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족주의자들과 국수주의자들은 몇 해 전부터 여진(女眞)이라는 이름은 본래 여진(麗辰)이나 여진(麗振)이며, 이는 고구려의 ‘려(麗)’와 대조영이 쓴 이름인 ‘진(震)’ - 진은 나중에 이름을 ‘발해(渤海)’로 바꾼다. 그리고『구당서』「발해전」에는 같은 나라를 ‘震’ 대신 ‘진(振)’이라고 불렀다 - 을 합친 이름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옛 우리 겨레라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여진족은 서기 10세기(서기 900년경, 그러니까 발해 말기)에 나타난 이름이다.
이 말은 여진어인 ‘주션(Jušen)'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낱말의 기원(어원)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합의되지 않고 있다.
“숙신(肅愼)과 동일 기원을 가진 단어일 수 있다는 가정이 제기되었으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Jurch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몽골어에서 여진족을 가리킬 때 사용했던 단어인 Jürchen(주르첸)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내 견해를 밝히라면 여진족의 후손인 만주족이 남긴 기록에서 “삼가 생각건대 본조의 구칭인 만주(滿珠)에 속한 것을 주신(珠申)이라고 하였는데 주리진(珠里眞)과 음이 서로 비슷하며, 다만 약간 완급의 차이가 있으나 실은 모두 숙신(肅愼)의 음이 변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걸로 미루어 볼 때, 주션은 숙신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숙신이라는 이름이 세월이 흐르면서 주신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숙신을 한어漢語로 읽으면 ‘쑤셴’인 점으로 미루어볼 때, 발음이 원래는 ‘수션’이었는데 - 이는 영어인 ‘코울러Cola’가 한어로는 ‘커러可樂’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 ,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 마치 ‘딤채’가 ‘김치’로 바뀐 것처럼 - ‘주션’으로 바뀌었던 게 아닌가 한다.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숙신(肅愼)이 곧 조선(朝鮮)임은 의심할 바 아니니 이는 사책(史冊)이 조선(朝鮮) ․ 숙신(肅愼)이 한 나라였음을 보증함이라.”라는 신채호 선생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주션’이라는 말은 고조선 시절에 나타난 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후대에 나타난 말이기 때문이다.
서주西周 시절이나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는 ‘수션’족이라고 불리웠을 집단이 훗날 자기 민족을 ‘주션’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것이 고조선과 숙신족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흑수말갈‘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발해와 당이 붙인 이름이지 그들 스스로가 쓴 이름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계속 주션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발해에서는 그들이 흑수(아무르강. 중국 이름 흑룡강黑龍江. 만주 ․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나누는 강)에 사는 ‘말갈’인이기 때문에 ‘흑수말갈’로 불렀고, 그것이 당나라에 전해져 ’흑수말갈‘이 고유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이는 원주민들이 “라파누이(폴리네시아 말로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라고 부른 섬을 유럽인이 “이스터 섬”이라고 부르고, 나중에는 후자가 더 널리 알려진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몽골인이 만주족을 ‘줄친’족이라고 부른다.
‘줄친’ 은 중세 몽골어인 ‘주르첸’이 줄어든 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18년 전 몽골을 여행한 박승준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몽골에는 ‘줄친’항공사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박 기자가 몽골 사람에게 “줄친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어보자 그가 “줄친이란 중국의 동북부 - 만주 - 에 사는 모든 원주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만주족은 몽골어로는 줄친족이다).
따라서 옛 기록에 나오는 ‘주신(珠申)’이나 ‘주선(朱先)’은 ‘주션’을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옮긴 것임을 쉽게 알 수 있고, ‘주리진(珠里眞)’도 ‘주르첸’을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원래는 ‘여진’이라는 말이 없었고 ‘주션’이나 ‘주르첸’만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여진’이나 ‘여직’이라는 이름은 누가, 왜 만든 것일까?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역사책을 뒤져봐야 한다. 요나라는 여진을 ‘여직(女直)’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요나라 황제인 흥종(興宗. 서기 1031년부터 서기 1055년까지 요나라를 다스림)의 이름이 ‘야율진종(耶律眞宗)’이라서, ‘진(眞)’자를 피하느라 그 글자와 발음이 거의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한 ‘직(直)’자를 쓴 것이다(이처럼 윗사람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하는 관행을 ‘피휘’라고 부른다).
이 사실이 맞다면 “여직”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닌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고찰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요나라는 서기 1031년 이전에는 여진(女眞)이라는 말을 썼고, 송나라와 고려도 그 말을 썼으므로 여기서는 일단 여진이라는 말의 뜻과 주션/주르첸과의 상관관계에 집중하고자 한다.
