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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양귀비]백거이와 양귀비(장한가)

작성자nanjung|작성시간10.08.23|조회수310 목록 댓글 2


당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장한가(長恨歌)-백거이(白居易)

 

(당(唐)나라 현종(玄宗 李隆基))과 양귀비(楊貴妃)의 불륜의 사랑을 아름답고 슬프게 묘사한 노래)

 

漢皇重色思傾國 御宇多年求不得

한황중색사경국 어우다년구불득

 

楊家有女初長成 養在深閨人未識

양가유녀초장성 양재심규인미식

 

한 황제 색을 즐겨 경국지색 찾았으나

오랜 세월 구하여도 얻을 수 없었네.


 

양씨 가문에 갓 성숙한 딸이 있어

집안 깊이 길러 누구도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 一朝選在君王側

천생려질난자기 일조선재군왕측

 

回眸一笑百媚生 六宮粉黛無顔色

회모일소백미생 륙궁분대무안색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하루아침 뽑혀 황제 곁에 있게 됐네.


 

한번 눈웃음지면 이는 애교 그지없어

단장한 육궁 미녀들의 얼굴빛을 가렸네.

 

春寒賜浴華淸池 溫泉水滑洗凝脂

춘한사욕화청지 온천수골세응지


 

侍兒扶起嬌無力 始是新承恩澤時

시아부기교무력 시시신승은택시

 

봄추위에 화청지 목욕함을 허락하니

온천물 부드럽게 매끄러운 몸을 씻네.


 

시녀들 부축에도 연약하기만 한 교태

그 때부터 황제 사랑 받기 시작하였네.

 

雲?花顔金步搖 芙蓉帳暖度春宵

운빈화안김보요 부용장난도춘소

 

春宵苦短日高起 從此君王不早朝

춘소고단일고기 종차군왕불조조

 

구름머리, 꽃 얼굴, 한들거리는 금장식

부용휘장 안에 따뜻한 봄밤은 깊어


 

짧은 봄밤 한탄하며 해 높아 일어나니

황제는 이로부터 조회를 보지 않았네

 

承歡侍宴無閑暇 春從春游夜專夜

승환시연무한가 춘종춘유야전야


 

後宮佳麗三千人 三千寵愛在一身

후궁가려삼천인 삼천총애재일신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봄에는 봄놀이에 밤에는 밤잠자리에

 

빼어난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삼천 명에 내릴 사랑 그녀 혼자 받았네.

 

金屋粧成嬌侍夜 玉樓宴罷醉和春

김옥장성교시야 옥누연파취화춘


 

姉妹弟兄皆列士 可憐光彩生門戶

자매제형개렬사 가련광채생문호


 

황금방에 단장하고 교태로 밤시중 들고

옥루 잔치 끝나면 봄기운에 취했네.


 

자매와 형제 모두에게 영지를 내려주니

이윽고 그들 가문에 광채가 나게 되어

 

遂令天下父母心 不重生男重生女

수령천하부모심 불중생남중생녀

 

驪宮高處入靑雲 仙樂風飄處處聞

려궁고처입청운 선낙풍표처처문



 

이에 따라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게 됐네.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어 있고

선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盡日君王看不足

완가만무응사죽 진일군왕간불족


 

漁陽?鼓動地來 驚破霓裳羽衣曲

어양고고동지내 경파예상우의곡

 

느린 노래 나른한 춤 여운 긴 가락에

황제는 하루 종일 넋 잃고 바라보네.


 

돌연 어양 쪽 땅 울리는 전고 소리

예상우의곡을 놀라 멎게 하였네.

 

九重城闕煙塵生 千乘萬騎西南行

구중성궐연진생 천승만기서남항


 

翠華搖搖行復止 西出都門百餘里

취화요요항부지 서출도문백여리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달아나네.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도성문 서쪽 백 여리 마외역에 이르러

 

六軍不發無奈何 宛轉蛾眉馬前死

륙군불발무나하 완전아미마전사

 

花鈿委地無人收 翠翹金雀玉搔頭

화전위지무인수 취교김작옥소두

 

양귀비 처결하라 군사들이 멈춰서니

양귀비는 몸 뒤틀며 군마 앞에 죽었네.


