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9-46 교의적 가르침의 목적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비유들로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이 비유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잘 드러내 줍니다. 사람의 지나친 심판과 비판은 그를 위선자가 되게 하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좋은 나무는 성령을 뜻하고, 나쁜 나무는 악마와 그의 부하들을 뜻합니다. 인간의 열매들, 곧 언행은 그의 성품과 마음 상태를 드러냅니다. 사람의 생각과 의도는 마음의 성향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6,39-42 눈먼 이가 되지 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비유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비유를 덧붙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을 이끌고 가르치는 일에 곧 나설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을 모두 갖추어야 했습니다. 복음적 삶의 방식을 알아야 했고 온갖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식견 높은 청중에게, 진리를 올바로 드러내는 정확한 구원의 가르침을 베풀어야 했습니다. 거룩한 빛으로 밝은 마음과 시력을 얻은 그들이니, 눈먼 이를 이끄는 눈먼 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무지의 어둠에 묻혀 있는 자가 똑같은 어둠에 묻혀 있는 자를 진리에 관한 지식의 빛으로 인도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랬다가는 둘 다 구렁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자만심에 넘어가 감히 스승을 능가하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어쩌다 스승에 버금가는 경지에 올랐어도 제자는 스승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해서는 안 되며, 그를 본받는 사람으로 남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같은 말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11,1).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제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위선자들
앞서 주님께서는 남을 심판하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위험한 일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남을 심판하면 최후의 심판 때 단죄를 받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단죄하지 마십시오. 단죄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말라고, 주님께서는 단호하게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그대의 큰 잘못들과 거역하는 욕정들에서 그대 자신부터 건져 내십시오. 그런 다음에야 그대는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을 바로 잡을 자격이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6,43-46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좋은 나무’는 성령을 나타냅니다. ‘나쁜 나무’는 악마와 그의 부하들을 나타냅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이와 반대되는 힘을 가진 자는 가시나 무와 엉겅퀴, 곧 불명예스러운 욕정을 낳습니다. (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주해 단편』)
행실에서 성품이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옷이 아니라 행실로 오는 자들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나 포도 같은 달콤한 열매를 기대한다면 그런 어리석음과 무지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위선자나 저속한 자들에게 고상한 품행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말씀으로도 이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는다.” 이와 반대되는 자, 마음이 교만과 사악함에 잡아먹힌 자는 자기 속에 깊숙이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고 맙니다. 덕성스러운 사람은 그 품성에 어울리는 고상한 말을 하고, 쓸모없고 사악한 자는 은밀히 숨겨 둔 더러운 것들을 드러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사람은 나무, 그의 행실은 열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 3,10). 주님께서는 사람을 나무로, 그의 행실을 열매로 표현하십니다. 그대는 어떤 것이 나쁜 나무고 어떤 것이 나쁜 열매인지 알고 있습니다. (존자 베다 『복음서 강해』)
성품대로 열매를 맺는다
“선한 사람은 마음이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생각의 의도가 들어 있고,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분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겉으로 드러나는 바를 판단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행실이 따르지 않고 말만 좋게 하는 자들이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리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물으십니다. 주님을 부르는 것은 좋은 나무의 열매요 좋은 보물을 선물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사악하게 살면서 그분 명령을 거역한다면, 그 혀에서 나오는 좋은 말이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런 고백의 열매를 맺는 것은 무화과나무 뿌리가 아니라 가시덤불의 뿌리입니다. (존자 베다 『복음서 강해』)