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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주해

6,27-38 교의적 가르침 : 원수를 사랑하라

작성자semo|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6,27-38 교의적 가르침 : 원수를 사랑하라


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세상은 제 허물을 사랑하고 제 본성을 미워합니다.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그 반대이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려면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만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 사랑에서 곧장 흘러나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고통을 겪으시는 동안에도 당신을 중상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뺨 때리는 폭력을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박해로 암시하십니다. 자연스러운 저항을 하지 않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참행복’ 설교에서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사람들은 그런 박해를 기대했다는 듯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율법을 바꿔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이는 기꺼이 매 맞고 옷 벗김당하신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단순히 선물을 주고받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기 바라십니다. 그것은 선물이면서 빚갚음입니다. 우리한테서 나간다는 점에서는 선물이지만, 우리가 주는 것들이 모두 하느님께 받은 것이니 빚을 갚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습과 거룩한 영상을 우리 안에 남겨 놓으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들 안에서는 그 거룩한 형상이 보입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이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설교의 핵심인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 다음에, 어떻게 이 자비를 남에게 베풀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예가 나옵니다. 죄인은 죄인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는 대신 자신의 잘못을 성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두 길로, 곧 용서와 관용, 자선의 두 형태, 기도의 두 날개로 드러납니다. 용서는 자비로운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사랑과 용서와 자비가 주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 용서가 흘러넘치면 관용이 흘러넘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이들의 곳간이 되어 주는 이런 관용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에 관한 표현은 역설입니다. 하느님의 주심을 인간이 사용하는 단위인 되를 예를 들어 표현한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6,27-34 여덟 가지 명령 : 원수를 사랑하여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 한편, 세상을 사랑하라는 명령도 받습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1요한 2,15).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그러데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도 받습니다. 여기서 ‘원수’는 우리를 미워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사랑하는 것을 세상 안에서 사랑하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세상을 미워하는 것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과 그분의 선의에서 오는 여러 위안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잘못은 사랑하지 말고 그 본성은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세상은 자기 잘못은 사랑하고 그 본성은 미워합니다. 그러니 세상이 잘못된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미워할지라도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미워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해』)

 

사랑의 덕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로 우리는 사랑을 명령받았습니다. 사랑의 계율들이 설 때 그 깃발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사랑이 어떻게 가장 높은 곳에서 비롯되어 율법을 복음의 축복 아래 놓는지. 율법은 벌로 앙갚음할 것을 명합니다. 복음은 적의를 품은 사람에게 사랑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거주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박해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고 가르치며, 굶주리는 사람에게 참을성을 주고 은총의 상을 내립니다. 상처의 아픔을 느끼지 않는 운동선수야말로 얼마나 완벽한 선수입니까?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십자가에서도 당신을 중상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입으로 하신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도 당신을 중상하는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직접 그들을 용서하실 수 있었는데도, 그들을 위해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암브로시우스 『욥과 다윗의 탄원』)

 

자비로운 사람은 불의로 고통을 받는다

자비로 정의를 넘어서는 사람에게는 왕관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왕관은 율법 아래에서 의인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아래에서 성숙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옛 율법도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을 입히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합니다. 불의와 거짓을 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완전함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나아가, 자신의 재물을 비롯한 외적인 것들에서 불의한 일을 당할 때 기꺼이 괴로움을 감수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니네베의 이사악 『종교적 완성』)

 

변경된 구약 율법

‘눈에는 눈’ 이는 정의의 완성입니다.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이는 자비의 극치입니다. 두 명령 모두 근거로 삼을 기준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앞에 연속되는 두 계약을 통해서 이 둘을 제사하십니다. 첫 번째 계약은, 정의는 다른 사람 대신해서 누가 죽임 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보속을 위해 짐승을 잡으라고 합니다. 두 번째 계약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준 한 사람의 피로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는 시작이었고 다른 하나는 끝인 셈이지요. 처음이자 끝인 그분은 완전한 분이십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시작과 끝이 서로 별개인 듯 보이겠지만, 깊이 연구하면 둘이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먹은 주먹으로 갚는다는 원칙이 철저히 바뀐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미십시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원수 사랑의 본보기 스테파노

