나라 간섭기에는 일본 정벌과 제주도가 말을 키우기 좋은 환경에 주목해 원나라의 직할령인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어 (1273) 요양행성 산하에 들어갔으며 이후 1290년 고려 충렬왕 때 반환받았다. 이때부터 한반도의 독립된 국가섬의 나라라는 뜻을 지닌 탐라(耽羅)에서 한반도의 일부인물 건너 고을이라는 제주(濟州)로 개칭 되었다.

 

현재 제주도에는 고려 무신정권이 제주도에 삼별초 진입을 막기 위하여 축조한 성이 지금도 신산리, 온평리, 화북리, 태흥리 등 곳곳에 해안을 둘러싼 환해장성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를 계승한 이씨조선 시대 때에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을 두고 공납을 바치도록 하였다. 공납으로 감귤을 바치었다.

 

비록 행정 구역 상으로는 전라도에 속했으나 제주목은 사실 조선시대에도 특수행정구역에 가까웠다. 실제로 다른 군수, 현감들이 목사와 독립적으로 관찰사의 직속 부하였던 것과 달리 정의현, 대정현의 현감들은 전라도 관찰사의 직속이 아니라 제주목사의 관할 하에 있었다.

 

소속 현감에 대한 행정적 명령에 대해 전라도 관찰사에게 사후적으로 보고 하였으며 보통 목사가 정 3품이었던 것과 달리 제주목사는 대부분 수군 절도사직을 겸한 종 2품이라 관찰사와 직급이 같았고 전라도 관찰사는 제주목사에 대해 의전적 서열은 상석이되 서로 존대하였다. <문장 일부 출처 : 제주특별자치도청 자료 참조>

 


첨부파일 제주양씨 문중 탐라국 왕세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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