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종장의 첫 마디
주영숙(문학박사/퓨전아티스트)
시조의 종장은 한국인의 호흡, 즉 시적 걸음의 마무리 단계이며, 시조(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가 자유시와 구분되는 핵심요소는 종장의 1구 3음절에 있다. 그것은 시형상의 비약과 정서에서 우러나는 긴장을 야기하는 동기마련을 함으로써 심층의식과 율격에 균형을 잡아주며, 시 전체 정황의 조화로써 3단, 3장으로 완결케 해주는 형식의 요체가 된다고도 한다. 작자가 명기되어있는 평시조이거나 작자미상의 사설시조이거나, 고시조(1)에서의 종장 1구는 3음절로 이루어지며, 종장 2구는 5~9음절인 것이 일반적인 기법으로 고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구 뒤에 따라 붙는 종장 2구를 괄호에 표시함)
평시조 :
가다가(-중지 곧 하면
각시네(-무삼 탓으로)
간밤에(-치우신가)
강산은(-들일 데 없으니)
강호에(-월백하거든)
객창에(-잔등殘燈을 돋우고)
겉 희고(-속 검은 이는)
고은(운)님(-계신 곳에 가)
구천에(-불휘 곧은 줄을)
구태여(-광명한 날빛을, -보내고 그리는 정을)
귀밑에(-흩나는 백발은, -해묵은 서리를)
그곳에(-행화杏花꽃 날리니)
그 너머(-임이 왔다 하면 나는)
그려도(-하애도배라)
그립고(-아쉬운 마음에)
그 밖에(-여남은 일이야)
그져야(-임 그린 내 병이)
긴파람(-큰 한소리에)
꿈같은(-인생을 가지고)
꿈길이(-자취 없으매)
꿈속이(-허사라망정)
낙환洛花ㄴ들(-꽃이 아니랴)
남의 흉(-보거라 말고)
날 같이(-잠 아니 오면, -군 마음 없이)
날 잊고(-임 향한 마음을, 깊이 든 잠을)
내잡아(-권하는 잔을)
너희는(-여천지與天地 무궁無窮이니)
노화蘆花에(-떼 많은 갈매기는, -나는 백구는)
녹수도(-청산 못잊어)
눌 향한(-깊은 시름을)
뉘라서(-내 행색 그려)
늙기도, 늙은 후(-문전이 냉락冷落하면)
님께서(-날인줄 알짝시면)
다만당(-다툴 이 없는 강산을)
다만지(-손이 성하니)
다정도(-병인양하여)
달 밝고(-밤 긴 적이면)
도리桃李야(-꽃이온양 마라)
동자야(-새 물고기를)
되도록에(-행복 무강無疆하여)
두견아(-너는 누를 그려)
두어라(-내 시름 아니라, -이 다섯 밖에,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를, -임 오신 날, -흙이라 한들, -일반비조一般飛鳥니, -알 이 알지니)
뒷 뫼해(-엄긴 약초를)
들고도(-못 나는 정은)
뜻두고(-이루지 못하니)
마음에(-하고자하여)
만학萬壑에(백운이 잦았으니)
만고에(-곧게 선 저 얼굴이)
만일에(-마음이 몸 같으면)
말로써(-말이 많으니)
말씀도(-웃음도 아녀도)
말 없는(-풍월 강산이야, -물외건곤物外乾坤과)
명월이(-만공산하니)
목동이(-우양을 몰아다가)
무심한(-달빛만 싣고)
믿기야(-어려우랴마는)
밤비에(-새잎 곧 나거든)
밤중만(-일편명월이, -외기러기 소리에, -지국총 소리에)
배 위에(-백발 사공이)
백년간(-시름 없는 일)
백년을(-이리 지냄도)
백년이(-적초초赤草草하니)
백발아(-네 짐작하여)
백발이(-제 먼저 알고)
백설이(-만건곤滿乾坤 할제)
보고도(-말 아니하니)
북당北堂에(-친재親在하시니)
북당北堂의(-학발쌍친鶴髮雙親을)
사람이(-제 아니 오르고)
서산에(-해지다 하니)
석양에(-무심한 갈매기는, -지나는 객이)
석양이(-재 넘어 가매)
성은聖恩을(-다 갚은 후는)
성은이(-지중至重하시니)