우리는 스테파노에게 무슨 일이 었었는지 압니다. 유대인의 폭력으로 돌에 맞아 죽어 사면서 그는 살인자들의 응징을 청하는 대신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6,60)라며 용서를 빌어 줍니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순교자가 뒤에 있을 많은 순교자의 영광스런 죽음에 앞서, 주님의 고난을 설교할 뿐 아니라 그분의 지극한 온유를 본받은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키프리아누스 『인내의 선익』)

받을 생각하지 말고 주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사람들은 ‘돌려받지도 못할 것을 어떻게 주라는 것입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에 담겨 있는 힘을 잘 생각해 보면, 법을 만드신 분의 선의에 고개가 숙여질 것입니다. 그대가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면, 그것은 선물이면서 빌려 주는 것입니다. 돌려받을 생각 없이 주니까 선물이지요. 가난한 자에게 준 얼마 안 되는 것을, 주님께서 그들 대신 크게 되갚아 주시므로 빌려 주는 것입니다. (대 바실리우스 『시편 강해』)

 

6,35-36 하느님을 본받아라

 

인간의 자비 안에는 하느님의 모습이 들어 있다

하느님 모습의 흔적은 썩는 육신이 아니라 영혼의 지성 안에서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의로움, 용기, 절제, 지혜, 훈련과 본래 하느님의 것인 온갖 덕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이런 것들은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고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하느님을 닮고자 애쓰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원리론』)

 

자비는 하느님의 속성

주님께서는 이제 앞에서 우리가 말한 덕목들과 무척 가까운 자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자비는 더없이 훌륭한 덕으로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며 경건한 영혼들에게 최고로 어울리는 덕목입니다. 우리는 자비가 하느님의 속성임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의로운 이들과 불의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자비

그분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거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친절하고 자비로우시어, 의로운 이에게나 고마움을 모르는 이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거룩한 이에게나 악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 모두를 당신께서 심판하시리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트리폰과의 대화』)

 

6,37-38 네 가지 명령 : 심판하지 마라

 

자비 실천

자비 실천은 복수심을 없애는 것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이 둘을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저희도 받을 것이다.” 이 훈련은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한계가 많은 이승에서도, 순결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불변하는 실재를 뵐 수 있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라고 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서간집』)

 

남을 심판하지 말고 네 허물을 돌아보라

그분은 우리 마음에서 교만의 싹인 이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을 잘라 버리십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반성하고 하느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의무지만, 남들 일에 참견하느라고 바쁘기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한 제자가 말했듯이, “자기 형제를 심판하는 자는 법을 헐뜯고 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야고 4,11). 법을 만드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한 분입니다. 죄짓는 영혼을 심판하는 분은 그 영보다 높은 분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죄인이 오히려 심판자의 자격을 따지고 들 것입니다. 어째서 그대는 이웃을 심판합니까? 자격이 없으면서 이웃을 정죄하면, 정죄받는 것은 그대 자신입니다. 그대가 남을 심판하는 것을 율법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정의에 따라 심판하고 은총에 따라 용서하라

심판하지 마십시오. 불의하게 심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불의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가 심판하는 그대로 그대도 심판받습니다. 이는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정의에 따라 심판한 사람은 은총에 따라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의에 따라 심판 받을 때 은총으로 용서받을 자격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를 위하여 보복하려는 심판자들에게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이는 자신을 위해 앙갚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겉모습이나 남의 말만 듣고 심판하여 단죄하지 말고, 훈계하거나 충고하라는 뜻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자선의 두 종류

그리스도인은 남의 것을 훔치지 말아야 함은 물론,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 것도 도둑질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우리는 자비롭고 열심히 이 두 자선을 행합시다. 베풀고 용서합시다. 우리도 주님께 좋은 것을 주십사고, 우리 악행을 되갚지 말아 주십사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기도의 두 날개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기도를 싣고 하느님께로 날아가는 두 날개입니다. 죄지은 이를 용서하고, 가난한 이에게 주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들의 곳간

여러분이 자선을 베풉니다. 여러분이 자선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용서합니다. 여러분이 용서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너그럽게 베풉니다. 여러분이 너그러운 대접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마음에 두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선을 베푸십시오. 그 돈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제 말은 여러분이 가난한 이들에게 준 것을 잃지 않으리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이 잃지 않을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자, 여러분이 오늘 가난한 이들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지 어디 봅시다. 그들의 곳간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더 많이 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지은 모든 죄도 용서하실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주는 만큼 받는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충분히 주시는 하느님께 아낌없이 후하게 갚아 주실 것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신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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