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루카 복음 주해

5,17-26 중풍 병자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다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5,17-26 중풍 병자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다


17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 중풍 병자 친구들이 그를 데리고 와서 지붕을 뜯고 주님 앞으로 내려 보낸 일은 그들의 진지함과 끈질김을 보여 주며, 아울러 모든 병자와 죄인들에게는 그를 주님께 데리고 갈 중재자가 필요함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로 영을 치유하시고 마비를 풀어 육을 치유하시고자,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물들 가운데 몸소 와 계심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용서는, 중풍 병자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그분의 발언이 신성모독인지와 그분께서 과연 하느님의 아들인지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의 아들인 당신에게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고 장차 그 권한이 당신의 교회에 주어지리라는 것입니다.

 

5,17-19 중풍 병자와 친구들

 

병자와 죄인들에게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판단하는 그대여, 용서하는 것을 배우시오! 병든 그대여, 완전해지는 것을 배우시오. 큰 죄인이 용서받는 것이 믿어지지 않거든 중재자를 부르시오. 그대를 위해 기도해 줄 교회를 부르시오. 주님께서 교회를 봐서라도 그대를 용서하실 것이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의심하지 말고 정말 그의 중풍이 나았다고 믿어야 하며, 죄를 용서받은 그의 영혼도 치유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5,20 용서의 기적

 

영과 육을 치료하시는 예수님

구원자께서 중풍 병자에게 하신,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씀은 전체 인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분을 믿는 이들은 영혼의 질병을 치유받으며 전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네 몸을 고치기 전에 먼저 예 영혼을 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냥 걸을 수만 있게 된다면 너는 다시 죄를 지을 것이다. 네가 그것을 청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인 나는 네 봄에 질병을 불러온 네 영혼의 병폐를 보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인간 전체를 치료하시는 예수님

죄인의 구원을 바라시는 주님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는 지식과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당신께서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고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부활과 비슷한 무엇을 가리키십니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시고 아울러 영의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그분은 육의 나약함을 씻어 주시고 그렇게 하여 인간 전체를 치유하십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실로 큰일입니다. 하느님 말고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용서의 권한을 주신 사람들을 통해서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몸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은 훨씬 더 신적인 일입니다. 주님이 곧 부활이시니까요(요한 11,25).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5,21-24 논쟁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의심하는 바리사이들

바리사이들은 우리 주님께서 예언자임을 의심하면서도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루카 7,39)고 생각함으로써, 그분께서 예언자임을 자기들도 모르게 시인했습니다. 그 바리사이는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한 자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이가 하느님이라는 그들의 언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제 싸움은 우리 주님께서 과연 당신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이인지를 보여 주는 데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분들을 곧바로 고쳐 주심으로써, 보이지 않는 죄를 용서하셨음을 입증하셨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우리 주님에 관한 설교』)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죄도 용서하시다

그분께서 죄의 용서를 선언하신 것은 지극히 하느님다운 권위를 지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선언은 무지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바리사이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이여, 그대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예언 말씀을 마음에 새겼더라면, 육화의 놀라운 신비를 이해하였더라면, 과연 그분에 대하여 그런 말을 하였겠는가? 오히려 그들은 주님께 불경죄를 덮어씌웠고, 가장 심한 형벌인 사형에 처하려 했습니다. 모세 법에는 누구든지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무례한 생각을 드러내자마자, 주님은 곧바로 당신께서 하느님임을 보여 주심으로써 용납할 수 없는 그들의 불경을 단죄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너희 바리사이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하느님 말고 누가 사람의 속마음을 알고 깊숙이 감추어진 생각들을 알 수 있겠는가?’” 그분은 예언자들의 입을 빌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예레 17,10)라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다윗도 어디선가 그분과 우리에 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다 빚으시고 그들의 모든 행위를 헤아리는 분이시다”(시편 33,15)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으로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분께서 하느님으로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5,25-26 치유의 기적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치유와 용서의 권한을 주시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불신의 여지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용서받은 죄를 사람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중풍 병자가 병이 나아 벌떡 일어나서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은 하느님다운 권능을 확실하게 드러내 줍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병고에서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아들에게 땅에서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음이 충분히 입증됩니다. 그분은 율법의 주인이시자 육신을 입으신 하느님으로서 죄를 용서하셨고, 우리 또한 이 놀라운 은총을 그분께 받았습니다. 그분은 거룩한 사도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라고 하심으로써 인간 본성에 이 큰 영예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죽음의 권세를 꺾고 무덤에서 일어나신 뒤, 사도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하고 말씀하실 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본성을 나누어 가지게 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이 내리게 하신 다음, 죄를 용서하고 묶는 권한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영광까지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같은 일을 하도록 명령받았거니와, 남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신 분이라면 그분 자신에게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얼마나 확실하게 있겠습니까?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집으로 돌아감은 낙원으로 돌아감이다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서 들고 가라고 명하신 평상은 다윗이 밤마다 눈물로 적신 바로 그 침상이고, 우리 영혼이 극심한 양심의 가책으로 앓아 누워 있던 고통의 침상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움직이면, 그것은 이미 고통의 침상이 아니라 안락한 휴식의 침상입니다. 실로 죽었던 자들이 평안한 휴식에 들어감은 죽음의 잠을 기쁨의 은총으로 돌려놓으신 우리 주님의 자비 덕분입니다. 중풍 병자는 평상을 들고 걸어가라는 명령만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라는, 곧 낙원으로 돌아가라는 명을 받습니다. 낙원은 처음에 인간을 길러 주었으나,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속임수로 잃어버린 우리의 본향입니다. 이제는 속임수로 인한 빚을 모두 청산하고 율법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 오셨으니, 본향을 되찾게 됨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