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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양씨 문중 탐라 제왕세기
해상왕국 탐라(海上王國耽羅)
제주양씨(濟州梁氏) 문중 사료(史料)에 삼성혈(三姓穴)에서 삼신인(三神人)(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이 솟은 이후 벽랑국의 세공주가 제주도에 와서 각각 결혼을 하였다는 신화가 있다. 서기전 2369년 임진(壬辰)년에 탐라(耽羅)국을 건국(建國)하였다고 한다.
단군조선 개국년(檀君朝鮮開國年)이 무진(戊辰)년 서기전 2333년 10월 3일에 양을나의 삼성혈 출현 40년에 조카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우니 축하 사절로 태자를 보냈다 하였으니 탐라국 개국은 이보다 36년 전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사성조(四聖祖) 시대
[마고성(麻姑城)시대의 황궁씨(黃穹氏)로부터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계승하고 승계하신 환인(桓仁), 환웅(桓雄), 양을나(良乙那), 단군(檀君)시대를 말한다.]
1. 환인(桓仁)의 환(桓) 나라 : 제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桓仁) 환기 1년. 서기전 7198년 ~ 환기 3301년. 서기전 3898년 제7대 지위리(智爲利) 환인
2. 환웅(桓雄)의 신시배달(神市倍達) 나라 : 제1대 거발한(居發桓) 환웅(桓雄) 환기 3301년. 서기전 3898년 ~ 환기 4817년. 서기전 2381년 제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
3. 양을나(良乙那)의 탐라(耽羅) 나라 : 제1대 양을나(良乙那) 환기 4829년. 서기전 2369년 ~ 환기 8110년. 서기 912년 제108대 을나 선위왕 ~ 환기 8136년 ~ 서기 938년 고자견(高自堅)왕
4.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조선(朝鮮) 나라 : 제1대 단군왕검(檀君王儉) 환기 4865년. 서기전 2333년~환기 6903년. 서기전 295년 제47대 단군 고열가(高列加)
신시배달(神市倍達) 나라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인 것과 같이 영주지(瀛洲誌)에 의하면 삼성혈(三姓穴)에서 솟은 세분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우러러 보아 삼도리(三徒里)로 나누어 도읍(都邑)을 정하고 나라의 호칭(呼稱)을 탐라(耽羅) 라고 하였다. 이때 온 나라 인심(人心)이 연장자인 양씨(良氏)에게 있으므로 양씨(良氏)를 임금을 삼았다고 한다.
우리 신시배달(神市倍達) 민족은 북두칠성(北斗七星 하늘)에서 왔기에 천손(天孫)이다. 수천년간 개천절(開天節)인 10월 3일 천제(天祭)를 지냈다. 배달민족(倍達民族)은 사람이 사망(死亡)하면 관(棺)에 칠성판(七星板)을 깔고 시신(屍身)을 눕힌다. 그리고 한 곳에서 일곱 날씩 일곱 곳에서 일곱 번 제사를 지냈다. 그리하여 49일 후이면 칠성판을 지고 북두칠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배달의 후손인 탐라 사람들도 이를 따랐다. 제주도(濟州島)에는 북두칠성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이 있는데 이곳이 제주시에 위치한 일곱 곳의 칠성제단(七星祭壇)이 있었고 그중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에 있는 칠성통이다. 고서(古書)인 탐라지에 칠성단(七星壇)에서 천제(天祭)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천제(天祭)를 지낸 것과 같다.
또한 배달국에서 내려온 삼신인(三神人)은 하늘에서 명(命)을 받고 땅에서 영(靈)을 길러 이기(理氣)로 화생(化生)하여 덕(德)을 이룬 것이라고 믿었다.
