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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 부평시 은광과 땅강아지

작성자삼일 이재영|작성시간22.05.16|조회수50 목록 댓글 4

 

 

6-4. 부평시 은광(銀鑛)

 

이듬해인 1979년에 우리 연구소는 전체 인원이 70여 명에 이르렀고, 전자 부문 K과장과 기구 부문 J과장이 승진하여 부장이 되고, 그 밑에 과(課) 단위인 기구 부문 1개, 전자 부문 5개, 총 6개의 실(室)로 조직이 구성되어, 과장을 실장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과장인 6실 실장이 되었다.

 

땅굴탐지기의 양산 납품 전에 육군본부 ‘26위원회’에서 국방연구소(ADD)에 확인시험을 의뢰했다.

시험장소는 부평 시내에 있는 폐쇄된 은광이었다. 직원 2명을 데리고 약속된 장소에 갔더니 육본에서 황 대령이 직원 2명을 데려왔고, ADD에서는 O실장이 10여 명을 데리고 왔는데, O실장은 나중에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내고 아주대학교 총장도 역임하신 유명한 분이다.

 

부평의 폐광은 갱도가 산꼭대기에서 땅속 200m 정도 아래에 있고 전기시설도 제대로 남아있었다. 산 위에 탐지기를 설치하고 갱도 안에서 굴착기를 가동하면서 탐지기에서 그 음파를 탐지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마침 그 당시는 야간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밤 12시까지 기다렸다가 차량 통행이 없는 조용한 시간대에 실시하면 되었다.

 

그런데 하필 산꼭대기가 공동묘지여서 오밤중에 서로 안 가려고 했고, 몇몇은 웃으며 가위바위보로 아래위 임무를 정했다.

나는 만 27세의 새파란 과장이었지만, 제조업체 대표로 갔기 때문에 40~50대인 황 대령, O실장과 함께 갱도 입구에 머물며, KPRC-6 무전기로 산 위 탐지기 팀과 갱도 안의 드릴 팀에게 “굴착 시작”, “굴착 종료” 등의 지시만 내렸다.

시험 결과는 아주 좋았고, 얼마 후에 10여 대를 정식으로 납품했다.

 

6-5. 땅강아지

 

그러고 나서 몇 달 후에 나는 ADD 직원 3명과 함께 현장실사를 갔는데, 임진각에서 육본 관계자를 만나 현장 장교의 안내로 차를 타고 ‘자유의 다리’를 건너서 한참을 들어갔다.

휴전선 근처의 현장에 도착하니 야전 막사가 3개 설치되어 있고, 그곳이 군(軍)에서 검토한 결과 의심이 많이 가는 지역 중 한 군데라고 했다.

 

파견 나온 군인들이 동서 방향으로 30m 간격으로 팽이처럼 생긴 10개의 피에조 압전센서를 실드선에 물려서 땅속 1m 깊이에 파묻어 꽁꽁 다졌다. 그리고 압전센서의 실드선을 막사 안으로 끌고 와서 탐지기의 입력단자 10개에 각각 채널별로 구분하여 연결하고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면서 감청한다고 했다.

 

그런데 저만치에 미군 막사와 미군들이 여러 명 보여서 물어보니, 미군들도 땅굴을 탐지하고 있다고 했다.

미군은 땅속에 지름 수십 센티의 쇠 파이프를 수직으로 박고, 그 속에 카메라가 달린 장치를 손가락 굵기의 케이블에 연결하여 집어넣어 눈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지금의 내시경 같은 장비라는 말인데, 한국군은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고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작업한다고 했다.

 

막사 안에 들어가 봤더니 탐지기에 연결된 헤드폰을 끼고 앉아있는 병사는 매 10분마다 귀에 들리는 소리를 일지에 적고 있었다.

근무 중에 졸지 말고 제대로 감청하도록 조치한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지를 들춰봤는데, 또르륵 똑똑, 빠각 빠각, 틱틱, 찌익 찍찍 등등, 온갖 의성어가 다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안 적을 수는 없고, 앞사람과 똑같이 적을 수도 없으니까, 자기 나름대로 구별해서 적다 보니 희한한 의성어가 적히게 된 것 같다.

증폭기 이득이 무척 크기 때문에 하필 압전센서가 묻혀있는 근처의 지상에 개미 한 마리만 지나가도 아주 큰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넘겨본 어느 페이지에 “뚜루룩 뚝뚝, 우르릉 꽝꽝”이라는 큰 글씨가 보여 살펴보니, 장교 확인란에 “땅강아지로 사료됨”이라고 적혀 있다.

몇 년 후에 들린 얘기로는 이 땅굴탐지기로 땅굴 2개를 찾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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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蘭亭주영숙 | 작성시간 22.05.16 땅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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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蘭亭주영숙 | 작성시간 22.05.16 자서전 하나 쓰셔야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삼일 이재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5.16 네, 난정 작가님. 그러잖아도 이 글이 제 인생 초반부 자서전입니다.
    지금도 핸드폰으로 "시니어문학상 육군이등병" 치고 열면, 제 얼굴과 함께 '대구 매일신문' 기사로 이 글이 뜹니다.
    굳이 책으로 발간 안 해도 자손들에게 자서전 남긴 셈이라 흐뭇합니다. ㅎ
  • 답댓글 작성자蘭亭주영숙 | 작성시간 22.05.16 삼일 이재영 아, 그럴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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