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한(漢) 태조 유방과 위(魏) 조조처럼 동이족이라는데, 관련 기록을 살펴본다.
①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 : 은(殷)은 동이족 나라다.
② 공자가 쓴 공자세기(公子世家), 예기(禮記) : 나는 은나라 후손이다.
③ 맹자(孟子)
: 주(周)가 고조선 은(殷)을 치고 들어선 뒤 은의 공자가문은
7대동안 벼슬을 하지 않았다.
7대 후부터 주(周)에 출사(出仕)했는데 그 10대손이 공자다.
④ 공자가문 족보(族譜)
장백산에서 날아온 학이 곤륜산에서 노닐던 암사슴과 만나니,
그 사이에서 나온 사람이 공자다.
▲ 장백산, 곤륜산은 동이족 산이었다.
⑤ 서경(書經) 주서 홍범(洪範)편 :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의 가르침을 전할 뿐이다.
▲ 논어 등 4서 3경은 대부분 '홍범' '구주'를 풀어 해설한 것이다.
⑥ 설문해자(說文解字) : 한문자전
동이(東夷)란 동쪽에 사는 사람이다.
오직 동이(東夷) 만이 대의(大義)를 따르는 대인(大人)들이다.
동이(東夷)의 풍속은 어질다.
어진 사람은 장수하는 법이라
그곳은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다. (有君子不死之國)
고로 공자도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인 구이(九夷)에 가고 싶다. 하고
뗏목을 타고 바다로 띄웠다 한다.
참으로 이유있는 일이로다.
<夷 東方之人也 唯 東夷從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故孔子曰 道不行 吾欲之君子不死之國九夷 承孚 浮於海 有以也.>
▲ 구이(九夷) : 동이(東夷)의 아홉 나라.
고대 배달한국은 아홉 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다.
⑦ 논어 : 공야장편 자한지리(公冶長篇 子漢地理)
동이는 천성이 뛰어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구이(九夷)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하셨다.
(東夷天性柔順 異於三方外 故 孔子曰 悼道不行 設文解字 欲居九夷)
⑧ 동이열전(東夷列傳) : 공자 7대손 공빈(孔斌) 씀
동방에 오래된 나라가 있는데 동이(東夷 :고대 한국)라 한다.
훌륭한 단군(檀君)이 계셨는데 구이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셨다.
요(堯)임금 때 일이다.
순(舜)임금은 동이(배달)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와서 임금이 되어 훌륭한 정치를 하였다.
동이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도에 통달한 분이 계셨는데
황제헌원씨(중국 시조-연관:치우천황)가 그 문하에서 내황문(內皇文)을 배워 와서
염제 신농씨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하 우임금의 도산회의에
동이의 부루께서 친히 와주셔서 나라의 경계가 정해졌다.
동이인 유위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인데
이윤이 그 문하에서 배워서 현명한 신하가 되었다.
동이는 비록 나라가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박하고 후덕하여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는 것을 서로 양보하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함부로는 섞이지 않으니,
가히 동방예의군자국(東方禮儀君子之國)이라 할 수 있다. (연관-천부경)
그래서 은(殷) 태사(太師) 기자(箕子 연관-이집트의 기자지역 피라밋)가
주(周) 신하가 되지 않고 동이 땅 (고조선)으로 갔고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동이에 가서 살고 싶어 하셨다.
나도 역시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
예전에 동이 사절단이 온 것을 보니 대국인(大國人)다운 모습이었다.
<위 안리(安釐)왕 10년 곡부에서 씀.>
삼국지 조조는 흉노,동이족 하후씨 위만조선(衛滿朝鮮) 위만은 어떤 사람일까? 여러 역사의 편린을 모아 추측 해 보자. 위략(魏락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及?反 入匈奴 燕人衛滿亡命 爲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說準求居西界 收中國亡命爲朝鮮藩屛 準信寵之 拜爲博士 賜以圭 封之百里 令守西邊 滿誘亡黨 衆稍多 乃詐遣人告準 言漢兵十道至 求入宿衛 遂還攻準 準與滿戰 不敵也」’ (해석) ‘노관이 모반하여 흉노로 들어가자 연인 위만도 망명을 하였는데, 호복을 입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에게 가서 항복하고 준을 설득하여 서쪽 경계 지역에 거주할 곳을 구하면서 중국의 망명자들 을 모아 조선의 번병이 되겠다고 하였다.