탐라국은 여러 면에서 우리 민족의 국통맥(國統脈)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방 한(韓)민족 시원 역사 시대의 역년(歷年) | |||||
환국 | 7세 환인시대 3301년간 | 배달 | 18세 환웅시대 1565년간 | 조선 | 47세 단군시대 2096년간 |
기원전 2333년∼ | |||||
탐라 | 108세 을나시대 3307년간 | ||||
기원전 7197년∼ | 기원전 3897년∼ | 기원전 2369년∼ |
국통맥 | 극존칭 | 즉위년도 | 통치기간 |
환나라 건국 | 환인 (7대) | 임술壬戌 서기 전 7197~3897 | 3301 |
신시배달 개국 | 환웅 (18대) | 계해癸亥년 서기 전 3897~2333 삼성혈 고을나 900년 | 1565 |
단군조선 개국 | 단군 (47대) | 무진戊辰년 서기 전 2333~238 | 2096 |
탐라국 건국 | 양을나 (108대) | 서기전 2369~ 서기 938 BC2369+AC938= 3,307년 통치 | 3307 |
북부여 개국 | 해모수 (6대) | 임술壬戌년 서기 전 239~58 | 181 |
고구려 개국 | 고주몽 (28대) | 계해癸亥 서기 전 58 ~서기 668 | 726 |
대진/발해 개국 | 대조영 (56대) | 무진戊辰 서기 668~918 | 250 |
신시배달국은 구려하(句麗河 지금의 요하遼河) 주변으로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으며 해수면이 지금보다 10미터나 높았다. 그러나 18세 환웅시대에 들면서 기후 환경이 급변하여 홍수로 인하여 구려하(句麗河) 강이 자주 범람하였다.
그러므로 18세환웅천황 거불단(居弗檀)은 황제(皇弟)를 시켜 구려하 범람을 막을 수 있는 비책(秘策)을 찾게 하였다. 천황의 명을 받은 황제는 비책의 답을 구하고자 20여명의 생각이 깊은 자들과 함께 숙의(熟議)하였다. 우선은 구려하 주변의 산세와 바다 멀리까지 강의 상태를 조사하기로 하였다.
18세환웅 즉위 9년 기원전 2373년 7월에 황제의 일행 12명은 구려하에서 어로활동을 위해 쓰던 통나무배를 여러 개 연결한 통나무 뗏배를 타고 구려하 하구 바다로 나갔다. 때마침 홍수와 함께 불어 닥친 폭풍에 만나 휘말리기 시작하였고, 결국은 열흘 동안이나 불어 닥친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먼 바다로 표류하고 말았다. 먼 바다에 표류하고 폭풍우에 시달리기 십 여일이 지나니 높은 파도를 이겨 내지 못하고 한 사람씩 죽거나 바다에 추락하여 실종되고 말았다. 이십 여일이 지나니 살아남은 자도 정신을 잃고 실신 상태 이었다. 바다 위에 태양 빛이 작렬하고 있었다. 바닷물로 입술을 적시며 어쩌다 잡힌 물고기로 연명하기를 사십 여일이 지났다.
어느 날 해안가에 도착하여 눈을 떠 보니 멀리 산이 보이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 이였다. 그 곳이 바로 탐라(耽羅 지금의 제주도)의 해안 이었다. 그 곳이 지금의 한라산 기슭의 모흥혈(毛興穴) 이었다. 그 때가 기원전 2373년9월 이었다.
12명이 출발한 일행은 구사일생으로 겨우 세 사람만 살아 해변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일행 중에서 나이 어리고 젊은 세 사람만이 살아 무인도 탐라 땅에 오른 것이다. 한분은 17세환웅 혁다세(赫多世)의 아들 양(良)이요, 또 한분은 촌장의 아들 고(高)이며, 또 다른 촌장의 아들 부(夫) 이었다.
양(良)은 17세환웅 천황 혁다세(赫多世)와 구다천국(勾茶川國 일명 독로국瀆瀘國) 왕의 딸 사이에 셋째 황자(皇子)로 B.C 2394년 계미(癸未)년 4월10일 인시(寅時)에 태어났었고, 고(高)는 B.C 2391년 경진(庚辰)년 10월10일 술시(戌時)에 태어났으며, 부(夫)는 B.C 2389년 무인(戊寅)년 12월10일 묘시(卯時)에 태어났었다.
그리고 양을나(良乙那) 왕의 배위配位는 벽랑국왕(碧浪國王)의 장녀로 옥함(玉函)을 (옥으로 치장한 배) 타고 왔다고 하였다.