 

땅에 떨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回看血淚相和流

군왕엄면구불득 회간혈누상화류

 

黃埃散漫風蕭索 雲棧?紆登劍閣

황애산만풍소삭 운잔영우등검각

 

황제는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旌旗無光日色薄

아미산하소인항 정기무광일색박

 

蜀江水碧蜀山靑 聖主朝朝暮暮情

촉강수벽촉산청 성주조조모모정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夜雨聞鈴腸斷聲

항궁견월상심색 야우문령장단성

 

天旋地轉回龍馭 到此躊躇不能去

천선지전회룡어 도차주저불능거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밤비 속에 들리는 단장의 말방울 소리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不見玉顔空死處

마외파하니토중 불견옥안공사처


 

君臣相顧盡沾衣 東望都門信馬歸

군신상고진첨의 동망도문신마귀

 

양귀비 쓰러져 죽은 진흙더미 속에는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황제 신하 서로 보며 눈물 옷깃 적시네.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太液芙蓉未央柳

귀내지원개의구 태액부용미앙류


 

芙蓉如面柳如眉 對此如何不淚垂

부용여면류여미 대차여하불누수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없어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이들을 대하고 어이 아니 눈물지리.

 

春風桃李花開日 秋雨梧桐葉落時

춘풍도리화개일 추우오동섭낙시


 

西宮南內多秋草 落葉滿階紅不掃

서궁남내다추초 낙섭만계홍불소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어낼 사람 없네.

 

梨園子弟白發新 椒房阿監靑娥老

리원자제백발신 초방아감청아노


 

夕殿螢飛思?然 孤燈挑盡未成眠

석전형비사초연 고등도진미성면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 耿耿星河欲曙天

지지종고초장야 경경성하욕서천


 

鴛鴦瓦冷霜華重 翡翠衾寒誰與共

원앙와냉상화중 비취금한수여공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긺을 알았네.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원앙 같은 기와에 서리꽃이 무거운데

함께 덮을 이 없어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 魂魄不曾來入夢

유유생사별경년 혼백불증내입몽

 

臨?道士鴻都客 能以精誠致魂魄

림공도사홍도객 능이정성치혼백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꿈에서도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었네.

 

임공의 도사가 도성에서 머무는데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하니

 

爲感君王輾轉思 遂敎方士殷勤覓

위감군왕전전사 수교방사은근멱


 

排空馭氣奔如電 升天入地求之遍

배공어기분여전 승천입지구지편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황제를 위해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兩處茫茫皆不見

상궁벽낙하황천 량처망망개불견

 

忽聞海上有仙山 山在虛無??

홀문해상유선산 산재허무표묘간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其中綽約多仙子

누각령롱오운기 기중작약다선자

 

中有一人字玉眞 雪膚花貌參差是

중유일인자옥진 설부화모삼차시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이 일어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흰 살결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하네.

 

金闕西廂叩玉? 轉敎小玉報雙成

김궐서상고옥경 전교소옥보쌍성

 

聞道漢家天子使 九華帳里夢魂驚

문도한가천자사 구화장리몽혼경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소옥 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珠箔銀屛??開

람의추침기배회 주박은병이리개

 

雲?半偏新睡覺 花冠不整下堂來

운빈반편신수각 화관불정하당내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구슬발과 은 병풍 열리며 모습을 나타냈네.


 

구름머리 반 드리우고 방금 잠에 깬 듯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왔네.

 

風吹仙袂飄飄擧 猶似霓裳羽衣舞

풍취선몌표표거 유사예상우의무

 

玉容寂寞淚欄干 梨花一枝春帶雨

옥용적막누난간 리화일지춘대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방울지니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含情凝제謝君王 一別音容兩渺茫

含情凝제사군왕 일별음용량묘망

 

昭陽殿里恩愛絶 蓬萊宮中日月長

소양전리은애절 봉래궁중일월장

 

정어린 눈길 돌려 황제에 전할 말을 하니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處 不見長安見塵霧

회두하망인환처 불견장안견진무

 

唯將舊物表深情 鈿合金釵寄將去

유장구물표심정 전합김채기장거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오래 지닌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釵留一股合一扇 釵擘黃金合分鈿

채류일고합일선 채벽황김합분전

 

但敎心似金鈿堅 天上人間會相見

단교심사김전견 천상인간회상견

 