성주聖主의(-지극한 은덕을, 만덕 중흥을)
세상이(-얻을 것이 분분하니)
세월이(-수류 같으니)
수중에(-떠 있는 백구는)
술 부어(-저 잡고 날 권하며)
쉽거나(-어렵거나 중에)
시절이(-하 수상殊常하니)
아마도(-편치 아닐손, -이 두 재미를, -다툴 이 없음은, -위국단충爲國丹忠은,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방상고절倣霜高節은, -하늘같은 이, -못다할 성효誠孝를)
아모리(-사랑이 중한들, -풀으려 하여도, -일러도 임이, -푸새엣 것인들, -불우불이不憂不移도, -황금인들)
아무리(-피나게 운들, -여필종부女必從夫ㄴ인들)
아침내(-향화불절香火不絶이)
아희야(-만고 한해니, -무릉武陵이 어디뇨, -시절이 조흘세면,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잔만 부어라)
어디서(-일성호가는, -외기러기는)
어느제(-다사한 햇빛이야)
어떻다(-우리 임은 자고, -기린각상麒麟閣上에)
어른님(-오신날 밤이어드란)
어즈버(-강산 풍월을, -태평연월이, -의황상인義皇上人을, -명당이 기울면)
어찌타(-풍진기객風塵騎客을, -날 보신 임은)
언제나(-남북 풍진風塵을)
오늘은(-찬비 맞아시니)
우로雨露의(-덕택이 넙으사)
우리는(-천성을 지키어)
우리도(-긋치지 마라, -언제 구름 비 되어, -이같이 얽어져서, -소년을 믿다가)
이따금(-청풍명월만)
이 몸은(-충효 두 사이에)
이 몸이(-강산풍월과, -있을소냐 선사무제先死葬祭에)
이제야(-돌아오나니, -아모리 찾으련들)
이 좋은(-태평 연화烟火에, -태평연월에)
이 중에(-바라는 일은, -병 없는 이 몸이, -병 없는 몸이)
이 후는(-광명 일월을) 이 후란(-공명功名을 떨치고)
이 후야(-잎 넓은 나무를)
인걸이(-물과 같아야)
인세人世를(-다니젰거니)
일생에(-시름을 닛고, -구이경지久而敬之를)
일신이(-죽지 못한 정은)
임 계신(-구중심처九重深處에)
임께야(-무엇이 없으리오마는)
임이야(-날 생각하랴마는 나는)
임향한(-일편담심이야)
잇다감, 잎 지고(-가지 꺾인 후는)
잔 잡아(-권할 이 없으니)
재 너머(-사래 긴 밭을)
저 님아, 저 개야(-공산 잠든 달을)
저 꽃아(-선원仙源을 남 알세라)
저러코(-사시에 푸르니, -사철에 푸르니)
저 물도(-내 안 같아여)
저 물이(-거스러 흐르과저)
저 임아(-꿈이라 말고)
저 촛불(-날과 같아여)
저희도(-봉래산학蓬萊山鶴이매)
정반庭畔에(-학 배회하니)
조코도(-그칠 뉘 없기는)
지금에(-아니 죽은 뜻은, 위국충절忠爲國節을)
지는 잎(-부는 바람에)
지척이(-천리 같으니)
진실로(-들라곧 하더면, -풀릴 것이면, -임금을 잊으면)
차라리(-앉은 곳에서, -귀 막고 눈 감아)
창파에(-좋이 씻은 몸을)
처음에(-뫼시던 것이면)
천리에(-외로운 꿈만)
천하에(허다영재許多英才라)
춘풍에(-흩날는 백발이야)
충절이(-강개慷慨로 나니)
평생에(-고쳐 못할 일, -덕을 닦으면)
평생의(-나 설워하던 줄을)
푸르고(-푸르거든 즉시)
품어가(-반길이 없을새)
풍진을(-싫어함이야)
하 그리(-긴 줄 몰라도)
하늘 따(-두텁다 하되)
하물며(-못다 핀 꽃이야)
행여나(-날 볼 임 오셔든)
흔적이(-이내 없으니)
사설시조 :
광풍에(-호접蝴蝶이 되면)
고온님(-다리고 주야晝夜에 동처同處하기로)
구시월(-된서리 맞으면)
그 곁에, 그 너머(-임이 왔다하면)
그르사(-늘근의 소망이라)
긴밭에(-꽃같은 며느리를)
나종에(-부대잡아 가렸노라)
내 나히(-팔십이 넘거드란)
네 어이(-그리 아니 오던다)
늙게야(-전처田處에 도라와서)
대취大醉코(-재기수파載妓隨波하여)