탐라국(耽羅國) 왕계표(王系表) (제주양씨 문중) 제주도의 옛 명칭 : 탐라국(耽羅國), 국성 : 양(良), 건국 : 서기전 2369년, 1대 양을나왕 ~ 서기 912년 108대 선위왕 ~ 고자견왕 938년까지 3,307년간 통치 | |||||||
세수 | 국왕명 | 생년 (서기) | 탐라왕 재위 | 천수 (세) | |||
기간(년) | 즉위년도 | ||||||
탐기 | 서기 | ||||||
1 | 을나 | 乙那 | B.C2394 | 100 | 1 | B.C2369 | 124 |
2 | 토신 | 土神 | B.C2329 | 61 | 100 | B.C2270 | 119 |
3 | 해신 | 海神 | B.C2259 | 69 | 160 | B.C2210 | 117 |
4 | 풍신 | 風神 | B.C2189 | 63 | 228 | B.C2142 | 109 |
5 | 조교 | 朝交 | B.C2161 | 31 | 290 | B.C2080 | 111 |
6 | 마교 | 馬交 | B.C2088 | 71 | 320 | B.C2050 | 108 |
7 | 하교 | 夏交 | B.C2049 | 31 | 390 | B.C1980 | 99 |
8 | 변교 | 弁交 | B.C2027 | 21 | 420 | B.C1950 | 97 |
9 | 진교 | 辰交 | B.C1952 | 81 | 440 | B.C1930 | 102 |
10 | 율제 | 律制 | B.C1928 | 51 | 520 | B.C1850 | 98 |
11 | 율치 | 律治 | B.C1883 | 51 | 540 | B.C1830 | 103 |
12 | 혈제 | 穴制 | B.C1865 | 11 | 590 | B.C1780 | 95 |
13 | 초지 | 草地 | B.C1847 | 16 | 600 | B.C1770 | 92 |
14 | 측지 | 測地 | B.C1829 | 16 | 615 | B.C1755 | 89 |
15 | 해초 | 海草 | B.C1811 | 21 | 630 | B.C1740 | 91 |
16 | 해제 | 海制 | B.C1793 | 21 | 650 | B.C1720 | 93 |
17 | 하절 | 夏絶 | B.C1775 | 11 | 670 | B.C1700 | 85 |
18 | 은교 | 殷交 | B.C1757 | 31 | 680 | B.C1690 | 97 |
19 | 충렬 | 忠烈 | B.C1740 | 6 | 710 | B.C1660 | 85 |
20 | 효성 | 孝誠 | B.C1722 | 11 | 715 | B.C1655 | 77 |
21 | 충효 | 忠孝 | B.C1704 | 16 | 725 | B.C1645 | 74 |
22 | 문무 | 文武 | B.C1686 | 26 | 740 | B.C1630 | 81 |
23 | 석술 | 石術 | B.C1657 | 36 | 765 | B.C1605 | 87 |
24 | 선린 | 善隣 | B.C1635 | 21 | 800 | B.C1570 | 85 |
25 | 지술 | 地術 | B.C1614 | 21 | 820 | B.C1550 | 84 |
26 | 풍림 | 風林 | B.C1591 | 31 | 840 | B.C1530 | 91 |
27 | 천술 | 天術 | B.C1571 | 11 | 870 | B.C1500 | 81 |
28 | 석림 | 石林 | B.C1551 | 26 | 880 | B.C1490 | 86 |
29 | 지해 | 地海 | B.C1527 | 36 | 905 | B.C1465 | 97 |
30 | 지천 | 地天 | B.C1486 | 51 | 940 | B.C1430 | 106 |
31 | 혈거 | 穴居 | B.C1461 | 11 | 990 | B.C1380 | 91 |
32 | 혈재 | 穴再 | B.C1430 | 21 | 1000 | B.C1370 | 80 |
33 | 치지 | 治地 | B.C1402 | 41 | 1020 | B.C1350 | 92 |
34 | 천해 | 天海 | B.C1373 | 31 | 1060 | B.C1310 | 93 |
35 | 목초 | 木草 | B.C1342 | 31 | 1090 | B.C1280 | 92 |
