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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5,1-11 베드로를 부르시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5,1-11 베드로를 부르시다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예수님께서 배 안에 계시기 때문에 배는 교회의 상징이 됩니다. 진정한 기적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전도를 통해 ‘사람을 낚는 것’이며, 그런 전도가 오늘날에도 교회를 세우고 자라게 합니다. 복음 선포를 통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당신 교회로 끌어당기시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노아가 그랬듯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5,1-3 군중을 가르치시다

 

현세의 교회를 나타내는 첫 번째 고기잡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제자들이 행한 두 번의 고기잡이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그분께서 수난당하시기 전의 고기잡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께서 부활하신 뒤의 고기잡이입니다. 이 두 번의 고기잡이는 전체 교회를 암시합니다. 전체 교회란 지금의 교회와 죽은 자들의 부활 때의 교회를 말합니다. 현세의 교회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무수히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의 교회에는 선한 사람들, 그것도 한정된 수의 선한 사람들만 있게 될 것입니다.

현세에서 우리가 보는 교회에 대해 말해 주는 첫 번째 고기잡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그러자 그들은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분의 명에 따라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분께서 뜻하신 것 말고 무슨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한지를 아시고 그것을 기꺼이 일러 주시는 분입니다.

그들은 그물을 던졌습니다. 주님은 아직 수난당하지 않으셨고, 아직 다시 살아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그물은 던져졌습니다. 그러자 너무 많이 잡혀 두 배를 가득 채웠고,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하느님 말씀이라는 그물을 받아 깊은 바다인 이 세상에 내렸고, 그러자 지금 우리가 보고 놀랄 만큼 많은 그리스도인이 잡혔습니다. 여기서 배 두 척은 두 민족, 곧 유대인과 다른 민족, 회당과 교회, 할례 받은 이들과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을 나타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5,4-7 고기가 기적처럼 많이 잡히다

 

모세의 배 대신 베드로의 배를 택하시는 예수님

그분은 모세의 배를 버리고 베드로의 배를 택하십니다. 믿음 없는 회당을 물리치시고 믿음 깊은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바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인류를 건져 올려 구원하도록 이 둘을 고기잡이 배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교회는 하늘의 깊은 신비 속으로 들어가도록 불렸습니다. 이를 두고 사도는,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로마 11,33)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나심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합니다. 이보다 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배는 이 세상의 깊은 바다 위를 나아갑니다. 그래서 세상이 파멸해도 배와 그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예시를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노아의 방주와 그 안에 있던 생물들은 모두 안전했던 것처럼 장차 이 세상이 불길에 휩싸일 때 베드로의 교회와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안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홍수가 끝났을 때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을 노아의 방주로 물고 왔듯이, 심판이 끝나면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기쁨을 베드로의 교회에 안겨 주실 것입니다. (토리노의 막시무스 『설교집』)

 

그리스도의 그물로 사람을 낚으시는 예수님

주님께서는 시몬과 그 일행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물을 던졌고,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상을 보고, 그들은 자기네 수고가 보상을 받을 것이며 복음의 그물을 열심히 던지면 합당한 결실을 거두리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그물에는 이교의 많은 무리도 걸려들 것이었지요. 그런데 베드로와 그 일행이 자기들 힘만으로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고기 잡던 다른 배의 동료들에게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거룩한 사도들을 도왔듯이 지금도 많은 사람, 특히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의 의미를 연구하는 이들이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물은 지금도 던져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그 그물을 채우시고, 성경이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한, 세속의 험한 풍파와 소용돌이에 시달리는 자들을 회개로 부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배 두 척은 유대인과 다른 민족들을 나타낸다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다”는 말은 상징적으로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높은 곳에서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바다로 비유됩니다. 배 두 척은 할례 받은 사람들과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동료에게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은 일흔두 제자들을 상징합니다. 잡은 고기와 수확에 비해 베드로 일행의 수는 너무 적었거든요.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5,8-11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격려

거룩하신 분 앞에서 두려워하는 베드로

베드로는 지난날 저지른 죄가 생각나서 두려워 떱니다. 불결한 인간으로서 순결한 분을 감히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두려움은 칭찬할 만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간하도록 율법에서 배웠으니까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배는 생명을 주는 교회를 나타낸다

사람들은 배에서 생명을 얻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이동을 합니다. 그들은 항해하는 동안 위로를 받기보다 염려를 더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 배가 베드로에게 타고 다니라고 주어진 배가 아니라, 사도들이 다스리도록 주어진 교회입니다. 이 배는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배입니다. 깊은 바다에서 잡아 올린 반쯤 죽은 고기들이 작은 배에 실려 있듯이, 교회라는 배는 세파에 시달리다가 건져진 사람들에게 생명을 줍니다. 교회가 자기 품에 들어온 반쯤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토리노의 막시무스 『설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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