두어라, 둣다가(-다 이거지거드란)
마초아(-밤일세망정)
발벗고(-상금 오르기는)
백년을, 벽오동碧梧桐(-저즌이페 봉황鳳凰이와서)
슬카장, 병病드러(-못살줄 알량이면)
아마도(-싸호고 못마를손, -이 눈에 연좌連坐로, 너곳와서 이시면, -비인非人 비귀非鬼 비선非仙은, -부귀공명이)
아무나(-이 임 다려가)
아무리(-사르고 띄온들)
아희야(-임이 오서드란)
어룬 님, 엇더타(-조고만 금조각을)
얄밉고(-잘밉고 요괴妖怪롭고)
여러 번(-여민 가슴이)
영랑호(-선유담으로)
오날은(-내 손에 지폈이니)
우리도(-이렁성 즐기다가)
우리의(-고온임 일등재질一等才質사 뜨고)
이 자미滋味(-발서 아돗던들)
임그려(-하 답답할제면)
잇다감(-체증외에 여늬 잡병은, -땀나 부닐적에)
장부의(-탐화지정探花之情을), 장사야(-막힘은 막혀도), 저 아가(-하 걱정 마라), 진실로(-그러곳 하량이면, -들라곳 하더면, -너 삼겨내오실제), 짝사랑(-외질김하는뜻), 평생에(-이렁성 노닐면), 하물며(-여나믄 소장부야), 할러나(-임외오살라하면),
가람 이병기는 시조 혁신을 위해 용어의 수삼(數三), 즉 용어 선택에 있어 세 가지의 개선사항을 주장했는데 “1)한문 투어의 사용 지양. 2)종장의 환개사(어즈버, 아마도, 어찌타 등과 같은 감탄사․영탄사)나 서술 종결형인 ‘…하노라, …하는구나’ 등의 타성에 젖은 용어를 쓰지 말 것. 3)자신의 작풍에 맞는 용어를 골라 써야 할 것” 등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조 종장 1구인 이 ‘환개사’를 타성에 젖은 용어를 피한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루게 되면 종장 1구의 중요 얼개가 사라질 수 있다. 시조의 종장 1구에 쓰인 위의 예시단어는 주로 지각된 인식이나 응결된 감정을 표백하기 위한 정황의 부름이나 울림이다. 따라서 종장 1구 소음보(3)에 종장 2구 대음보(5~9)를 연결함은 호흡상 긴장감뿐만 아니라 심리에서 오는 긴장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2) 굳이 사설시조라 구분하지 않더라도 ‘시조의 종장은 그 시(詩), 또는 그 사건이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며, 시조형식이 갖는 생명체이자 우리의 심미감정을 형상화시키는 특징을 반영’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현대를 막론하고 산문 서술에서 그것이 사설시조임을 인지하고 사설시조의 종장 첫 걸음을 발견해내는 데는 위 예시와 같은 종류의 단어를 찾아내는 방법이 우선적인데, 위에서 예로 삼은 전규태 편 고전문학의 시가(詩歌)(p.87) 중에서 사설시조 한편을 옮겨본다면 다음과 같다.
이제사 못보게 하여이 못볼시도 的實하다 萬里가는 길에 海鷗絶息(해구절식: 갈매기의 숨이 끊어짐)하고 銀河水 건너뛰어 北海 가로진데 摩里山 갈가마귀 太白山 기슭으로 골각골각 우지즈면서 차돌도 바히 못얻어 먹고(3) 굴머죽는 따헤 내 어대가 임차자보러 아희야 임이 오서드란 주려 죽단말 生心도 말고 쌀쌀이 그리다가 骨髓에 病이드러 갓과 뼈만나마 달바자 미트로 아장밧삭 거니다가 긔운이 澌盡(시진澌盡: 다하고 다하여)하여 저근소마(적은 양의 오줌) 보온後에 한다리 추혀들고 되이암버서 더진드시 벌덕 나뒤처저 長歎一聲에 奄然命盡(엄연명진: 갑작스러운 죽음)하여 주거가는 적귀되여 임에몸에 찬찬감겨 슬커장 알리다가 나종에 부대자바 가렸노라 하더라 살와라.