36 | 설술 | 雪術 | B.C1318 | 21 | 1120 | B.C1250 | 88 |
37 | 변절 | 弁絶 | B.C1285 | 36 | 1140 | B.C1230 | 94 |
38 | 성술 | 星術 | B.C1255 | 31 | 1175 | B.C1195 | 90 |
39 | 월술 | 月術 | B.C1231 | 21 | 1205 | B.C1165 | 86 |
40 | 월성 | 月星 | B.C1199 | 41 | 1225 | B.C1145 | 94 |
41 | 입석 | 立石 | B.C1165 | 31 | 1265 | B.C1105 | 91 |
42 | 지석 | 支石 | B.C1138 | 21 | 1295 | B.C1075 | 83 |
43 | 은절 | 殷絶 | B.C1111 | 41 | 1315 | B.C1055 | 96 |
44 | 주교 | 周交 | B.C1082 | 31 | 1355 | B.C1015 | 97 |
45 | 설풍 | 雪風 | B.C1052 | 31 | 1385 | B.C985 | 97 |
46 | 성광 | 星光 | B.C1022 | 21 | 1415 | B.C955 | 87 |
47 | 자강 | 自强 | B.C991 | 41 | 1435 | B.C935 | 96 |
48 | 진지 | 震地 | B.C955 | 31 | 1475 | B.C895 | 90 |
49 | 지제 | 地祭 | B.C926 | 31 | 1505 | B.C865 | 91 |
50 | 천제 | 天祭 | B.C900 | 21 | 1535 | B.C835 | 85 |
51 | 태평 | 太平 | B.C871 | 41 | 1555 | B.C815 | 96 |
52 | 해술 | 海術 | B.C836 | 31 | 1595 | B.C775 | 91 |
53 | 민평 | 民平 | B.C804 | 31 | 1625 | B.C745 | 89 |
54 | 문민 | 文民 | B.C774 | 31 | 1655 | B.C715 | 89 |
55 | 성측 | 星測 | B.C751 | 31 | 1685 | B.C685 | 96 |
56 | 월광 | 月光 | B.C722 | 11 | 1715 | B.C655 | 77 |
57 | 일성 | 日星 | B.C702 | 31 | 1725 | B.C645 | 87 |
58 | 성국 | 聖國 | B.C658 | 51 | 1755 | B.C615 | 93 |
59 | 국평 | 國平 | B.C615 | 31 | 1805 | B.C565 | 80 |
60 | 풍술 | 風術 | B.C589 | 31 | 1835 | B.C535 | 84 |
61 | 선술 | 船術 | B.C565 | 31 | 1865 | B.C505 | 90 |
62 | 해풍 | 海風 | B.C534 | 31 | 1895 | B.C475 | 89 |
63 | 라주 | 羅州 | B.C496 | 51 | 1925 | B.C445 | 101 |
64 | 양과 | 良瓜 | B.C463 | 11 | 1975 | B.C395 | 78 |
65 | 주절 | 周絶 | B.C436 | 31 | 1985 | B.C385 | 81 |
66 | 진교 | 秦交 | B.C404 | 31 | 2015 | B.C355 | 79 |
67 | 마절 | 馬絶 | B.C382 | 21 | 2045 | B.C325 | 77 |
68 | 호국 | 護國 | B.C365 | 41 | 2065 | B.C305 | 100 |
69 | 진절 | 秦絶 | B.C326 | 31 | 2105 | B.C265 | 91 |
70 | 조절 | 朝絶 | B.C298 | 31 | 2135 | B.C235 | 93 |
71 | 한교 | 漢交 | B.C263 | 31 | 2165 | B.C205 | 88 |
72 | 부교 | 夫交 | B.C225 | 21 | 2195 | B.C175 | 70 |
73 | 평강 | 平强 | B.C205 | 41 | 2215 | B.C155 | 90 |
74 | 성점 | 星占 | B.C179 | 31 | 2255 | B.C115 | 94 |
