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과 지리산의 땅, 구례에서 하동까지 하룻길|
글: 개암 김동출 (프란치스코)
초여름 녹음이 점점 짙어지는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이 어울려 뿜어내는 구례는, 여행객들의 새로운 힐링 코스로 각광받을 만큼 자연경관이 수려했다.
> 그 길 위에 선 우리는 묵주기도를 바치며 남성동성당을 출발했다. 비탈길을 한참 올라 *사성암*에 닿았을 때,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과 드넓은 들판, 그리고 웅장한 지리산 연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약사전은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빚어낸 장엄한 미학이었고, 다리가 튼튼한 한 단원이 사진으로 담아온 원효대사의 손톱 자국이 남아 있다는 마애여래입상은 신비로운 기운으로 길손들의 마음을 적셨다.
사성암에서 내려와 찾은 *섬진강 대숲길*에서는 청청한 대나무 숲이 길손들을 맞이했다. 바람이 서글서글 불어오자 대나무 잎사귀들이 서걱이며 낮은 숨결을 내쉬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마음의 결을 다시 만났다.
> 이어 찾은 *섬진강 어류생태관*에서는 크고 작은 민물고기들이 유영하는 생태의 신비를 마주했다. *구례 5일장* 어물전을 지나면서 서민들의 정겨운 삶의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쌍산재*에서는 옛 선비들의 풍류와 은거의 멋을 느끼며 고택의 깊은 정취에 젖기도 했다. *하동 최참판댁*에 이르러서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속 삶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초가집에 깃든 여인들의 이야기는 길손들의 마음을 울렸고, 평사리 들녘을 내려다보며 황금빛 가을을 상상하는 순간, 문학과 역사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돌아오는 길, 뇌리에는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암절벽에 우뚝 솟은 사성암의 수려한 경관, 포토존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섬진강 대숲길, 쌍산재 입구의 천년의 고샘 *당몰샘*과 기와 담장을 기웃거리며 타고 넘던 붉은 능소화, 그리고 저수지 옆에 외진 별채와 하동 최참판댁의 고즈넉한 풍경과 남겨놓은 박경리 문학관 까지.
해질 무렵, 너나없이 만 보 가까이 걸어 다리가 무거운 듯한 일행은 성모동산에 모여 주모경을 바쳤다. 하루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감사의 기도였다. 오가는 차 안에서 '환희의 신비' 묵주기도를 이어 바치며, 이번 여정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신앙과 자연, 그리고 문학이 어우러진 '성화(聖化)의 길'임을 깨달았다.
길손들의 발걸음은 섬진강과 지리산의 품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잇게 했고, 그 화합은 다시 본당으로 돌아와 공동체의 힘으로 이어졌다. 하루의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호기심을 품고 다니던 사람들, 그리고 기도의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또 다른 길을 향한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2026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