일부 논자는 이것을 1수의 사설시조라는 견해에서 종장이 길어진 예로 장 구분을 하되 본 문장의 낱말들을 여러 부분 잘못 기술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4)
(초) 어제사* 못보게 하여이 못볼시도 적실하다 (중) 만리가는 길에 해구절식하고 은하수 건너뛰어 북해가로 진듸 마리산 갈가마귀 태백산기슭으로 골각갈곡 우짖으면서 차돌도 바히 못얻어먹고 굶어죽는 따희 내 어듸가 님 찾아보리 (종) 아희야 님이 오서드란 주려 죽단말생심도 말고 쌀쌀이 그리다가 골수에 병이 들어 갖과 뼈만 남아 달바자밑으로 아장밧삭 건니다가 기운이 사진하여** 적은 소마 보온후에 한다리 추혀들고 되이암 벗어던지듯이*** 벌떡 나뒤쳐져 장탄일성에 엄연맹진하여 죽어가는 적귀되어 님의 몸에 찬찬 감겨 슬카장 알리다가 나종에 부디 잡아가렸노라 하더니 살와라// -(청구영언 중에서) (5)
앞의 예와 같이 고시조에서 종장 첫 구에 주로 등장하는 단어를 위 사설시조에서 찾아보면 <아희야․슬커장(슬카장)>이다. 그런 점을 숙지하고 분석하면 위 글은 ‘아희야’만 종장 첫 구로 보고 무리한 구분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희야’는 물론 ‘슬카장’이 시조 종장 첫 구로 쓰인 예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파격이 특성이기도 한 사설시조를 말하면서 ‘아희야’에서부터 나머지 모두(‘슬카장’까지도)를 종장이라는 틀 안에 묶어버림으로서 ‘종장을 길게 한 파격’의 예로 들고 있는 것이다. (고)사설시조에서 종장만이 길어진 예가 있기는 했어도, 이 문장의 경우, 굳이 종장 전체를 숨 가쁜 네 걸음으로 읽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래와 같이 사설시조 두 수로도 구분되기 때문이다.
(1) (초) 이제사/ 못보게 하여이/ 못볼시도/ 적실하다// (중) 만리 가는 길에 해구절식하고/ 은하수 건너뛰어 북해가로진데/ 마리산 갈가마귀/ 태백산 기슭으로 골각골각 우지즈면서/ 차돌도 바히 못얻어 먹고/ 굴머죽는 따헤/ 내 어대가 임차자보러// (종) 아희야/ 임이 오서드란/ 주려 죽단말/ 생심(生心)도 말고//
(2) (초) 쌀쌀이/ 그리다가/ 골수에/병이 드러// (중) 갓과 뼈만나마 달바자 미트로 아장밧삭 거니다가/ 긔운이 시진하여 저근소마 보온 후에 한다리 추혀들고 되이암버서 더진드시/ 벌덕 나뒤처저 장탄일성에 엄연명진하여/ 주거가는 적귀되여 임에 몸에 찬찬감겨// (종) 슬커장/알리다가 나종에/ 부대자바 가렸노라 하더라/살와라//
종장 1구는 긴장이고 2구는 이완이라는 원칙은 시조의 기법에 있어서 불변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긴장과 이완의 역할에 좀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현대의 사설시조 한 편을 분석해보기로 한다.
숨차게 오르던 산길 문득 벼랑 되고
그 너머 형님 같은 道峰이 앉았구나. 생각의 여울 펼치면 길은 또 있겠지만
그렇다, 끊긴 길이라도 어디든 있게 마련
허나, 가슴 속 천만 갈래 수없이 주고 닿았던 緣과 緣,
이미 모질게 끊어버린 그 무수한 실타래 같은 길은 다시 이을 수는 없겠지
오 벼랑, 아득하구나 삶의 푸른 현기증
-박시교, 「어떤 산행」 전문
전체적으로는 사설시조 2수로 보이는 박시교의 이 시는 평시조 유일사상을 교묘히 벗어나 “평시조+사설시조”의 형태를 표출하였기도 하다. 그러면서 각 종장(사설시조로 볼 때의)의 첫 걸음에 감탄사 “그렇다‧오 벼랑”을 놓음으로써 정통 시조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한편 “숨차게/ 오르던 산길/ 문득/ 벼랑 되고// 그 너머/ 형님같은/ 道峰이/ 앉았구나// 생각의/ 여울 펼치면/ 길은 또/ 있겠지만//”까지를 달리 구분하면 평시조 한 수다. 그렇다면 행이 바뀌어 놓인 “그렇다,”는 무슨 연유에선가.