75 | 월점 | 月占 | B.C144 | 31 | 2285 | B.C85 | 89 |
76 | 풍점 | 風占 | B.C111 | 31 | 2315 | B.C55 | 86 |
77 | 지해 | 地海 | B.C84 | 32 | 2345 | B.C25 | 91 |
78 | 민제 | 民祭 | B.C51 | 31 | 2376 | 7 | 88 |
79 | 지신 | 地神 | B.C24 | 31 | 2406 | 37 | 91 |
80 | 지천 | 地天 | 8 | 31 | 2436 | 67 | 89 |
81 | 지사 | 地師 | 41 | 31 | 2466 | 97 | 86 |
82 | 지풍 | 地風 | 69 | 31 | 2496 | 127 | 88 |
83 | 가교 | 伽交 | 99 | 21 | 2526 | 157 | 78 |
84 | 대평 | 大平 | 115 | 31 | 2546 | 177 | 92 |
85 | 백교 | 百交 | 150 | 41 | 2576 | 207 | 97 |
86 | 신교 | 新交 | 191 | 31 | 2616 | 247 | 86 |
87 | 진교 | 晉交 | 222 | 31 | 2646 | 277 | 85 |
88 | 고교 | 高交 | 255 | 41 | 2676 | 307 | 92 |
89 | 성주 | 星主 | 288 | 21 | 2716 | 347 | 79 |
90 | 위양 | 爲梁 | 316 | 31 | 2736 | 367 | 81 |
91 | 종제 | 宗制 | 343 | 31 | 2766 | 397 | 84 |
92 | 선술 | 船述 | 371 | 31 | 2796 | 427 | 86 |
93 | 백절 | 百絶 | 405 | 30 | 2826 | 457 | 81 |
94 | 양교 | 梁交 | 429 | 32 | 2855 | 486 | 88 |
95 | 가절 | 伽絶 | 459 | 31 | 2886 | 517 | 88 |
96 | 백신 | 百新 | 490 | 31 | 2916 | 547 | 87 |
97 | 수교 | 隋交 | 519 | 31 | 2946 | 577 | 88 |
98 | 무제 | 武制 | 555 | 31 | 2976 | 607 | 82 |
99 | 당교 | 唐交 | 588 | 31 | 3006 | 637 | 79 |
100 | 탐신 | 耽新 | 619 | 31 | 3036 | 667 | 78 |
101 | 역달 | 易達 | 651 | 31 | 3066 | 697 | 76 |
102 | 발교 | 渤交 | 673 | 21 | 3096 | 727 | 74 |
103 | 남원 | 南原 | 695 | 41 | 3116 | 747 | 92 |
104 | 토제 | 土制 | 729 | 31 | 3156 | 787 | 88 |
105 | 해제 | 海制 | 762 | 32 | 3186 | 817 | 86 |
106 | 천제 | 天制 | 795 | 30 | 3217 | 848 | 82 |
107 | 후양 | 後梁 | 817 | 31 | 3246 | 877 | 90 |
108 | 선위 | 禪位 | 840 | 6 | 3276 | 907 | 94 |
평균재위 31.65년 | 평균천수 90.5세 | ||||||
3281년간 이어온 양을나 탐라국 912년에 고을나의 후손 고자견왕에 선위하여 서기 938년에 고려에 합병되어 고려 일부가 되다. |
위 탐라국(耽羅國) 왕세기표에 보면 서기전 2369년에 건국하였다.
이후 서기 938년에 고려(高麗)에 속국(屬國)이 되었으니 BC2369+AC 938=3307년간 지속된 세계 최장수 해상왕국(海上王國)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통맥(國統脈)은 환인(桓因)의 환국(桓國)이 3,096년간, 계승하여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이 1,565년간 계승하여 단군조선(檀君朝鮮)이 2,096년간 이어졌다. 탐라국(耽羅國)은 3,307년간 인류(人類) 역사상(歷史上) 국호(國號) 변함없이 장자계승(長子繼承)으로 가장 오래 동안 통치(統治)가 이루어 졌던 나라이었다.
