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山海經)』
산해경의 저자
산해경은 중국 선진(先秦)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지리서로, 곽박(郭璞)이 기존의 자료를 모아 저술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 희대의 기서(奇書) 산해경의 원 작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는 아무도 모른다. 고대인들은 하(夏)나라의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리고 난 후 신하 백익(佰益)과 함께 편찬하였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근대 이후의 학자들은 산해경의 성립시기를 대체로 기원전 3~4세기경인 전국(戰國)시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부분에 따라서는 기원전 12세기까지에 이르는 서주(西周)시대로 소급하는 게 있는가 하면, 서기 3~4세기인 위진(魏晋)시대까지 내려가는 것도 있다. 지은이가 곽박 외에 남방의 초인(楚人), 동방의 제인(齊人), 북방의 연인(燕人) 등 여러 설이 있으며, 신분은 무당 혹은 방사(方士)-도교 계통의 주술사(呪術師) 계통의 사람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본래 산해경은 인문지리지로 분류되었으나, 현대 신화학의 발전과 함께 신화집의 하나로 인식되고 연구되기도 한다.
동아시아 상상력의 근원을 찾아서
정재서의 말처럼, 괴짜의 대가 보르헤스도 경탄을 금치 못할, 상상동물 이야기의 원조 같은 책이 바로 산해경이다. 보르헤스는 상상동물 이야기 서문에서 “햄릿왕자, 점, 선, 평면, 관처럼 생긴 것, 입방체, 모든 창조와 관련된 단어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신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의 총체, 즉 우주”라고 자기 책을 추켜세운 바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찬사는 산해경에 바쳐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산해경은 정말 어떤 책인가? 산해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 전에 성립된, 중국의 대표적인 신화집이다. 대체로 기원전 3~4세기경에 무당들에 의해 쓰여 졌다는 설이 유력한 이 책에는 중국과 변방지역의 기이한 사물, 인간, 신들에 대한 그림이 함께 실려 있는데, 이 책이 무당들의 지침서라고 하는 설이 유력하지만 한편 고대 여행기라는 설도 있다.
근대 이후 학자들에 의하면 이 책은 종교적으로 샤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산신제에서 쌀을 바친다든가, 곤륜산(昆侖山), 건목(建木)에 대한 숭배, 가뭄 때 희생되는 무녀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그러한 판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해서인지 이 책은 샤머니즘이 성행했던 고대 은(殷)왕조의 문화 내용을 많이 보전하고 있다. 은왕조의 조상신인 왕해(王亥), 제준(帝俊) 등에 대한 신화는 다른 고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산해경을 통해서 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은(殷) 및 동이계(東夷系) 민족의 특징적인 문화현상으로 간주되는 조류 숭배와 관련된 신화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우리가 산해경을 중국신화집으로만 보지 않고 동아시아 고대문화의 원천이자 상상력의 뿌리로 간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해경의 신화세계
삼국유사가 저술되기 1천여 년보다 훨씬 전에 중국측 문헌사료에 이미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는 고조선 건국시기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사기, 한서 같은 정사는 물론, 기원전 8세기에서 1세기에 걸친 시대를 포괄하는 산해경 등에 고조선이 등장한다.
중국 고대 기록 중에 조선의 위치에 대하여 언급한 책이 산해경이기도 하다. 산해경은 “조선은 열양(列陽) 동쪽에 있는데 바다[海]의 북쪽이며 산의 남쪽이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조선의 위치는 연나라 땅인 열양 동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남쪽은 바다이고 북쪽은 산이라는 것이다. 중국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남쪽에 바다를 접하고 있는 곳은 현제의 요서지방이다.
산해경에는 또 “동해(東海)의 안쪽, 북해(北海)의 귀퉁이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기록된 동해와 북해는 어느 바다일까? 과거에는 지금의 서해를 뜻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여기엔 별다른 근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선의 중심지가 평양지역에 있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의심할 바 없이 당연히 서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기 「조선열전」에는 한나라의 양복(楊僕)이 제(祭)를 출발해 발해에 떠서 고조선의 왕검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산해경에서 말하는 바다는 발해라고 볼 수 있다. 제는 오늘날 산동반도 지역을 가리키는데, 전국책(戰國策)에 “제나라 북쪽에는 발해가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해경에서 말하는 북해는 산동반도 위쪽의 바다, 즉 오늘날의 발해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해의 북쪽은 오늘날의 요서 지방이다.