다시 평시조 한 수 격인 위 문장 “숨차게……있겠지만”을 살펴보자면, 길 도(道)자에 산봉우리 봉(峰)자가 중장 셋째 걸음에 있다. 이는 숨차게 오르던 산길이 문득 벼랑이 되는가 하면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산봉우리까지 눈앞을 가로막았다는 해석을 유도한다. 실제 산행 중의 감정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이므로 직서적(直敍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시인의 인생길, 또는 우리네 인생길을 비유하였다는 관점에서는 은유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시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실재 도봉산을 암시하는 이 산봉우리는 그러고 보니 길(道)을 품고 있는 산이다. 과연 생각(종장 격: 생각의 여울 펼치면)해보니 도봉의 도(道)가 길(길은 또 있겠지만)이다. 자수율에 따르면 여기 “생각의/ 여울 펼치면/ 길은 또/ 있겠지만”까지가 확연한 평시조 한 수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시를 평시조로서 완성하려면 종장 1구(‘생각의’)가 미흡하다는 점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이는 “종장 1구는 가능한 한 독립단어, 호격 감탄사 등을 써야만 긴장감 등을 유발하게 된다.”는 견해와 연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렇다,”라는 감탄사로 종장의 어두를 시작하여 “그렇다,”라고 한 이유가 “끊긴 길이라도 어디든 있게 마련”이라는 깨달음이라고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사설시조로 나타나게 된 이 한 수의 시는 그것이 사설시조이든 평시조이든 ‘철학적 사유를 펼침으로서 시의 완성을 맺는 시조 형식의 특성을 지닐 것이 요구되는’ 종장 첫걸음을 감탄사로 했을 때에 맛 볼 수 있는 시 작품의 성취감까지 획득하고 있다. 시인의 시적 변용에서 오는 매력은 두 번째 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평시조 격으로 전개한 “허나, 가슴 속/ 천만 갈래/ 수없이/ 주고 닿았던// 연(緣)과 연(緣),/ 이미 모질게/ 끊어버린/ 그 무수한// 실타래/ 같은 길은 다시/ 이을 수는/ 없겠지//”는 기실 초장 첫 걸음에서 ‘허나’ ‘가슴 속’을 한 호흡으로 보기 어렵다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종장 또한 엄밀히 따지면 ‘실타래 같은/ 길은 다시/ 이을 수는/ 없겠지’이므로 첫걸음이 3자가 아닌 5자로 읽히는 관계상 평시조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산행」은 시조 작법의 닫힌 개념에 갇힌 독자가 “이것은 평시조가 아니지 않으냐”고 반론 할 시에는 “그러면 이것을 사설시조로 보아주시오.”하는 주장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 주장을 관철하려니 한 줄의 시(종장)가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그래서 시인은 첫 수나 마찬가지로 동떨어져 있는 이 한 줄의 시, “오 벼랑,(3영탄)/ 아득하구나(5)/ 삶의 푸른(4)/ 현기증(3)”이라는 완벽한 종장의 형태를 생산해낸다. 이는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시조의 우수성을 입증해주는 작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시조 작법의 정통성이라면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평시조건 사설시조건 ‘초장(서론)’ ‘중장(본론)’ ‘종장(결론)’이라는 장의 짜임과 각각 네 마디의 걸음 자체에 있다. 거기다가 종장의 첫 걸음에는 반드시 감탄사나 영탄조의 시어를 놓거나, 문맥의 흐름상 피치 못한다 하더라도 종장 첫 걸음에는 반드시 그런 3음절의 의미상 증거가 드러나야만 시조가 시조다워 질 수 있다는 정립의 기준이 성립된다고 본다.
