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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이탈리아 수도 박물관 도시 "로마" 입성 편 제 7

작성자조문현|작성시간07.08.02|조회수77 목록 댓글 4

아름다운 피렌체를 마음에 담고 다음 도시인 로마로 향하여 4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니 로마에 도착하였다. 로마에 도착하여 와인이 제공되는 해물특식 마짱꼴레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들어왔다.

로마 ROMA를 거꾸로 하면 AMOR!! 사랑의 도시 "로마"는 한마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도시다.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유한채 현대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소매치기와 좀도독으로 향상 가방을 앞으로 차고 다니라는  가이드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연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관광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고대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육지와 수상교통의 중심지로 로마를 기점으로 이태리의 모든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되어 있다.   

 

콜로세움 소개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투기장(鬪技場)으로,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의 4층인데, 플라비우스 왕조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소장/소재지 이탈리아 로마
시대 80년
크기 직경 긴 쪽 188m, 짧은 쪽 156m, 둘레 527m
종류 투기장
↑ 콜로세움 / 이탈리아 로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콜로세움 설명 >>  내 뒤로 우리 일행들이 정담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무엇이 그리 재밌는 것인지 분위기가 좋습니다.----

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圓形劇場)’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다. 제정기(帝政期) 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여기에서는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巨像:colossus)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콜로세움 벽에 걸어 놓은 보석과 장식품(벽에 기관총 사격을 받은 곳과 같이 상처 투성이 흔적}이 수도없이 많이 붙어 있었는데 로마가 망하였을 때 군중들이 모두 떼어 갔다고 합니다.

그 많은 보석과 장식품이 그대로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면서 둘레를 배회하였다. 풍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콜로세움 안에 들어 갈 수 없어서 그 냥 그 안이 궁금하여 잠시 배회하였다.

그냥 그렇게 내 던져진 돌들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니.

뿌리기둥만 남은 모습들도 2000년이 살아 숨쉬는 것 처럼 느껴졌다.

 

예전 모습 그대로라서 땡볕에 모래 흙길을 걸어가기란. 헙;;;;

 

항상 신기하게 느껴지는 건,, 사람의 키보다 월등히 큰.. 거대한 기둥과 신전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세울 기술이 있었을까??

크레인도 없고 트럭(?)도 없고 헬기(?)도 없었을텐데.

2000년전에 말이다.

 

하긴,, 어디 불가사의한 일이 저거 뿐이겠어.

 

포로 로마노 자리에서 한 장---내 뒤 건물은 지금 정부의 한 기관으로 쓰며, 내 머리 부분과 닿은 개선문은 나포레옹이 보고 간 개선문이라고 함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포로 로마노

 

 

   ,,<<  포로 로마노  >>
팔라티노(Palatino) 언덕과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포로 로마노는 현재 쓸모없는 돌무더기를 모아놓은 일종의 건축 무덤처럼 보이지만
한때 고대 로마의 영화를 상징했던 곳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정치, 종교, 문화, 경제, 상업의 핵심기관이 모두 들어서있던
로마의 중심지였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곳이 두 언덕 사이에 갇혀있는 형태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대가 낮아 비가 오기라도 하면 물에 잠기는 지형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의 5대 왕으로 등극했던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가 로마를 돈된 도시로 건설하기 위해 지금의 포로 로마노의 터를 잡아 배수시설과 하수시설을 갖춰 도시 형태로의 첫발을 내딛으니 그것이 바로 포로 로마노의 시작이다.

 

 

포로란 뜻은 공공의 광장이라는 뜻이며, 포럼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포로 로마노의 중앙에는 성스러운 길이 있는데,
여기는 외국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들이 개선 퍼레이드를 벌였던 곳이다.
이 길 양쪽에 중요한 고대 유적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고
대 원로원, 에밀리아의 바실리카, 세베루스 황제의 거대한 개선문,
막센티우스 황제의 장대한 바실리카, 작지만 모양이 아름다운 티투스의 개선문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유적들이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태리를 점령하고 이 곳 포로 로마노에서  티투스의 작지만 아름다운 개선문을 보고 감탄을 하면서 자신도 프랑스에 가서 나폴레옹 자신의 개선문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여 지금 프랑스의 개선문을 만들었는데 이태리 개선문의 3배 크기을 개선문을 만들었으나 그 개선문을 전쟁에서 이긴 후 통과하지 못하고 사후에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만사 제 뜻대로 안되는? 일인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닌지---- 풍산

 

 

외출 관계로 다음에 <포로 로마노> <트레비 분수> 등을 계속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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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종익 | 작성시간 07.08.03 멋진 로마의 유적들 입니다.역사공부를 많이 했더라면 더욱 실감 날텐데...사진과 설명 잘 보고 읽었습니다. 매력적인 곳의 연속이군요...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것이 아니다,로마에 가선 로마 사람들이 하는 대로하라..는등 로마는 유명 유명 하네요..
  • 작성자서진원 | 작성시간 07.08.04 로마의 멸망의 원인은 부패와 성도덕 타락에서 빚어졌다고 들었는데, 그 역사적 증거들은 건물 내부에 있는건가요. 우리나라 독립문의 원조는 결국 이태리의 개선문이었군요. 공부 많이 됐습니다.
  • 작성자김종익 | 작성시간 07.08.04 정력을 남자에게 쓰면(전쟁) 나라가 강대해지고 여자에게 주로 쓰면 망하는 가....그 문이 침략하여 정복한 나라에는 개선문이고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에는 독립문이 되네요...
  • 작성자윤선주 | 작성시간 07.08.05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 하였고 우리들이 말 하기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 라고 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여 멸망의 길을 걸었는지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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