치우에 관한 사기 주석 중에 산해경을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사기 본문과는 그 내용이나 시각이 많이 다르다.
치우가 군사를 일으켜 황제를 토벌하였다. 이에 황제는 응룡(應龍)에게 명하여 ‘기주의 들’에서 치우를 공격하였다. 응룡은 물을 관장하였다. 치우는 풍백, 우사를 불러 크게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퍼붓게 하였다. 이에 황제는 발(魃 가뭄의 신)이라는 천녀(天女)를 불러 비를 멈추게 하였고, 마침내 치우를 살해하였다.
사기는 “치우가 난을 일으켜 헌원의 명을 듣지 않아서 황제가 토벌했다”고 하였지만, 산해경은 치우가 먼저 군사를 일으켜 황제를 공격했지만 패했다고 적고 있다. 사기와 산해경은 치우가 헌원에게 패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전자가 치우를 반역자로 보고 있다면 후자는 치우를 황제와 동등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치우를 황제와 동등하게 바라보는 산해경의 시각은 배인의 사기집해에도 그대로 계승된다. 사기집해는 “응소(應邵)는 ‘치우는 옛날의 천자이다’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천자는 천하의 지배자를 뜻하니 승자는 헌원이 아니라 치우가 되는 셈이다.
황제-응룡-발(가뭄의 신)-치우-풍백(바람의 신)-우사(비의 신) 두 계열 신들의 전쟁은 황제 측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황제는 여러 종족의 조상으로, 문명의 창시자로 추앙된다. 이 전쟁신화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히는데, 중원과 변방의 대립에서 중원의 정통성 확립, 야만상태인 카오스에서 조화로운 문명인 코스모스로의 이행 등의 해석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군신화에서 환웅천왕을 보필했던 풍백과 우사가 이번에는 치우를 도와 황제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로 미루어 치우가 단군신화 내지 한국의 신화와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산해경 일부 인용
아무튼, 산해경이라는 책은 매우 신빙성이 높은 책인 것 같다. 그래서 '그 신빙성이 매우 높은' 산해경을 무작위로 뽑아 일부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남해의 안쪽에 형산, 균산, 계산이 있고 삼천자도라는 산이 있다.
남방의 창오구와 창오연, 그 가운데에 구의산이 있는데 순을 장사지낸 곳으로 장사와 영릉의 경계선에 있다.
북해의 안쪽에 사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사수가 여기에서 나와 동쪽으로 바다에 흘러든다. 오색 빛깔의 새가 있어 날면 한 고을을 뒤덮어 버리는데 이름을 예조라고 한다. 또 불거산이 있는데 교수가 그 산 서쪽에 묻혀 있다.
북해의 안쪽에 두 손이 뒤로 묶이고 형틀에 채워진 채 창을 든 사람이 있으니, 상배를 모시던 부하로 이름은 상고시라고 한다.(<해내경>)
다시 동쪽으로 15리를 가면 거저산인데 산 위에서는 대나무가 많이 난다. 거저수가 여기에서 나와 남쪽으로 황하에 흘러든다. 그 속에는 호어가 많은데 생김새는 두렁허리 같고 붉은 주둥이와 꼬리에 붉은 날개가 있으며 이것으로 흰 버짐을 낫게 할 수 있다.
다시 동쪽으로 35리를 가면 총롱산인데 산 속에는 큰 골짜기가 많으며 여기에서 흰색 흙, 검은색 흙, 푸른색 흙, 노란색 흙이 많이 난다.
다시 동쪽으로 15리를 가면 와산인데, 산 위에는 붉은 구리가, 북쪽에서는 철이 많이 난다.
다시 동쪽으로 70리를 가면 탈호산이다. 이곳의 어떤 풀은 생김새가 해바라기 잎 같은데 붉은 꽃이 피고 꼬투리로 열매를 맺으며 열매는 종려나무 꼬투리 같다. 이름을 식저라고 하며, 이것으로 부스럼을 낫게 할 수 있고 먹으면 가위 눌리지 않는다.