우선 ‘여진’을 한어(漢語)로 어떻게 읽는가를 알아보자. 한어에 따르면 여진은 ‘뉴쩐(nǚzhēn)’으로 읽는다.
그런데 이 말을 ‘주르첸’이나 ‘주션’과 견주어 보면, ‘주션’보다는 ‘주르첸’과 더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험삼아 주르첸에서 ‘주’를 떼어내 보자. 그럼 ‘르첸’만 남는다.
그런데 이 ‘르첸’이 ‘뉴쩐’과 발음이 비슷하다. 한족들은 금(金)나라가 세워지기 전에는 여진족과 직접 접촉하지 못했고 요나라를 통해 여진족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므로, ‘뉴쩐’이라는 이름은 거란족이 전해준 여진족의 이름을 한어의 발음에 맞게 바꾼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언어학자들이 거란어가 몽골어와 비슷한 점이 많고 거란 문자로 쓴 문서에서 옛 몽골어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거란어와 몽골어는 비슷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거란(키타이)족이 전해준 이름이 ‘르첸’이고 송나라 사람들은 이를 ‘뉴쩐’이라고 읽었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해진다.(키타이족이 원래는 ‘키탄’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를 송나라 사람들은 ‘치단’으로, 고려 사람들은 ‘글단契丹’으로 읽은 것과 비슷하다).
이를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적다 보니 ‘여진(女眞)’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르첸’의 ‘첸’이 ‘쩐’으로 바뀐 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르’가 ‘뉴’가 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리라. 나는 당신에게 ‘ㄹ’발음이 ‘ㄴ’발음으로 바뀔 수 있고 ‘ㅇ’발음은 ‘ㄴ’발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례를 들고자 한다. ‘羅’라는 한자의 발음은 ‘라’지만, 맨 앞에 나올 경우 ‘나’로도 읽는다(예 : 羅를 성으로 쓸 때는 ‘나’라고 읽으며. 羅刹은 ‘라찰’이 아니라 ‘나찰’로 읽음).
그리고 ‘女’는 ‘여’뿐만 아니라 ‘녀’로도 읽을 수 있다(小女는 ‘소여’가 아니라 ‘소녀’로 읽는다).
이 법칙을 적용한다면 원래는 ‘르첸’을 ‘류전’이라고 읽다가 발음하기 편한 ‘뉴전’(녀진)으로 바꾸었고, 그것이 나중에는 ‘뉴쩐’(여진)으로 바뀌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ㄴ’은 ‘ㄹ’보다 발음하기 쉽기 때문에, 원래는 ‘르첸’이었는데, 발음하기 편한 쪽으로 이름이 바뀐다는 법칙에 따라 한족들이 ‘뉴전’이라는 이름을 썼고, 그 발음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한자를 찾다보니 ‘녀진’, 그러니까 ‘여진女眞’이라는 이름이 나타났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그리고 ‘o'은 'ㄴ’보다 발음하기 쉬우므로, ‘녀진’이 ‘여진’으로 바뀐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이름의 ‘뜻’을 분석해보면 ‘진짜(眞) 여자(女)’이기 때문에, 결코 존중하는 의미가 아님이 분명하다(전근대 사회에서 남자에게 “여자 같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용감하지 않고, 말만 앞서고, 문제를 풀기는 커녕 울기만 하고, 허약하고, 형편없다.’는 뜻이었다).
키타이족이 발해를 무너뜨리고 주션족 가운데 일부를 무릎꿇린 뒤 그들을 깔보아서 ‘여자 같은 것들’이라는 뜻으로 여진(女眞)이라고 불렀고, 그 말이 고려와 송나라에도 퍼져 종족의 이름으로 굳어진 건 아닌지(옛 발해 땅을 놓고 주션족과 싸우던 고려와, 금나라가 나타난 뒤 땅의 절반을 빼앗기고 계속 시달린 송나라는 이 말이 안 좋은 뜻이라는 걸 알면서도 - 어차피 자기들과 대립하는 족속을 좋게 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 이 이름을 계속 썼던 것이다).
그러니까 키타이족은 ‘주션’족을 자기들의 발음대로 ‘주르첸’이라고 불렀고, 그들을 깔보고 싫어했기 때문에 정식 호칭 대신 깔보는 이름을 불렀다는 이야기다.