앞에 거론한대로 “종장 제1음보의 감탄사(형)는 신라의 향가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어즈버’ ‘아희야’, ‘두어라’ ‘아마도’ ‘어찌타’ 등 단순 감탄사나 호격 감탄사형, 그리고 부사형 감탄사들이 평시조 종장 첫걸음에 많이 쓰이고 있는 환개(換介)사다. 그리고 ‘진실로’ ‘참으로’ 등 부사형 환개사는 사설시조에 많이 쓰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설시조에서도 단순 감탄사, 호격 감탄사, 부사형 감탄사, 등의 독립단어를 쓸 수만 있다면 그 작품의 완성도는 매우 높아질 것이다. 한편 주로 평시조 종장의 첫 음보로 쓰였다는 ‘어즈버’라면 얼른 떠오르는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길재)”가 있다. 이는 우리에게 퍽 익숙한 전통시조이고 평시조이며 고시조이다. 여기에 대해 김만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조의 종장을 생략해보면 시의 느낌과 긴장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중략)…이미 ‘오백년 도읍지’의 웅장함과 ‘필마’의 초라함이 대비되어 있고, ‘의구한 산천’과 없어진 ‘인걸’이 대비되어 있다.…(중략)…아마 현대의 시인들은 사족과도 같은 종장을 생략함으로써, 시적인 긴장과 함축을 얻어내려고 할지 모른다.…(중략)…‘태평연월의 꿈’이라는 금언이 추가되어있고…(중략)…종장은 얼마든지 생략 가능하다 (6)
초장 4걸음, 중장 4걸음을 천천히 걷고 쉬었다가 몸을 일으키며 종장지점에서 우선 “어즈버”하고 불현듯 영탄사의 바튼 호흡으로 시선 집중 전략의 긴장을 조성하고 나서, 두 번째 걸음부터는 ‘어즈버’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풀어 보이면서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로 마감하는 식이 고도의 압축미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창’을 전제로 했던 고시조에서는 종장의 첫 걸음이 현대시조의 미학적 측면인 ‘긴장’과는 달리 가장 완만하고 여유 있는 대목으로, 가곡창 창법에 의하면 초장은 59박, 중장은 75박, 종장 첫걸음만 27박의 길이로 유장하게 끌었다고 하는 지침 등을 잘못 인지(종장을 사족이라고 인식하고)한 나머지 종장을 통째 생략해버림으로써 시적 긴장과 함축을 얻어내려고 시도할는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종장을 생략하면 그 시조는 완성된 시조가 아니게 되는 만큼 시조의 종장 첫걸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 걸음에는 율격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통사적인 면으로서도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시조의 이러한 형식장치는 현대시조 기법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시조의 이 기능(종장 1구 3음절의 ①단순 감탄사, ②호격 감탄사, ③부사형 감탄사, ④영탄사, ⑤독립명사)을 도외시함은 자칫 시조의 주요특성을 증발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조의 종장은 한국인의 호흡, 즉 시적 걸음의 마무리 단계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호흡을 표시한다. 지금까지 사설시조 종장의 기능을 계속 부각시킨 까닭은 이 논문의 특수한 취지 때문인데, 이러한 관점을 기초한 한국 소설의 어떤 문장은, 특히 구어체 양식을 지향하는 소설가의 어떤 문장들에서는 한 문단이 끝나는 부분에서 사설시조의 종장을 연상시키는 글쓰기가 점철되어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의도적인 작법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사설시조 형식을 의도하지 않았을 경우라 하더라도 그 소설 전체에서 그러한(사설시조 양식)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일관성을 지닌 글은 그 문체에 작가 자신도 미처 모를 습관적인 호흡법을 참여시키기 때문일 것이며, 그것의 정체성은 바로 순수 한국인이라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파악된다.
그러나 한국인이 쓴 소설이라고 해서 모두 사설시조 양식으로 구분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적인 소설이라고 해서 모두 사설시조 형식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상 작품이 소설이건 시건, 문장 단락의 대부분이 연쇄적으로 사설시조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경우에만, 구체적으로 말해 작품 단락의 말미가 시조 종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경우에만 그 구분이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김종해 시집 천노(賤奴), 일어서다(7)는 완벽한 사설시조집(장편 서사시)이라고 할 수 있으나 조성기의 소설시 「내 영혼의 백야」(8)를 두고는 사설시조 양식이라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다.