당시 변한조선의 왕 기준이 위만에게 정권을 찬탈당한 기록인데 사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이것은 위략이 사기의 내용을 정확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위의 글자가 호위병을 뜻 하는 지킬 위(衛)의 글자인데 훈독으로는 이 것은 당시 위만의 직책이 노관의 경호실장임을 의미하고 음독으로는 조조가 세운 위(魏)와 같은 글자이다. 이것은 위만의 출신성분 중 직책은 경호원 출신 이고 핏줄은 조조의 핏줄과 같은 동이 흉노계통임을 추론해 볼 수 있다.
흉노는 치우족의 동이가 서북방에 진출하여 나중에 백인계통의 스키타이와 혼혈을 이룬 종족이다.
흉노를 보통 하우씨라고 하는데 묘족의 후예로 흉노의 선조인 하후씨(夏后氏)가 그 근원이기 때문이다.
묘족은 바로 치우천왕을 조상으로 하는 종족이다.
치우천왕은 고리국의 황제로 그 일파가 흉노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기에서는
흉노오환선비열전으로 모두 동이족과 같은 갈래로 지역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위만 자신도 조상은 동이족 혈통이고 그 이름이 만(滿)인 것은
또한 동이(東夷)를 중 국에서는 만이(蠻夷)이라고 칭했기 때문에 음이 같은 만(滿)자를 썼음을 알 수 있다.
후한이 망하고 위촉오의 삼국분쟁시대에서 조조가 세운 나라가 위나라임을 볼 때 위만과 연관성 있지 않을까 싶다.
조조의 출신내역에 관한 기록은
‘曹父曹嵩(조부조숭),本姓夏侯氏(본성하후씨)? 因?中常侍曹騰之養子(중상시조등지양자),故冒姓曹(고모성조)。曹嵩生操(조숭생조),小字阿瞞 (소자아만),一名吉利(일명길리) 조조의 아버지는 조숭인데 원래는 하후씨이며 그가 조등의 양자가 되어 성을 조씨 라 한 것이다. 어려서는 아만으로 불렸으며 다른 이름은 길리이다.’
위 인용문에서,
조조가 어려서는 만으로 불리고 이름이 길리라 한 것으로 보면
위만의 '만'과 고리국의 고리와 상통하고
조조는 하북지방 즉 황하이북에 세력을 둔 동이족 계열임을 알 수가 있다.
하후씨의 조조가 후한을 이어 魏나라를 세웠다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
이들이 모두 동이족의 일파로 여전히 동이 계열은 한나라 이후에도 역사 주류무대에서 상당한 위상을
지속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호복(胡服)을 입고 있었다고 하는 호복은 만이들의 복장이며 만이는 동이족 즉 동호(東胡)(퉁구 스)이니 위만은 연나라와 제나라에서 살고 있는 묘족의 후예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변한조선의 동이족들과 의사소통은 물론 문화가 동일하였으며 중국과 경계선의 변방장수 역을 번한조선의 왕 기준이 위만에게 위임한 것이다.
<사기> 흉노열전(匈奴列傳)에 흉노의 선조인 하후씨(夏后氏)는 묘족(苗族)의 후예이다 했고 묘족의 후예 하우씨는 곧 구리족의 후예이며 이는 치우천왕을 배출한 산동반도 지역에 사는 동이족의 일파 임을 알 수 있다.
<후한서> 고구려열전(高句麗列傳)에서 <왕망(王莽)이 구리(句驪)의 군사를 징발해 흉노(匈奴) 정벌에 나서자 이에 반발하여 국경너머로 도망갔다>라는 것과 <고구려는 왕망이 보낸 요서대윤(遼西大尹) 전담(田譚)을 죽였다>는 것은 당시 고구려는 전한을 멸한 신(新)나라 황제 왕망과는 대치하고 있었고 흉노와는 동일한 혈통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고구려와 흉노는 동일한 핏줄로 같은 연대의식을 가진 것이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