‘주르첸’이 ‘르첸’이 된 까닭은 상대방을 욕할 때에는 긴 정식 명칭을 짧게 줄이는 일반적인 경향 때문이었을 것이다(한 예로, 일본은 대한제국을 점령한 뒤 ‘한국’이라는 정식 국호 대신 ‘조선’이라는 옛 국호를 썼고, 한국의 독립투사들이 일제에 맞서 싸우자 조선인朝鮮人을 ‘선인鮮人’이라고 줄여서 불렀다. 일제가 한국 독립투사들을 ‘불령선인不逞鮮人’. 그러니까 ‘말을 안 듣는 조선놈’이라고 부를 때, ‘조선인’을 ‘선인’이라고 부른 사례가 나온다).
그러니까 주르첸에서 나온 여진이라는 말은 주션족이 스스로를 일컬은 이름이 아니다.
따라서 ‘르첸’을 줄인 말인 ‘여진’은 ‘고구려와 발해’라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민족주의자와 국수주의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옛 기록에 “여진(女眞)은 여진(麗震)이라고도 한다.”는 구절이 나와야 하고, 금나라의 금석문(예컨대 비문)에도 여진(麗震)이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여진은 옛 고려 백성이다.”라는 윤관 장군의 말이나, “여진과 발해는 원래 한 집안이다.”라는 완안 아골타(묘호 금 태조)의 말은 주션족(여진족)이 한때 발해의 신민(臣民 : 김병기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신민은 ‘어떤 나라에 복종할 뜻을 밝힌 나라 또는 무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민’이 꼭 생물학적/문화적으로 지배층과 똑같을 필요는 없다)이었다는 사실을 나타낸 말일 뿐(역사서에는 발해가 흑수말갈과 싸우다가, 결국은 그들을 무릎꿇린 사실이 나온다),
그것이 주션족이 - 생물학적으로 - 고구려인이나 발해인이었다는 뜻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개인적으로는 고려시대의 여진족은 아무르강 유역에서 옛 발해 땅으로 내려온 흑수말갈족과 강원도에서 북쪽으로 올라온 신라 유민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발해 유민과는 구분된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다른 글에서 따로 밝히겠다).
한마디만 더하자면 여진(女眞)은 결코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니다. 만약 ‘고구려와 진’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 후대에 나쁜 뜻으로 알려졌다면 금나라의 기록에 “우리를 일컫는 여진(女眞)이라는 이름은 본래 고구려와 발해를 이었다는 뜻인데, 고려와 송나라와 요나라가 이를 나쁜 뜻으로 썼다.”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그런 구절을 찾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만약 여진족이 좋은 뜻으로 쓰인 말이라면 아이신교로 누르하치(한자로는 ‘애신각라愛新覺羅 노이합적奴爾哈赤.’ 묘호 청 태조)의 아들이자, 청나라의 두 번째 황제인 아이신교로 홍타이지(한자로는 ‘애신각라愛新覺羅 황태극皇太極’. 묘호 청 태종)가 여진족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고 만주족이라는 이름만 쓰라고 명령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좋은 명칭이자 오래 전부터 쓰던 명칭이 있는데 굳이 그걸 버리고 새 이름을 쓴단 말인가?
이는 여진이라는 말이 나쁜 뜻으로 쓰였기에 취해진 조치라고 이해해야 한다.
주션족은 욕으로 쓰이던 여진이라는 이름과 결별하고, 대신 “문수보살(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에서 “문수”를 따 ‘만주’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정식 이름으로 씀으로써 새롭게 태어났음을 과시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읽고도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번엔 한자의 뜻을 살펴보자.
麗는 “곱다, 아름답다, 빛나다.”라는 뜻이고 震은 “위엄, 위세”라는 뜻이며 振은 “떨칠, 나아갈, 구출할”이라는 뜻이다.
이런 좋은 뜻을 지닌 한자들로 만든 이름이라면 주션족(주르첸족) 스스로가 려진麗震/려진麗振이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여진이라는 이름은 한자의 뜻만 놓고 보아도 고구려/발해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바이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중국이 재미있다』(박승준 지음, 비전 펴냄, 서기 1993년)
―『만주원류고』(張鎭根 역주, 파워북 펴냄, 서기 2008년)
―『고조선 연구』(윤내현 지음, 일지사 펴냄, 서기 1994년)
―『註釋 朝鮮 上古 文化史』(申采浩 저, 李萬烈 주석, 단재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펴냄, 서기 1998년)
―「《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考)》에서는 금나라의 창업군주 아구타(阿骨打)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http://cafe.naver.com/manchuri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07)
―『발해고』(유득공 지음, 송기호 옮김, 홍익출판사 펴냄, 서기 2000년)
―「“일, 광개토대왕 비문 이렇게 조작했다.”」,『한겨레』2005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