원작이 84연이고 임의 구분으로는 90연으로 볼 수 있는 다음의 예는 ‘소설시’라는 타이틀로 발표된 「내 영혼의 백야」 전문에서 옮긴 ‘문단의 말미’들이다. 즉, 연의 마지막 행(마지막 행이 아니더라도 사설시조로 구분할 때의 초장, 중장을 거치고 나서의 종장 1구와 2구를 가정해서 구분해봄)을 옮겨 구분해본 것인데, 주지한 바와 같이 대상 작품이 사설시조조로 구분되는 성질은 그 연의 서론(초장 격)보다는 결론(종장 격)부분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1)몇 년 동안/ 버캐로 쌓였을 살코기/ (2)늦가을/ 냉기 속에 따뜻한/ (3)안면도가/ 잠겨 있는 새벽 바다를/ (4)풀섶에/ 뒹구는 소리가/ (5)드디어/ 소변기 앞에 섰습니다./ (6)전립선염의/ 뚜렷한 징후라고/ (7)숲길에/ 가득 고인 안개는 솜사탕/ (8)솜사탕/ 기계페달을/ (9)하늘이/ 차려준 풍성한 식탁/ (10)그/ 계곡은/ (11)왕처럼/ 우뚝 서서 아이들에게/ (12)신(神)처럼/ 생긴 손이/ (13)카프카/ 「변신」의 벌레처럼/ (14)「담배에/ 관한 명상」이 그때/ (15)거꾸로/ 빨고 있는데도 담배는/ (16)눌리고/ 찌그러지고 부러져서/ (17)바로/ 내가 눌리고/ (18)바닥으로/ 바닥으로/ (19)시골 국도는/ 충돌의 살기로/ (20)매제가/ 헤엄치고 있는 거친/ (21)고독조차 없는/ 그 고독은 내가/ (22)마침내/ 내 생애가/ (23)청춘 시절/ 내가 드렸던/ (24)등허리가/ 움푹 패인 듯/ (25)갈릴리에서/ 손 쓰던 사람의/ (26)뽕밭 저 끝에서/ 체포영장을 가지고 다가오는/ (27)비로소/ 자기 몸도 개운해졌다고/ (28)그 깊은/ 계곡의 중간에/ (29)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는데도/ (30)왜냐하면/ 그렇게 계곡을 날아가고 있는 나도/ (31)내 몸의/ 세포들이 하나하나/ (32)변명의/ 껍질을 벗겨보는/ (33)옹골찬/ 불씨 하나가/ (34)나도 모르게/ 자살을 기도했다는/ (35)환히/ 펼쳐지는/ (36)잠은 여전히/ 곤드레만드레 술에서/ (37)목뼈가/ 부러진 듯/ (38)아무리/ 어지러운 꿈이라도/ (39)두 눈/ 빤히 뜨고 있는데도/ (40)내 소설책의 표지에/ 사용한 적이 있는/ (41)영정이/ 불면의 빈소에/ (42)영정이/ 없으면/ (43)아무도/ 받아가지 않는데도/ (44)무덤을/ 등 뒤에 두고/ (45)그것은/ 공포였으나 뭉크의/ (46)그러나/ 그 잠속에도/ (47)그것도/ 총천연색으로/ (48)내 평생/ 처음으로/ (49)나는/ 내가 곧 죽으리라는 것을/ (50)아내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51)아내는/ 한나절 내내/ (52)전에는/ 아내가 떠났지만/ (53)내가/ 마지막 예배를 드리러/ (54)사방을/ 둘러보아도/ (55)부럽기/ 그지없는/ (56)이렇게/ 내 인생 45년이/ (57)길고 긴/ 공포의 옷자락을 끌며/ (58)내가 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59)장 발장처럼/ 훔쳐/ (60)정말 나는/ 이 세상에서/ (61)무엇보다/ 배신과도 같은 나의 죽음을/ (62)그곳에/ 갔다 와서/ (63)너무도/ 기가 차서/ (64)내 앞에/ 거대한 탑처럼 솟아 있는 계단들/ (65)아파트/ 입구 맞은편/ (66)그러나/ 아파트 입구를/ (67)눈물은/ 검은 숲 저 너머로/ 모두 쏠려가/ (68)하지만/ 그 생명은 내가/ (69)그러나/ 그렇게 막판까지/ (70)하지만/ 신이여, 나의 자살은/ (71)경비원까지/ 저렇게 세례요한처럼/ (72)그런데/ 그때까지도/ (73)곧바로/ 나를 거실에 놓여진/ (74)그분의/ 짧은 진단 한마디에/ (75)정욕을/ 위하여 금식을 했다고/ (76)그러나/ 내 마음의 귀로는/ (77)그 동안/ 막혔던 혈이 뚫려/ (78)너무도/ 생생한 그 감각 속에서/ (79)다리를/ 중간중간 만지고 나서/ (80)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81)그분은/ 새끼손가락만 아니라/ (82)차라리/ 베어져버렸으면/ (83)내 존재/ 밑바닥을/ (84)이제야/ 비로소 가사 그대로/ (85)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으리라는/ (86)신림천/ 쪽에서는 아직도/ (87)터미널/ 간이매점에서/ (88)메뚜기도/ 살아 있고/ (89)내 속의/ 높은 것들도 이제는/ (90)나는/ 삽교천 푸른 물 거느리고/
사설시조로 볼 때의 종장 ‘1/ 2/구’만을 구분해서 옮겨본 이 작품에서 인식되는 사항은 일곱 가지다. 첫째는 “소설을 시처럼 쓸 수 있는 가능성의 입증”이며, 둘째는 “소설시라고 해서 무조건 사설시조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셋째는 “임의 구분한 90수에서 사설시조 종장 첫 걸음(3음절)으로 나타나는 것은 ‘(2)늦가을,…(중략)…(89)내 속의’에서의 구분대로 과반수(63수) 내재되어” 있으며 넷째로는 “나머지(27수)는 사설시조로 구분하기 불가한 문장”에 해당한다는 점이며, 다섯째로는 “종장 1구 역할이 3음절이더라도 종장 2구 역할이 5음절에 못 미치거나 9음절 이상일 경우가 ‘(7)가득 고인 안개는 솜사탕,’ 등 11수로서 이는 결국 사설시조 형식의 작품이 아님”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여섯째, “이 작품이 형식면으로서의 사설시조에 해당하는 부분은 적지 않게(63수-11수=52수) 나타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소설시를 사설시조조로는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일곱째, “결정적으로는 작품 전체에서 볼 때 맨 마지막 연과 그 앞의 연이 전혀 시조 양식을 갖추지 않았다”는 데에서 가부간의 구별이 더욱 확연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그 작품에 ‘시’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하더라도 판소리 가락, 또는 사설시조 형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시건 소설이건 그 문장의 말미에서 시조 종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의 작품에서는 보편적으로 생동감은 물론, 리듬과 아이러니가 결여되어 있거나 사설시조의 특성인 풍자나 해학 또한 도출하기 쉽지 않다. 