다시 동쪽으로 20리를 가면 금성산이다. 이곳에는 천영이 많은데 생김새가 마치 용골 같으며 이것으로 뾰루지를 낫게 할 수 있다.(<중산경>)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영제산이라는 곳인데 산 위에서는 옻나무가 많이 자라고 기슭에서는 금과 옥이 많이 나며 새 짐승이 모두 희다. 완수가 여기에서 나와 북쪽으로 능양택에 흘러든다. 이곳에는 염유어가 많은데 물고기의 몸 뱀의 머리에 발이 여섯이며 눈은 말의 귀와 같다. 이것을 먹으면 가위 눌리지 않고 흉한 일을 막을 수 있다.(<서차사경>)
다시 서쪽으로 300리를 가면 중곡산이라는 곳인데 그 남쪽에서는 옥이, 북쪽에서는 웅황과 백옥 및 금이 많이 난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말 같은데 몸이 희고 꼬리가 길으며 외뿔에 호랑이의 이와 발톱을 하고 있다. 소리는 북소리 같고 이름을 박이라고 하는데 호랑이와 표범을 잡아먹으며 이것으로 무기를 막을 수 있다. 이곳의 어떤 나무는 생김새가 아가위 같은데 잎이 둥글고 열매가 붉으며 열매의 크기는 모과와 같다. 이름을 회목이라고 하며 이것을 먹으면 힘이 세진다.(<서산경>)
관흉국 그 동쪽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해외남경>)
저인국이 건목의 서쪽에 있는데 그들은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이고 발이 없다.
파사는 코끼리를 잡아먹고서 3년이 지난 후에야 뼈를 내놓는데, 군자가 그것을 먹으면 가슴과 배의 질병이 없어진다. 그 생김새는 청, 황, 적흑색이 섞여있다. 혹은 흑사는 머리가 푸르다고도 한다. 무소의 서쪽에 있다.(<해외남경>)
산해경의 글은 이처럼 이미지에 의존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어디에 무엇이 있고” 하는 식의 이야기, 계속 읽노라면 마치 무당의 주문을 암송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산해경의 단편적인 이미지 하나 하나는 동아시아 상상력의 원천이다.
결론적으로,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할까?
讀山海經(독산해경) 산해경을 읽으며
- 陶淵明 도연명 -
孟夏草木長(맹하초목장) 초여름 초목은 나날이 자라고
繞屋樹扶疎(요옥수부소) 집 둘레 나무는 잎가지가 무성하네
衆鳥欣有託(중조흔유탁) 새 떼는 깃들 곳에 즐거워하고
吾亦愛吾盧(오역애오려) 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
旣耕亦已種(기경역이종) 이미 밭 갈고 씨 뿌렸으니
時還獨我書(시환독아서) 이제는 나의 책을 꺼내 읽네
窮巷隔深轍(궁항격심철) 내 사는 곳 거리에서 멀리에 있어
頗回故人車(파회고인거) 친한 이도 수레를 돌리어 가고
欣然酌春酒(흔연작춘주) 즐기어 혼자 봄 술을 마시며
摘我園中蔬(적아원중소) 정원의 나물 뜯어 안주로 삼네
微雨從東來(미우종동래) 가는 비는 동쪽에서 나리어 오고
好風與之俱(호풍여지구) 비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도 좋아
汎覽周王傳(범람주왕전) 찬찬히 주왕전을 꺼내어 보고
流觀山海圖(유관산해도) 두루 산해경도 훑어보네
傘仰終宇宙(산앙종우주) 잠깐 사이에 우주를 다 돌아보게 되니
不樂復何如(불락부하여) 이 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도연명은 지금부터 1500여 년 전의 전원시인이다. 그는 농사일을 하다가 산해경을 훑어본다. 이 ‘훑어보네’의 원문은 ‘유관(流觀)’으로 되어있다. 즉 “물이 흘러가듯이 본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따라서 읽어가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그저 물 흐르듯 이미지에 몸을 맡기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