탐라국의 탐라인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육지와는 차별되는 문화가 발전해 왔으며 언어적으로도 차이가 있으나 현재 우리 민족의 토속어인 산스크리토어인 고어(古語)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때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었다. 한 때는 백제 부흥 전쟁인 백강전투 때 제주도 사람들이 지원한 사실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마저 몰아낸 후 서기 679년에 탐라를 경락(經絡)하여 태자를 볼모로 하고 신라의 복속국이 되었으나 간접통치방식에 따라 국호와 자율권이 인정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고려의 탐라군으로 승격을 하였지만 자치권은 인정받았다. 그러나 원나라(몽골)의 간접지배를 받게 되면서 원나라는 탐라총관부를 두고 직접 지배를 하게 된다. 탐라총관부는 제주도 한라산 해발고도 600m 까지 나무를 모두 불태우고 초원으로 만들어서 말을 키웠고, 또한 일본을 정벌하기위한 핵심 기구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행정구역이 부, 목, 군, 현 (부사, 목사, 군수, 현감 또는 사또)으로 나누었는데 제주도에는 1목 2현의 체제를 설치하였다. 즉 제주목과 대정현, 정의현을 설치하고 파견하였으며 곡납으로 특산물을 정기적으로 바치었다. 제주도 백성들이 가뭄이 들고 힘들 때에도 조공을 바쳐야 하는 감귤농사가 너무 힘들어서 일부로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때 유배지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배를 간 것으로 기록되었다. 광해군 및 왕족과 학자, 승려, 선조의 핏줄인 이건이 한말이 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조밥이고, 가장 두려운 것은 뱀이며, 가장 슬픈 것은 파도소리다!" 라고 하였다.
탐라국(耽羅國)은 고려 이전인 고구려, 백제, 신라, 신라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된 듯 외교적 관계를 맺어왔지만 탐라국 명칭과 자치권을 잃은 적은 없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대진을 계승한 고려 태조 2년 (938년)에 탐라국왕 고자견(高自堅)이 태자 고말로(高末老)를 고려에 입조시키고 속국(屬國)됨을 자청(自請)하였고, 고려 태조(太祖)는 탐라국의 왕에게 성주(星主), 2등 권력자에게는 왕자(王子)라는 관직을 제수(制守)하였다. 이때부터 탐라는 왕이 아니라 성주라고 불렀다.
탐라국왕의 태자 고말로가 고려에 입조한 후 고려 충열왕 시대 1275년에 다시 탐라국 국호를 회복하였지만 1294년에 다시 고려에 환속(還屬)되었다.
서기 1,402년 성주인 고봉례(高鳳禮) 가 성주와 왕자의 호칭이 분수에 맞지 않으니 개정하여 줄 것을 청하며 인부(印符)를 조선 조정에 반납하여 마지막 성주가 되었다. 그 후 1,403년 조선 조정은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개칭하였고 전라도 관할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을 설치, 완전하게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는 행정구역으로 하였다.
고려가 원나라(몽골) 간섭 기에 접어들자 고려군 주력부대인 삼별초가 진도에 이어 제주도에서 고려군과 원나라군에 대항하여 최후의 결사 항전을 제주도에서 하였으나 패하였다. 이후 원나라 간섭기에는 일본 정벌과 제주도가 말을 키우기 좋은 환경에 주목해 원나라의 직할령인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어 (1273년) 요양행성 산하에 들어갔으며 이후 1290년 고려 충렬왕 때 반환받았다. 이때부터 한반도의 독립된 국가‘섬의 나라’라는 뜻을 지닌 탐라(耽羅)에서 한반도의 일부인‘물 건너 고을’이라는 제주(濟州)로 개칭 되었다.
현재 제주도에는 고려 무신정권이 제주도에 삼별초 진입을 막기 위하여 축조한 성이 지금도 신산리, 온평리, 화북리, 태흥리 등 곳곳에 해안을 둘러싼 환해장성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를 계승한 이씨조선 시대 때에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을 두고 공납을 바치도록 하였다. 공납으로 감귤을 바치었다.
비록 행정 구역 상으로는 전라도에 속했으나 제주목은 사실 조선시대에도 특수행정구역에 가까웠다. 실제로 다른 군수, 현감들이 목사와 독립적으로 관찰사의 직속 부하였던 것과 달리 정의현, 대정현의 현감들은 전라도 관찰사의 직속이 아니라 제주목사의 관할 하에 있었다.
소속 현감에 대한 행정적 명령에 대해 전라도 관찰사에게 사후적으로 보고 하였으며 보통 목사가 정 3품이었던 것과 달리 제주목사는 대부분 수군 절도사직을 겸한 종 2품이라 관찰사와 직급이 같았고 전라도 관찰사는 제주목사에 대해 의전적 서열은 상석이되 서로 존대하였다. <문장 일부 출처 : 제주특별자치도청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