만약 작품 전체가 우울한 내용이더라도 그것이 구어체이거나 엮음 방식의 글쓰기를 지향했다면, 결말에 가서 반전의 묘미를 주어 웃음을 자아내거나 통쾌함을 주는 작품이라면 거기서는 사설시조 양식이 종종 나타남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설시조에는 한국인의 특징적인 정서가 함유되어있다는 반증”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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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규태, 한국고전문학전집⑦, [時調편]수문서관, 1983. (평시조:pp.67~84) (사설시조:pp.84~89)
(2)그러나 현대시조의 형식장치가 고시조의 형태를 기초하였다고 하더라도 현대시조를 고시조와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이지엽의 현대시조쓰기, p.46.)
(3)이 문장은 고전소설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예 : 김기동, 전규태 외 한국고전소설선, 새글사, 1965,(「흥부전」p.170→태백산 갈가마귀 차돌도 바이 못 얻어먹고, 주려 청천에 떠 갈곡 갈곡 울고 가니…)
(4)김기종, 우리말의 문체론과 수사학, 훈민, 2006, p.44.
(5)바로잡기 : ‣*어제사 ⇥ 전규태 편저에서는 ‘이제사’로 되어있는 이 단어의 의미는 ‘이제 와서’ ‘이제야’이다. 그러므로 ‘어제사’(어제야, 어제서야)로 표기함은 비문이다. 이 초장의 바른 해석은 ‘이제 와서 못 보게 하였으니 못 보는 게 적실(당연)하다’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하여 ⇥ 이것은 시진(澌-물 잦아들 시, 다할 시, 盡-다할 진)을 오해한 경우의 오문이다. ‣***벗어던지듯이 ⇥ ‘벗어던지듯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전규태 편저에서는 ‘더진듯이’로서,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종결형 ‘던진듯이’다. 일단 벗어던져놓아야만 ‘벌떡 나뒤쳐’질 수 있기에 과거종결형 ‘더진듯이’를 쓴 것으로 해석된다.
(6)김제현, 이지엽 외 한국현대시조작가론, 태학사, 2002, pp.301~302.
(7)김종해, 賤奴, 일어서다, 서문당, 1982.
(8)조성기, 「내 영혼의 백야」, 작가세계(1996 여름호), 세계사, 1996, pp.10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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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정 작성시간 10.11.07 강의시간에 교수님깨서 사설시조의 흐름을 잡아주셔서, 이 글을 보니, 오늘처럼 안개 자욱한 가을 저녁, 사설시조를 한번 쓰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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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蘭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1.08 써 보시와요~ 미정님 파이팅!....아참, 우리 손주, 그 젤리 참 잘먹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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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주 작성시간 10.12.03 3음절로 시작하는 단어가 저렇게 많을지 몰랐습니다!^^; 사실 시조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교수님덕에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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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nanjung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2.03 윤주님~ 앞으로 시조공부도 해볼 기회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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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필 작성시간 10.12.15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