비녀는 반쪽씩 상자는 한 쪽씩

황금 비녀 토막 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詞中有誓兩心知

림별은근중기사 사중유서량심지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칠월칠일장생전 야반무인사어시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칠월 칠일 장생전에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재천원작비익조 재지원위련리지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당(唐) 현종(玄宗 685~762))은 이름이 이융기(李隆基)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로 아버지 예종에게 황위를 이어받았다. 44년간 재위하다가 선위한 후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태릉(泰陵: 지금의 섬서성 포성현<蒲城縣> 동북 30리의 금속산<金粟山>)에 안장되었다





양귀비(楊貴妃 719-756) 본명은 양옥환(楊玉還)중국 산서성(山西省) 출생하여 37세 사망한 중국 4대 미인 중에 한사람이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양귀비꽃에 비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양귀비(楊貴妃)는 아버지의 임지(任地)인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나,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었다.

그러나 현종의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溫泉宮)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太眞)이란 이름의 여도사(女道士)가 되어 세인(世人)의 눈을 피하면서 차차 황제와 결합 되었으며, 27세 때 정식으로 귀비(貴妃)로 책립되었다.

다년간의 치세로 정치에 싫증이 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궁중에서는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세 자매까지 한국(韓國)·진국부인(秦國夫人)에 봉해졌다.

한, 친척 오빠인 국충(國忠) 이하 많은 친척이 고관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通婚)하였다.

그녀가 남방(南方) 특산의 여지(枝)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그 뜻에 영합(迎合)하려는 지방관이 급마(急馬)로 신선한 과일을 진상(進上)한 일화는 유명하다.

755년 양국충 과의 반목이 원인이 되어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안사의 난),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였다.

현종도 막을 방법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나라를 망쳐 먹은 여자, 양귀비는 명주천을 꼬아 만든 줄로 목이 졸려 37세에 죽는 액살(縊殺)형에 처해집니다. 물론 이 명령을 내린 것은 안록산(安祿山)의 종용을 받은 현종이다.

현종은 남은 생애 내내 양귀비의 그림을 보면서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중국의 무장가 중의 하나인 이백(李白)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 (白居易)는 '장한가'라는 애절한 한시, 진홍(陳鴻)은 '장한가전(長恨歌傳)'과 악사(樂史)의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이란 이야기를 남겨 후대에 전해진다.

현종은 남은 생애 내내 양귀비의 그림을 보면서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중국의 정사(正史)도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艶)"이라 적었으며, 절세(絶世)의 풍만한 미인인데다가 가무(歌舞)에도 뛰어났고, 군주(君主)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의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AD 772~846))가 양귀비(楊貴妃)와 현종황제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쓴 칠언고시(七言古詩)로서,120구 840자에 달하는 대서사시(大敍事詩)이다.

 백거이(白居易)가 35세때 주지현위(周?縣尉)로 있을 때 쓴 것이다.  그곳은 수도 長安에서 가까운 별읍(別邑) 같은 곳으로, 조정의 교서랑(校書郞), 한림학사(翰林學士) 등 직책도 겸하고 있었다.

 주지현위(周?縣尉)라는 직책상에 관내를 순시하며, 서민들의 생활 등 세상 물정을 살피곤 하였는데. 관내에는 종남산(終南山),선유사(仙遊寺) 등 명승고적(名勝古跡)이 많아서, 천재시인의 시심을 키우는데 좋은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지방의 은자(隱者)이던 왕질부(王質夫), 진홍(陳鴻) 등과 선유사(仙遊寺)에 가 묵으면서 화제가 근처인 마외파(馬嵬坡)언덕에서 50년전에 원통하게 죽어간 양귀비(楊貴妃)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왕질부(王質夫)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던 양귀비의 일화를 듣고 나서, 기막힌 사연이 세월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것을 애석해하였다.  그리고 백거이(白居易)에게 시를 지어 세상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해졸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고 한다.

 백거이(白居易)도 이에 감동하여 밤을 새워가며 쓴 칠언고시(七言古詩)로서,120구 840자에 달하는 대서사시(大敍事詩)가 동양의 사랑의 이야기인 장한가(長恨歌)인 것이다.

그  장한가(長恨歌)는 전국 어디서나 신분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다닐 정도로 널리 유행하였다 한다.

   특히 기녀(妓女)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장한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뿐만 아니라. 신라와 일본까지 이어져서 당시의 사신이나 무역상들이 이를 구해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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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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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정필 | 작성시간 10.12.15 그림도 참 아름답네요
  • 작성자경완 | 작성시간 10.12.15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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